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3/12/16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2. 16.
반응형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주님, 오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찬란한 빛으로 저희 마음을 밝히시어 밤의 어둠을 모두 몰아내시고 외아드님께서 오실 때에 저희가 빛의 자녀로 드러나게 하소서.

 

2023년 12월 16일 (토)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2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마태 7,12)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마태 7,12) 성경말씀카드 마태오복음 성경구절이미지 다운로드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마태오복음 7장 12절

오늘성경구절이미지_231216.jpg
0.28MB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집회서 48,1-4.9-11)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

  • 오늘 복음
    (마태오 17,10-13)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2월 16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마태오복음
17장 10-13절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산에서 내려올 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13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2월 16일 (토) 05:00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시몬 시몬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6:59

 

 

 

의정부 용현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2월 16일 (토) 10:00
의정부 용현동성당
이충열 티토 신부

 

📌 미사시작 15:02

📌 강론시작 22:14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미사

 

 

2023년 12월 16일 (토) 11:00
남양성모성지 미사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미사시작 34:26

📌 강론시작 41:36

 

 

 

팔로티회 실시간 미사

 

 

2023년 12월 16일 (토) 16:00
팔로티회 분당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말라 3,23). 

이 예언의 말씀을 근거로 유다인들은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가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를 칭송하는 내용이 담긴 집회서의 말씀도 같은 믿음을 반영합니다. 

“당신은 ……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엘리야에 관하여 던진 질문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산 위에서 목격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과(마태 17,1-8 참조) 부활에 관한 말씀을(17,9 참조) 바탕으로, 그들은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음을 깨닫습니다. 

다만 율법 학자들의 주장처럼 그 전에 오기로 한 엘리야는 과연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지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유다인들은 엘리야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는 이미 그들 곁에 와 있었습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이 ‘돌아올 엘리야’였던 것입니다. 결국 유다인들은 엘리야도 알아보지 못하였고, 메시아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두 분을 모두 ‘제멋대로 다루며’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선구자로 파견되어 그분의 길을 미리 닦고 준비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3,1-12 참조). 그런데 메시아가 걸어야 할 길은 특히 수난과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 길 또한 마다하지 않았던 진정한 메시아의 선구자였습니다. 예수님에 앞서 수난의 길을 걸었던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도 수난의 여정에 기꺼이 참여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16,24).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취업도 되지 않고, 집에 안 좋은 일이 계속되어서 너무 힘든 상황에서 친한 친구가 이 점쟁이를 소개해 준 것입니다. 그는 삶이 너무 힘들어서 믿지 않는다면서도 시간을 내서 찾아갑니다. 점쟁이는 꽤 긴 시간 동안 점을 보더니 갑자기 큰 절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될 팔자입니다.” 
 
이 사람은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점쟁이가 절까지 하는 것을 보면, 이 어려운 시간은 금세 지나가고 분명히 왕이 될 것 같았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왕이 없으니 ‘대통령이 되는 것일까?’ 싶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는 ‘아직 때가 안 되었을 뿐’이라면서 계속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남자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습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란 없습니다. 노력해야 여기에 걸맞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왕이 될 수 있을까요? 혹시 모르겠습니다. ‘게으름의 왕’도 왕이라고 한다면 말이지요. 
 
어떤 사람의 ‘인맥’이 대단하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합니다. 그렇다면 저절로 그 인맥이 생기고, 좋은 관계도 저절로 된 이루어진 것일까요? 그만큼 노력했기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좋은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묵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를 맡긴 듯이 계속 요구만 하고 있으면서 하느님과 좋은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까요?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라고 묻습니다. 말라키서에 이런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말라 3,23)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지요. 문제는 엘리야가 왔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룬 것입니다. 엘리야를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도 없었기에 세례자 요한을 함부로 다룬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그칠까요?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향해서도 고난을 줄 뿐이었습니다. 
 
주님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먼저 해야 구원의 길에 가까워집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부요한 삶은 더 많은 것을 원하지 않고 더 적은 것을 필요로 합니다.

- 니콜라스 찰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의 예언자는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세례자 요한은 다시 온 엘리아입니다. 엘리야 시대 사람들은 엘리야 예언자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엘리야가 다시 올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다시 온 엘리야, 곧 세례자 요한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언자는, 당대 사람들은 몰라보고 당대 사람들이 제멋대로 다뤄 죽고 난 뒤에야 후대 사람이 알아봅니다. 

그러면 왜 당대에는 알아보지 못하고 후대에야 알아볼까요? 

그것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요즘 선거판에서는 <내가 하면 검증, 남이 하면 Negative 공세>, 이런 현상과 깊이, 아니 정확히 관련이 있지요. 

예언자는 똑같은 예언, 곧 하느님의 말씀을 하는데,그것이 나에게 하면 예언이 아니고 트집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하면 트집이 아니고 예언이 되는 것이지요. 

누구든 당장은 자기를 아프게 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이는 아이가 주사를 놓는 의사를 나쁘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예언자는 슬픈 운명입니다. 나중에는 높이 칭송받지만, 당대의 사람들에게 그는 죽일 놈입니다. 

인간은 현재를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미래의 칭송을 생각하며 현재의 냉대와 질시를 감수하는 것은 아무리 예언자의 운명일지라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이런 운명을 받아들이는 예언자들은 그러므로 용기 있는 사람 그 이상의 이런 운명을 주신 하느님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존재입니다. 

살을 에는 바람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이하듯 그 아픈 짓을 독하게 해내는 존재이고 그 대가로 살해당하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나의 잘못을 놓치지 않고 또박또박 짚어내는 사람, 나의 아픈 곳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후벼 파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사실은 하느님의 예언자들입니다. 이들이 나의 엘리야이고 나의 요한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엘리야와 나의 요한은 과연 누구일까요? 나는 지금 그들을 하느님께서 바로 내게 보내신 나의 엘리야와 나의 요한으로 알아보고 있는가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욕심만 있을 뿐, 하느님의 뜻은 없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올바른 실천에 있습니다. 어리석음과 무지로 요한 세례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교만으로 늘 빛을 잃게 됩니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이미 와 있는 엘리야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누가 주님이고 누가 종인지를 아직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안다면 눈 앞에서 벌어지는 무례한 현상에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탄생 앞에서 교만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우리 마음을 속이고 있는 것은 우리자신입니다. 

마음의 올바른 자리 매김이 바로 겸손입니다. 요한 세례자는 우리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안내해 줍니다. 편협된 편견이 아니라 고정된 아집이 아니라 올바른 길을 안내하는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제멋대로 다루어야 할 예언자의 삶이 아니라 우리자신을 점검하여 올바른 길을 찾게하는 예언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고난이 예수님께서 받으실 고난을 알려줍니다. 알아볼 수 있는 은총과 지혜를 청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