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3/10/13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0. 13.
반응형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2023년 10월 13일 (금)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0월 1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주님께 부르짖어라. (요엘 1,14)

 

주님께 부르짖어라. (요엘 1,14) 성경말씀카드 요엘서 성경구절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요엘서 1장 14절

오늘성경구절이미지_231013.jpg
0.29MB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요엘서 1,13-15; 2,1-2)
    주님의 날, 어둠과 암흑의 날

  • 오늘 복음
    (루카 11,15-26)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0월 13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나리라.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이리라.

 

 

루카복음
11장 15-26절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15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0월 13일 (금)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영인 사도 요한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00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13일 (금)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장화기 바오로 신부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13일 (금)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뒤에(11,1-13 참조),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적 행위에 대하여 군중은 세 가지 모습으로 반응합니다. 

군중은 먼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께서 마귀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리시어 마귀를 쫓아내셨다고 모함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11,14-16 참조). 구마 기적은 신적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반대자의 비판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이들은 예수님을 사탄의 하수인으로 보고, 그분의 활동과 영향력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보여 주신 기적 행위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증언하십니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사탄의 하수인도, 마귀들을 제압하는 마술사나 마법사도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기적 행위로써 베엘제불의 힘을 뛰어넘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힘을 보여 주시고자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은 예수님의 기적을 눈으로 보았지만, 그분께서 누구이신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도 복음 속 군중처럼 되지 않도록 신앙의 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눈은 예수님의 기적 행위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과 그분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마음이 중요하다.

 

묵상 글을 매일 쓰고 있습니다. 또 이곳저곳에 보낼 글들도 시간 날 때마다 씁니다. 사실 매일 쓰고는 있지만, 어떤 날은 단 한 줄도 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글이 잘 써질 때는 최대한 많이 쓰려고 합니다. 
 
한 번은 집중해서 글을 쓰려고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너무 글이 잘 써지는 것입니다. 쓰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호텔 밖으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글을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기억 때문에 글이 안 써지는 날,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몇 줄 쓰지 못하고 잠만 실컷 자고 나왔습니다. 
 
이때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글쓰기 공간이 중요하지 않고 글쓰기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환경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탓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너무나 너그러운 우리이기에 자기 마음을 탓하기보다 환경을 비롯한 외부 조건을 탓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남 탓을 계속 따지다 보면 자기를 제대로 못 보게 됩니다. 자기가 나아갈 길을 잃고 맙니다. 어렵고 힘들 때, 많은 이가 오히려 주님 곁을 떠나는 모습을 봅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하느님을 믿을 수 없다.”라면서 주님을 떠납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도 하느님과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하지 않으니 그 사랑을 일상 삶 안에서 느낄 수 없으며, 하느님 안에 있어야 할 ‘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을 온전하게 인정할 수 있을 때, 자기를 바라보고 자신이 해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이런 활동은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서 마귀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고발합니다. 마귀 두목 베엘제벨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 예수님을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하느님의 일을 알아챌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이나 그 두목보다 훨씬 더 강하신 분이십니다. 즉, 그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며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에 함께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진정한 ‘나’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랑은 문제를 풀 때마다 결코 같은 답이 나오지 않는 수수께끼, 그럼에도 우리는 매번 같은 문제를 푼다. 그래야만 하기에, 그 답이 필요하기에.

- 토드 로빈슨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착한 뜻만 있다면 모든 질서 안에서 창조자의 선하심을 볼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자 어떤 사람들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모함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마귀들이 서로 싸운다면 그들의 나라는 망하고 말 것이라고 하며 당신의 힘은 성령님 덕분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모든 죄와 질병은 무질서입니다. 본래 창조된 질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병이고 그렇게 만드는 것들이 마귀들입니다. 열역학 제2 법칙은 더 큰 질서의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세상 어떤 것도 더 높은 수준의 질서로 갈 수 없다는 법칙입니다. 모래가 시계가 될 수 없고 저절로 건물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건물을 보고 스마트폰을 본다면 그 질서 속에서 어떤 누군가가 그 질서의 힘을 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병이 고쳐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은 무질서인데, 병이 고쳐지고 마귀가 쫓겨나면 분명 질서를 잡아준 누군가가 존재합니다. 

인간의 질서와 문명이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고 믿어 그 기원을 파헤쳐보려 했던 영화가 있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입니다. 
영화는 처음에 선사 시대를 배경으로 원시인들의 생활을 그립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동물 무리와 경쟁하며 먹이를 찾아다닙니다. 어느 날, 원시인들은 모놀리스라는 검은 직사각형 물체를 발견합니다. 이 물체의 출현 후 원시인들은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이후 시간은 흘러 21세기로 넘어갑니다. 인류는 달에 기지를 세우고 탐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달에서는 선사 시대 때와 동일한 모놀리스가 발견됩니다. 탐사대는 이를 조사하던 중, 몬올리스는 갑작스러운 신호를 우주 깊숙한 곳으로 보냅니다.

이 신호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디스커버리라는 우주선이 목적지인 유성계의 행성, 주피터로 출발합니다. 선내에는 인공지능 HAL 9000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HAL은 결함을 보이며, 인간 승무원들에게 위협이 되기 시작합니다.

