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기뻐하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을 사랑하여 피를 흘렸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끝없이 기뻐 춤추네.
하느님, 헌신적인 목자 복된 고르넬리오와 치프리아노를 불굴의 순교자가 되게 하셨으니 그들의 전구로 한결같은 믿음을 길러 주시어 저희가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게 하소서.
2023년 9월 16일 (토)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9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루카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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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6장 48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티모테오1서 1,15-17)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 오늘 복음
(루카 6,43-49)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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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
루카복음
6장 43-49절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46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47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48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49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9월 16일 (토)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장승필 안드레아 신부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소개 00:05
📌 미사시작 01:56
📌 강론시작 07:36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9월 16일 (토)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이철규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7:45
📌 강론시작 15:04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16일 (토)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32
📌 강론시작 07:34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16일 (토)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4:31
📌 미사시작 1:04:43
📌 강론시작 1:12:52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바위에 떨어진 씨앗의 운명을 기억해야 한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평지 설교(6,17-49 참조)의 마지막 단락에 해당합니다.
이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행복과 부유한 이들의 불행을 선언하셨고(6,20-26 참조), 원수를 사랑하고 아버지 하느님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을 주문하셨으며(6,27-36 참조),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말고, 용서하여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6,37-42 참조).
그리고 설교를 마무리하시는 오늘, 이 모든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시려고 비유를 하나 들어 설명하십니다.
강가에 집을 짓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땅을 깊이 파서 반석을 찾고 그 위에 기초를 놓아 집을 짓습니다. 홍수로 불어난 강물이 들이닥치더라도 단단한 기초 덕분에 그 집은 끄떡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런 기초 공사 없이 맨땅에 집을 짓습니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완전히 무너져 버립니다. 여기서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은 예수님 말씀을 듣지만 행동에 옮기지 않는 자를, 단단한 기초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예수님 말씀을 행동에 옮기는 이를 가리킵니다.
말씀을 듣는 일은 모든 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사람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물과 같은 말씀들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요?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남이 나에게 하여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하여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땅을 깊이 파서 반석을 찾고 그 반석 위에 기초를 놓아 집을 짓는 일은, 사실 대단히 번거롭고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입니다. 맨땅에 지은 집과도 겉보기에 큰 차이가 없어서 우리는 이 기초 작업을 건너뛰려는 유혹에 쉽게 빠져듭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기초 없는 집이 속절없이 무너지듯, 우리가 듣기만 한 말씀도 결국에는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바위에 떨어진 씨앗의 운명을 기억합시다.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8,13).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어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8월 말에 휴가를 갔습니다. 우선 아버지 기일을 형제들과 함께 지내고, 오랜만에 대전교구 동창 신부들도 만나고, 그다음 혼자만의 여행으로 경상도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특별히 ‘사유원’이라는 수목원을 방문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번 혼자만의 여행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기대한 만큼 정문을 들어서면서부터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수목원의 이름처럼, 혼자 걸으면서 많이 생각하고 또 벤치에 앉아 쉬면서도 생각하고 또 식사하고 물 마시면서도 생각하면서 이 안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 생각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너무 덥다.’
그때 기온이 36도였습니다. 따갑게 느껴지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걷는 것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계속 쏟아지는 땀방울도 저를 힘들게 했지만, 무엇보다 제 곁을 떠나지 않는 날파리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어떤 생각도 하기 힘들었습니다.
자그마한 날파리 때문에, 항상 겪는 여름 날씨인데도 덥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생각의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우리가 겪는 모든 분심이라는 것도 특별하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별것 아닌 것이 우리 생활 자체를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모두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그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에게서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루카 6,43)라고 하십니다. 좋은 나무인 주님이시기에 주님에 붙어 있는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당연히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만약 나쁜 열매를 맺고 있다면, 주님께 붙어 있지 않고 다른 곳에 붙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 붙어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온갖 유혹도 주님을 통해 이겨낼 수 있으며, 고통과 시련 안에서 주님이라는 희망 안에서 큰 기쁨과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 붙어 있기 위해서 주님의 말을 듣고 실행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가운데 우리는 주님께 더 단단하게 붙어 있게 됩니다. 강물이 들이닥치는 어떤 고통과 시련 안에서도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언제나 현재에 집중하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행복할 것이다.
