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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0/20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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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의 길을 세상이 알고, 당신의 구원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하느님, 모든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구원되기를 바라시니 수확할 밭에 일꾼들을 많이 보내시어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하느님의 백성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성사로 힘을 얻어 구원과 사랑의 길을 걷게 하소서.

2024년 10월 20일 연중 제29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0월 20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0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9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2,1-5)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

  • 제 2독서
    (로마 10,9-18)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 오늘 복음
    (마태 28,16-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28,2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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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이사 2,1-5
오늘 제1독서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로마 10,9-18
오늘 제2독서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마태 28,16-20
오늘 복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0월 20일
정용진 요셉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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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 팔로티회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여정

이사야가 그려 보인 마지막 날의 모습,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은 모든 민족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고 거기에서 주님의 길을 배우며 평화롭게 사는 것입니다. 전쟁 기술은 배울 필요도 없고, 칼과 창은 쳐서 농기구로 만드는 세상입니다.

오늘날 팔레스티나의 상황을 보면서, 이사야 시대의 그곳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이사야 시대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은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아하즈 임금 때는 아람과 북 왕국 이스라엘이 남 왕국 유다로 쳐들어왔고,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다음 히즈키야 임금 때는 아시리아가 유다를 공격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성읍이 정복되었고, 예루살렘은 함락되지 않았으나 다른 모든 지역이 초토화되었습니다. 그런 전쟁을 겪었기에 오히려 전쟁 없는 세상을 그렸습니다.

이사야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도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지금 유다인들과 팔레스티나인들이 서로 죽이는 모습만 탓할 일은 아닙니다. 

로마인들은 유다인들을 몰아냈고, 중세에는 십자군 전쟁도 있었으며, 지금은 지금의 전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유다인들보다 덜 호전적이어서 그들을 덜 죽인 것도 아닙니다. 

유다인들과 무슬림과 그리스도인들, 근본적으로는 같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인데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기도의 날은 이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리스도교의 복음 선포를 위한 날이지만, 오늘의 독서를 들으면서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가 참으로 ‘복음화’되어 주님의 길을 배우고 서로 맞서 칼을 쳐들지 않게 되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교 주일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나눔을 위해 오늘 전례를 처음서부터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데 본기도의 첫 구절이 눈에 꽂히면서 뜬금없이 요나 예언자가 떠올랐습니다. 오늘 본기도의 첫 구절은 이러합니다. 

“하느님, 모든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구원되기를 바라시니”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라시는데 우리는 하느님처럼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라는가? 이 점이 반성이 되며 요나 예언자가 떠올랐던 겁니다. 아시다시피 요나 예언자는 니네베로 파견된 예언잔데 그곳으로 가기 싫어, 도망치다 죽다가 살아난 뒤에야 니네베로 가 억지로 회개를 선포한 사람이 아닙니까? 

우리도 요나 예언자처럼 니네베의 구원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다른 민족의 구원을 싫어하지는 않아도 무관심한 사람은 아닐까요? 싫어하는 사람은, 요나에게 니네베처럼, 다른 민족을 원수로 생각하는 것이고, 무관심한 사람은 자기의 구원에만 관심이 있거나 다른 사람의 구원까지 챙길 사랑은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교주일을 맞아 진지하게 자문해야 합니다. 나는 남북이 화해하고 북한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일본과 중국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일까요? 

솔직히 우리의 사랑이 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니네베도 구원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사랑에 못 미칩니다. 사실 나는 나도 진정 사랑하지 못하고, 다른 이의 고통을 같이 아파할 정도로 행복하지 못하며 다른 이의 구원을 걱정할 정도로 구원을 사는 사람이 못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불행이 마음 아프지 않으면 아직 행복한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구원이 걱정되지 않으면 아직 하느님의 구원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라는 사람은 어쩌면 자신을 사랑한다면서도 참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적어도 사랑이 자신을 채우고 넘쳐 남에게까지 흘러가지 못하는 사람이고, 불행하게도 사랑 대신 미움이 가득하여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본기도의 내용처럼 수확할 밭의 일꾼, 곧 선교사들을 보내시어 모든 이가 구원과 사랑의 길을 걷게 주십사고 기도해야겠지만 그 전에 내가 선교사로 파견될 수 있을 정도로 구원과 사랑을 살아가게 해달라고, 세상의 복음화에 앞서 우리 자신이 복음화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나를 포함하여 선교사들이 세상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해 일하게 해달라고 본기도를 이어서 바쳐야겠습니다. 

