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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6월 25일 (금) 매일미사

by 평화다방 2021.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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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남북통일 기원 미사 -

 

 

21년 6월 25일 (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통일 기원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민족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사는 한국 교회는 1965년부터 해마다 6월 25일에 가까운 주일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하였습니다. 

1992년에는 그 명칭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바꾸었고, 2005년부터 이날을 6월 25일이나 그 전 주일에 지내다가, 2017년부터는 6월 25일에 거행하기로 하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남북한의 진정한 평화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 오늘 제1독서

 

모세는 백성에게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 오늘 제2독서

 

사도 바오로는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6월 2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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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노라. 나를 부르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고, 사로잡힌 너희를 모든 곳에서 데려오리라.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신명 30장 1-5절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 모든 말씀, 곧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축복과 저주가 너희 위에 내릴 때,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몰아내 버리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또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흩어 버리신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너희가 하늘 끝까지 쫓겨났다 하더라도,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너희를 모아들이시고 그곳에서 너희를 데려오실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이 차지하였던 땅으로 너희를 들어가게 하시어,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고 조상들보다 더 잘되고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이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
흩어진 당신 백성을
모으소서.

 

민족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먼 바닷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이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지켜 주시리라.” 주님, 흩어진 당신 백성을 모으소서.

정녕 주님은 야곱을 구하셨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원하셨네.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산에 올라와, 주님의 선물을 받고 웃으리라. 주님, 흩어진 당신 백성을 모으소서.

나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위로하리라. 그들의 근심을 거두고 즐거움을 주리라. 사제들에게는 기름진 것을 배불리 먹이고, 내 백성을 내 선물로 가득 채워 주리라. 주님, 흩어진 당신 백성을 모으소서.

 

 

매일미사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에페 4장 29-32절, 5장 2절

 

서로
용서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29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30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매일미사 복음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 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주님의 교회는 하나의 빛, 온 세상에 퍼져 있어도 갈라지지 않으리라.

 

알렐루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태 18장 19ㄴ-22절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매일미사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이니, 무엇보다 사랑을 입어라.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사랑과 일치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간절히 비오니 하루빨리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 주시고 남북의 온 겨레가 함께 모여 기쁨의 잔치를 나누며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6월 25일 (금) 15시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6월 25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박형순 바오로 신부

 

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하루빨리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해 봅니다. 민족의 분단이라는 쓰라린 역사의 상흔이 한 세기가 다 되어 가도록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칠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듯 보입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라는 의문도 가져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기도에 관련된 말씀과 용서에 관한 말씀이 함께 등장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것으로 그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반면에 용서는 인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움직여 오신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언제나 인간과 공동 작업을 하고자 하십니다. 이것은 기도로 청원을 드리는 것만으로 하느님을 움직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노력이 함께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바라봅니다. 우리 민족은 지난 칠십 년 동안 하나 됨을 위해서 긴 시간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 되고자 하느님과 함께하는 노력이 부족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분단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에게 통일의 필요성과 간절함은 점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남북이 평화로이 교류하고 소통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하나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노래도 불러 왔습니다. 희망과 노래만이 아닌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함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기도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기도합시다.

 

여러분도 의문이 드시겠지만 저는 오늘 축일의 이름을 왜 북한 선교 또는 북한 복음화의 날이라고 하지 않는지 여기서부터 오늘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교회 밖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말을 쓰더라도우리는 북한의 선교나 복음화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연하지요. 우리는 어떤 말을 쓰든 이날을 지내며 북한선교나 복음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왜 굳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표현을 쓰는지 그 뜻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많은 분이 북한선교나 복음화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을 북한이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이런 면이 없지 않지요. 사실 북한을 배려하여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을 조심하고 삼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표현을 삼가는 이유는 이런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이유보다 더 큰 이유, 곧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더 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더 큰 목적을 제쳐놓고우리 종교의 확장만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일 때 프랑스인이었던 조선 교구장은 우리 신앙의 유지에만 신경쓰고 독립이나 민족의 문제에는 관심 없었는데 이것 때문에 우리는 비판을 받았고 그래서 이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지요. 

사실 우리 국민 상당수가, 특히 젊은 사람일수록 통일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는 통일로 인한 일시적 혼란 때문에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민족적 동일성보다는 적대감을 가진 사람이 꽤 있기에 기도하는 겁니다. 

그리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비단 남북 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북한에 대한 남남 간의 갈등과 지역주의적 갈등도 해결해야 할 문제기에 이런 넓은 뜻에서 우리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기도가 화해와 일치와 통일의 밑돌입니다. 이 기도는 우선 우리 안에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없애주거나 적어도 완화시켜 주어 서로를 용서할 수 있게 해 주기에 밑돌입니다. 