- 파울로 코엘료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나는 왜 결과만 보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과정보다는 지극히 ‘결과’만 보려는 마음이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말과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라고 하시고, 또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라고도 하십니다.
얼마 전에 청년들과 이야기하다가 한 청년이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 만약 누군가 신부님 설거지를 도와주려고 하다가 접시 열 장을 깬 사람이 있고 또 누군가 몰래 신부님 접시를 하나 훔치려다 한 장을 깨 먹은 사람이 있다면 신부님 생각에 누가 더 잘못한 거예요?”
이 질문은 MBTI 성격유형 검사에서 목적과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인지, 상황과 과정에 중점을 두는 사람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저는 가차 없이 “열 장 깬 놈이 더 잘 못한 거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확실히 ‘TJ’라는 것입니다.
성격유형이라는 것이 어떤 성격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아니라지만, 저는 어쨌거나 저의 성격을 고수할 생각입니다. 아무리 그 감정이 어떠했던지, 그 과정이 어떠했던지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어날 때 가난한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죽을 때도 가난한 것은 너의 잘못이다.”
정말 짜증 나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반박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예외는 분명히 있을 수 있겠지만, 평생 열심히 일했다면 죽을 때 가난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결과에 중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핑계나 변명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핑계나 변명이 들어오면 발전이 없습니다. 저는 억지로라도 결과만을 중시하려 합니다. 성당의 직원들과 봉사자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결과만 봅니다.”
만약 자연재해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그것도 인간 행위의 결과일까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지금 시리아에 홍수가 나서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생겼습니다. 여기에 과연 인간의 잘못이 없을까요?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에 더불어 시리아가 무정부 상태로 두 세력이 싸움만 하며 민생은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성경에도 성적인 타락으로 인해 “그 땅도 부정하게 되었다. 나는 그 죄 때문에 그 땅을 벌하였고, 그 땅은 주민들을 토해 내었다”(레위 18,25)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땅이 인간을 버리는 것 같지만, 성경도 그 원인이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안 좋은 결과가 일어나면 반드시 안 좋은 결과가 생기게 되는 원인이 존재합니다. 그 원인을 밝히기 어렵다고 결과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면 끝까지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 변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주님께 핑계를 대었습니다. 결과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하느님도 결과만 보십니다. 거기에는 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냥 잘못했다고 하면 무엇을 고쳐야 할지 알게 됩니다. 핑계는 고치지 않겠다는 뜻도 됩니다.
영화 ‘어 퓨 굿 맨’은 1992년에 개봉한 법정 드라마입니다. 영화는 미국 해병대 기지에서 일어난 한 병사의 죽음을 조사하는 과정을 따릅니다. 병사 죽음의 경우는 두 명의 해병이 다른 한 명의 해병을 괴롭히는 ‘코드 레드’라는 불명예스러운 훈련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두 해병은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며, 미군 상사인 네이던 제서프 대령이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더라도 그것을 증명해 낼 방법이 없습니다. 대니얼 카피, 조앤 갤로웨이, 그리고 샘 와인버그로 이루어진 변호사팀이 이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됩니다.
굳이 사건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던 카피는 처음의 적정선에서 검사 측과 합의하고 마치려 합니다. 그러나 갤로웨이의 격려와 진실을 찾으려는 의지로 인해 점차 사건에 몰입하게 됩니다. 카피와 그의 팀은 군사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합니다.
재판 과정에서, 카피는 다소 독특하고 위험한 전략을 세우며, 재판의 마지막 부분에서 제서프 중사를 증인으로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대면을 통해 그가 ‘코드 레드’를 지시한 사실을 밝혀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서프 대령은 유명한 “당신은 진실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문장을 외치며 자기 행동이 당연하고 필요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변명이 당연히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습니다. 군 기강이 바로 서야 나라가 지켜질 수 있고 자신은 나라를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인은 살인입니다. 무엇으로도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카피는 그의 거짓말과 책임 회피를 폭로함으로써 두 젊은 병사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음란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의 속이 건전할 수 있을까요? 눈에 보이는 결과에 집중하지 못하면 그 결과를 합리화하는 수많은 핑계와 거짓말에 속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발전도 없고 계속 자존심만 세우게 됩니다. 속에 있는 것이 말로 드러나고 행동으로 나오는 법입니다. 그 결과를 뒤집을 아무런 핑계도 없습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입시다. 그래야 고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말과 행동에서 이상한 면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마치 바퀴벌레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안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발전을 위해 먼저 자기 열매를 보고 지금 자신이 어떤 나무인지를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존재적 변화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욕을 가끔 내뱉는 저를 봅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문제의식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욕을 입에 결코, 담지 않았고 욕설이 난무하는 군대 있을 때도 욕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제가 전보다 더 나쁜 놈이 된 것이고, 제가 전보다 더 화가 나 있는 걸까요? 반대로 전에는 제가 좋은 사람이었고 별로 화가 나지 않았던 걸까요?
