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영원하신 아버지 하느님, 저희가 마음으로 회개하고 언제나 필요한 그 한 가지만을 찾으며 사랑을 실천하여 하느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2024년 2월 24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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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1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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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신다. (마태오복음 5장 4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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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5장 45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신명기 26,16-19)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 - 오늘 복음
(마태오복음 5,43-48)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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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이네.
마태오복음
5장 43-48절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2월 24일 05:00
박형준 라파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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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최정훈 바오로 신부
악인에 대한 사랑
복음은 어제에 이어서 율법의 의로움을 넘어서시고 율법을 완성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줍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레위 19,18 참조) 계명은 이웃의 경계를 원수와 악인까지 넓혀서 사랑하라고 이르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도 당신께 해를 끼친 이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셨습니다(루카 23,34 참조). 하느님께서 악인과 선인, 의로운 이와 불의한 자를 똑같이 돌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원수와 악인을 사랑한다는 것이 그들의 악행과 죄를 용인하고 불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죄악을 멈추게 합니다. 사랑이 있다면, 악인들이 죄악을 저지르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자녀가 잘못하였을 때 부모는 따끔하게 혼내고, 잘못의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 알려 주며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게 합니다. 이것이 정말 올바른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악인들을 회개로 이끌고, 그들이 저지른 죄를 일깨워 주고, 죄의 결과에 대해서는 함께 용서를 구하고 하느님의 크신 자비에 맡겨 드리는 것이 악인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악행에 마음 아파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일은 그들의 회개입니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에제 18,23)
그들의 죄를 멈추게 하는 우리의 사랑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릴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에 원수였어도 지금 아닌 경지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이 말씀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원수를 사랑하려고 애를 무척 씁니다. 그러니 원수를 사랑하려고 도무지 애쓰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과 아닌 사람을 가르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저는 원수를 사랑하려고 애써야 할까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지금까지 생각해온 것에 반기를 들 듯이.
무슨 얘기냐 하면 원수를 만들어 놓고 사랑하려고 애쓰지 말고 원수를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원수를 만들지 않으려고 아예 아무 관계를 맺지도, 누구와도 엮이지 말자는 뜻은 물론 아니고 누가 원수의 짓을 해와도 원수를 만들지 않겠다는 그런 뜻에서 말입니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원수 짓을 해와도 원수로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게 원수가 악한 짓을 해도,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그것이 악한 짓이어도 내게는 그것이 악이 아닌 그런 경지에 이르면 애초에 아무 원수가 없고, 전에 원수였어도 이제는 원수가 아니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경지가 오늘 하느님 사랑의 경지입니다.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과 비를 주시는 경지 말입니다.
이는 마치 연기에 그을려도 그을음을 전혀 타지 않는 것처럼 인간이 어떤 악을 저질러도 그것이 그에게는 전혀 악이 되지 않는 경지입니다.
어렸을 때 수인선 협궤 기차를 타고 인천을 갔다 오다 보면 굴을 몇 개 통과하게 되어 있는데 굴을 지나고 나면 석탄 연기에 얼굴이 모두 검둥이처럼 되어 서로 킥킥대며 웃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머리를 좀 쓰는 친구들은 얼굴을 보자기로 감쌉니다. 그것처럼 누가 아무리 악의 비를 퍼부어도 우산을 큼지막하게 쓰면 그 비에 젖지 않겠지요?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노래를 보면 얼굴빛 차돌처럼 만든다는 노래가 있습니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런데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건 얼굴에 보자기를 써 그을음 타지 않는 것과 같고, 차돌처럼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원치 않는 상황이 벌어지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합니다. 그러나 모욕과 수모는 원치 않는 사람에게만 모욕이고 수모이고, 모욕과 수모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만 악이기에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것들이 악이 되지도 않고 얼굴빛 변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지만 프란치스코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곧 자기도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외에 자기가 원하는 것은 없는 경지입니다.
전에 원수였어도 이제는 원수가 아닌 그런 경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외에는 원하는 것도 없고 원치 않는 것도 없는 그런 경지를 당장 이룰 수는 없어도 감히 꿈꾸고 마음먹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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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을 위해 사는 사람
현대의 대표적인 영성가로 ‘토마스 머튼’을 뽑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트라피스트 관상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글 쓰는 일에 회의를 느꼈고, 진정으로 기도하는 관상가로 살기 위해 수도원에 입회한 것입니다. 입회 후에 그에게 수도원 장상이 불러서 소임을 맡겼습니다. 어떤 일이었을까요? 바로 ‘글 쓰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만을 바라보는 관상가가 되고 싶은데, 다시 세속의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글 쓰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면 이곳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까지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갈등 속에서 어느 날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관상가가 되느냐, 작가라는 활동가가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 후 자기가 싫어하는 일도 기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 역시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산다’라는 사실만 바라봐야 했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과 함께하려고 하며, 포기하려는 텅 빈 마음에 그 자리에 하느님을 초대합니다. 즉, 하느님과 한편이 되기에 기쁨과 희망 속에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싫어하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또 싫어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싫어하는 일과 사람 속에서 우리는 평화와 기쁨을 갖지 못합니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고, 미움 등의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하게 됩니다. 바로 잊어버린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느님을 위해 산다’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포함하는 사랑을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박해자까지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원수를 대하게 되는 것, 나를 반대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모두 싫은 일이고 피하고 싶은 자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갑자기 그 사람이 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안에 계신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 하느님을 위해 살려면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싫어하는 일과 사람은 계속해서 우리 앞으로 다가옵니다. 그때마다 싫다고 도망가서는 안 됩니다. 적대적인 마음으로 싸워서도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앞세워 사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화는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독이지만, 실제로는 당신에게 가장 큰 해를 입힙니다.
- 로버트 그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하느님께서 계시기에 기도도 사랑도 빛을 발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사랑하는 인격을 배우고 기도를 통하여 사랑의 질서를 깨닫습니다. 완전하신 하느님을 향하는 완전한 사랑의 기쁨입니다. 삶이 있기에 사랑도 미움도 있습니다. 삶을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미움이라는 동굴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언제나 삶을 놓칩니다. 숨어드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 말씀에 귀를 열고 가슴을 여는 오늘의 삶이길 바라십니다. 우리의 사랑도 인간적인 집착의 사랑이 아니라 온전하신 하느님 사랑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알지 못하면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불행하게 살기를 결코 바라지 않으십니다. 박해하는 자들을 떠올려보면 너도 나도 모두, 삶의 미성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미움으로 왔다 미움으로 흩어지는 이들이 아니라 미숙함으로 왔다 미숙함으로 사라지는 이들이 아닌 온전하신 하느님과 함께 살다 완전하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인격은 기도와 사랑의 인격입니다. 하느님을 만나야 할 우리의 삶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사이에서 관계의 뼈대와 사랑의 살을 만드시고 입히십니다. 하느님께 속한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기도와 사랑이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완전하신 하느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사순을 이끌어가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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