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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2/13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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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이제 순결한 예물, 정결한 희생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른다.

주님, 거룩한 동정 순교자 루치아의 전구로 저희 안에 믿음의 불이 타오르게 하시어 오늘 그의 천상 탄일을 지내는 저희가 영원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소서.

 

2023년 12월 13일 (수)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2월 1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이사 40,31)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이사 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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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40장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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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이사야서 40,25-31)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신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1,28-30)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2월 13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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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보라, 당신 백성 구원하러 주님이 오시리니 주님을 맞이하러 달려가는 이는 복되어라.

 

 

마태오복음
11장 28-30절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2월 13일 (수) 05:00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시몬 시몬 신부

 

📌 성녀 루치아 소개 00:05

📌 미사시작 01:17

📌 강론시작 07:44

 

 

 

의정부 용현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2월 13일 (수) 10:00
의정부 용현동성당
이충열 티토 신부

 

📌 미사시작 14:03

📌 강론시작 24:45

 

 

 

명서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2월 13일 (수) 10:00
명서동성당 미사
구성진 율리아노 신부

 

📌 미사시작 07:57

📌 강론시작 15:58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미사

 

 

2023년 12월 13일 (수) 11:00
남양성모성지 미사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미사시작 32:11

📌 강론시작 41:27

 

 

 

팔로티회 실시간 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2월 13일 (수) 15:00
팔로티회 홍천
장화기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1:58

📌 강론시작 15:02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2월 13일 (수) 16:00
팔로티회 분당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세세하게 규정한 율법 관련 조항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지켜야 한다는 강박 속에 ‘무겁고 힘겨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하였습니다(마태 23,4 참조).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수고로움을 덜어 주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가벼운 짐과 편한 멍에를 마련하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의 짐을 진다는 것은 그분의 뒤를 따르며(‘나에게 오너라.’) 그분의 말씀을 듣고 간직하는(‘나에게 배워라.’) 참된 제자의 길을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길은, 곧 ‘안식’을 누리는 길입니다. 여기서 안식은 미래에 하느님 곁에서 영원히 누릴 평안한 쉼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앞당겨 현재의 삶 속에서 이미 누리는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들은 그분께서 새롭게 마련하신 멍에를 메고 짐을 진 사람들입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고 계십니까? 만일 어깨가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그것 말고도 다른 짐들이 쌓여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여 봅시다. 

어쩌면 우리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짐 꾸러미를 하나둘 어깨 위에 계속 올리기만 하다가 마침내 감당할 수 없는 그 무게에 짓눌려 고통스럽게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정작 짊어져야 할 짐은 예수님께서 주신 짐, 그것 하나뿐입니다. 알게 모르게 쌓아 올린 불필요한 삶의 멍에들을 차근차근 내려놓아 봅시다. 우리 어깨가 한결 가벼워질 것입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어느 민속학자가 남아메리카 한 마을의 부족 아이들을 불러 모은 뒤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나무 옆에 탐스러운 과일과 맛있는 과자 바구니를 두었으니 먼저 뛰어간 아이에게 그 바구니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모두 출발점에 섰고, 민속학자는 출발 신호를 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누구하나 빨리 달리지 않고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달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구니 앞에 도착하자 모두 둘러 앉아 나누어 먹었습니다. 
 
