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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4/08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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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하셨다. 보소서,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나이다.

하느님, 동정 마리아의 모태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구세주의 신비를 찬양하고 그분의 신성에 참여하게 하소서.

2024년 4월 8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4월 8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4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7,10-14; 8,10ㄷ)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 제 2독서
    (히브 10,4-10)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26-38)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1,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요한 1,14)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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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네.

 

 

루카 1,26-38
오늘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8일
박진수 요엘 신부

 

✚ 주님탄생예고축일 소개 00:05

✚ 미사시작 02:10

✚ 강론시작 13:23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명, “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에 봉독되는 성경 본문들이 강조하는 주제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명’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제1독서에서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으로 선언됩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쉽게 감지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고자 하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은 성모님의 응답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우리말로 “보십시오.”라고 표현된 그리스 말 ‘이두’는 단순히 “네.”로도 옮길 수 있는 낱말입니다. 

물론 이 “네.”는 앞으로 감수하여야 할 모든 고난과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합니다. 이 “네.”를 통하여 성모님의 작은 몸에 창조주가 인류 역사의 거대한 질서와 함께 들어오십니다.

그런데 사실 ‘하느님의 육화’는 성모님의 “네.” 이전에 예수님의 “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하느님으로서 위상을 고집하지 않으시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서 태어남을 허락하셨기에 성모님의 허락도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2독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라는 예수님의 고백을 두 번 되풀이함으로써, 인간과 함께하시고자 하는 뜻에 이미 예수님께서 동의하셨음을 분명히 합니다.

언젠가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이 장엄한 사건이 나자렛의 작은 집에서 이루어진 것에 큰 위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이 대성전이나 교회의 공적 자리가 아닌 소박한 공간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느님의 거대한 계획은 가난하고 누추한 공간에서도 시작됩니다. 성당에 갈 수 없을 때, 기도할 장소가 마땅하지 않을 때, 나의 열악한 환경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내 삶의 자리가 “은총이 가득한 이”가 “기뻐하고”,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종이라고 하심으로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와 관련한 대축일들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뜻이 이루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느님 구원 계획과 뜻이 이루어짐에 있어서 제일 앞에 있는 것이 바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축일입니다.

이 축일은 하느님께서 당신 계획에 따라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사람을 원죄 없이 잉태되게 하셨다는 축일입니다.

이는 그럴 계획 그러니까 구세주를 이 세상에 보낼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마리아라는 한 처녀가 너무도 참해 하느님께서 계획을 바꿔 구세주를 보내시고 그녀를 구세주의 어머니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구세주를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어머니 될 사람도 원죄 없이 잉태되게 하셨다는 것이지요.

그런 계획에 의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가 이제 구세주를 잉태하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 지내는 주님 탄생 예고 축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들은 하느님의 계획과 뜻과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먼저 첫째 독서 이사야서는 임마누엘 하느님에 관한 예언입니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사야서는 메시아 하느님이요 임마누엘 하느님에 관한 예언서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오셔서 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그래서 그 하느님은 저 하늘 높은 곳에 고고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이라고 오늘 이사야서는 예언합니다.

그리고 둘째 독서 히브리서는 그 하느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음을 얘기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이시고, 성모 마리아는 그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종을 하셨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독서들과 복음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뜻이 착착 이루어져 가는 그 과정을 묘사하는 얘기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도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어머니들이 되는 것을 묵상함이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복음에서 우리에게 이미 제시하신 것입니다.

당신을 만나러 어머니와 형제들이 와있다고 했을 때 누가 당신의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냐고 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이 곧 당신 어머니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이 말씀을 탁월하게 풀이하였지요. 하느님의 뜻 곧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졌을 때 신성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으로 받아 모심으로 말씀을 잉태하는 것이고 그 말씀을 실천할 때 그분을 낳는 것이라고 프란치스코는 얘기합니다.

“신성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지니고 우리의 마음과 몸에 그분을 모시고 다닐 때 우리는 어머니들입니다. 표양으로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하는 거룩한 행위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며 마리아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시는데 이것을 보며 종이라고 하심으로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를 본받아야 할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혼자 있는 것도 죄고 혼자 있게 하는 것도 죄다.

오늘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나타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인사합니다. 성모님은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라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주님께 함께 있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죄를 짓고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치 않아서 숨었습니다. 이것 자체가 죄입니다. 인간은 혼자 있을 수도 없는데 혼자 있겠다고 합니다. 빛을 떠나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은 어둠과 있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혼자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혼자 사는 분들은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머물기 위해 혼자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요? 99%는 부모나 배우자, 혹은 형제입니다. 만약 이도 저도 아니라면 ‘자아’나 사탄과 함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정신이 이상하게 됩니다. 

