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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매일미사 2021년 6월 5일 (토)

by 평화다방 2021.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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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Memorial of Saint Boniface) 2021년 6월 5일 (토)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675년 무렵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보니파시오 성인은 수도회에 들어가 사제가 되고 수도회 학교의 교장을 역임했습니다.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큰 성과를 거둔 보니파시오 성인은 마인츠의 교구장이 되어 여러 지방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보니파시오 성인은 선교 활동에 주력하다가 754년 이교도들에게 살해되었습니다. 1874년 비오 9세 교황은 보니파시오 주교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습니다.

오늘 제1독서
토빗이 품삯을 주려고 하자 라파엘이 자신은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에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라고 밝힙니다.

오늘 복음
부자들이 헌금함에 큰돈을 넣는데 가난한 과부가 와서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이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하십니다.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021년 6월 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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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보니파시오 성인은 하느님의 법을 위해 죽기까지 싸웠으며, 악인들의 말도 두려워하지 않았네. 그는 튼튼한 반석 위에 집을 지었네.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토빗 12장 1,5-15,20절

 

이제 주님을 찬미하여라.
자, 나는 하느님께 올라간다.

 

그 무렵 


토빗은 자기 아들 토비야를 불러 말하였다. “얘야, 너와 함께 갔던 사람에게 품삯을 주고 또 품삯 외에 더 얹어 주도록 배려하여라.” 

5 그리하여 토비야는 라파엘을 불러, “그대가 가지고 온 모든 것의 절반을 품삯으로 받고 안녕히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라파엘이 그 두 사람을 은밀히 불러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잘해 주셨으니, 살아 있는 모든 이 앞에서 그분을 찬미하고 찬양하여라.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고 찬송하여라.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그분을 찬양하기를 게을리하지 마라. 


임금의 비밀은 감추는 것이 좋고, 하느님의 업적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드러내어 밝히는 것이 좋다. 선을 행하여라. 그러면 악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다. 


진실한 기도와 의로운 자선은 부정한 재물보다 낫다.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 주고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 준다. 자선을 베푸는 이들은 충만한 삶을 누린다. 

10 
그러나 죄와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은 바로 저희 자신에게 원수가 된다. 

11 
나는 이제 너희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진실을 모두 밝히겠다. 나는 이미 너희에게 ‘임금의 비밀은 감추는 것이 좋고, 하느님의 업적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드러내는 것이 좋다.’ 하고 분명히 밝혔다. 

12 
자 이제 보라, 너와 사라가 기도할 때에 너희의 기도를 영광스러운 주님 앞으로 전해 드린 이가 바로 나다. 네가 죽은 이들을 묻어 줄 때에도 그러하였다. 

13 
그리고 네가 주저하지 않고 잔치 음식을 놓아둔 채 일어나 가서 죽은 이를 매장해 줄 때, 

14 
너를 시험하도록 파견된 자도 나였다. 또 하느님께서는 나를 파견하시어 너와 네 며느리 사라를 고쳐 주게 하셨다. 

15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20 
이제 이 세상에서 주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자, 나는 나를 파견하신 분께 올라간다. 너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기록해 두어라.” 그러고 나서 라파엘은 올라갔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영원히 살아 계신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은 벌을 내리시지만, 자비를 베푸시고, 깊은 저승으로 내리기도 하시지만, 무서운 파멸에서 올리기도 하신다. 그분 손에서 벗어날 자 아무도 없으리라. 영원히 살아 계신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이제 너희에게 베푸신 것을 보고, 소리 높여 그분을 찬양하여라. 의로우신 주님을 찬미하고, 영원하신 임금님을 높이 받들어라. 영원히 살아 계신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나는 이 유배의 땅에서 그분을 찬양하고, 죄 많은 민족에게 그분의 권능과 위엄을 드러내리라. 영원히 살아 계신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죄인들아, 돌아와 그분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여라. 그분이 너희를 받아들이시어, 자비를 베푸시지 않겠느냐? 영원히 살아 계신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매일미사 복음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 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알렐루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르 12장 38-44절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이 거룩한 신비에 참여하고 비오니 저희에게 굳센 정신을 심어 주시어 저희가 복된 보니파시오처럼 언제나 주님을 충실히 섬기며 온갖 고난을 꿋꿋이 이겨 내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1년 6월 5일 (토) 15시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6월 5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박형순 바오로 신부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인정해주시는 하느님

