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주님은 우리 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니,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구원과 자유를 얻었네.
하느님, 외아드님의 십자가로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저희가 지상에서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깨닫고 천상에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2023년 9월 14일 (목)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9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민수기 21,9)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민수기 21장 9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민수기 21,4ㄴ-9)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 오늘 복음
(요한 3,13-17)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요한복음
3장 13-17절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9월 14일 (목)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원구 라파엘 신부
📌 십자가 현양 축일 소개 00:05
📌 미사시작 01:10
📌 강론시작 08:46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9월 14일 (목)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진슬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미사시작 07:14
📌 강론시작 16:25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14일 (목)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19
📌 강론시작 09:39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14일 (목)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장화기 바오로 신부
📌 성체조배 0:05:48
📌 미사시작 1:07:07
📌 강론시작 1:17:55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구리 뱀 이야기
제1독서는 민수기의 구리 뱀 이야기를 전합니다.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강한 불만을 토로합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불 뱀들을 보내시어 불평한 자들을 물어 죽게 하십니다. 그러자 백성은 죄를 뉘우치고 구원을 간청합니다. 주님께서는 곧바로 모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자, 뱀에 물린 사람이 그것을 쳐다보고 살아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구리 뱀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의 예표였다는 사실이 오늘 복음에서 드러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모세가 들어 올린 구리 뱀은 예수님을 가리키며, 그 구리 뱀을 달아 놓은 기둥은 예수님께서 매달리신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구리 뱀이 들어 올려진 것처럼 당신 자신도 그렇게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들어 올려진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처럼, 들어 올려진 예수님을 쳐다본 사람도 누구나 살아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두 사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광야에서의 뱀은 모세가 구리로 만든 조형물에 지나지 않으나, 골고타에서의 ‘뱀’은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셨습니다. 왜 그토록 아끼시는 외아드님을 ‘뱀’으로 내주셔야 하셨을까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십자가는 결국 하느님의 구원 의지와 사랑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표지입니다. 그 십자가가 세상을 구원하도록 높이 들어 올려졌습니다. 세상 한가운데 우뚝 솟아 그것을 바라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는 오늘, 우리도 구원의 표징이 매달리신 그 기둥을 바라보며 경배드립시다. 바로 거기에 하느님 사랑이 가득하고, 바로 그곳에 우리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보라, 십자 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모두 와서 경배하세”(성금요일, ‘십자가를 보여 주는 예식’ 중에서).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십자가 안에 구원이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가장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로 손꼽히는 일본, 싱가포르, 한국, 독일, 영국도 마찬가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콜롬비아 등을 비롯해서 국제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이 의외로 행복 지수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관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강력한 가족 유대감이나 지역 사회의 연대감 등 서로 지지하고 연결하는 관계가 사회 분위기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행복감을 얻게 되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예를 들어, 덴마크인 중 93%는 사교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친구들과 교류하고, 다른 사람을 지지하고, 그들 자신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지받을 수 있는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유지하면서 행복 지수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3년 동안 열심히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실 개인주의가 훨씬 더 커졌고, 동시에 행복도는 크게 내려갔습니다.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계속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관계를 끊는 데에만 노력을 쏟는다면 우리의 행복은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주님과의 관계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채워주시는 주님, 어렵고 힘든 것을 모두 치워주는 주님,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미운 사람을 가뿐하게 치워주는 주님 등 나의 이기심과 욕심을 채워줄 주님과의 관계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관계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몸소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날입니다. 이 십자가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편안함과 쉬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부와 명예를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고통과 시련의 상징이고, 또 죽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들과 정반대의 것입니다. 그 안에는 무한한 사랑과 평화가 있었으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강한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 순간의 만족과 안락함만을 추구하면서 십자가의 주님과 관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국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없게 됩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깊은 묵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십자가 안에서만 구원이 있다는 것, 그러나 그 십자가는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느님의 가치가 들어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고난과 역경에 처할지라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미소 짓는 삶의 자세야말로 운명을 역전시키는 기적의 비밀이다.
