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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4/04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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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승리하신 당신 손을 한마음으로 찬양하나이다. 지혜는 말못하는 이들의 입을 열어 주고, 아기들의 혀도 또렷이 말하게 하였나이다. 알렐루야.

하느님, 뭇 백성을 한데 모으시어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셨으니 세례로 새로 난 이들이 같은 마음으로 믿고 서로 사랑을 실천하여 하나 되게 하소서.

2024년 4월 4일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4월 4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4월 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3,11-26)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24,35-48)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오늘 말씀 카드
    (사도 3,15)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사도 3,15)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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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루카 24,35-48
오늘 복음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4일
윤호진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 교황님 4월 기도지향 00:23

✚ 미사시작 00:38

✚ 강론시작 11:49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상처는 가릴 필요 없는 소중한 생명의 흔적

엠마오로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그 일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십니다. 제자들은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며, 놀라고, 의혹을 가집니다. 당연합니다. 예고를 하고 들어오셨어도 놀랐을 터인데, 대화 가운데 조용히 나타나시니 누구라도 놀랐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 당신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다양한 감각(시각, 청각, 촉각, 미각)을 동원하시어 당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 만져 보아라. …… 말씀하시고 …… 보여 주셨다. …… 잡수셨다.” 

무엇보다 손과 발을 보고 만져 보게 하심으로써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분이 바로 이렇게 살아 계심을 확인시켜 주시는데, 이러한 확인을 통하여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하나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상처를 그대로 지니고 부활하신 모습이야말로 이 연계성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연계성은 그리스도교가 고백하는 케리그마(복음 선포)가 되어, 사도들이 선포하여야 할 내용의 핵심으로 정립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일의 증인이 된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제1독서)에서 준엄하게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부활은 정신이나 영혼의 영역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오늘 복음이 보여 주듯이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당신의 육신성을 우리에게 물리적으로 확인시켜 주십니다. 

부활하셨어도 상처의 흔적을 그대로 가지고 계신 것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연속성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상처는 가리거나 없애 버릴 필요가 없는 소중한 생명의 흔적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믿음의 과정

오늘 독서와 복음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복음의 끝부분에서 사도들은 이런 사명을 주님께 받습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그리고 증인의 사명을 주님께 받은 사도들이 불구자를 고쳐주며 주님의 명령대로 주님을 증거 하는 얘기가 오늘 사도행전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는 매우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처음 나타나셨을 때만 해도 이렇게 증거 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신에 차 있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확신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랄까 상태를 보입니다. 

두려움, 무서움, 의혹, 놀람, 기쁨 등의 복잡한 감정 상태를 보이는데 특히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였다.”라는 표현이, 그들의 긴가민가하고 곧 반신반의하는 믿음 상태를 잘 표현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기쁘기는 한데 아직도 믿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의 믿음은 과정 곧 두려움과 무서움과 의혹과 놀람과 기쁨의 과정을 통과하며 성장하고 확고해진 것입니다. 

이 중에서도 두려움과 의혹이 우리의 믿음을 확고하게 합니다. 달리 말하면 두려움과 의혹이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는 겁니다. 

우리 삶에서 아무 두려움이 없을 때 믿음은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두려움은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줄 존재 곧 구원자를 찾게 하는데 처음에는 그 구원자가 인간이었다가 차츰 하느님으로 바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역설이지요. 두려움이 없다면 우리가 하느님을 찾지 않을 것이고, 두려움이 두려움으로부터 구해 줄 하느님을 찾게 한다는 것이. 

이것을 보면 우리가 당신을 찾고 믿도록 하느님께서 두려움을 씨앗처럼 우리 안에 심어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구원자로 믿으려고 하지만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이 과연 구원자신지, 그에 대한 의혹과 의심이 수없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의심 때문에 주님을 믿지 못하다가 두려움 때문에 다시 구원자를 찾고 믿으려 하고, 믿으려 하다가 다시 의심이 생겨 믿지 못하다가 두려움 때문에 다시 구원자를 찾고 믿는 과정이 반복될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것이 믿음이 확고해지는 과정이고, 그리고 이 과정의 정점에 성령강림이 있습니다.그러니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도 두려움과 의혹을 보인 사도들에게서 우리는 큰 위안도 받고 도전도 받습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우리에게 아직도 두려움과 의혹이 있는데 사도들도 그랬다는 것이 현재의 나를 위해서는 위안이지만, 그러나 사도들은 이것들을 통과해 확신에 이르렀다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나에게는 도전인 것입니다. 

아무튼 사도들로부터 위안과 도전을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두려움과 의혹이 아직도 있더라도 너무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 사도들처럼 믿음의 과정을 가라고 도전과 격려를 받는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부활의 기쁨을 위해 반드시 준비할 것: 진리(하늘의 뜻)는 은총(부활의 기쁨)을 담는 그릇

영화 ‘나이야드’(2023)는 다이애나 나이야드(Nyad)의 2015년 회고록 『길을 찾아라』를 원작으로 합니다. 이 영화는 2013년 상어 우리의 보호 없이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수영한 최초의 사람이 된 미국인 장거리 수영 선수 다이애나 냐드(Diana Nyad)의 전기 드라마입니다.