 

가난한 과부가 성전의 헌금함에 봉헌합니다. 렙톤 두 닢입니다. 렙톤은 한 데나리온의 1/144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그러므로 편의상 하루 일당을 오늘날 10만 원으로 생각하면, 렙톤 두 닢은 약 1,388원 정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과부가 봉헌한 렙톤 두 닢은 천 원이 조금 넘는 금액입니다. 매우 가난한 과부입니다.

그녀의 궁핍한 일상이 조금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지요? 과부의 렙톤 두 닢이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의 전부라고 한다면, 그것이 나의 생활비라고 한다면, 그러한 삶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나의 가난을, 나의 어려움을, 나의 불편함을 호소하면서 불평과 투정으로 가득한 모습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과부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묵묵히, 조심스레 성전으로 다가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봉헌합니다. 과부의 헌금은 우리에게 그녀의 삶의 자리가 지닌 불편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헌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하느님을 향한 마음은 부유하고 풍요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어떠한 모습의 삶을 살아가더라도, 하느님을 향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함을 오늘 복음의 이야기는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바라보십니다. 내 조건과 상황이 본질이 아닙니다.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그것이 극심한 가난과 어려움이더라도, 하느님을 향한 부유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시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는 서로에게 라파엘이다.

 

오늘 얘기는 토빗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앞서 얘기드린 대로 토빗기는 선행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고 좋으신 분이신데 왜 착한 사람이 벌을 받고 왜 하느님을 믿고 계명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이 고통을 받으며, 왜 악한 사람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잘사느냐는 질문에 답을 주는 얘기지요. 

이에 대해 오늘 토빗서는 이렇게 결론적으로 답을 줍니다.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 주고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 준다. 자선을 베푸는 이들은 충만한 삶을 누린다. 그러나 죄와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은 바로 저희 자신에게 원수가 된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는 전에 올린 저의 강론을 참고하시고 오늘은 전에 하지 않은 얘기에 집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토빗기는 이런 얘기도 합니다. 

"너와 사라가 기도할 때에 너희의 기도를 영광스러운 주님 앞으로 전해 드린 이가 바로 나다. 네가 죽은 이들을 묻어 줄 때에도 그러하였다. 그리고 네가  주저하지 않고 잔치 음식을 놓아둔 채 일어나 가서 죽은 이를 매장해 줄 때, 너를 시험하도록 파견된 자도 나였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파견하시어 너와 네 며느리 사라를 고쳐 주게 하셨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슬픔에, 즐거움과 괴로움에, 행복과 불행에, 그리고 모든 길흉화복에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셨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은 길조가 있느니 흉조가 있느니 하며 길흉을 따지고,  흉조는 들지 않고 길조만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길에 화는 없고 복만 있기를 또한 바랍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동양의 지혜는 그럴 수 없고, 길과 흉, 화와 복은 서로 넘나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길흉회린(吉凶悔吝)하고, 전화위복(轉禍爲福)하며 일음일양(一陰一陽)이라고도 하고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도 합니다. 

좋은 것(길,吉)이나 나쁜 것(흉,凶)이 영원하지 않고 길이 흉이 되고 흉이 길이 되며 화가 복으로 바뀌고 복이 화로 바뀌기도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길흉화복을 판단하며 길과 복만 자기 인생길에 있기를 바라지만 자연이나 도는 길흉화복을 아예 판단치 않는다고 합니다. 

