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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4/05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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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당신 백성을 안전하게 이끄시고, 그 적들을 바다에 빠뜨리셨네. 알렐루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의 파스카 신비로 인류와 화해의 새 계약을 맺으셨으니 저희가 믿음으로 거행하는 신비를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2024년 4월 5일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4월 5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4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4,1-12)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21,1-14)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 오늘 말씀 카드
    (시편 118,2)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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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요한 .21,1-14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5일
신현범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10:45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준비하고 마련하시는 분

주님 부활 사화의 대부분은 밤에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베드로와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나가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시고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물을 던지자 ‘큰 고기가 가득 들어 있었고, 그토록 많은 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납니다. 문장은 풍요를 표현하는 수식어들, 곧 ‘큰’, ‘가득’, ‘많은’을 연달아 세 개(완벽함을 상징)나 사용함으로써, 예수님 말씀대로 하였을 때 따라오는 결과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자 요한으로 보이는 제자가 곧바로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주님이십니다.” 독서에서는 이렇게 부활을 체험한 베드로와 요한이, 이제 예수님 말고는 누구도 구원이 될 수 없음을 장엄히 선포하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예수님께서는 ……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버림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내용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입니다(시편 118[117],22; 마태 21,42; 마르 12,10; 루카 20,17; 사도 4,11; 1베드 2,7 참조). ‘버림받음’과 ‘선택됨’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통하여 우리 삶에서 체험하는 극단의 상황들, 배제와 영광, 증오와 사랑, 소외와 축복을 융합시킵니다.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시간’을 ‘크고 많은 것을 가득’ 거두어들이는 시간으로 변화시키시는 분, 버려진 것 같은 인생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만드시는 분, 나의 모든 것을 준비하고 마련하시는 분, 그분을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우리가 체험하여야 할 부활의 참된 은총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내'자가 들어가는 것은 다 빼야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이 질문은 예수님을 죽인 유대 지도자들이, 곧 모퉁이의 머릿돌이신 주님을 죽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힘으로 불구자를 살린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이 질문이 오늘은 제게 하는 질문으로 다가왔습니다. 제자들에게 질문한 이들이 오늘은 내게 한 질문으로. 

그래서 질문을 받고 자문합니다. 

나는 무슨 힘으로 또 누구의 이름으로 일할까? 

저의 경우 요즘 확실히 주님의 힘으로 일합니다. 이것이 젊을 때보다 나은 점이고 편한 점입니다. 

요즘은 확실히 저의 힘을 뺐습니다. 뭣을 하며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일도 술술 잘되고, 일하며 그렇게 고민하거나 스트레스받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해주시는 체험을 소소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식당에서 비지찌개를 메뉴로 추가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그저 마음만 먹었는데도 그날 누가 묵은지를 한 열통 보내주시는 겁니다. 

이런 식의 작은 하느님 체험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가 힘을 뺀 것은 오늘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밤새 고기잡이했지만, 허탕을 친 것처럼 저도 과거 제힘으로 했을 때 실패했던 많은 경험 때문에 제가 힘을 뺀 것이기도 하고 나이 먹어 힘이 빠져 저절로 그리된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내 힘이 빠지고 하느님의 힘으로 하니 성과도 좋고 힘도 안 들어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얘기를 제가 한다는 겁니다. 

그제도 회의를 위해 형제들과 함께 산청을 다녀오는 길에 제가 자연스럽게 나는 요즘 하느님을 만나는 작은 체험을 자주 한다고 말하는 거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해주시는 것이라는 점을 사심 없이 증거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내가 하는 일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은근히 자랑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대놓고 자랑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대놓고 자랑하지 않고 은근히 자랑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누구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됩니까? 하느님의 힘으로 해놓고 내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힘도 빼고 이름도 빼야 합니다. ‘내’자가 들어가는 것은 다 빼야 합니다. 내 힘도 빼고 내 이름도 빼야 합니다. 그래야 완전히 주님의 힘으로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하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자녀를 낳는 게 양식인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난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통해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살과 피를 내어주신 분은 영광을 받아야 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양식이 되어주시기 위해 돌아가셨다가 부활해야 함도 인정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아도 눈이 가려 알아볼 수 없습니다. 누구나 예상하는 것만 보이는데, 눈에 보이는 부모의 얼굴에서 영광을 보지 못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영광을 믿는 것은 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과 연결해서 오늘은 생명을 경시하고 자녀를 낳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은 사람들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만날 때도 자녀를 낳을 때입니다. 그제야 부모가 자신을 낳을 때의 바로 그 부모를 알아보게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보다 부모의 영광을 보는 더 완전한 방법은 나도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모는 영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어져 그리스도의 부활도 믿어집니다. 

유튜브에 “‘동물과 감정 나눠요’… 심리 치유 효과 ‘주목’”이란 짧은 동영상이 있습니다. 학교 아이들에게 동물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갖게 했더니, 생명 존중감 8%, 인성 8.2%, 자아존중감 13.2% 상승했다는 결론입니다. 

사람이 반려동물의 눈을 바라보면 출산과 수유 시 분비되는 어머니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동물을 사랑하며 어머니가 되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어머니가 보이게 됩니다. 

