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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0/16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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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

주님, 주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시어 저희가 끊임없이 좋은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2024년 10월 16일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0월 16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0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갈라 5,18-25)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욕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1,42-46)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 오늘 말씀 카드
    (갈라 5,25)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http://pieonane.com/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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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 5,18-25
오늘 제1독서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욕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형제 여러분, 

18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20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21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23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25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루카 11,42-46
오늘 복음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0월 16일
박민재 미카엘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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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성령과 함께 하는 자유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결코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며, 율법을 모두 지키는 것보다 결코 쉽지도 않다는 것이 오늘 제1독서를 보면 분명해집니다.

어제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유로워진 사람은 “자기 육[이나] 그 욕정과 욕망”(갈라 5,24)에도 매여 있지 말아야 합니다.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길로 거침없이 달려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아직 해방되지 않았고 아직 자유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고 말하여야 할 것입니다. 불륜이나 방탕의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면, 적개심이나 시기가 일어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이기심을 사랑으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율법에 매여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저 방종한 상태에 있을 뿐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할 수 없거나, 어떤 상황 때문에 기뻐할 수 없거나, 다른 무엇 때문에 평화를 잃는다면 아직도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되려면 자기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도 더 어려워 보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답은 성령입니다. 여기에서 말한 모든 것은 “성령의 열매”(5,22)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자리하시면 이러한 열매들이 맺힐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화답송에서 말하듯이 이 길을 따라간다면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을 압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다시 정신을!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방탕, 이기심.... 분파, 질투, 만취,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오늘 갈라티아서는 육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저를 보면 육의 행실들이 골고루 얼마간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도 얼마간 제게 다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주님께서 불행하다고 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의 추한 모습 곧 육에 이끌리는 모습을 얼마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입니까? 육에 이끌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양다리 걸치기입니까?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영적 식별이 필요하고, 거듭거듭 정신을 차리는 일깨움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라고 사도 바오로가 얘기하듯 우리의 육을 욕정과 욕망과 함께 확실하게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늘 성령을 따라 살며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을 십자가 영원히 못 박지 않은/못한 사람은 매 순간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께 깨어있지 않으면 세상 것들에 정신이 팔리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정신/Spirit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정신은 들락날락하는 것이고 그래서 정신을 차리면 정신이 내 안에 있기도 하지만 무엇에 정신이 나가거나 팔리면 정신이 내 안에 없기도 합니다. 꽃을 보겠습니다. 꽃은 아름답고 전혀 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꽃에 취하고 빠집니다. 그러는 순간 하느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고 꽃과 반대되는 추한 것들은 보기 싫습니다. 그런 사람은 카메라를 들고 꽃만 찾아가고 성당에도 가지 않고 병든 노모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처럼 우리는 꽃을 볼 때 즉시 하느님을 같이 보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봅니다. ‘꽃이 예쁘게 피었네!’ 하고 말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예쁜 꽃을 주셨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음식도 유익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네! 하며 즐기기만 하면 그 순간, 우리는 식도락가로서 식도락을 즐길 뿐이고, 음식은 양식이 되지 못하며 식사는 성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께 깨어있으면 음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은총이요, 우리를 살리는 영적 양식이며 성사가 되겠지요. 

다시 정리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렇게까지 하지 못하였다면 거듭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께 깨어있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다시 정신 차리고 하느님께 깨어있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신앙의 참된 길잡이로 살아가라.

예수님께서는 앞 장면에서 정결법의 정신이 사랑에 있음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어서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에게 여섯 가지 ‘불행선언’을 통하여 신랄하게 질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 중에서 바리사이들에 대한 세 가지와 율법 교사들에 대한 한 가지를 들려줍니다. 

