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알렐루야.
하느님, 해마다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며 기뻐하게 하시니 저희가 이 세상에서 지내는 축제로 영원한 파스카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2024년 4월 3일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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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3,1-10)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 오늘 복음
(루카 24,13-35)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24,27)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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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루카 24,13-35
오늘 복음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3일
이정우 도미니코 신부
✚ 교황님 4월 기도지향00:23
✚ 미사시작 00:38
✚ 강론시작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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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복음은 예루살렘을 온통 술렁이게 하였던 십자가 사건 이후 모든 것이 갑자기 잠잠해진 듯한 분위기에서 시작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십니다. 제자들에게 그러셨듯이, 우리가 서로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어 함께 걸으시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십니다.
이 동행은 그들이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는 상태로 끝납니다. 부활을 알아보지 못함에서 알아봄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무슨 수로 그들의 가리어진 눈을 열린 상태로 변화시키신 것일까요? 복음은 성경에 대한 설명과 빵을 떼어 주시는 행위를 통해서라고 답합니다.
사실 ‘말씀’과 ‘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과 그 사랑을 ‘기념’함으로써 타오르는 마음을 가지게 하고, 마침내 그분의 현존을 알아보게 하는 성사적 자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과정을 날마다 미사 안에서 우리에게 재현하십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 때 비로소 나와 함께하며 내 삶을 동반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또렷해집니다. 그 유일한 존재를 알아보며 그분의 이름으로 일상을 사는 것, 이것이 그 동반에 대한 사랑이며 예의입니다.
날마다 주어지는 말씀과 성찬례만으로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알려 주시고 성체성사로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실제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의 재현
오늘 사도행전의 얘기는 여러모로 의미를 새기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얘기입니다.
먼저 지나가되 지나치지 않는 점입니다. 이는 지나가면서 많이 지나치는 저와 다르지요. 저의 지나침에는 더 예쁘고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보다가 보니 눈에 끌리지 않는 것들은 못 보는 비의도적 지나침도 있지만 보기 싫은 것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의도적인 지나침도 있지요.
가끔 아픈 사람을 보면 같이 마음이 아픈 것이 싫어서, 가난한 사람을 보면 도와줘야 하는데 도와주기 싫어서, 눈을 질끈 감고 서둘러 지나칩니다.
이런 저와 달리 오늘 베드로 사도는 불구자를 지나치지 않고 유심히 봅니다. 그렇습니다. 유심히 보는 점, 이것이 제가 두 번째로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그런데 ‘유심히’라는 말이 어떤 뜻입니까? 한자어의 유심(有心)에서 비롯된 말이지요. 어디에 마음이 있다는 것이고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말로 ‘무심하게’라는 말도 있지요. 그런데 마음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누구에게는 또 어떤 것에는 관심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고, 자기가 좋아하고 그래서 갖고 싶은 것에는 관심이 있지요.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지요. 사람도 좋아하고 소유하고픈 사람에게는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유적인 관심도 있지만 사랑의 관심도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런데 챨리 채플린은 정반대의 얘기를 합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역시 사랑으로 보지 않고 소유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가까운 것일수록 좋은 것이고 선이기를 바라지요.
똥도 멀리 있으면 상관이 없습니다. 가시도 멀리 있으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똥이 가까이 있으면 냄새가 고약하고, 가시가 가까이 있으면 서로 찌르게 되겠지요.
그래서 사랑이 없을 땐 좋은 것이 가까이 있고 좋은 것들만 가까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랑이 있을 땐 어떻겠습니까?
사랑하는 엄마는 아기 똥도 싫지 않고 아기 똥을 보고 건강을 살핍니다. 사랑하는 의사는 병자의 병을 살피고 멀리 있는 병자까지 찾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가까이 있는 것을 지나치지 않음은 물론 멀리까지 관심을 가지고 찾아갑니다. 불구자나 병자를 보고 저는 제가 고쳐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며 사랑을 포기합니다.
고쳐줄 수 없어도 손을 얹어줄 순 있고 기도해줄 순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주님 사랑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는 돈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주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가진 것은 주님이고 주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을 오늘 재현합니다.
그런데 나는 주님 사랑 없다고 버틸 것인가?
그래서 나는 사랑할 수 없다고 버틸 것인가?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부모에게 효도가 당연한 사람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다.
러시아에서 호랑이 새끼들을 젖 먹여 키운 개에게 다 성장한 호랑이들이 순종하고 애교까지 부리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습니다. 이것이 당연하게 보이면 분명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날이 머지않았고, 당연하지 않고 이상하게 보이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짐승들까지도 자신에게 젖을 준 동물을 자기 부모라 여깁니다. 호랑이가 되었지만, 호랑이가 되는 법을 개는 알려줄 수 없습니다. 그냥 젖을 준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호랑이들은 그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여기엔 놀라운 두 가지 믿음이 들어있습니다. 호랑이 새끼들은 젖을 주는 개를 자기 어미라 믿었습니다. 젖은 살과 피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젖을 준 어미는 당연히 영광도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게 두 호랑이가 싸울 때 다 늙은 어미 개가 얼굴을 물며 말려도 어미 개에게 호랑이도 순종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들은 여인들에 의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믿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부모는 자녀를 위해 살과 피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과 그것 때문에 당연히 영광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항상 어머니가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부모 없이 자랐어도 우리를 고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당연히 살과 피를 내어주십니다.
