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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2/17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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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여라. 거듭 말하니,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여라.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

하느님, 하느님 백성이 주님의 성탄을 간절히 기다리오니 저희가 구원의 큰 기쁨을 누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이 축제를 맞이하게 하소서.

 

2023년 12월 17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2월 1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대림 제3주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 (필리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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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피서 4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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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이사야서 61,1-2ㄱ.10-11)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 제2독서
    (테살로니카1서 5,16-24)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6-8.19-28)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2월 17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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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요한복음
1장 6-8절, 19-28절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2월 17일 (일) 05:00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황규현 보니파시오 신부

 

📌 경기 여주성당 소개 00:22

📌 미사시작 01:28

📌 강론시작 13:15

 

 

 

명서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2월 17일 (일) 10:30
명서동성당 미사
구성진 율리아노 신부

📌 미사시작 06:16

📌 강론시작 15:43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미사

 

 

2023년 12월 17일 (일) 11:00
남양성모성지 미사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미사시작 30:56

📌 강론시작 39:03

 

 

 

가톨릭스튜디오 실시간 미사

 

 

2023년 12월 17일 (일) 11:00
가톨릭스튜디오 미사
이병근 대건안드레아 신부

 

📌 미사시작 00:35

📌 강론시작 14:2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기쁨에 관한 묵상

 

대림 시기도 어느덧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 다가올 메시아의 구실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이 말씀이 당신을 통하여 실현되었음을 장엄하게 선언하시며 공생활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루카 4,16-21 참조).

이처럼 예수님께서 전하신 소식은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해방과 구원을 알리는 복음, 곧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이의 마음과 복음을 듣는 이의 마음은 언제나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오늘 전례 독서는 ‘기쁨’에 관하여 묵상하도록 우리를 안내합니다. 제1독서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메시아의 기쁨을 노래하고(“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제2독서는 같은 소식을 전하여야 할 제자들에게 기뻐할 것을 권고합니다(“언제나 기뻐하십시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빛’이신 분을 증언하는 기쁨 속에서 사람들을 회개의 삶으로 이끕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소식을 들은 성모님께서도 이렇게 노래하셨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 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노네”(화답송).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여러분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합니까? 바오로 사도의 권고처럼 우리는 언제나 기뻐하여야 합니다. 소식을 듣는 이들에게 기쁨이 전하여지려면, 먼저 소식을 전하는 이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심전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쁜 소식은 특히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향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그런 이들을 찾아다니셨습니다. 대림 제3주일은 이웃 사랑의 실천을 장려하는 자선 주일이기도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랑의 전도사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지혜로운 사람

 

펭귄은 새일까요? 아니면 물고기일까요? 작지만 날개가 있는 것을 보면 ‘새’ 같기도 하고, 전혀 날지 못하고 헤엄을 잘하는 것을 보면 ‘물고기’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날지 못해도 분명히 ‘새’라고 합니다. 헤엄을 치면서 물속에 있는 물고기, 낙지, 새우 따위를 먹지만 말이지요. 더군다나 땅에서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모습에 우리는 우스꽝스럽다고 말합니다. 
 
사실 남극은 너무 추워서 하늘 나는 것이 전혀 도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먹을 것이 그래도 풍부한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펭귄은 하늘을 날게 하는 날개를 줄여서 바닷속에서 헤엄을 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멋있지 않습니까? 겉모습만을 보고서 우스꽝스러운 ‘새’라고 말하지만, 환경에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열린 마음을 가진 놀라운 ‘새’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좋아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돈도 좋고, 세상의 높은 지위도 부러움을 삽니다. 명품이라는 물건들은 멋져 보이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많은 재능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멋진 것은 지금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좋아하는 물질적인 세속적인 가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주님의 가치를 따르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 안에서는 그 판단이 훨씬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인·성녀가 주님의 가치만을 따랐습니다. 
 
오늘 대림 제3주일의 복음 말씀에서도 세상에서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주님으로부터는 큰 인정을 받게 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는 당시 사람들로부터 구세주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내가 구세주다.”라고 한마디만 했어도, 사람들은 하느님으로 떠받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의 가치보다 주님의 가치가 더 중요하기에 가장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6)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도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자기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항상 맨 끝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우리의 삶 안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롭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우리 인생의 옷감은 선과 악이 뒤섞인 실로 짜인 것이다.

- 셰익스피어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미완성으로 태어나는 인간

 

대림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무엇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할까요? 그리스도께서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구세주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되면 그분이 오셔도 무시하거나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우리에게 그분은 왜 필요할까요? 그분 없이는 완성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당신은 누구요?”(요한 1,19)라고 묻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말하기 이전에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며 모세에게 예언된 그 예언자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자신은 메시아께 가는 ‘길’과 같다고 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

그러나 요한의 정체를 알려고 온 이들은 ‘길’이 어떤 의미인지 몰라 이렇게 따집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6-27)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께로 이르는 분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을 감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했다고 놀라지 말기를 바랍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께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나 그분께 는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완성하려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여자로 완성되어 태어난 것일까요? 그러나 여자는 자녀를 낳고 키울 때 완성됩니다. 그래야 모성애도 알고 자기 몸에서 아기를 먹일 살과 피와 같은 젖도 나옴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남편이 없었다면 아이가 태어날 수 없었음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남편을 존중하지 못하는 아내 밑에서 자란 아이는 엄마도 공경할 줄 모르게 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와 남자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에페 5,22-23)