- 헤르만 헤세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이것이 빠진 희생은 오염된 피만 배출한다
오늘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구약에서 십자가의 상징은 물론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매달기 위해 만든 장대입니다. 뱀에 물린 사람들은 구리뱀을 보면 나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리뱀이 상징하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만 보면 낫게 된다는 뜻일까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우리도 같은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누군가를 낫게 하려고 나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삶을 닮을 수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맙니다. 하늘로 들어가는 문은 십자가의 삶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누군가의 죄를 씻어주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십자가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십자가는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노고가 누군가의 죄를 씻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십자가가 되려면 하나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디디 블랜차드와 집시 로즈 블랜차드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엄마 디디는 딸 집시를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백혈병, 근이영양증, 정신 장애 등 다양한 건강 문제와 장애가 있다고 믿도록 속였습니다. 디디는 딸의 질병과 장애를 홍보하여 기부, 여행 및 기타 혜택을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짓말에 버티다 못한 집시는 온라인에서 만난 남자친구 니콜라스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 살해를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상황은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렀습니다. 집시는 어머니의 속임수와 자신이 겪었던 학대의 정도를 깨닫게 되었고, 어머니를 죽이는 것만이 그녀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느꼈습니다.
어쩌면 디디는 집시를 키우기 위해 자신은 최선을 다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집시를 자신의 십자가로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피 흘림은 깨끗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기의 의지로 피를 흘렸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영국에서는 리사 헤이든과 존슨의 사례가 있습니다. 리사도 존슨이 음식 알레르기, 뇌성마비, 낭포성 섬유증 등 다양한 건강 문제를 앓고 있으며 휠체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헤이든은 자기 아들이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부터 수년에 걸쳐 약 325번의 불필요한 치료와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의료 전문가들을 속여 아들이 중병에 걸렸다고 믿게 했고, 이에 따라 영양 공급 튜브 장착을 포함한 일련의 불필요한 개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아들을 대신하여 수많은 상과 선물, 재정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왕족과 다른 고위 인사들을 만났고, 기부금으로 휠체어 이용 가능 차량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거짓말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어머니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초콜릿 바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보건 방문자가 알아차리면서 이러한 속임수가 드러났습니다.
이 관찰에 따라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리사는 다른 많은 형태의 의학적 학대와 속임수 중에서도 알레르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음식 공급 튜브를 통해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그녀는 집에서 의료기기를 조작해 결과를 위조하고 의사들에게 아들이 중병에 걸렸다고 설득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은 사회와 의료인의 동정과 지원을 가장하여 아동에게 가할 수 있는 심각한 학대의 극명한 예입니다.
디디나 리사 모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나름대로 노력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피 흘림은 오히려 아이들을 안 좋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씻어줄 수 없는 더러운 피였습니다. 그 이유는 엄마들 자신이 아이들을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십자가 지심의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아버지 때문에 흘리는 피가 아니면 자녀를 위해 흘리는 어머니의 피는 오염됩니다. 자아가 죽어서 흘리는 피가 아니라 자아가 커지기 위해 나를 고생시켜 흘리는 피입니다. 자아를 죽이는 창은 오로지 ‘순종’밖에 없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를 잘 키워낸 부모는 분명 소명을 가지고 키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피 만이 자녀를 깨끗이 씻어줄 수 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생각해 봅시다. 많은 군인이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희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라이언에게 가치 있게 살라며 죽어갑니다. 라이언은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평생 열심히 삽니다.
만약 그들이 나라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라이언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적진 깊숙이 뛰어들 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나의 피가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면 나의 피는 그를 사랑하는 이에게 순종하여 내어주는 피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 스스로 흘리는 피가 됩니다. 사실 그것은 자아의 피가 아닙니다.
십자가에는 뱀이 매달려야 합니다. 자아가 매달려야 합니다. 자아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흘리는 피는 반드시 보상을 요구합니다. 상대를 이용하기 위해 흘리는 피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피 흘림은 누군가의 죄를 사해줄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명령에 순종하여 흘리는 피만이 깨끗하여 그 사람의 죄를 씻어줄 수 있습니다. 남편 때문에 자녀를 사랑해야 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하며, 사제도 주님께서 파견하셨기 때문에 신자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피조물의 한계상 온전한 사랑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큰 고통과 긴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오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의 독서 민수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제가 히브리어를 모르기에 원어의 뜻을 직접 해석할 수 없어 다른 번역들, 공동 번역과 개신교 성서와 영어 번역을 찾아봤는데 이러합니다.