어머니가 보이면 어떻게 될까요? ‘자존감’이 상승합니다. ‘아,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구나!’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아 존귀한 존재라는 느낌, 이것이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다른 생명도 존중할 줄 알게 되고 인성도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엄마를 지독히 미워하는 여자 주인공이 엄마보다 더 심한 사형수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중에는 그 사형수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와 화해하려 합니다. 혼자는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도 죽어가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어머니가 됩니다. 그때 어머니의 참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김희아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얼굴에 모반이 크게 있다고 어머니는 김희아 씨를 버렸습니다. 김희아 씨는 딸을 낳고 어머니를 보았다고 합니다. 딸의 모습에서 자기를 그렇게 바라보며 가슴 아파했을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되어야 부모 마음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활한 예수님을 알아보는 가장 완전한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인간을 하느님 자녀로 만들기 위해 수난 하실 수밖에 없으셨고 부활의 영광에 드실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자녀를 잘 낳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건 이런 마음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부활 체험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창조를 사랑하지 않는 인간에게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보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여주셔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생명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에게 보여주셔야 어차피 알아보지도 못하기에 당신을 감추십니다. 

온라인 미디어 굿 타임스는 중국에서 사고를 당해 뒷다리를 잃은 한 어미 개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는 기차역 근처 거리를 떠돌다가 그만 사고로 뒷다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주민들은 강아지가 기찻길을 돌아다니다가 기차에 치여 뒷다리가 잘려 나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강아지는 뒷다리가 없어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 기적과 같은 삶을 보여줬습니다. 살아난 강아지는 새끼들을 건강하게 출산해 어미 개가 되었고,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은 두 다리로 씩씩하게 살아갔습니다. 

새끼들이 젖을 떼자 열심히 구걸해서 새끼들을 먹이며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미 개와 강아지들에게 또 한 번의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역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어미 개와 새끼들을 모두 입양하기로 한 것입니다. 

 강아지들의 울타리가 되어준 직원은 “어미 개는 엄청난 모성애를 보여줬다. 음식을 주면 절대 자신이 먼저 먹지 않고 새끼들을 먼저 먹이고 나서 남은 것만 먹었다.”라며 “사람보다 낫다.”라고 전했습니다.

왜 역무원은 그 유기견과 새끼들을 키우려 했을까요? 당연히 어미의 사랑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이해하는 주인을 잘 따를 것도 알았습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비를 가진 이에게 자비를 보이십니다. 

이처럼 자녀를 낳을 줄 아는 사람은 생명에 대해 소중함과 창조의 이유를 볼 수 있기에 창조자 하느님을 알아볼 줄 알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처럼 하느님 자녀를 낳는 일을 하는 베드로를 부르셔서 함께 하느님 자녀를 상징하는 물고기를 드십니다. 

자녀를 먹는다는 말이 웃기지만, 물고기 ‘153’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의 자녀들’이란 뜻이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선교하시고는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를 낳는 일이 양식인 사람은 주님을 만납니다.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빛을 봅니다. 생명에 대한 자비를 가진 이들만 모든 생명의 창조자를 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첫 명령을 이렇게 내리신 것입니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창세 1,28)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중학생 때 시험 보기 10일 전에 계획을 세우곤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과 함께 늑장을 부리며 공부를 계획대로 하지 않았지요. 이제 시험을 3일 앞에 두고는 다시 계획을 세웁니다. 촉박하기는 하지만 이대로만 하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맞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 역시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친구들의 유혹과 이럴 때일수록 더 놀고만 싶은 것은 왜일까요? 결국 벼락치기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벼락치기 스타일이라며 합리화합니다. 
 
결과는 당연히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것인데도 열심히 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던 것 같습니다. 계획을 통해 결과에 쉽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획만 세우고 멈춰있다면 좋은 결과는 당연히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우리 신앙인도 계획은 가득합니다. 문제는 아직 시간이 많다면서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날과 그때를 모르면서도 계속 뒤로 미루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학창 시절의 시험처럼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그 시험에도 벼락치기가 가능할까요? 마지막 순간에 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이 역시도 평소에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계획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바로 이 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예수님과 함께했던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부르심 받기 전의 생활로 돌아갑니다. 예수님과 함께할 때는 계획이 있었지요.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의 양옆에 앉는 것이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그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도 했었고, 예수님께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망하게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 그들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어부 출신이 많은 제자단이었지만,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라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하자,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사랑의 실천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듯, 우리 역시 사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는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해야 하는 우리입니다. 그래야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을 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다 가진다고 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 소크라테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예수님을 통해 열리는 따뜻한 행복입니다. 수 많은 행복이 널려 있고 깔려 있지만 행복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안간힘을 써도 우리 힘으로는 잡을 수 없는 살아있는 행복입니다. 살아있는 행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모든 순간이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행복입니다. 아무 것도 못 잡은 어리석은 시간도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는 순명의 시간도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는 감사의 시간도 따뜻한 빵과 생선을 나누는 이 모든 시간이 행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들어놓은 길 위에 행복이 있습니다. 부활의 아침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님 사랑을 닮은 아침식사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선물입니다. 아침은 주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에게 옵니다. 아픔과 실망을 밀어낸 그 자리에 아침상이 차려집니다. 

부활의 현주소는 그래서 언제나 아침상이 차려지는 우리들 마음의 현주소입니다. 사랑을 받아 먹으면서 사랑을 배워나갑니다. 부활도 사랑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차려지는 삶의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사랑을 다시 배우는 사랑의 아침입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말씀하시는 행복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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