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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2/27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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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제 눈을 비추소서. 제 원수가 “내가 이겼다.” 하지 못하게 하소서.

주님, 주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사오니 주님의 교회를 언제나 자비로이 지켜 주시어 저희를 모든 위험에서 보호하시고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2024년 2월 27일 사순 제2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2월 2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2주간 화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이사야서 1장 16절)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이사야서 1장 16절) 성경말씀카드 이사야서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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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1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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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야서 1,10.16-20)
    선행을 배우고 공정을 추구하여라.

  • 오늘 복음
    (마태오복음 23,1-12)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2월 27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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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마태오복음
23장 1-12절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2월 27일 05:00
조승현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6:49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최정훈 바오로 신부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 생각과 말에 머무르고, 삶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 사랑은 공허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에 대해서 비난하십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그저 머리와 입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 해석 권한으로 권력을 쥐고, 외적으로 권위를 상징하는 옷차림새에 마음을 쏟으면서도,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복음 선포에 힘이 있으려면 삶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진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하느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의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도 중요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더욱 효과적인 방식은 희생하는 사랑의 삶입니다. 그러한 삶은 어떤 유려한 연설과 글보다 세상에 더 큰 감동과 울림을 줍니다. 

우리가 김수환 추기경님을 아직도 그리워하고 이 시대의 어른으로 여기는 이유는 단순히 그분께서 가지셨던, 시대를 바라보는 뛰어난 신학적 통찰력이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그 이해에서 흘러나온 아름다운 금언들 때문만이 아닙니다. 

언제나 가장 낮은 이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의 인권과 인간 존엄성을 지키고 보호하고자 불의에 저항하시고, 그에 따르는 어려움과 불이익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헌신적인 삶의 모습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성찰과 반성.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오늘 주님의 이 말씀은 저를 두고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김찬선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자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제 여기 밥상을 하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제가 말씀 나누기를 얼마나 했는지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한 5년 정도 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아서 2008년부터 했다고 정정해서 말씀드렸는데 이때 저의 마음 안에 제법 긴 기간 꾸준히 했다고 약간 자랑하고픈 마음이 있었고 그래서 이내 그런 저의 자세가 잘못된 자세라는 반성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의 육신의 누이가 요즘 강론이 영적으로 옛날만 못하니 더 깊이 묵상하고 나누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오늘 마침 주님께서도 이런 제가 들으라고 말씀하시어 다시 찔끔했습니다. 

사실 16년 넘게 거의 매일 말씀을 나눴으니 그 기간과 말의 양이 엄청난데 그 성찰과 반성과 나눔이 10분의 1만 실천으로 갔어도 저는 성인이 되었을 겁니다. 

전기 작가 첼라노는 프란치스코가 이런 저와 달랐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그의 마음에 가득 찬 것이 입으로 나왔고 그의 온 존재를 채우고 있는 빛을 받은 사랑의 샘이 밖으로 넘쳐흘렀다. 어디에서나 그는 늘 예수께 사로잡혀 있었다. 마음에 예수를 품고 있었고, 입에도 예수, 귀에도 예수, 눈에도 예수, 손에도 예수,
나머지 다른 지체에도 늘 예수를 모시고 다녔다.” 

그러고 보니 주님의 말씀이 머리에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가고, 가슴으로 그치지 않고 손과 발까지 전 존재적으로 가 실천에 이르는 것은 기간과 횟수와 같이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분명합니다. 

제가 여러분과 나누는 것은 제가 실천한 것이 아니라 제가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주님 말씀대로 여러분도 제 말을 실천의 말이라고 믿었다가 실망하지 마시고, 여러분이나 저나 같이 살아야 하고 살고 싶은 것을 나눈 것으로 받아들이시면, 더 나아가 여러분이 저보다 훨씬 더 잘 실천하시는 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가 교만해졌음을 알아보는 가장 빠른 법

 

매리언 존스(Marion Jones): 미국의 유명한 육상 선수인 존스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5개의 메달을 획득한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나중에 경기력 향상 약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이로 인해 올림픽 메달이 박탈되고 명성이 손상되었습니다.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 암스트롱은 특히 1999년부터 2005년까지 투르 드 프랑스에서 7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유명한 사이클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경력은 그가 장기 도핑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급락했고, 이로 인해 그는 모든 경력을 박탈당했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평생 프로 사이클 출전이 금지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꼬집습니다. 그들은 말은 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열심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악한 생각과 행위가 가득했습니다. 위 인물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그들처럼 되지 말라고 하시며 스승이나 아버지란 소리를 듣지 말라고 하십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사제가 되었을 때 어른들이 높여주는 것에 취해 교만을 떨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아주 겸손한 것은 아니지만. 

한 번은 제가 보좌신부 때 체육대회를 하고 있었는데 시장님이 와서 신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도 체육복을 입었기에 시장님과 공손히 인사하였습니다. 당시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시장님은 겸손해지려 노력하였지만, 저와 같이 젊은 청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뻣뻣하게 서서 손만 내밀었습니다. 

한참을 인사하며 가시다가 신자들에게 여기 신부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주임 신부님은 오지 않으셨고 보좌 신부님만 오셨다며 신자들이 저를 지목하였습니다. 저에게 다가오더니 거의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뻣뻣하게 서서 인사를 받아주었습니다. 