민속학자는 “누구든지 먼저 간 사람에게 바구니를 다 주려고 했는데, 왜 손을 잡고 달려갔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너도나도 “우분투”라는 단어를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 뜻을 몰라서 당황하는데, 한 아이가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떻게 혼자만 행복해질 수 있나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분투’라는 아메리카 말은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I am because you are)라는 뜻이었습니다. 이웃을 배려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남아메리카의 전통적인 윤리 의식이었습니다. 이 ‘우분투’가 지금에도 울려 퍼져야 하지 않을까요? 혼자 살 수 없음이 분명한데도 개인주의가 판을 치고 있고, 무관심 속에서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결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도 ‘우분투’ 정신을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우분투’ 정신이 가득하면 편안할까요? 편안하지 않을까요? 이 정신으로 산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히 편안해질 것입니다. 또한 삶이 어렵고 힘들다면서 너무 무겁다고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보다는 기쁘고 행복하다면 가벼운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주님께 오라고 하셨을까요? 주님은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면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행복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었을 때를 떠올려 보면 아마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렵고 힘든 것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사랑이신 주님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신 주님과 함께하면서 우리 역시 사랑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이에게 편함과 가벼움을 줄 수 있는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우분투’ 정신으로 보충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라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의 세상은 절대로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하나 되는 진정한 행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는 것은 밤중에 시골길을 전조등도 켜지 않고 달리면서 뒷 창문으로 밖을 보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 피터 드러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마음의 평화를 얻는 법: 나를 무겁게 하는 짐의 정체를 먼저 알아야!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안식’을 약속하십니다. 이를 위해 안식이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성당에 다니기 위해 오는 사람 대부분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당 다니면서도 마음의 평화인 안식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무거운 짐’의 정체를 잘 모르는 게 아닐까요? 

영화 ‘디스 파이널 아워스’(2013)의 줄거리입니다. 이야기는 호주 퍼스를 배경으로 하며, 지구를 멸망시킬 재앙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 12시간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영화는 생명을 잃은 운석이 북대서양을 강타하여 지구 전체를 천천히 휩쓸고 있는 세계적인 불 폭풍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아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제임스입니다. 제임스는 임신한 애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죽는 것도, 자신의 애인이 죽은 것도, 그 태중의 아기가 죽는 것도 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저 술을 마시며 광란의 파티를 하다 죽고 싶어 그녀를 떠납니다. 

종말의 혼란 속에서 제임스는 아버지와 헤어진 채 어른들에게 끌려가는 어린 로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도와줍니다. 그녀는 아버지 옆에서 종말을 맞고 싶다고 제임스에게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임스는 생의 마지막을 아이를 도와주다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광란의 파티에 갑니다. 거기에는 참다운 우정도 없고 거기에서도 어른들이 로즈를 마지막 노리갯감으로 쓰려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제임스는 로즈를 데려 나와 아버지를 찾아주기로 합니다. 로즈가 말한 아버지 집으로 갔더니 온 가족이 두려움에 자살한 상태였습니다. 제임스가 로즈와 함께 떠나려 하자 로즈는 그것을 거부하고 아빠 곁에 머물겠다고 말합니다. 제임스는 아이를 보며 마지막 시간에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와 머문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은 누구와 함께 죽음을 맞고 싶은가 생각하다 자신의 짐처럼 여겨 떠났던 임신한 애인을 찾아 나섭니다. 도중에 차도 고장이 나지만 뛰어서 그녀가 있는 해변으로 갑니다. 거기에서 용서를 빌고 그녀와 꼭 껴안은 채 바다에서 밀려오는 불 폭풍을 맞습니다. 이때 여자가 말합니다. 

“아름다워!”

사랑하는 사람과 맞는 죽음은 더는 공포가 아니고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안식입니다. 

제임스는 자신의 무거운 짐이 임신한 애인, 자기가 책임져야만 하는 가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짐을 벗어던지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안식은 없었습니다. 자기가 짐이라고 여겼던 것은 사실 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무거운 짐은 무엇일까요? 제임스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랑의 의무를 다할 필요가 없이 즐기다 죽어도 된다고 말하는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짐은 외적인 책임이 아닙니다. 바로 원죄에 물들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아니라 외적인 무언가를 내려놓으려 하기에 영원히 안식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마음을 약속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수님은 새로운 마음을 넣어주러 오셨습니다. 그것도 짐입니다. 그러나 이전의 마음보다는 가볍습니다. 이전의 마음은 온유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습니다. 죽어야 할 운명에 대해 화가 나 있고 나에게 주어진 책임에 대해 분노로 차 있습니다. 

