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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0/18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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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네.

주 하느님, 복된 루카를 뽑으시어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신비를 설교와 기록으로 세상에 알리게 하셨으니 주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부르는 저희가 언제나 한마음 한뜻이 되고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구원을 보게 하소서.

2024년 10월 18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0월 18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0월 1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2티모 4,10-17ㄴ)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0,1-9)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10,5)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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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2티모 4,10-17ㄴ
오늘 제1독서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10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11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마르코는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이니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12 
티키코스는 내가 에페소로 보냈습니다. 

13 
올 때, 내가 트로아스에 있는 카르포스의 집에 두고 온 외투와 책들, 특히 양피지 책들을 가져오십시오. 

14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행실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15 
그대도 그를 조심하십시오. 그는 우리의 말에 몹시 반대하였습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루카 10,1-9
오늘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0월 18일
조용준 니콜라오 신부

 

✚ 성 루카 복음사가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6

✚ 강론시작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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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지금도 살아서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루카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공생활 때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카는, 예수님께서 직접 파견하셨던 제자들이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을 보내 주십사”(루카 10,2)고 청하여 그 주인이 보낸 일꾼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루카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저술함으로써 큰 일꾼의 몫을 하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루카는 그의 복음서 첫머리에서, 자신이 한 일과 그 목적을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이들이 전하여 준 것을 엮어서, 신앙에 입문한 테오필로스가 배운 것들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 줍니다(1,1-4 참조).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성령께서 오시고 사도들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한 과정을 다시 테오필로스에게 알려 줍니다.

책을 쓰는 것은 사람을 직접 만나 복음을 전하는 것과 달라서, 이 책들은 테오필로스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이 이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접하였습니다. 

이천 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예수님 시대 직후에 기록된 이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루카는 다른 복음서 저자들이 기록하지 않은 것을 우리에게 전하여 줍니다. 이것이 복음사가들의 특별한 공로이고 우리가 그들에게 감사하여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시대에, 그리고 교회가 생겨나던 시대에 그러한 증언을 남겨 줌으로써 루카는 지금도 살아서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치 1세기의 증인을 만난 것처럼 소중하게 복음서를 읽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도 다른 제자

오늘 복음의 말씀은 다른 복음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마태오와 마르코복음은 열두 사도의 파견만 전하는데 루카 복음은 다른 일흔두 제자의 파견 내용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열두 제자의 파견과 일흔두 제자의 파견을 비교해봤습니다. 

루카 복음은 열두 제자 말고도 일흔두 제자의 파견이 필요한 이유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음을 얘기하며 추수의 주인께 일꾼을 보내달라고 청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하고 그래서 일흔두 제자를 뽑으신 것은 단지 숫자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열두 사도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것이고 일흔두 제자는 이 제자들과 다른 제자들이니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곳, 곧 이방인들에게 가야 할 제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사가인 루카는 이방인 지역에도 복음의 선포가 시급하고 절실하며, 이곳 복음 선포를 위해 열두 사도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필요하고 유대인뿐 아니라 다른 민족의 제자들도 필요함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니 다른 일흔두 제자에 루카 복음사가도, 우리도 포함되는 겁니다. 일흔두 제자의 파견 기사에는 다음의 내용도 추가됩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니까 이방인 지역으로 가는 것이니까 12사도의 파견보다 훨씬 더 어려운 지역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이리, 곧 자기들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72제자는 파견되는 겁니다. 행복과 평화를 전하는 자기들을 오히려 죽이려 드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들에게 그래도 제자들은 평화를 빌어주라는 겁니다. 그리고 평화를 빌어주라는 이것이 12사도의 파견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자기를 죽이려 드는 사람들과 결코, 싸우지 말라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공격적인 선교를 하지 말고 평화로운 선교를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평화롭게 선교하고 평화를 전하는데도 누구나 좋아할 것 같은 평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며 그런 상황도 각오하라고 하십니다. 

분노, 적대감이 포화 상태에 있는 사람은 참으로 어쩔 수가 없고, 무기업자들처럼 반평화적인 상황이 자기에게 유리한 사람도 어쩔 수 없고, 적대적인 외부 환경을 조성하여 자기 세력을 내부적으로 규합하려는 사람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볼 것은 길을 가면서 인사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12사도 파견 때의 말씀에다가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는 말씀을 추가하시는 겁니다. 

