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3/10/01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0. 1.
반응형

 

주님,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짓고 당신 계명을 따르지 않았기에, 당신은 진실한 판결에 따라 저희에게 그 모든 것을 하셨나이다.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저희에게 크신 자비를 베푸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크신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고 끊임없이 은총을 내려 주시어 약속하신 그곳으로 저희가 달려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2023년 10월 1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0월 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6주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필리피서 2,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필리피서 2,5) 필리피서 성경말씀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필리피서 2장 5절

오늘성경구절이미지_231001.jpg
0.70MB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0월 1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마태오복음
21장 28-32절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0월 1일 (일)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정요안 요한 신부

 

📌 은평성모병원 소개 00:23

📌 미사시작 00:47

📌 강론시작 15:34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1일 (일)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여러분은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한에 의문을 품으면서 세례자 요한을 거부하는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을(21,23-27 참조) 상대로 비유를 들어 그들과 벌이는 논쟁을 이끌어 가십니다.

비유 속 맏아들은 특권적 지위에서 그에 따르는 정치적 또는 종교적 지도력과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다른 아들은 이런 지위와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하시면서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리와 창녀가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믿었다면,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한 종교 지도자들은 맏아들의 모습과 반대되며 비난을 받기에 마땅합니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신 포도 속담을(에제 18,2 참조) 반박하시며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공평한 주님의 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에 따르면 의인이라도 불의를 저지르면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구원을 얻는 데 과거의 행적보다 현재의 행적이 더 중요하다는 신탁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 등장하는 맏아들은 회개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는 우리가 모든 죄악을 벗어버리고 회개하여 ‘의인’이 되도록 촉구합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가운데 여러분은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백업의 중요성

 

컴퓨터를 만진 지가 벌써 40년이 넘었습니다. 처음 컴퓨터를 접할 때만 해도 비싼 게임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이 되었습니다. 특히 모든 글 작업과 강의 자료 등을 컴퓨터 안에 담아두기에 컴퓨터는 제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1999년에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모든 자료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하드디스크 손상으로 애써 써 놓았던 글과 자료들이 모두 없어진 것입니다. 몇몇 데이터 복구 가게에 들렀지만, 어느 곳에서도 복구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뒤에 데이터 백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보조 하드디스크에 계속해서 저장을 해두었습니다. 물론 그 뒤로 한 번도 하드디스크 손상으로 데이터를 잃어버린 적은 없었지만, 지금도 뜻밖의 상황을 대비해서 계속해서 백업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보조 하드디스크뿐만 아니라 웹 하드에도 보관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바라보며, 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느님 나라에 갈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떠올려 봅니다. 아직도 멀었다고 하면서 조금의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사실 아무도 알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또 하느님 나라에 재물을 쌓는 노력을 평상시에 계속 해야 합니다.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갑작스럽게 다가올 그날과 그때에 크게 후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백업이 중요한 것처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계속 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하느님 뜻에 맞게 사는 우리의 삶이 하느님 나라에 재물을 저장하는 가장 큰 준비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아들의 비유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맏아들은 처음에 싫다고 대답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고, 작은아들은 처음에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지만 실제로는 가지 않습니다. 
 
이 두 아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 안에 있습니다. 열심히 주님 뜻을 따르겠다는 말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금 당장 따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당시의 사제들과 원로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은 당연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반대로 세리나 창녀들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바로 오늘의 예수님 말씀입니다. 
 
이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단순히 성당에 다니는 것만으로 또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인으로 평가받았던 사람이라도 주님의 뜻을 지금 당장 실천하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더 가깝다고 하십니다. 
 
하느님 뜻을 계속 뒤로 미뤄서는 안 됩니다. 지금 당장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재물을 지금 당장 쌓아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랑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고 작은 것에 깃드는 법이죠.

- 최갑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신앙은 ‘자기부정’부터 ; 지옥은 자기를 긍정하는 이들의 것

 

오늘 복음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어째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지 알려줍니다. 구원은 ‘아버지의 뜻’을 따름으로 성취됩니다. 아기들은 누구의 뜻을 따를까요? 부모의 뜻을 따름으로써 두 발로 걷게도 되고 말도 하게 되고 형제를 사랑하여 세상에 살 수 있는 수준의 인간으로 자라납니다. 