겸손하지 못해 감사하지 못하고 하느님과 나에게 짐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불만을 품고 원망합니다. 제임스는 로즈라는 아이를 통해 이 새로운 마음을 얻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전에 짐처럼 보였던 가족이 이젠 죽음 앞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는 안식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가끔 자신 안에 마귀가 산다고 말하는 이들이 찾아옵니다. 안수로 그것들을 내쫓아 달라고 말합니다. 누구도 자신 안의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것 때문에 몸도 아프고 삶도 피폐해졌다고 합니다. 

이들은 그 마귀들이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짐은 ‘외로움’입니다. 하느님도 없고 부모도 없고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믿는 척은 하지만, 실제로 자기를 믿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된 게 마귀 탓이라고 하며 진짜 무거운 짐을 부인입니다. 그 무거운 짐이란 자신을 외롭게 만든 하느님과 가족에게 화가 나 있는 마음입니다. 그것부터 내려놓아야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장착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습니다. 원한다면 사제가 시키는 것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성당에 매일 나와서 ‘하.사.시.’ 30분 읽고 성체조배 하며 그 내용을 묵상하라고 합니다. 일주일이면 충분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렇게 마귀가 나가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자기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마귀와 자기를 그렇게 만든 환경이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것만 없애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식을 위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니 불만스럽고 화가 나 있는 마음을 먼저 내려놓읍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휴식이 아니라 안식을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여러분은 어디서 안식을 누리고 싶습니까? 

어머니의 품? 

연인의 무릎? 

아니면 누구? 

주님은 어떠십니까? 주님께서 안식을 누리러 오라 하시는데 가시겠습니까? 영원한 안식은 물론 주님 안에서 누려야겠지만 지금 누리고픈 안식도 주님인지 묻는 것입니다. 

저에 대해서 말씀드린다면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천주교 수도자가 이런 얘기를 하다니 깜짝 놀라시겠지요? 

그러나 놀라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누리고 있기 때문에 누리고프지 않은 것입니다. 안식을 못 누리기에 누리고픈 것도 아니고, 주님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안식을 누리기에 이제는 주님 안에서 누리고픈 것도 아니라는 얘깁니다. 

언제부턴가 성체 앞에서 누리는 안식이 좋았는데 대전에 와서는 더 그렇습니다. 오전 11시경 경당의 햇빛이 드는 창가에 가부좌 틀고 앉으면 최고의 안식이 제게 깃듭니다. 

이 안식(安息)은 휴식(休息)과 확실히 다릅니다. 휴식은 무엇을, 힘든 일을 잠시 멈추고, 몸과 마음이 잠시 쉬는 정도입니다. 

안식은 힘든 것을 멈추는 정도가 아니고, 몸과 마음이 쉬는 정도도 아니고 배가 항구에 닻을 내리듯 주님께 안주하는 것이고, 사랑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피곤을 푸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늘 피곤하고 휴식을 필요로 했던 젊은 날보다 사랑에 잠기고 사랑을 관조할 수 있는 지금이 훨씬 좋습니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이럴 수만 있다면, 그래서 영원한 안식에 마침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만 있다면 저는 그리고 여러분은 성공한 인생일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세상은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십자가는 은총이고 멍에와 짐은 우리를 살리는 선물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없는 위로와 휴식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휴식은 소중한 삶의 질서입니다. 주님께서는 질서를 빼앗는 분이 아니라 다정하고 자애로운 마음을 나누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안식이 있기에 깨어있는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삶에 갇혀 있길 바라지 않으십니다. 고생이 안식일 수는 없습니다. 편하고 가벼운 휴식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안식이 기쁨입니다. 무거운 짐을 진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휴식으로 답을 하여 주십니다. 휴식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을 만나는 은총이기에 실패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휴식으로 새 날을 맞이합니다. 

십자가는 은총이고 안식은 기쁨입니다. 기쁨을 얻는 지혜입니다. 지혜의 멍에와 은총의 짐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선물이 됩니다. 선물을 만나며 참된 사랑을 배우는 대림시기의 나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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