만일 서로 간의 적대감이 있는 상태로 억지로 통일을 하면 통일을 한다고 해도 껍데기만의 통일이지 진정한 통일이 아니고 그래서 갈등과 혼란으로 인해 다시 갈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기도는 실천적인 운동으로서의 힘이 있고 그래서 밑돌입니다. 이는 독일이 통일을 할 때 증명이 된 바 있지요. 갈라져 있을 때 서독은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 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매주 열었고 이것이 통일의 밑돌이 되었다고 통일 후 평가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통일을 위한 실천적인 운동으로서 힘이 있기에 저는 프란치스칸 안에서만이라도 기도를 지속적으로 하자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 운동을 시작했는데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듯 둘이나 셋이 모여 기도할 때 주님께서도 거기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기를 더 바라는 것은 자녀들보다 부모이듯이 우리의 화해와 일치를 더 바라시는 것은 우리보다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제사 때 부모의 이름으로 자녀들이 모이듯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마음이 모일 것이고 그 마음을 모은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들어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기도에도 100°C가 있다.

 

오늘은 71년 전 우리나라에 전쟁이라는 무서운 재앙이 시작되었던 때를 기억하며 다시는 그런 비극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이 없도록 화해와 용서, 그리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는 밤 9시에 주모송을 함께 바치며 평화통일을 위해 마음을 모아 다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무언가를 바란다면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바랄 때 부모에게 청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고 당신께 붙어있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니 통일을 바라면서 기도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기도한다고 다 될까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고 언제까지, 얼마만큼 기도해야 할까요?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낼 때 비가 오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정신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힘을 믿는다면 죽기까지 한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기도에는 항상 ‘100°C’가 존재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기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건 주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100°C가 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하는 기도가 어디 다른 데로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계 타듯 탈 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멀리 있는 길을 갈 때는 목적지를 보지 말고 지금 한 발 내딛는 한 발짝 앞만 보며 걸어야 지치지 않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실패의 연속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 토머스 링컨은 가난한 농부였고 어머니 낸시 행크스 링컨은 미혼모의 딸이었습니다. 부모는 둘 다 문맹이었습니다.링컨이 9세 되던 해 어머니 낸시 행크스는 “부자나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 돼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20세가 넘도록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했던 링컨은 한때 그가 점원으로 있던 방앗간과 상점을 인수했지만, 곧 1,100달러의 빚만 지고 파산했습니다. 이후로도 그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24세에 주 의회 낙선, 24에 다시 사업 실패, 26세에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 27세에 신경쇠약 증세, 29세에 의회 의장직 낙선, 31세에 대통령 선거위원 낙선, 34세에 국회의원 낙선, 39세에 46세에 또 국회의원 낙선, 47세에 부통령 낙선, 49세에 상원의원 낙선.”

주위 사람들은 그가 절망의 늪에 빠져 큰일을 저지를 것 같아서 그의 주위에서 칼과 같은 것들을 치웠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도 “나는 살아있는 사람 중에 가장 비참한 사람이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인지도 말할 수 없다.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말대로 하느님의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실패까지도 하느님의 계획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가 낙선했을 때 이렇게 행동했습니다. ​

“난 낙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음식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이 먹었다. 그다음 이발소로 가서 머리를 곱게 다듬고 기름도 듬뿍 발랐다. 이제 아무도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이제 곧바로 또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배가 든든하고 머리가 단정하니 내 걸음걸이가 곧을 것이고 내 목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힘이 찰 것이다. 나 스스로 다짐한다. 다시 힘을 내자. 에이브러햄 링컨!”

그는 일어나 59세에 드디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놀라운 성공의 비결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링컨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의인은 일곱 번 쓰러져도 일어나지만, 악인은 불행 속으로 넘어지기 때문이다.”(잠언 24,16)라고 말합니다. 

[출처: ‘링컨 대통령의 실패’, 다음 블로그, ‘사랑하는 인간’]

믿는 사람에게 실패는 없습니다. 모든 발걸음은 좋은 방향으로 가는 한 걸음이고, 모든 계단은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한 계단입니다. 지금은 실패처럼 보이더라도 결국 쌓이는 것입니다. 기도도 버려지는 기도는 절대 없습니다.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지 결국 쌓이는 것입니다. 

100°C는 물에서 수증기로 모양새가 변화되는 온도입니다. 저는 성체조배를 하루 ‘3시간’은 꼭 하려 합니다. 이 ‘3시간’이 어떻게 나왔을까요? 