여자가 남자라는 구원자를 만나야 여자로서 완성되는 것처럼, 사람도 하느님을 만나야 완성됩니다. 여자가 남자를 그리워하듯 인간은 하느님을 그리워합니다. 반대로 남자가 여자를 그리워하여 자기 모든 것을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있듯,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신을 찾으면 됩니다. 우리의 양식이 되기 위해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은 신은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라틴어 단어 겸손(humilitas)은 ‘흙’(humus)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흙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위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자기 자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기만의 열매가 아닙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고 태양이 비추니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무에게 “나는 하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라고 말할 때 흙이 완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첫째 날 ‘빛’이 창조되었습니다. 아기에게 빛이 들어오면 부모를 찾게 됩니다. 처음엔 자기를 바라보는 부모를 구별하지 못하다가 점차 그와 자신을 구별하게 됩니다. 

둘째 날 궁창이 창조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같은 물인 줄 알았지만, 나는 땅의 물이고 하늘의 물이 존재하는 것을 압니다. 

셋째 날은 자기를 하늘의 물과 같은 존재라고 여기는 물을 바다로 밀어내고 마른 땅이 나옵니다. 그러고는 하늘에서 비를 받아 땅에서 풀과 나무들이 자라게 합니다. 그러면 땅은 이제 풀과 나무가 하늘을 알아가게 만드는 ‘길’이 됩니다. 이때 비로소 땅이 완성됩니다. 

엘리사벳을 방문하시는 성모 마리아도 마찬가지이십니다. 그분은 하느님을 잉태한 땅입니다. 성모님은 엘리사벳이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러고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8)라고 노래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역할을 하면서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자기를 완성하여 당신께로 이끄는 길이 되려는 땅에게 주님께서는 참 하늘이 되어주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욕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만나는 기쁨

 

오늘 바오로 사도는 어떻게 보면 실천 불가능한 권고를 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어떻게 언제나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실제를 보면 어쩌다 한번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도 ‘언제나’가 아니라 ‘어쩌다’ 한 번입니다. 

기쁨이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주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누구 덕분에 이루어졌을 때 감사하게 되는 것인데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드물 뿐 아니라 누구 덕에 이루어지는 것보다 누구 땜에 오히려 잘못되는 경우가 많으니 기쁠 일은 적고 감사할 일은 더 적지요. 

그러니 그것이 순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오로 사도는 기쁨과 감사 사이에 기도를 껴 넣고 기도하는 사람만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사야서를 보면 이것이 더 분명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님 밖에선 언제나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순 없다는 밀이 되지요. 그러나 이 말도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언제나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없지만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언제나 다 이루어주셔서 기뻐하고 감사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엄밀하게 얘기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일치하지 않으면 들어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약을 달라는 우리에게 절대 마약을 주지 않으시는 하느님이시잖습니까? 그리고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지 않으실 뿐 아니라 달걀보다 훨씬 더 좋은 성령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러니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말 대로 안 주실 것은 아예 청하지 말고 주실 것을 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면,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주시고,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고 믿는 것이 우리 믿음이지요. 

그러므로 하느님 안에서 언제나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 청을 다 들어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애인과 있으면 그 자체로 기쁘고 즐거운 것처럼 하느님 안에 있으면 그 자체로 언제나 기쁘고 즐겁습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하느님 그분 자신이지 그분이 주시는 그 무엇이 아니고,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 무엇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십니다. 

그리고 보석을 바라고 애인을 만난다면 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듯 내 바라는 것과 욕심을 채워주시는 분으로 주님을 만나면 참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우리는 욕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기다리고 만나고 그래서 언제나 기쁘고 늘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겸손과 인내를 사랑과 자비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배우는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대림의 촛불이 하나 더 밝혀졌습니다. 자선은 세상을 밝히는 아름다운 관심의 빛이며 나눔의 빛입니다. 생명들이 돌아가야 할 길은 자선이며 회개의 길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 자선 주일 입니다. 자선의 근원은 따뜻한 마음입니다. 따뜻한 마음의 실천인 자선으로 모든 이웃은 가족이 됩니다. 사람의 향기는 자선의 향기로 드러납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위로와 용기를 주는 자선입니다. 

서글픔을 안아주는 자선입니다. 지속적인 자선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선은 단지 물질적인 자선만이 아닌 정신적인 자선도 아울러 함께 동반되어야 합니다. 나누는 사람의 입장보다 받는 사람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배려의 관점으로 나누는 것이 진정한 자선입니다. 따뜻한 마음의 참된 자선이 아프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세상을 밝히는 밝은 대림의 촛불이 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따뜻한 기다림은 따뜻한 자선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자선의 원천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당신의 모든 사랑을 다 내어주시며 그 누구도 아닌 우리자신에게 오십니다. 간절하며 진심어린 기도와 자선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희망의 주님을 뜨겁게 기다리며 뜨겁게 나눔을 실천합시다. 자선은 서로를 살리는 희망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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