<첫 번째> 불행선언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십일조는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루카 11,42)

이는 십일조의 율법준수를 부정하거나 율법준수를 질책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결여된 율법준수를 질책하시는 것입니다. 레위기(27,30-33)와 신명기(14,22-29)에 따르면, 주요 곡식과 가축의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이를 더 세분화하여 뗄 나무에까지 십일조를 적용할 만큼 율법준수에는 규정 이상으로 열성적이고 철저하고 엄격했지만, 율법의 정신인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을 행하는 일을 실천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열성은 좋지만, 그릇된 열성은 오히려 위험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 위에 서 있는 열성이어야 합니다. 곧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보다, 그 정신인 의로움과 사랑을 행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불행선언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루카 11,43)

사람들이 그들에게 윗자리를 내어주고 먼저 인사하는 것은 존경의 표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맡은 바 종교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특권적 우월의식과 교만한 과시욕에 몰두했었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인의 특권의식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사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윗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 합당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존경받기보다 존경하고, 인사받기보다 인사하고, 섬기받기보다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불행선언입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드러나지 않은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으면서 무덤인 줄을 모른다.”(루카 11,44)

민수기(19,16)에 따르면, 무덤에 닿으면 칠 일간 부정하기 때문에 회칠하여 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불결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마치 표시하지 않은 무덤처럼, 자신의 부패를 은폐시키고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사실, 악보다 더 추악한 것은 마치 선인 양 자신의 얼굴을 꾸미고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된 선일 것입니다. 

<네 번째> 불행 선언은 율법 교사들에 대한 것입니다.

“너희 율법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루가 11,46)

율법 교사들의 언행의 불일치에 대한 질타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자신들은 율법을 실행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는 짐을 지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보다도 조상들의 전통과 율법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을 존중했고, 그것을 지나치게 세분화하여 모세의 율법 외에도 613개의 규범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결국, 백성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짐을 지워놓으면서도 자신들은 스스로 지키지는 못했던 것입니다(마태 23,3).

사실,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들은 그 당시의 종교적 길잡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악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을 받은 많은 사람들까지도 파멸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 참된 신앙인이요, 신앙의 참된 길잡이로 살아가라는 강력한 경각심을 일깨워줍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1,42
불행하여라, 너희가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
제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당신을 믿으면서도 
의로움과 사랑을 
행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불의와 부패 속에서 
행복이 있을 수 없고
무관심과 냉대 속에도 
행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당신 뜻을 행함으로 
진정한 행복을 얻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지금이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지만, 한때 이것에 민감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학창 시절, 이성에 관한 관심이 생기면서 남들 하는 것을 나도 따라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유행’입니다. 
 
요즘에도 사람들은 유형을 따릅니다. 그런데 요즘의 유행은 예전과 아주 다르다고 합니다. 경제 잡지 ‘브랜드 아인스’는 소비 상품에 관한 기사를 다루면서 ‘거창하게 떠벌리는 것은 유행이 지났다.’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으며 가치 있다고 간주되는 것은 ‘강제성이 없는 것’, ‘신뢰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브랜드의 로고도 거창하지 않습니다. 눈에 띄지 않거나 아예 없는 것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물건이 전에는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것이었다면, 이제 눈에 띌 듯 말 듯한 소박하고 간결한 것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는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전에는 자기 PR이 중요하다면서 자기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나서지 않고 소박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성실한 사람이 인기라고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겸손을 보여 주시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하신 것은 엄청나게 시대를 앞서간 행동이었습니다. 세상의 유행을 굳이 따르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이 겸손이라는 ‘유행’은 따라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윗자리에 앉아 인사받기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의 형식주의와 섬김보다 명예를 우선시하는 그들의 태도를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를 향해서는 다른 이들에게 견디기 힘든 짐을 지울 줄만 알고 정작 자기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다면서 꾸짖습니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의 자리 자체에 대한 꾸짖음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산 것을 겉으로 보이기에 온 힘을 쏟았다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자기 구원을 위한 ‘열심’이 아닌, 보이기 위한 열심이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의 삶을 살지 못했기에 그들은 결국 주님께 꾸짖음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이런 말을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교사 중 어떤 사람이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 범위는 이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회개를 위해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겸손의 삶을 살고 있을까요? 보이기 위한 열심을 버리고, 진정으로 주님 마음에 드는 보이지 않는 열심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

- 소포클레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행복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작은 실천이 모여 사랑이 되고 행복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사랑이 없는 행복의 반대쪽 삶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의 욕심이 하느님보다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교만으로 우리는 행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따라갑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 사랑을 향합니다. 지혜도 행복과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실천을 돌보지 않으면 행복은 금방 사그라듭니다. 그래서 욕심과 하느님 사랑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함께 가는 길이 사랑이며 행복입니다. 그의 생활이 그의 삶이며 그의 행복입니다. 

우리의 행복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보고 만나는 은총의 시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기도로 기억해야 할 하느님을 기억하며 감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행복한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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