어떤 자리에 올라 그만한 대접을 많이 받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집니다. 그런 대접을 받지 않는 게 제일 좋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신부님이란 소리를 들어도 겸손해지려면 자신이 교만해졌는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바로 솔직함입니다. 

그런데 저도 어떤 사진에서 위 시장처럼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저보다 나이가 많은 신자에게 한 손으로 뻣뻣하게 악수하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만 뒤에는 항상 감추는 죄가 존재합니다. 교만함의 시작은 위선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어떤 군인이 장군이 되어 사무실에 새로 들어왔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너무 좋아서 뽐내고 싶어졌습니다. 마침 어떤 사병이 들어오니까 전화기를 집어 들고 “예, 대통령 각하.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병에게 어쩐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병은 대답했습니다. 

“전화선 연결하러 왔습니다….”

왜 위선과 거짓말이 교만일까요? 바로 내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두렁이로 옷을 만들어 입으며 하느님까지도 속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유명인들이 왜 한 번에 나락으로 떨어질까요? 바로 교만 때문입니다. 이강인 선수도 워낙 인기를 많이 얻다 보니 어린 나이에 그 인기를 주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 주장에게 대들기 전에 위선적인 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속이려는 마음이 있을 때 바로 ‘아, 내가 교만해져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롱런할 수 있습니다. 

마약 중독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그렇고, 과거의 빈곤과 학대, 그리고 임신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를 고백한 오프라 윈프리가 그렇고, 성매매로 체포되었지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휴 그랜트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끝까지 감추려 하지 않고 겸손함을 지향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지위를 내려놓을 각오를 하고 솔직해짐을 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용기에 더 크게 감탄합니다. 누구나 다 죄를 짓고 속이며 살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인기를 얻고 성공하면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만은 패망의 원인입니다. 그러니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교만해졌음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주교가 되고 수도회의 창립자가 되어 교만해져 있었습니다. 방에서 기도하던 제자를 불렀지만, 그는 황홀경에 빠져 있어서 듣지 못했습니다. 

짐짓 자기를 무시하는 줄 알고 문을 열고는 바로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자기 머리를 발로 밟으며 “교만한 아우구스티노야!”라고 세 번 반복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자기의 위선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기에 위대한 인물입니다. 이웃을 판단할 때 뉘우치면 많이 늦습니다. 그것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두렁이로 가리려고 하는 것이 먼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미래를 긍정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행복 수준을 높여 줍니다. 실제로 이들은 자기 계획에 대한 성취도가 높고, 꾸준함도 갖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범죄를 저질러서 돈을 번 사람들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언제 잡혀 들어갈지 모른다’라는 불안감을 늘 간직하고 있기에, 돈을 모으지 못하고 대신 도박과 유흥, 방탕한 생활 안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안의 불안감을 없애고 행복감을 높이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면 무의식적으로 실패를 바라보게 됩니다. 다른 이의 말이 내 안에서 실재가 되어 나를 좌지우지 하게 됩니다. 
 
지난겨울 중고등부 캠프 프로그램 중에 제주도 한라산 등반이 있었습니다. 힘들게 등반하는데, 한 친구가 허겁지겁 아래로 내려갑니다. 방금 지나갔던 등산객 중 한 명이 무엇인가를 떨어트렸다는 것입니다. 이 친구는 등산객이 놓고 간 검은색 봉지에 담긴 무언가를 들고 뛰어 내려가서 주고 왔습니다. 제가 “그 안에 뭐가 들었는데?”라고 물으니, “쓰레기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버려야죠. 그래서 주고 왔어요.” 
 
누가 내게 쓰레기를 넘겼습니다. 그 쓰레기를 받으면 어떨까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이 쓰레기를 계속 손에 들고 있으면 계속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얼른 그 쓰레기를 다시 넘겨야 합니다.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감정적인 쓰레기들도 넘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지금을 힘차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렇게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쓰레기들을 넘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지 실제로 행동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옳고 자기들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모두 틀렸다면서 단죄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 단죄를 받는 사람은 결국 죄인이 되어서 제대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쓰레기를 넘기는 위선자를 따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겸손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쓰레기를 넘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이라는 귀한 선물을 건넬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통해서 높아질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명확한 목적이 있는 사람은 가장 험난한 길에서 조차도 앞으로 나아가고, 아무런 목적이 없는 사람은 가장 순탄한 길에서 조차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 토머스 칼라일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실행 없는 말만 무성합니다. 복음이 아무리 좋다 해도 구체적인 실천이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공허한 반복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고 행하신 대로 말씀하십니다. 실천의 장(場)으로 초대받은 우리들입니다. 

입으로만 하는 사탕발림의 영역에 갇혀있는 우리를 실행하는 십자가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십자가는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현실 또한 구체적인 실천없이는 시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통의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복음의 실천 희망의 구원입니다. 앎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을 믿는 것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실행의 씨앗을 우리 삶에 뿌리십니다. 이 사순시기에 참된 실행이란 끊을 것을 끊는 것이며 지킬 것을 지켜나가는 바른 정신입니다. 

잘못을 깨뜨려야 허위와 모순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섬기고 간절함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실천의 삶을 살고있는 것입니다. 삶의 태도와 삶의 방식을 바꾸는 복음은 우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되게하십니다. 

생각의 노예 욕망의 노예에서 벗어나게 하는 복음의 실천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돌아가는 실천의 사순 잘못을 끊는 실행의 사순 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간절한 실행이 간전한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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