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3/10/28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0. 28.
반응형

 

주님은 이 거룩한 사람들을 참사랑으로 뽑으시고, 영원한 영광을 주셨네.

하느님, 복된 사도들을 통하여 구원의 신비를 저희에게 알려 주셨으니 거룩한 시몬과 유다의 전구를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하느님을 믿는 백성이 나날이 늘어나 교회가 끊임없이 발전하게 하소서.

 

2023년 10월 28일 (토)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0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루카 6,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루카 6,19) 성경말씀카드 루카복음 성경구절이미지 다운로드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루카복음 6장 19절

오늘성경구절이미지_231028.jpg
0.32MB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에페소서 2,19-22)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6,12-1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0월 28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 주님이신 하느님을 찬양하나이다.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모임이 주님을 기리나이다.

 

 

루카복음
6장 12-19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0월 28일 (토)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지환 세례자 요한 신부

 

📌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소개 00:05

📌 미사시작 01:17

📌 강론시작 07:43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28일 (토)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28일 (토)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파견하는 사람 없이 파견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마태오 복음서와(10,1-4 참조) 마르코 복음서와(3,13-19 참조) 함께 열두 제자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시몬과 유다의 이름도 이 명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명은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이고, 다른 한 명은 ‘야고보의 아들 유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러 제자들 가운데 열둘을 뽑으셨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습니다. 여기에서 열두 제자는 사도와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사도는 ‘보냄 또는 파견을 받은 이’로서 파견하는 이에게 종속됩니다. 파견하는 사람 없이 파견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주님께서 부여하시는 권한으로 사명을 수행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도의 역할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루카 복음 9장 1-2절에서 드러납니다.

루카 복음 전승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을 한 가지 꼽는다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셨다는 묘사입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6장 12절에서 소개하면서 사도의 선발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한 결과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일치하시어 당신의 협조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기도의 두 번째 결과는 예수님의 선교 활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세우시고 활동을 위한 힘을 얻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기도와 활동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선교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모든 활동의 ‘배경’이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할 때, 행복은 시작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행복도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긴 새 주택을 구하고,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면 처음에는 행복도가 높아지지만 계속해서 그 행복도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전과 같은 상태가 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돈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엘리자베스 던 교수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노튼 교수는 돈으로 행복을 높이는 좋은 방법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돈으로 경험을 구매하라.” 
 
물건은 점차 남루해지고 유행도 바뀌고 지겨워지지만, 가령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콤해진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좋은 사람과 함께한 경험을 많이 만들면 행복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경험을 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경험은 지속될 수 있는 행복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가정을 파괴하는 외도, 자신을 파괴하는 마약류의 섭취, 다른 이의 몰락을 위해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것 등은 순간의 만족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속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파멸로 이끌 뿐입니다.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이 사랑을 위해 돈을 쓴다면, 분명히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모범을 계속해서 보여주셨습니다. 병자를 고쳐 주셨고, 마귀 들린 사람을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더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참된 행복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기에 직접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셨습니다.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또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보상이 전혀 없는 어렵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따라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참 행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이 부름은 세상의 것과는 분명 구별되는데,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주님의 부르심에 문제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사느냐면서 불평불만을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보다는 더 편하고 쉽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반문합니다. 
 
지속될 수 있는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순간의 만족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가질 수 있는 행복이어야 합니다. 바로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할 때, 행복은 시작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우리는 약함과 실패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그분 아드님의 모상이 될 실질적 역량으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 성 요한 바오로 2세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탈바꿈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오늘 두 사도의 축일을 지내며 우리가 자연스럽게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왜 두 사도의 축일을 같이 지내는지 그것이겠지요? 

그리고 두 분의 축일을 같이 지내는 것은 두 사도가 주님의 형제들이라고 교회가 인정하기 때문인데 두 분이 사도가 된 것은 자원한 것인지 아니면 오늘 복음 말씀처럼 주님께서 뽑아서 된 것인지 그것이 두 번째 질문이지요. 