저는 신학생 때는 물론이요, 사제가 되어서도 육체의 욕망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가시밭에 맨몸으로 굴렀다고는 하지만 저는 그러지는 못하고 운동도 해 보고 찬물로 샤워도 해 보고 그런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잠자리에 드는 등 여러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시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1시간 할 때와 2시간 할 때가 달랐습니다. 마치 햇빛에 얼음이 녹듯 내 안의 욕망이 내가 성체 앞에 앉아있는 시간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시간을 3시간까지 늘렸더니 기적처럼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아! 나에게 기도의 100°C는 3시간이구나!’

특별히 나 자신을 아주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 놓이게 하지 않는 한 3시간의 성체조배는 적어도 대죄는 짓지 않게 만드는 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죄가 곧 고통의 시작이고 하느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믿으면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기도에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둘이나 셋이 모여 함께 기도하면 다 들어주시겠다고 하시고 그다음은 용서해 주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 말은 기도하면 용서할 힘이 생기기 때문에 하루에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이 용서될 때까지 기도하지 않는다면 용서하기 싫거나 아니면 기도의 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분명 기도로 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기도가 100°C에 다다라 하늘로 올라갈 온도가 분명 있음을 믿고 포기하지 맙시다. 

저도 사실 밤 9시에 기도하는 것을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믿고 꼭 해 보려고 다시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기도가 쌓이면 언젠가는 남북이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하나가 되어 그들도 복음을 받아들일 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 형제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려 하는데도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그리고 기도의 힘을 믿는다면 북한에도 복음이 전해지도록 기도를 멈추지 맙시다. 석공이 돌을 깰 때 그 돌이 마지막 망치질에 깨지지만, 그 이유는 그 전에 100번의 무의미하게 보이는 망치질로 돌을 약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면 헛된 발걸음은 없고 낭비되는 기도도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기도

 

학창 시절 때, 지금과 달리 선생님의 체벌은 당연했던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숙제 안 했다고 맞고, 떠들었다고 맞고, 복도에서 뛰었다고 맞고, 성적 떨어졌다고 맞고, 준비물 가져오지 않았다고 맞고…. 참 많이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밤 11시에 끝나는 야간 자율학습인데, 더 공부하기 싫어서 10분 일찍 가방을 싸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문에 선생님이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일찍 나온 학생들을 정문 옆에 세웁니다. 10분 일찍 나왔으니 10대씩 때리겠다고 말씀하신 뒤에 한 명씩 나와 때렸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두 20명이었습니다. 총 200번의 스윙을 하면 선생님도 마지막에는 힘이 빠질 것이라는 생각에 저는 맨 마지막에 맞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가 되었습니다. 남 맞는 것을 계속 보면서 더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실제 겪은 것이나 상상하는 것을 똑같이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매 맞는 것을 보면서 상상하게 되니, 진짜 매 맞는 고통을 느끼게 된 것이지요. 10대 맞았지만, 저의 뇌에서는 200대 맞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고통과 시련은 뒤로 미룰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지금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괜한 걱정과 불안으로 고통의 크기를 키울 필요가 없습니다.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를 남겼습니까? 이산가족의 아픔도 있고, 경제적으로 성장하는데도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끼리 서로 원수가 되어 남과 북으로 대치하는 것 역시 커다란 상처입니다. 
 
문제는 그 시간이 70년이 넘어가면서 점점 통일이라는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나만을 위한 기도, 내가 아는 사람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기도를 함께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살되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배우라.

- 마하트마 간디 (Mahatma Gandhi)

 

 

삶의 질을 높이기

 

어렸을 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는 저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 또래의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비해 다른 나라는 훨씬 더 잘 사는 것 같았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부족해 보였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더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사실 삶의 조건은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삶의 질이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삶의 질을 높이는 분야가 우리나라에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삶의 조건보다는 삶의 질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운동을 즐기고 건강한 식단을 찾고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습니다. 그런데 삶의 질은 육체적 만족에서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만족을 얻어야 진정한 삶의 질을 높일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 자신의 삶을 가장 높이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르는 것을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용서의 삶이 믿음의 삶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마태 18, 19) 

화해와 일치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용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건너뛸 수 없는 용서의 길이다. 앞으로 나가는 관계가 바로 용서의 관계이다. 용서 없는 믿음은 있을 수 없다. 

용서의 삶이 믿음의 삶이다. 분단의 벽을 허무는 것은 용서를 통한 서로간의 신뢰이다. 용서의 길은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길이며 영광의 길이다. 그래서 화합과 합일은 용서의 마음을 회복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사람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며 기도이다. 서로를 향한 불신과 증오를 치유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사랑의 사람이 되셨다. 어울려 살아야 할 우리들 삶이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실 하느님 나라는 용서의 나라이다.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실천하는 거기에서 닫힌 문은 복음처럼 활짝 열릴 것이다. 분단의 아픔이 일치의 기쁨으로 열매맺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느님의 용서가 사람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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