동양의 지혜가 이렇게 얘기한다면 오늘 토빗서는 우리 인간이 판단하고 느끼는 선과 악,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 길흉화복이 하느님 손바닥 밖에서 일어나고 이루어진 것들이 아니며, 그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고, 함께하시며, 조종도 하신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안에서 길은 길이 아니고 흉은 흉이 아니며, 화는 화가 아니고 복도 복이 아닌, 단지 우리가 그렇게 체험하고 느끼는 것일 뿐이고 그래서 이것들에 우리는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최고의 재앙, 최고의 화는 하느님이 안 계심이고, 최고의 행운과 복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이요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음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그 모든 것에 우리와 함께 계시고, 함께 하실 때 하느님께서는 라파엘 곧 당신이 파견하신 자를 통해서 그리고 라파엘을 시켜서 하셨다고 토빗기는 얘기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라파엘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은인이기도 원수이기도 하고, 유혹자 시험자이기도 인도자 격려자이기도 하며,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행운이기도 불운이기도 한 천사들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우리 신앙의 수준은 내가 무언가 잃을 때 드러난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는 부자 율법 학자들을 비판하시며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해 주십니다. 가난한 과부는 가진 재산 전부, 모든 생활비를 봉헌하였지만, 율법 학자들은 겉보기 액수는 많아도 일부만 봉헌하였기 때문입니다. 

봉헌으로 신앙인의 믿음을 측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그렇게 하고 계시니 이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랑하면, 믿으면 더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신앙은 참된 봉헌으로 측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봉헌은 무엇일까요? 나의 것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율법 학자들은 자신의 것이 사라지는 것이 매우 못마땅합니다. 그래서 과부의 가산을 등쳐먹기까지 합니다. 봉헌하거나 기도를 하는 것은 다만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과부는 생활비 모두를 바칩니다.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나의 모든 것을 바치는데 아깝지 않을까요? 그만큼 신앙이 성숙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40년 된 부부가 아들이 갑자기 사고로 죽자 앞으로 성당에 나오지 않겠다고 하신 분을 보았습니다. 자기 외아들을 빼앗아가는 그런 하느님은 믿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분은 40년 동안 신앙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성장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 모든 것의 주님은 하느님이라는 믿음입니다. 

또 신앙생활 1년 된 분이 외아들을 잃은 모습도 보았는데, 그분은 그 고통을 잘 참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분은 이미 신앙생활이 자기의 것이나 자기 자신을 바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함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발전을 하였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내가 어디까지 봉헌할 수 있느냐로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신앙을 증가시켜 왔다면, 혹은 기도 생활을 했다면 자녀를 잃어도 그동안 키울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은 아이에게 자신의 자전거를 잠깐 빌려줬다가 다시 받으면 아이는 분명 조금이라도 태워준 친구에게 고마워할 것입니다. 우리도 본래 우리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빼앗겨도 항상 감사할 것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의 과부는 신앙생활 동안 자신을 성장시켜 온 사람의 모델이고 율법 학자들은 신앙생활 동안 믿음이 퇴보한 사람의 모델입니다. 우리는 신앙이 발전하고 있는지 퇴보하고 있는지 항상 살펴야 합니다. 

봉헌은 ‘감사’와 직결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들은 “기도는 길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도에는 과부의 헌금에 들어있는 가장 중요한 봉헌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감사의 마음’입니다. 감사가 자라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김준호씨는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에 진학하여 공부하다가 군에 입대했습니다. 군복무 19개월이 되던 10월 어느 날 부대에서 관물대 위에 올라가 물건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땅바닥에 떨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척추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추를 크게 다쳐 전신 마비 환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인당이라는 화명으로 붓을 입에 물고 글씨나 그림을 그립니다. 그가 감사하는 것을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내가 전신 마비 환자가 되었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하고 믿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합니다.

둘째, 군대에서 다쳤기 때문에 치료비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셋째, 원호병원에 입원하는 중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아내는 그때 병원의 실습생이었습니다. 

넷째, 남들이 하지 못하는 구필 화가(입으로 그리는 화가)가 된 것이 감사합니다.