또 어머니는 부족하다고 말은 했지만, 아버지로부터 월급봉투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아버지의 돈을 받는 게 당연합니다. 이것이 영광입니다.
창조자는 피조물을 위해 당연히 피를 흘리고 그 피 흘림에 대한 영광을 당연히 받습니다. 이것이 당연하지 않다면 효도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두 발로 걷고 말을 하게 된 게 부모의 피 흘림 없이 가능했을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짐승에게 길러지면 짐승으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부모를 당연히 공경합니다. 영광을 드립니다.
구약성경은 이 내용들이 핵심입니다. 그리스도는 피조물을 위해 당연히 피를 흘려야 하고 그 피 흘린 메시아는 어머니처럼 당연히 부활의 영광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제자들에게 이해시키셨습니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개는 꽃이 예쁜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분별할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 이미 부활에 대한 진리가 들어있지 않으면 그분을 만나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제가 어머니가 가발을 처음 쓰셨을 때 어머니에게 “아주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정말 어머니 친구인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가발을 쓰실 것이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으로 오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로 유학 간 직후에 버스에서 분명 아는 얼굴을 보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부부였습니다. 계속 보며 결국엔 TV에서 보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먼저 다가와 저에게 인사하며 같은 본당 신자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유학 나오기 직전에 분명 인사를 한 잘 아는 부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로마로 여행하러 온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에서 같은 버스에서 마주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만약 자녀가 있다면 부모에게 효도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할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구약성경의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의 당연성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고 있어야 눈에 보입니다. 특별히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시며 당신 살과 피라고 하실 때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어머니라 여기고 하느님을 아버지라 여기면 아주 쉽습니다. 자녀를 살리기 위해 모든 돈을 쓴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돈을 더 벌어다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 안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기에 인간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기초작업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부모를 이해하고 공경합시다. 그러면 구약성경을 이해한 것입니다. 이제 빵을 떼어주시는 분이 우리 창조자일 수밖에 없음이 이해되고 그러면 성체 안에서 주님을 알아보게 될 일만 남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지난 부활 판공 때는 다른 때와 달리 평일이 아닌 주일에 판공성사를 했습니다. 9시와 11시 미사 전 1시간, 총 2시간을 교구청 신부와 학교 신부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두 시간 동안 고해성사 보신 분이 자그마치 600명이 넘었습니다. 평일에 했던 판공성사보다 2배 이상 많은 사람이 고해성사를 본 것입니다.
얼마 뒤, 우리 성당에서 판공성사를 주었던 신부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이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아. 요즘에 부활에는 거의 성사를 보지 않던데, 그렇게 많이 성사보실 줄 몰랐어.”
맞는 말입니다. 신자들에게 너무 감사했고, 이런 본당의 본당신부라는 사실에 특히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열심한 모습에 더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만약 성탄 판공성사 본 지 얼마 안 되었다면서 성사 보는 사람이 적었다면, ‘우리 신자들은 부활을 기쁘게 맞이할 마음이 부족하다’라며 저 역시도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이의 영향을 받는 우리입니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누군가가 그 모습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타본당 신자가 미사 후에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냉담하다가 이곳 성당에 우연히 오게 되었는데, 성당이 깨끗해서 기도하고 싶어졌어요. 이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우리 성당 교우들은 지저분한 것이 있으면 알아서 치웁니다. ‘누가 치우겠지’라면서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솔선수범해서 치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성당이 늘 깨끗합니다.
자기 모습이 바로 전교 활동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한 전교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자기의 모범적인 삶을 통해서 주님을 가장 잘 알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교 활동을 잘하고 있습니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지요. 이미 몇 차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려 하지 않고 다시 옛 생활로 되돌아가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전하기보다는 과거로만 되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빵을 떼어 나눠주실 때 비로소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믿음을 통해 주님을 알아볼 수 있으며, 믿음을 통해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삶으로 주님을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미래에 있어 사랑은 없다. 사랑은 오직 현재에 필요한 것이다. 현재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이다.
- 톨스토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토록 마음이 아프고 쓸쓸한 것은 우리가 믿었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밀려오는 이 실망과 아픔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보냈기에 예수님의 삶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나셨던 사랑의 자취가 바로 뜨겁게 타오르는 예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의 빵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믿음이고 빵의 나눔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 됩니다. 우리 삶에 말씀과 빵으로 들어오시길 간절히 바라시는 우리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기쁘게 찾아오십니다. 우리 삶에 들어오실 수 있도록 마음을 뜨겁게 여는 것이 믿음입니다.
참다운 빵이란 말씀대로 사는 삶이며 서로를 북돋아 살아가게 하는 삶이 바로 빵의 삶입니다. 매번 만났던 말씀과 빵이지만 다시 뜨거워지는 부활의 특별한 체험이 됩니다. 멀리 떠나서 만나는 체험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다시 시작되는 뜨거운 체험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 우리들의 마음에 머무시려 하십니다. 십자가로 떠나시고 말씀과 빵으로 다시 오십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말씀과 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에게는 말씀과 빵이 있습니다. 말씀과 빵에 머무르는 은총의 시간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으시는 주님의 부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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