그렇지 않고 어떤 면에서 보면 그 반대입니다. 다만 지금은 전보다 누르는 힘이 떨어진 면도 있고 죄의식이 약해져 덜 누르는 면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죄의식이 약해진 데는 욕쟁이 아줌마가 욕은 걸쭉하게 해대지만 마음은 따듯하고 그 욕에 오히려 정이 있듯이 욕에 미움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이 실리지 않기 때문인 면도 있지요.
어쨌거나 말은 존재의 표현이랄까 표출입니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미움이 있으면 미움이 말로 표출되기도 하고, 미움을 감추려고 말을 하지 않으면 눈으로라도 표출이 됩니다.
화가 나 있으면 그것을 풀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든 표출됩니다. 잠시 그 화를 누르거나 가둘 수 있지만 영원히 가둘 수 없고, 화가 쌓이면 화병이 되거나 폭발하게 됩니다.
미움과 화만이 아니라 사랑과 온유도 마찬가지이고 슬픔이나 기쁨도 마찬가지이며 괴로움이나 즐거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있는 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미움은 감추고 사랑만 드러내고 싶지만 미움이 있는 한 그럴 수 없습니다. 미움을 드러내지 않을 방법은 미움이 안에 없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독설이나 상처를 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설이나 상처 주는 말은 그 존재가 악독하기에 나오는 것이고, 존재가 악독해지는 것은 악이 그 안에 오래 쌓여 독해지기 때문인데 그 악의 독이 해독되기 전에는 독설과 상처 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선한 열매를 맺으려면 존재가 사랑과 선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존재가 악하면서 선의 열매 맺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위선으로 선한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고 그래서 자주 인용하는 불교의 말이 있습니다.
蛇飮水 成毒 牛飮水 成乳(사음수 성독 우음수 성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이루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이룬다.
智學 成菩提 愚學 成生死(지학 성보리 우학 성생사)
지혜로운 배움은 보리를 이루고 어리석은 배움은 생사를 이룬다.
같은 물을 먹어도 뱀은 독을 만들어내고, 아무리 우유를 먹어도 독을 만들어내니 남을 죽이는 독이 아니라 남을 살리는 젖을 만들어내려면 뱀과 같은 존재에서 소와 같은 존재로 변화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같은 이치를 가시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가지고 가르치시는 오늘 주님의 말씀에 존재적 변화로 응답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잠자고 있던 우리의 실행을 흔들어 깨우시는 실행의 주님이십니다. 실행으로 이어지는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좋은 신앙인은 주님의 말씀을 기쁘게 실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실행을 아는 믿음은 악한 마음을 먼저 내려놓는 선한 믿음입니다. 마음을 키우는 것은 언제나 실행입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실행으로 한걸음씩 옮겨갑니다.
실행의 진리가 신앙의 튼튼한 기초입니다. 실행의 향기가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우리의 삶을 우리의 삶으로 가치있게 실행하길 바라십니다.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공사도 없이 집을 지은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순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실행하는 곳에서 좋은 열매를 맺으십니다.
실행이 갈라지면 분열이 되기에 실행이 가리키는 것은 언제나 복음적 삶입니다. 실행하시는 주님과 함께 우리가 살아갑니다. 실행하기에 점점 소중해지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끝내 속일 수 없는 삶의 기본이며 실행의 기쁨입니다. 좋은 사람은 올바른 실행으로 하느님을 드러냅니다. 좋은 열매 선한 실행으로 이끄시는 하느님께 가장 좋은 이 날을 기도로 의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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