제 생각에 두 분이 제자가 된 것은 자원한 것이고, 열두 사도 중의 하나가 된 것은 뽑힌 것일 겁니다. 저의 이런 생각은 열두 사도 외에 주님을 추종한 사람들 곧 제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에 근거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자가 되기로 자원할 때와 사도로 뽑힐 때 두 분의 마음이나 의도는 어땠을까 다시 생각이 됩니다. 

망설임은 없었을까요? 두려움이나 조심스러움은 없었을까요? 오히려 불순한 의도나 뻐기는 마음이 있었을까요? 

불순한 의도나 뻐기는 마음이라면 주님의 형제라는 것을 이용하여 주님이 세상의 지배자가 되셨을 때 한 자리 차지하려는 것과,사도단 가운데서 자기들은 주님의 형제라는 것을 뻐기는 것이지요. 

만일 두 분이 이랬다면 제자에서 사도로 뽑힐 때는 기뻤을 것이고, 그러나 나중에 진정한 주님의 사도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절망과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회개와 세례가 필요했겠지요? 

그렇습니다. 주님의 형제라는 것 때문에 제자와 사도 되는 것에 망설임이나 두려움이나 조심스러움이 없었다면 열두 사도 중 주님의 진정한 사도가 되기 위해 제일 많이 탈바꿈해야 할 분은 두 분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탈바꿈에 대해 생각해보려는데 탈바꿈의 사전적 의미는 모양이나 형태나 상태가 바뀌고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동물의 경우는 매미에게서 볼 수 있듯이 유충이나 유생에서 성충이나 성체로 탈바꿈하고,식물의 경우는 본래의 것과는 아주 달라져 독립된 종으로 탈바꿈하지요. 

그러니까 탈바꿈이라는 말에는 성숙과 완전한 변화라는 좋은 뜻이 있고, 그렇게 되기 전에는 미숙하고 불완전하였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두 분의 축일을 같이 지내는 것은 두 분이 이런 탈바꿈의 대표이고 모범이기 때문이겠는데 우리는 두 분의 탈바꿈을 영적인 탈바꿈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 영적인 탈바꿈은 요한 복음에서 세례자의 물의 세례와 비교하여 주님의 세례를 불의 세례, 성령의 세례라고 한 것과 같이 성령의 세례를 받아 완전히 영적인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 영적인 탈바꿈은 존재의 영적 탈바꿈 뿐 아니라 삶과 역할도 영적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자기만 영적으로 탈바꿈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탈바꿈하도록 모범이 되고 역할을 하는 겁니다. 

두 분의 경우 단순한 제자에서 사도로 탈바꿈하는 것인데 사도란 열두 지파의 대표로서 주님 교회의 기둥이 되는 것이니 두 분을 본받는다면 우리도 제자에서 사도로 영적 탈바꿈을 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가을의 부르심에 충실한 가을 국화가 향기롭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선택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훌륭한 선택은 이와 같이 훌륭한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예수님의 가장 좋으신 마음의 반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하여 희망을 선택하십니다. 길 위에어 깨닫게 되는 사도들의 희망찬 여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믿어주십니다. 

불가능이 비로소 가능으로 바뀝니다. 뽑아주신 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활동과 예수님의 말씀이 지향하는 바를 받아들여 공동체를 이끄는 것입니다. 신앙 또한 선택의 연속입니다. 

사도들이 사도들의 사명에 충실하였듯이 우리 또한 우리의 사명인 복음에 충실하길 기도드립니다. 올바른 선택은 부단한 식별의 올바른 여정이 필요하며 올바른 식별은 겉모습이 아닌 자리가 아닌 우리 내면을 말씀으로 비추는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충실함과 배신과 배반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십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간절히 청하는 지혜가 필요한 선택의 여정입니다.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가을 물이 드디어 바다에 이르러 결합되고 하나되는 선택의 일치입니다. 선택의 신비를 살아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