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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0/12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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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2023년 10월 12일 (목)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0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루카 11,9)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루카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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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11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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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말라키서 3,13-20ㄴ)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 오늘 복음
    (루카 11,5-13)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0월 12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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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루카복음
11장 5-13절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0월 12일 (목)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문필정 바실리오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47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12일 (목)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장화기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0:19

📌 강론시작 10:16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12일 (목)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4:50

📌 미사시작 1:03:48

📌 강론시작 1:11:1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기도할 때 필요한 것은 믿음

 

오늘 복음은 ‘기도’라는 주제로 어제 복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알려 주시며 기도의 ‘내용’을 가르쳐 주셨다면, 오늘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한 가지 비유로 시작합니다. 만일 누군가 한밤중에 친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면, 그 친구는 간절한 도움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여기에는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비유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설명하십니다(11,9-13 참조). 되풀이되는 세 쌍의 단어들(‘청하다’와 ‘주어지다’/‘받다’, ‘찾다’와 ‘얻다’, ‘문을 두드리다’와 ‘열리다’)은 비유에서 강조한 요점, 곧 ‘지치지 말고 끈기를 가지고 기도하라.’는 메시지를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논증 방식은 비합리적인 듯이 보이지만 매우 합리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본성을 지니신 하느님께서 청하는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 기도하면서도 의심하고 있는 우리를 일깨웁니다. 기도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을 향한 견고한 믿음은 우리가 의심을 이겨 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어느 인기 연예인의 수필을 읽다가 이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다가 발등을 다치게 되었는데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인지 피부 괴사가 진행된 것입니다. 결국 수술까지 하게 되었고, 수술 결과로 발등에 흉터가 생겼습니다. 이 흉터가 정말로 싫었고, 이 흉터에 대한 남의 시선을 느끼면서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타투를 해서 흉터를 가린 것입니다. 
 
이렇게 흉터를 가려서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의 흉터를 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피곤한 일이 더 생겼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이게 뭐야? 안 아팠어? 왜 했어? 어디서 했어?” 등의 질문이 계속해서 주어졌습니다. 
 
못난 흉터가 보이는 발등에 대해서는 아무도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타투로 꾸며진 발등에 대해서는 너무 큰 관심과 시선이 쏟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관심과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발등을 더 숨기고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나의 단점에 대해 다른 이는 그렇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나만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사람들도 나처럼 흉하게 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오히려 더 큰 관심을 끌게 되었던 것을 보면서, 다른 이의 시선보다 나의 시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주님의 시선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더욱 올바르게 살게 되면서 자기 시선에 대해서도 만족스럽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내맡기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즉, 필요한 것을 청할 때, 한결같이 신뢰하고 끈질기게 청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성령까지도 주실 것이라고 하시지요. 
 
사람의 시선이 먼저가 아니라, 하느님의 시선이 먼저였습니다. 사람의 시선만을 따지면 계속해서 숨으려 하고 더 나아가 좌절과 절망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 가득하신 하느님의 시선에 집중할 수 있다면, 자기를 드러내고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맡길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 
 
빵을 꾸어 달라고 간절히 청하는 친구에게 빵을 내어주는 것은 혈연이나 학연, 인맥과 화려한 경력 때문이 아니라, 청하는 이의 간절함과 진실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만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여러분에게 바라는 건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모습을 유지하고, 친절한 행동으로 세계를 계속 놀라게 하십시오.

- 마야 안젤루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이웃을 향한 가장 무책임한 행위란?

 

오늘 복음은 주님의 기도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이는 마치 문을 두드리며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빵 세 개는 성령으로 구워지고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의 목적은 성령을 청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마치 문을 두드리듯 끊임없이 바치면 성령을 얻게 되고 그러면 친구에게 줄 빵 세 개를 얻게 됩니다. 결국 기도하는 목적은 성령으로 빵 세 개를 얻어서 이웃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만약 빵 세 개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분명 그 사람은 칼 세 자루를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100% 피해를 보게 됩니다. 

영화 ‘나이트크롤러’(2014)의 줄거리입니다. 나이트크롤러는 직업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고나 범죄 현장을 찍어 방송사에 파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주인공 루 블룸은 도둑이자 사기꾼이며 폭행도 일삼습니다. 그는 고철을 훔쳐 팔고 그를 저지하는 경비원을 폭행한 다음 시계도 빼앗아 찹니다. 그러다 나이트크롤러가 사고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 일에 뛰어듭니다. 경찰 무전을 도청하여 사건 현장에 도착해 자극적인 장면을 촬영하여 그런 영상을 원하는 방송국에 비싸게 팝니다. 돈도 많이 벌게 되어 차도 바꿉니다. 그러며 점점 더 위험하고 자극적인 영상을 얻기 위해 그는 조수를 채용합니다. 

루는 절망에 빠진 젊은이 릭을 고용합니다. 그리고 위험한 총격전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에게 촬영을 맡깁니다. 루는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가택 침입이 진행 중인 곳에 도착하여 당국에 즉시 전화하는 대신, 살인자들이 떠나는 것을 촬영한 후 집에 들어가 내부의 시체를 촬영합니다. 그는 나중에 스스로 추적할 수 있도록 살인자들을 보여주는 부분을 보류하고 영상을 판매합니다.

루는 숨겨둔 영상을 사용하여 용의자를 찾아내고 경찰에게 그들의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계속되는 추격전과 총격전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추격 도중 루의 전술에 점점 불편해진 릭은 루가 살인범의 영상을 경찰에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합니다. 