하느님 나라도 성체를 통한 당신의 사랑을 믿는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라 믿고 그리스도처럼 살려고 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도자들은 세리와 창녀들까지 그리스도를 통해 회개하고 삶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도 그리스도께로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마태 21,32)

예수님께서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 그들을 나무라십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자기가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틀렸음을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긍정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긍정은 자기 부정의 결과입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며 하느님을 긍정하려는 이들은 하느님을 금송아지로 만듭니다. 하느님까지 자기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좌신부를 할 때 세례식을 통하여 한 자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70대 할머니셨습니다. 그분은 전직 산부인과 의사셨습니다. 처음엔 낙태도 많이 하시고 그렇게 돈도 많이 버셨습니다. 그러나 벌을 받은 것인지 얼굴 반쪽이 마비되어 비뚤어지는 병에 걸리셨고 창피해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니 저절로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지내던 중, 아래층 한 교우 자매님이 위층 집에 전교를 왔고, 이런저런 모든 사정을 들은 그 신자분은 “하느님은 모든 것을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세례식 때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분만 찾았는데 그분은 다른 세례자들과 마찬가지로 걸어 나와서 모든 세례 예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건강하게 잘 살던 당신의 외아들이 아내와 아이들을 남기고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입니다. 저는 아들 생각을 덜 하게 만들기 위해 성경필사를 하도록 권하였습니다. 

오래 앉아계시지도 못하고 눈도 안 좋으신 그 분은 18개월 만에 신구약 성경을 모두 필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하느님께 원망을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빨리 하느님 나라에 가서 아드님을 만나고 싶다고만 하였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래된 신자 부부가 똑같은 일로 성당에 다니지 않겠다고 한 경우도 보았습니다. 찾아가서 달래봤지만, 소용이 없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런 하느님은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아드님을 잃은 아픔을 극복한 자매님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끝까지 당신들이 옳은 것입니다. 이렇듯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갑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기 자신을 긍정하며 살아왔던 고통을 알기 때문에 부정도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뱀이라는 자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당신을 따를 수 없다고 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라”는 단어는 “적극적으로 거절하고 부인하다”라는 뜻입니다. 좋은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뱀과 같아서 깜짝 놀라 혐오스럽게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긍정하면 하느님을 바라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게 됩니다. 자기 긍정이 지옥의 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반면 자기를 부정하는 이들은 그리스도께 가까이 갑니다. 그 사랑만이 자기를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주님께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주시는 분 앞에서 무언가 드리고 있다는 파렴치한 나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명작을 남긴 도스토옙스키는 도벽이 있었습니다. 책을 판 돈을 마약과 술, 도박에 탕진하였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사람은 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에게 도박 자금으로 줄 것이 없다며, ‘마지막으로 시집올 때 가져온 반지와 보석’을 내어주었습니다. 원망한 적도 없습니다. 이러한 착한 아내를 위해 새사람이 되기로 마음먹고 자기 자신과 싸우기 시작하여 결국엔 도벽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로 알아봅니다. 교회에서 많은 회개가 일어납니다. 이것을 보고라도 핑계대지 말고 믿읍시다. 신앙은 사랑을 받음이기에 자기 부정부터 시작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바뀌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오늘 복음에서 “생각을 바꾸어”를 묵상하다가 그 묵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도 있지만 생각이 바뀌는 것도 있지요. 

생각뿐 아니라 마음을 바꾸기도 하고 마음이 바뀌기도 하고, 비슷한 뜻으로 관심이 바뀌기도 하고 관심을 바꾸기도 합니다. 

겉모습 면에서도 모습이 바뀌기도 하고 모습을 바꾸기도 하는데 성형수술로 자기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 살면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이것에서 저것으로 되는 변화에는 바뀜과 바꿈 두 가지가 있는데 바꾸는 것이 능동적인 변화라면 바뀌는 것은 수동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생각에 이어 ‘Turning Point’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누구에게나 있지요. 