그는 한국 첫 번째 구필 화가로서 이후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1981년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는 항상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분이 하는 감사가 ‘과부의 헌금’과 같을 것입니다. 감사할 것이 전혀 없는데도 감사하고 주님께 영광을 드린다면 신앙이 성숙한 것입니다. 반면 신앙생활 하면서도 불만만 커진다면 이상한 율법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과부의 헌금이란 ‘모든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봉헌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율법 학자들처럼 자신들의 재산이라 여기는 것으로 하느님과 거래하지 않습니다. 감사가 증가하지 않으면 신앙은 퇴보하는 것이고 기도도 의미가 없습니다. 기도의 가장 큰 목적이 감사의 마음을 증가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란 말도 있듯, 신앙도 끊임없이 감사를 찾지 않으면 늙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인 것만으로도, 신앙을 가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작년보다 올해가 항상 더 감사할 줄 알고 행복할 수 있다면 신앙이 익어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는 마음

 

지금은 종영되었지만,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의 김태호 피디의 MBC 채용 면접 일화를 어느 책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면접 볼 때 떨리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면접 볼 때 앞에 방송국 국장님, 이사님, 사장님이 앉아 있지만 사실 제가 입사해야 국장님, 이사님, 사장님이지 떨어지면 제겐 그냥 동네 아저씨보다 못한 분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왜 굳이 여기서 떨고 있어야 하지?’라고 생각했어요. 또 ‘넌 복덕방에 와 있다. 이 아저씨들은 바둑 두던 아저씨들이다.’라는 생각을 했죠.” 
 
우리는 이런 마음가짐을 잘 갖지 못하지요. 상대방의 지위와 부에 신경을 쓰고 주눅이 들면서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안에서 한 가족일 뿐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누구의 모습이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전지전능하신 그분 앞에서는 부족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이렇게 지위의 높고 낮음을 따지고, 재산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의 기준 아래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많은 부자가 큰돈을 넣는 것을 보셨고, 또한 몹시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아주 적은 돈인 렙톤 두 닢을 넣은 장면도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이 가난한 과부는 주님의 뜻에 맞게 행동하는 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궁핍한 가운데에서도 가진 것을 모두 주님께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이것저것 신경 쓸 것들이 많지요. 가난한 과부보다 훨씬 큰돈을 헌금하지만, 주님의 뜻에 맞추기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헌금의 성격이 더 크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부자의 모습을 닮기보다는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는 마음을 가진 가난한 과부를 본받으라고 하십니다. 이 여자야말로 주님의 뜻에 맞게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에 충실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주님의 기준 아래에서 충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장 좋은 선물을 주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지금 하려는 일이 내일 아침 기사 1면에 나온다면? 

 

우리의 삶 안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자니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 같고, 하지 말자니 남들도 다 하는 것을 하지 않아 ‘바보’ 소리 들을 것만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선택이 바른 선택일까요? 
 
어느 책에서 이런 경우, 이렇게 생각하라고 하더군요. 
 
“지금 하려는 일이 내일 아침 기사 1면에 나온다면 부끄러운가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다면 하지 마십시오. 이를 통해 잘 모르겠다면, 내 자녀가 지금 하려는 일을 안다면 어떨까요? 부끄러울까요? 부끄럽지 않을까요?” 
 
어떻습니까? 자신의 행동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신문에 나올 때, 좋은 모습으로 나와야 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나와야 합니다. 바로 주님의 뜻을 기억하고 또 그 뜻에 맞춰서 살아갈 때만 가능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봉헌은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말씀을 실천하는 일상의 삶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마르 12, 43)

지금 여기에서 맛 보는 일치의 삶이다. 예수님의 삶이 복음이다. 복음은 서로를 위한 섬김과 봉헌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복음은 봉헌의 삶이다. 

봉헌은 생활의 새로운 창조이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사람을 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이다. 복음은 먼저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사랑으로 끌어안으신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헌이 참된 봉헌이다. 봉헌은 자아에 갇혀 있지 않다. 자아에 갇혀 있지 않기에 일치를 이룰 수 있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자신의 생활 전부를 봉헌한다는 것이다. 

삶의 생명력은 참된 봉헌에 있다. 우리 삶의 안전장치는 물질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에 있다. 사랑을 회복하는 봉헌이다. 봉헌은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말씀을 실천하는 일상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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