목성 근처에서, 우주선의 남아있던 승무원, 데이브는 우주에 떠 있는 몬올리스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는 이상한 공간을 통과하며 다양한 시공간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데이브는 높은 수준의 존재로 진화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데이브가 거대한 아기로 변하며 지구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끝납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항상 ‘외부’의 존재, 여기서는 몬올리스가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고도의 문명이나 더 높은 수준의 존재가 인간의 진화에 관여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HAL 9000과의 갈등에서는 인공지능과 기술의 위험성을,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와 기술의 한계를 탐구합니다.

많은 영화에서 인간의 근원을 찾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문명과 기술이 저절로 생겨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미지의 세계에서 모놀리스나 인간의 형상을 닮은 건축물을 만나게 되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렇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질서가 창조되었다면 그 누군가는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질서를 잡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소용됩니다. 누군가 질서를 주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였다면 사랑하였다는 뜻입니다. 어떤 물건이든 사랑 없이 만들어지는 물건이 없습니다. 누군가 비행기를 만든다면 그 노력으로 어떤 이들이 편안하기를 바라고 또 그것을 통하여 가족을 부양할 수 있기에 사랑의 표현입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루마니아 요람이란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양식과 집이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쌍한 고아들은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음식은 주어졌지만, 사랑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 없이 질서 잡힌 인간으로 성장할 아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질서는 또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질서를 잡는 에너지입니다. 부모의 사랑 없이 자녀가 제대로 자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질서 잡힌 어른을 보면 누군가가 그에게 사랑을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질서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사랑을 주시는 분을 보이지 않더라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이러한 질서의 세상 안에서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거나 그것을 만든 대상에게 사랑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무질서를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을 마귀의 힘을 빌려서 한다고 말하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무언가 질서가 잡혀간다면 에너지가 있고 사랑이 있고 그것을 주는 분이 계신 것입니다. 

죄와 병과 무질서는 오직 사랑의 힘으로 통해서 용서받고 고쳐지고 바로 세워집니다. 그래서 주님의 손가락으로 병이 치유되거나 죄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다면 이미 아버지의 나라가 와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당신이 사랑으로 만드신 것을 지키고 보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삽니다. 그분을 인정하기만 하면. 사랑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영원히 창조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고작이 아니라 더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어제 주님께서는 청하면 받을 것이라고 하셨고, 하느님은 아비보다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실 거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더 좋은 것이신 성령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반대의 영 곧 악령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어느 집을 차지하고 있던 악령이 나갔는데 그 집이 계속 비어 있으면 더 많은 악령이 들어와 차지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청해야 들어오시는데 악령은 우리가 청하지 않아도 침입한다. 그러니까 성령은 손님이고 악령은 불청객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지 않으면 성령만 아니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악령의 차지가 된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간절히 청하고 공손히 모셔야만 오시는 고귀한 손님이십니다. 성령은 사랑이시고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기에 우리가 당신 사랑을 사랑하고 갈망할 때만 오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악령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우리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데도 우리 안으로 밀고 들어옵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악령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것은 빛이 있으면 어둠은 절로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실 우리의 어둠이란 어둠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빛이신 하느님이 우리 안에 아니 계시기 때문이듯 악령과 성령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악령이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안 계시기에 있는 것이며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게 되면 악령은 절로 사라집니다. 

사랑과 미움도 같습니다. 열망과 욕망도 같습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없을 때 우리 안에 단지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미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차지하지요 그러나 사랑하는 순간 미움은 절로 사라집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서 미움의 가시를 빼내려는 소극적인 노력을 할 것이 아니라 대 발심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랑의 태세 전환을 하면 미움은 절로 사라집니다. 

욕망이 우리 안에서 뒤끓는 것도 사랑의 열망과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 우리 안에 없기 때문이니, 욕망을 끊으려고 소극적인 노력을 할 것이 아니라, 사랑의 열망과 갈망을 적극적으로 품어야 할 것입니다. 

고작 미워하지 않으려고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고작 욕심과 욕망과 씨름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사랑하고 더 사랑하려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우리를 위한 구원의 선물이신 예수님을 뜨겁게 만납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영원한 생명력과 새로운 삶의 치유를 넘치는 예수님 사랑의 힘에서 만납니다. 아직도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믿음은 미성숙과 불안으로 혼재되어 있습니다. 

사랑 안에 미움이 있고 믿음 안에 분노가 있습니다. 하나의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마구 낳습니다. 이렇듯이 소외된 우리들의 삶의 부자유와 삶의 모순을 예수님께서 치유하여 주십니다. 모든 속박과 모든 소외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미 와 계신 하느님 나라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소외시키는 온갖 마귀들을 삶의 현장에서 쫓아내십니다. 더 이상 악령들에게 종속당하거나 지배당하지 않는 우리 고유의 삶을 기쁘게 살게 하십니다. 억압하지도 않고 억압당하지도 않는 당신 자녀들의 참된 자유를 우리들에게 안겨주십니다. 이용하지도 않고 이용당하지도 않는 사랑의 질서를 바로잡아 주십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은 서로를 북돋아 주고 서로를 살리는 사랑을 가르칩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올바로 볼 수 있는 눈과 올바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믿을 것을 믿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깨끗한 정신을 갖게합니다. 

우리에게서 하느님 나라는 소외가 아닌 자유와 해방을 완성시키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미 와 계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삶을 완전히 내어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기쁜 날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