용의자의 자동차가 추락하자 루는 릭을 내보냅니다. 범인들이 다 사망하였다는 거짓말과 함께. 그러나 범인 중 한 명이 아직 살아있어 릭을 쏩니다. 경찰은 총잡이를 사살하고 릭은 부상으로 사망합니다. 루가 일부러 자신의 범죄에 돈을 요구하는 릭을 죽게 한 것입니다. 루는 차에서 이 모든 장면을 찍어 매우 비싼 값에 팝니다. 

경찰은 그날 밤의 사건에 대해 그에게 심문하지만, 그는 무죄한 척하고 석방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루는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고 비디오 저널리스트 팀을 훈련하는 모습을 보이며 헌신과 노력이 성공의 열쇠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내가 하지 않을만한 일은 절대로 여러분에게도 시키지 않습니다.”

릭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일을 하려고 하는 릭의 운명은 처음부터 어두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기 옆에 있어 봐야 피를 빨리는 일밖에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고 쾌락을 좋아하고 교만한 사람과 있으며 이익을 보려는 생각은 어리석습니다. 우리는 또한 이웃에게 그러한 칼을 세 자루 가지고 다니며 만나지 않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칼 세 자루를 버리고 빵 세 개를 가지고 친구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친구가 생깁니다. 루카가 말하는 빵 세 개는 성령으로 얻어지는 복음삼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루카 복음은 명확히는 밝히지 않지만, 항상 ‘삼구’(三仇) 때문에 말씀의 열매, 곧 사랑이 맺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시고 광야에서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육체의 유혹, 자신에게 절하면 세상 권세와 영예를 주겠다는 유혹, 그다음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교만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곧 육체와 세속, 그리고 교만의 유혹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루카의 행복과 불행 선언에서는 이것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마태오 복음의 여덟 가지 행복을 말하는 것이 아닌 행복을 빼앗는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곧 부유한 사람과 배부른 사람, 세상 사람들에게 들어 높임을 받아 지금 웃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합니다. 세속과 육신, 그리고 교만이 불행을 자초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반대로 가난한 사람, 지금 굶주리는 사람, 복음 때문에 박해받고 모욕과 중상을 당하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복음삼덕, 곧 청빈-정결-순명이 행복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루카 복음만의 고유한 전승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도 삼구가 두드러집니다. 씨는 말씀이고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길과 돌밭, 그리고 가시밭입니다. 길은 말씀을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 악마와 같은 교만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바위에 떨어진 것은 쉽게 뜨거워졌다 식었다 하며 시련을 견디지 못하는 육적인 마음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시밭은 세상의 재물과 쾌락, 걱정으로 말씀의 씨를 죽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역시 마귀-육신-세속을 말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성령이 필요한데, 그 성령은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그 해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삼구와 싸우셔서 복음삼덕의 열매를 맺어 그 빵 세 개를 지니고 복음 전파를 시작하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기쁘게 하려고 성령으로 삼구를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날카로운 가시를 들고 이웃에게 다가갈 것인가, 아니면 빵 세 개를 들고 다가갈 것인가는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또 얼마나 끈기 있게 바치느냐에 달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행위는 빵 세 개를 준비하지 않는 채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을 믿는가? 어떤 하느님으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너무도 분명하여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고 특히 청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병이 났을 때 실제 믿는 것은 의사이고,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조언을 구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닌 사람이며, 지치고 힘들 때 힘을 얻는 것도 하느님이 아닌 사람이기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하지 않으면서 믿는다는 사람의 경우 실은 주님의 가르침이 훌륭하여 그 가르침만 믿거나 하느님이 아니고 천주교를 믿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무신론자가 있을 수 있고 심지어 수도원 안에도 무신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에 천주교가 실망스러워 천주교를 떠난 뒤에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수도원을 떠난 뒤에 신앙생활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기도하지 않는 또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느님을 잘못 믿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나쁜 하느님으로 믿는 겁니다. 

뱀이 아니라 생선을 주고 전갈이 아니라 달걀을 주는 인간 아비보다 못한 아비,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모진 주인이라고 믿는 겁니다. 

그러니 어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그 아버지가 아닙니다. 어제 기도 가르침에서도 그리고 오늘 기도 가르침에서도 하느님은 어느 인간 아비보다도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주님께서는 가르치시는데 그렇게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나쁜 하느님으로 믿거나 나쁜 하느님은 아니라도 좋은 것을 주지 않으시는 분으로 믿는 이유가 있습니다.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것이 성령이라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세상 아비처럼 원하는 것을 주셔야 하는데 성령을 주시니 악한 아비는 선하고 선한 하느님은 악한 하느님이 되시는 겁니다. 그러니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라고 하시는데 무엇을 청하는 나인가가 중요하겠습니다. 

성령을 청하고 영적인 것을 청하는 나인가? 그 반대의 것을 청하는 나인가? 이것을 돌아보게 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청하면 청할수록 가까워지는 하느님과 우리들 사랑입니다. 청하면서 나를 보게하고 이웃을 보게하고 하느님을 믿는 지극한 믿음을 체험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임을 뜨겁게 알게됩니다.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청하게 되는 가장 큰 삶의 기쁨인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길 진실로 바라십니다. 

언제나 청하여야 할 기도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자신입니다. 생각과 마음에 품어야 할 하느님이십니다. 믿는 마음이 있으면 믿는 마음에 의해 간절히 청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청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감사를 배우고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게 됩니다. 청하는 삶의 결실은 청하는 기도의 결실입니다. 

기도의 가장 큰 결실은 올바른 마음으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으신 하느님을 만나고 가장 좋으신 하느님과 함께 기도드리는 가장 좋으신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매순간 가장 좋은 것만을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이십니다. 기도는 기도자체이신 하느님과 하나되는 가장 큰 은총입니다. 은총 가득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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