“수확할 밭에 일꾼들을 많이 보내시어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하느님의 백성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성사로 힘을 얻어 구원과 사랑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신앙의 기쁨과 즐거움을 살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제자가 된다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 주일”입니다. ‘전교’ 혹은 ‘복음화’라는 말을 떠올릴 때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곧 ‘전교’ 혹은 ‘복음화’를 교회의 대형화와 거대화처럼, 몸집 부풀리기로 알아들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왜냐하면, 복음화는 커져가고 중심이 되어가고 힘을 길러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나누어지고 쪼개져서 번져가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적으로 물리적으로 늘려가는 것만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이미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진정한 내면화와 성숙, 신앙의 실천도 포괄적 의미에서 복음화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미 신자가 된 우리 역시 여전히 복음화의 대상이라 할 수 있으며, 바로 우리 자신의 ‘새 복음화’, ‘자기 복음화’이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을 이사야의 환시를 통해 보여주면서 우리를 초대합니다. 

“야곱의 집안아 , 자, 주님의 빛 속을 걸어가자!”(이사 2,5)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복음이 전파되어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이다.”(로마 10,13)라고 하면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나갔다.”(로마 10,17-18)고 선포합니다. 

<복음>은 스승을 잃고 슬픔에 빠져 아직도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새로운 신원과 복음전파의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절망하고 의심에 떨어져 있는 제자들에게 꾸짖고 책망할 만도 한데, 오히려 ‘새로운 신원’과 ‘사명’을 주십니다. 그만큼 당신께서는 언제나 제자들보다 더 사랑하시고, 더 믿고, 더 희망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항상 우리의 사랑보다 더 크신 우리 주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전권선언”이요, 두 번째 부분은 “전도명령”이요, 세 번째 부분은 “현존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8)고 전권을 선언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자신이 지니신 권능으로 가르치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부활하신 후, 이 모든 권한으로 세상을 통치하심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전권으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면서 ‘새로운 사명’과 함께 ‘새로운 신원’을 부여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이는 제자들에게 있어, 두 가지 의미의 어마어마한 사실이었습니다. 곧 제자들의 ‘새로운 신원’과 ‘새로운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단지 복음의 선포자로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제자로 삼는’ 새로운 신원인 ‘스승으로의 사명’을 주어 파견하십니다. 

곧 “모든 민족”, 유다민족이나 이방민족이나 우방이나 적국이나 구별 없이 모든 민족에게로 가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복음을 선포하라는 새로운 사명’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 곧 ‘제자로 삼는 사명’을 구체적으로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마태 28,19) 제자로 삼는 일이요, <또 하나>는 “주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마태 29,19) 제자로 삼는 일입니다. 

곧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파견하신 분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이요, 그리하여 자신들의 제자가 아니라 ‘파견하신 분의 제자로 삼는 일’입니다. 

그 일은 다름 아닌, “주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일” 이요, 그것을 “지키고 실행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먼저 제자가 되고, 동시에 스승이 되는 일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그리고 바로 그 일을 위해서 당신께서는 언제나 제자들과 동행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이는 ‘항상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당신 존재의 정체성에 대한 계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당신의 동행에 대한 약속이요, 항상 우리와 함께 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당신이 부여하신 사명을 동행하십니다. 복음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실은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곧 자기 자신을 복음화 시키는 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자신이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자신 역시 복음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곧 제자 되는 길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먼저 참된 제자가 되는 이가 참된 스승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전교주일”인 “민족들의 복음화 주일”을 맞이하여,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개종 강요가 아니라 매력 때문입니다.”라고 하십니다. 곧 신앙의 기쁨과 즐거움을 살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제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교종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복음화 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복음화 시켜주기 때문이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28,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주님!
가르치기에 앞서 
먼저 가르침을 
배워 익히고
지키는 자 되게 하소서.

당신께 뿌리박고 
살아가게 하소서.

무엇을 하더라도 
당신과 함께 하고
어디에 있더라도 
당신께 눈을 떼지 않는
당신께 속한 자 되게 하소서.

당신의 숨결이 되어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선교의 기본이자 시작 :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 이름 말하기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며 선교 사명을 주십니다. 그런 이들에게 당신께서 함께하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선교는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이자 명령입니다. 선교하지 않으면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선교는 곧 사랑 실천입니다. 

전에 어떤 사람이 강이 불어난 곳의 다리를 집에서 창문으로 보다가 다리가 끊기게 될 것 같아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재빨리 나가 차량을 통제한 적이 있습니다. 한 차량이 반대쪽에서 오자 손을 엑스자로 그리며 차를 막아섰고 그 차가 멈추었을 때 바로 그 앞에서 다리가 무너졌습니다. 이 사람이 집에서 TV만 보고 있었다면 과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 곧 하느님 자녀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요? 예언자직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예언자직의 끝은 무엇일까요? 죽음입니다. 예수님도 예언자직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떤 가수가 공연하는데 사람들이 야유하며 다 떠나버린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면? 더는 가수가 아닐 것입니다. 사제가 강론이 두려워 미사를 꺼린다면 주님께 사제로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선교의 가장 큰 적은 두려움입니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미국 네브래스카주 한 시골 목장에 사는 12살 소년 ‘로건’이 휴스턴에 있는 크리스천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해서 진행자인 마이크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소년은 울먹였습니다. 자신이 소중하게 아끼던 송아지가 몸이 약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전화한 것은 그 슬픔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 왜 자신이 아끼던 송아지를 데려가셨는지 물었을 때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로건, 내 아들도 나에게 소중했단다. 하지만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어야 했어.”