평화를 빌어주는 사람이 인사를 하는 것은 기본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 하심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아마 이런 뜻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가거라.” 하시면서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고 하시는 것이니 이것은 아비의 장례도 치르지 말고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과 그 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나라의 추수 일꾼이 추수하러 길에는 사람들과 노닥거리며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시급성과 함께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때는 인정도 배제해야 한다는 그 절박성을 강조하기 위해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루카 복음사가는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이 이렇게 복음을 선포한 경험을 바탕 삼아 우리에게도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오늘은 성 루카의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사가만이 전하는 부분으로, 일흔 두 제자의 파견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파견하기에 앞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2)

이 말씀은 ‘추수할 때’가 되었음을, 곧 ‘복음 선포의 시급성’을 알려줍니다. 동시에, 먼저 필요한 것이 ‘기도’임을 알려줍니다. 왜냐하면 추수는 하느님께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종말론적인 ‘추수 꾼’ 은 천사를 표상하는데 여기서는 ‘복음전파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고 기도하기를 명하십니다. 그러니 첫 번째로 맨 먼저 필요한 것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흔 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 10,3)

“이리 떼 가운데 양처럼” 보내신 것은 종말에 늑대와 새기 양이 평화롭게 뒹굴고 어린 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닐 것이라는 ‘이사야 예언’(이사 11,6;65,25 참조)을 이루는 것을 보여줍니다. 곧 ‘하늘나라의 때가 왔음’을 선언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파견 받은 제자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해야 할 것들’을 당부하십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습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도 말고,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

그리고 ‘해야 할 것’은 이렇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든 먼저 평화를 빌어주며, 받아들여 차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병자를 고쳐주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

여기서도 ‘해야 할 일의 첫 번째’는 ‘기도하는 일’입니다. 곧 ‘평화를 빌어주는 기도’입니다. 사실, 루카복음에서는 “평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기쁜 소식의 ‘첫 번째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천사들은 목동들에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15)

천사들의 이 노래에는 ‘동사’가 없습니다. 이는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단순한 인사나 ‘평화가 있을 것이다’라는 예언의 노래가 아닌, ‘지금’ 그리고 ‘여기’에 ‘성취된 실재로 선포’되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탄생으로 ‘하늘에는 영광’이, ‘땅에는 평화’가 성취됩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땅에서도 구원을 일구어내시고 ‘평화’를 가져오심으로써, 스스로 당신 이름을 영광되게 하십니다. 

그러니 이제 ‘평화’를 빌어 줄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건네 준 그 평화를 형제들 안에 심고 가꾸고 일구며 건네주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0,5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주님!
저희의 평화가 아니라 
당신의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타인을 억눌러 이루는 평화가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어 이루는 
평화가 되게 하소서.

분쟁과 갈등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와 진리가 이루어진 
참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평화로운 사람이 되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평화를 위해 일하다가 배척을 받을지라도
제 자신을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의 위로를 전할 수 있어야 해.

2021년 영국에서 ‘아서’라는 여섯 살 난 아이가 친부와 계모에게 아동학대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아이의 몸에는 수백 개의 멍이 있었고, 영양실조로 사망한 것입니다. 아이의 집에는 가정용 CCTV가 있었고, 여기에 아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배고픔에 잠을 이루지 못한 아이는 서럽게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는 이렇게 외치는 동안 그 어떤 위로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아무도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아.” 
 
다른 이의 위로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뿐입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분이신 하느님께서 지켜주시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위로도 필요했습니다.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말은 분명히 필요했습니다. 이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할 때는 하느님의 소리도 잘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남들이 모두 비판하고 있을 때, 그래도 위로할 수 있는 ‘나’가 되어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도 없다며 절망에 빠지고 그 결과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더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곳을 향해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위로하기 위해 우리도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서 눈높이를 맞춰야 합니다. 진정한 위로는 이렇게 높이를 맞출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일흔두 명을 뽑아서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둘씩 보내십니다. 단순히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한 것일까요? 그것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위로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아무것도 주지 않으십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않게 하십니다. 왜일까요? 시선을 맞춰서 진정한 위로를 하기 위해서는 눈높이를 맞춰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을 지내는 성 루카 복음사가 역시 이렇게 세상에 위로를 주기 위해 온 힘을 전한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그림자라고 불릴 정도로 함께하였고, 또 전교 활동을 하며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의 위로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단순히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의 위로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위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 우리를 얽매는 ‘채움’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비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미하엘 코르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우리에게는 희망을 심어주는 복음이 있습니다. 루카 복음을 통해 시대와 공간을 벗어나 모두에게 열려 있는 희망의 복음을 만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이 기쁨의 복음임을 일깨워 줍니다. 

기쁨의 전달자 진리의 전달자가 참된 일꾼의 역할입니다. 기쁨의 일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영원한 기쁨을 나누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뜨겁게 한결같은 아버지 사랑을 만납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이 있습니다. 키 작은 자캐오가 다시 태어나고 마르타가 다시 기쁨을 되찾고 세리가 다시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습니다. 마음을 바치는 기쁨이며 사람의 소중함을 만나는 참된 기쁨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치유의 복음입니다. 상생과 화해를 다시 일깨워 주십니다. 참 생명의 기쁨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허무십니다. 생명의 잔치 축제의 기쁨이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루카 복음이야말로 기쁨에 이르는 복음입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기쁨을 살리는 행복한 복음의 일꾼이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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