예를 들어 프란치스코에게는 나환자와의 만남이 전환점이었지요. 

이때를 전후하여 나환자를 만나는 것이 쓴맛에서 단맛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세속에 맛 들이고 살던 삶이 세속을 떠난 삶으로 바뀌었으며 그래서 프란치스코 스스로 이때부터 회개의 삶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에게 전환점이 사실은 이 사건 하나가 아닙니다. 

첫 번째 전쟁에 나가 포로가 되고 감옥살이를 한 것이나, 그 후유증으로 병이 들어 죽다가 살아난 것이나, 회복 후 다시 전쟁터로 가다가 스뽈레또에서 환시를 본 것도 다 전환점이 됐지요. 

그런데도 나환자의 만남이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고 그가 말하는 것은, 스스로는 시작도 못 할 회개를 주님께서 하게 해주셨다는 강렬한 체험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프란치스코는 스스로 그러니까 능동적으로 회개의 삶을 삽니다.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회개의 삶을 삽니다. 

욕망이나 불의를 스스로 포기하고 자기 좋을 대로 하던 것을 하느님 원하시는 대로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또는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고 또 기쁘게 합니다. 

우리가 바뀐다면 이렇게 바뀌어야 하고, 하느님께서 바뀌게 해주신 것을 이제는 스스로 그리고 기쁘게 살아가야 하는데 나는 바뀌기는 했는지 어떻게 바뀌었는지 오늘 독서와 복음은 돌아보게 합니다. 

큰아들처럼 하느님 뜻을 적극 거부했으나 마음을 바꿔 적극 실천하는 나인지. 작은아들처럼 하느님 뜻은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관심이 없는 나는 아닌지. 또는 옛날에는 참 잘 살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제는 어디 갔다 오다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 30대 여성이 길을 가면서 길가의 쓰레기를 줍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부끄러워하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줍고 있었습니다. 

즉시 저를 돌아보게 하였지요. 옛날에 저도 그렇게 했었지요. 그런데 지금의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길거리 청소하는 분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그 많은 쓰레기를 어떻게 내가 다 줍겠냐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저는 좋게 바뀐 것이 아니라 나쁘게 바뀐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독서의 말씀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회개 곧 돌아서야 하는데 불의에서 정의로 돌아서지 않고 오히려 정의에서 불의로 돌아선 것은 아닌지, 주님께 돌아서야 하는데 나에게로 돌아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저입니다. 

저희 집 인터넷에 문제가 생겨 이곳 센터에 일찍 와 강론을 올리느라 늦어졌습니다. 그 사이 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문자들을 보내셨는데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강론을 못 올리거나 늦게 올리면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과 내일은 제가 강론을 올리지 못합니다. 인터넷이 없는 곳에 가기 때문입니다. 역시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어제 한가위 인사 드리지 못했는데 오늘이라도 한가위 인사 드립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시월의 계절이 들판을 뜨겁게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우리를 새롭게 찾아왔습니다. 묵주 기도 성월의 시작입니다.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천으로 데려가시는 실천의 주님이 계십니다. 삶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일의 시작은 회개로 시작합니다. 생각을 바꾸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지킬 것은 지키고 끊어버릴 것은 끊어버리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실천입니다. 현재의 삶을 과거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가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회개입니다. 이와 같이 삶의 과정과 하느님과의 소중한 관계성을 다시금 깨닫게합니다.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인격의 결단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반복해온 잘못된 행위를 고치는 것이며 현실에 스며있는 모순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땅히 실현해야 할 참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실천의 씨앗이 신앙의 밭에서 자라납니다. 따뜻한 마음 소중한 마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이것이 밝은 빛으로 생각을 바꾸어 나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우리자신을 진정 살리는 길입니다. 묵주알처럼 실천으로 꿰어지고 기도로 이어지고 회개로 펼쳐지는 우리들 행복입니다. 

행복한 회개의 날이며 절실한 기도의 주일입니다. 우리 손에 잡히는 것이 욕심이 아닌 묵주 기도이길 기도드립니다. 삶과 삶을 이어주는 묵주 기도가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