“길을 가는 동안 백성들은 참지 못하고”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with their patience worn out by the journey,”
이 네 번역을 다 감안할 때 백성은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무척 지치고 인내가 한계에 도달해 마음 안에 조급함과 불만이 차올라 마침내 불평이 입에서 터져 나올 지경이 된 것 같습니다.
이런 그들을 보며 바로 떠오른 말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큰 고통과 긴 고통이 떠올랐고, 큰 고통과 긴 고통을 나라고 잘 견딜 수 있을까 이런 성찰을 하게 되었고, 큰 고통과 긴 고통을 견디고 이기는 사랑이 내게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제는 80이 넘으신 노부부의 병문안을 갔습니다. 남편이 치매에 매주 3번 신장 투석을 해오셨는데 이번에 자매님까지 폐암을 앓게 되신 분들이었지요.
그런데도 자매님께서는 남편을 요양 병원에 보내지 않고, 손수 돌보시는데 너무도 정성껏 그리고 깔끔하게 돌보시는 거였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걱정되어 위로의 말씀을 드리려고 많이 힘드시지요 하고 위로를 건네니 자매님께서 견딜 만하다고 너무도 훌륭하게 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견딜 만하다!
힘들어 죽을 지경이라고 하시지 않고 견딜 만하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당신의 항암치료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보면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견딜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달리 그 큰 고통을 그분이 견디실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 큰 고통보다 더 큰 사랑이 그분에게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저는 큰 고통과 더불어 긴 고통에 관해서도 얘기하려고 합니다 제 생각에 긴 고통을 견뎌낸 분들이 큰 고통을 견뎌낸 분들보다 위대합니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장애를 지닌 분이나 오래 고통을 겪은 분들을 볼 때마다 한 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그 긴 고통을 견뎌내심에 머리가 절로 숙여집니다.
이분들 중에는 행복이란 것은 생각지도 않고 사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분들 앞에서 저는 제가 행복한 것이 미안하고 죄스럽습니다.
사실 행복은 사치이고 사랑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만 기도할 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이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더 나아가 힘이 되기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저 견디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고통에서 승리하시게 되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고통에서 승리하고 죽음의 고통까지 승리하여 부활에 이르게 하는 사랑, 이런 주님의 사랑을 일컬어 Passio 또는 Passion이라고 하는데 이 Passio의 사랑이 이분들의 긴 고통의 열매로 주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큰 고통과 긴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주님 Passio의 사랑이 함께하시기를!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들어 올려지는 십자가에서 구원의 복음을 듣습니다. 들어 올려진 십자가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십자가로 깊어지고 십자가로 열매를 맺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인격 안으로 들어옵니다. 가난하신 사랑의 영원하신 하느님의 구원입니다.
사랑을 사랑하는 사랑의 참된 십자가입니다. 들어 올려지는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십자가는 하느님과 다투지 않습니다. 신앙을 이끌고 가는 것은 십자가뿐입니다. 처음이자 끝도 들어 올려지는 십자가입니다. 쓰러지고 넘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의 처방전은 언제나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 할 것이 없는 십자가의 들어 올려지는 사랑입니다. 십자가로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웁니다. 우리의 고향은 십자가입니다. 매일 매일 들어 올려지는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십자가의 따스한 사랑으로 우리는 살아갑니다.
사랑이 있기에 들어 올려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구원의 길입니다. 들어 올려지는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삶을 맡겨드립시다. 사랑은 십자가로 참된 사랑이 됩니다. 십자가에서 가득한 하느님 사랑을 진실로 믿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주님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드리는 사랑의 새날입니다.
'매일미사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09/17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9.17 |
---|---|
23/09/16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9.16 |
23/09/15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9.15 |
23/09/13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9.13 |
23/09/12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9.12 |
23/09/11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9.11 |
23/09/10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3.09.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