유튜브에서 ‘섬에서 혼자 사는 바다 자연인’이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이 주인공은 섬에서 혼자 살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이분은 사업 실패로 세상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섬으로 와서 혼자 사는데, 동생까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 치료하고 동생을 공기 좋은 자신이 사는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음식 탓인지, 병원이 없는 탓인지 좋아지는 것 같다가 치료도 못 해보고 죽었습니다. 이에 동생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 섬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사실 혼자 있고 싶은 게 아니라 동생과 함께 있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 줄 동생과 함께 있고 싶은 것이 혼자 있고 싶은 것이 된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그 삶에 만족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혼자는 행복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점점 어둠과 가까워집니다. 

여성이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지만, 실제로는 마귀와 함께 사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그 자매는 자신이 마귀와 잠자리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혼자가 좋다고 합니다. 혼자가 좋은 게 아니라 마귀랑 사는 게 좋은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알려주는 가브리엘 천사와 같은 존재입니다. 

먼저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아기가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장난감 가지고 재밌게 놀지만, 어머니가 안 보이면 불안해서 우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게 느껴져야 밖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둠, 사탄의 손아귀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니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자연인들에게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은 가브리엘 천사의 역할입니다. 

산속에서 수십 년간 혼자 살아가는 이들이나, 화장실 같은 곳에 스스로 자기를 가두고 살아가는 이들은 자기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방송국의 스텝들은 그 좁은 공간에서, 그리고 그 추운 곳에서 그들과 함께 머뭅니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자기를 사랑해주는 누군가의 존재와 함께 머물기를 원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많은 경우 그 사람들이 스텝들이 사는 세상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자꾸 고향인 부산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혼자 있고 싶은 게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브리엘 천사나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 오래 혼자 있게 해 드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혼자 있는 것은 결국 자기를 망치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는 것도 죄이고, 혼자 있겠다는 사람을 혼자 내버려 두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 탄생 예고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분야에서의 집중력이 남다르다는 것입니다. 집중하는 그 순간에는 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 어떤 전기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쓸데없는 것 무시하기의 전문가.” 
 
쓸데없는 것을 무시하는 그 전문성(?)이 자기 예술에 헌신하는 능력을 키울 수가 있었고, 눈앞의 과제나 프로젝트에 자신을 묶어두는 능력을 결합하여 전설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학창 시절, 공부하면서 음악 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또 여기에 텔레비전을 봐도 상관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실제로 집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집중에 솔직히 죄송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러다 보니 SNS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전화도 못 받습니다. 문제는 자기를 무시해서 SNS 메시지를 보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이것저것 못하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더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는 어떤가요? 주님께만 집중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의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고 집중하면서, 정작 주님을 외면할 때가 너무 많은 우리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탄생에 대한 예고를 기념하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이날, 우리는 예수님 탄생 예고를 들으신 성모님을 보게 됩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인데, 잉태해서 아들을 낳게 된다는 천사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이 메시지는 성모님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무조건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안 되는 이유만을 이야기합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면서 하느님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만 집중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느님의 메시지는 무조건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집중하고 있었을까요?.

 

오늘의 명언

잘 들여다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아름다워집니다.

- 로렌 올리버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하느님의 심오하신 계획을 어찌 우리가 다 알겠습니까. 생명이 되시는 탄생을 말씀으로 우리에게 예고하십니다. 갇혀있지 않는 생명의 소식이며 끝까지 희망할 기쁨의 권리를 우리에게 선사하십니다. 하느님의 탄생으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되어 오시는 이 길밖에는 구원할 길이 없는 우리들이 되었습니다. 

멈추신 적이 없는 하느님의 사랑이며 구원입니다. 주님 탄생 예고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가장 뜨거운 고백입니다. 이미 우리에게서 시작되신 구원의 계획입니다. 희망해야 할 분이 오직 하느님이심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의지는 사랑과 함께 빛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탄생은 탄생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두려운 마음을 다잡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오시는 하느님 탄생의 자리가 됩니다. 이제 우리는 뜨거운 탄생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간직해야 할 말씀이며 믿음입니다. 자신을 낯추고 내려놓아야 탄생이 되시듯 우리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오늘의 탄생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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