나이야드는 책에서 본 한 문장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말해봐. 단 한 번밖에 없는 이 삶을 걸어서 네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약속을 취소하고 침대에 드러눕는 게 일상이 된 다이애나는 어느새 60세에 이르렀습니다. 그녀가 이루고 싶은 것은 이제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어렸을 때의 꿈을 보게 되자 생각이 바뀝니다. 30년 전에 쿠바와 플로리다 해협까지 110마일을 수영으로 완주하겠다는 평생의 꿈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이애나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코치의 지원을 받아 30년 전에 실패한 쿠바에서 플로리다 해협까지 110마일 바다 수영을 완주하겠다는 평생의 꿈을 다시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여기에서 그녀의 이름 ‘나이야드’가 중요합니다. 그녀의 이름 나이야드는 ‘그리스의 물의 요정’을 뜻합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지어준 그 이름을 굳게 믿고 도전에 도전을 이어가다 5번째에 성공하여 미국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나이야드가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동료의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아무도 믿지 못할 도전을 꿈꿨고 그것을 위해 많은 전문가가 함께했습니다. 코치와 배와 바다 전문가가 필요했고 상어 퇴치 전문가와 독 해파리 전문가, 그리고 의료팀 등도 필요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의 꿈을 돕는 자에게 하늘도 돕는 자들을 보내주십니다. 

도움은 은총입니다. 그 은총을 위해 진리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는 방향입니다. 꿈이고 하늘의 뜻입니다. 하늘의 뜻을 들어주는 자라야 하늘이 은총을 내려주십니다. 운전도 못 하는 아이에게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주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은총입니다. 그런데 그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은총을 주시는 분의 뜻을 따를 결심을 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러한 사명을 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제가 ‘돈쭐’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던 때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월세도 못 내고 있던 차에, 돈이 5천 원밖에 없는 형제에게 무료로 치킨은 내어줬던 치킨집 사장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형이 프랜차이즈 본사에 보낸 편지가 알려지면서 이른바 돈쭐의 주인공이 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선행이 알려진 뒤 따뜻한 마음을 악용해 협박하거나 손찌검하는 사람들로 마음고생했습니다. 사장은 그 와중에도 조용한 선행을 계속 이어왔다고 합니다. 돈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사장이 가지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행을 하면서 오히려 내어주는 기쁨에 중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돈을 주는 이유는 단지 그 형제에게 선행을 베푼 것만 보고서는 아닐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돈을 주어도 앞으로 계속 그런 선행을 할 뜻을 보고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이에게 나타나시고 은총을 주십니다. 내가 살아갈 방향, 곧 이웃 사랑이 진리입니다. 그 진리가 은총을 담는 그릇이 됩니다. 자녀 앞에 그릇을 먼저 준비시키지 않고 음식을 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아름답고 멋진 장소에 가시면 무엇부터 하십니까? 아마 감탄사가 먼저 나올 것이고, 그리고 이를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사진도 찍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장소라도 자기 몸 상태에 따라 하지 않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10년 전, 남미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행기 탄 시간만 하루가 될 정도로 먼 곳에 있는 곳이고, 이제 다시 이곳에 오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체험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일정을 마치고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페루 쿠스코에 도착했을 때, 울고 싶었습니다. 안데스산맥 사이의 해발 3,399m에 위치한 15세기에 세워진 고도시입니다. 볼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지만 사진 한 장 찍기도 힘들었습니다. 두통과 어지러움, 계속해서 붕 뜬 느낌과 소화 불량이 계속 제 몸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산병 때문입니다. 
 
고산 증세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과연 아름답고 멋진 경치가 눈에 들어왔을까요? 사람들이 감탄사를 외치는 곳에서 저는 한숨만 내쉬면서 빨리 낮은 곳에 가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고산 증세는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하룻밤을 묵고 나서는 다시 생생해졌고, 그제야 아름답고 멋진 장소가 눈에 보였습니다. 이제는 이곳에 계속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의 이해에 따라 달라지는 주변 환경에 대해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 환경에 적응하고 바라보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보인 것처럼, 주님께도 완전히 적응해야 지금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방문을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자기들 역시 죽지 않겠냐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이미 예수님께서 직접 3번이나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몰랐던 사건이 아닙니다. 3번이나 예고하셨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잊어버렸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의 이해가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는 희망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을 환호하는 많은 군중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 역시 세상 안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한 군중의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치는 소리, 예수님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는 모욕적인 군중의 모습에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하셨던 모든 말씀을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면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오늘의 명언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

- 고사성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우리가 사는 곳에 십자가가 있고 부활이 있습니다. 생생한 아침에 생생한 부활의 말씀을 듣습니다.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생명입니다. 살아있다는 사실에서 부활은 믿음이 됩니다. 기쁨도 슬픔도 살아있기에 생생한 소식이 됩니다. 생명에서 분리될 수 없는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힌 못 자국을 다시 만나는 시간입니다. 돌아보면 너무나 소중한 생명의 시간이었습니다. 정체불명의 유령이 산 시간이 아닙니다. 부활은 살아있는 평범한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생명의 시간인지를 일깨워줍니다. 

부활은 이와같이 생명 바깥에 있지 않습니다. 밥을 짖고 빨래를 하는 손과 발의 정성이 바로 부활입니다. 생명을 흔들어 깨우는 부활입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생명을 만납니다. 우리에게 맡기셨던 십자가의 생명이 실은 가장 아름다운 부활의 생명입니다.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순간입니다. 뜨겁게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부활의 순간입니다. 우리의 손과 발 또한 살리고 살아있음에 대한 응답이길 기도드립니다. 오늘을 기쁘게 어루만지는 생명의 부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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