로건은 누구든 자신이 아끼는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항상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용기가 없는 이유는 하느님 체험이 없어서입니다. 그러나 그 체험은 한 번쯤 나가게 만드는 마중물에 불과합니다. 지속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먼저 한 번이라도 자신의 체험을 전하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개신교에서 전교로 유명한 분 중의 하나가 ‘고구마 전도왕 김기동 목사’입니다. 그가 목사가 되기 전에 아내와 딸이 주일에 교회 가지 못하게 하고 스키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사고가 크게 났고 불교 신자였지만, 하느님께 기도하여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목사님께 전도 연습으로 끌려 나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기도 중에 고구마에 대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람들을 고구마로 보는 것입니다. 전도란 그저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찔러 보는 것이라는 것. 

그는 “예수 믿으십니까?”, “그래도 믿으셔야 합니다.”, “믿으면 참 좋아요.”,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네 마디를 하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 믿으십니까?”입니다. “교회 다니십니까?”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먼저 예수님 이름이 입 밖으로 나와야 그다음이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마르 8,38)라고 하십니다. 

저도 한 선교왕을 아는데, 그분은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마다 “찬미 예수님!”을 합니다. 그런데도 1년에 30명씩 성당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예수님 이름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선교하지 못해도 마음이 뿌듯하다고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으니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도 어떤 집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합니다. 먹을 것을 좀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욕을 먹고 매를 맞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찬미 예수님!”은 강론 전이나 어머니와 통화할 때 정도만 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할 때 예수님의 이름이 나오게 할 결심을 해 봅니다. 신자들과 길거리 선교를 할 생각도 있습니다. 그저 “찬미 예수님!”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 입에서 누구 앞에서건 예수님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하는 것, 이것이 선교의 시작일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의미를 찾아 나가는 삶

미국의 심리학자 마트 셀리그만은 삶에는 세 가지 여정이 있다고 말합니다. 즉, 즐거운 삶, 적극적인 삶, 의미 있는 삶이 그것입니다. 이 중에서 최고 상위에 있는 삶은 당연히 의미 있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삶에도 기여할 수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냥 열심히 살면 될까요? 
 
열심히 살면 즐거운 삶, 적극적인 삶까지는 접근 가능하지만, 열심히만 산다고 반드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방향성에 대한 적극적인 각성, 나의 노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자주 자문해야 의미 있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그냥 단순히 열심히 하면 의미 있는 신앙생활이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열심히 하면 즐거울 수는 있습니다. 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금세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항상 하시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나는 열심히 했어. 최선을 다했어.” 
 
열심히 하더라도 삶의 방향성이 명확해야 합니다. 특히 주님이 사라진 ‘열심’은 금세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반대로 주님께 맞춰진 ‘열심’은 의미를 발견해서 그 안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기쁨과 적극성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뜻에 맞춰서 열심히 생활했던 제자들을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그들의 열심과 적극성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뿔뿔이 흩어졌고, 다락방에서 벌벌 떨어 숨어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의미를 찾아 나갑니다. 물론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듯이 의심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제 의미를 찾아 나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추고, 예수님의 말씀인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를 성실하게 수행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깨닫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행동하는 오늘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단순히 열심과 적극성으로는 부족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한 주님의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 세네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받는 기쁨과 주는 기쁨 사이에 모두가 행복한 복음화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곧 전교입니다. 그래서 생활의 실천이 전교로 이어집니다. 비복음적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각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삶 자체가 예수님과 함께하는 복음화로 활짝 열려야 합니다. 복음화는 좀더 낮은 곳으로 내려와서 함께하는 봉사의 기쁨입니다. 인격의 존중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 봉사입니다. 

봉사는 살아가야 할 삶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민족들의 복음화이며 민족들의 행복입니다. 아름다운 정성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축복된 삶으로 누군가를 초대하기 위해서는 우리자신이 먼저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착한 마음이 필요한 복음화의 시간입니다. 변화된 우리의 생활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진정한 전교이듯 변화된 우리의 삶을 보여주고 나누는 것이 진정한 복음화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복음화의 바탕에는 존중이 있고 울림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중심이 되시는 기쁜 복음을 우리의 삶으로 기쁘게 나누는 행복한 전교 주일 되십시오. 전교는 마음이며 우리의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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