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당신 예언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시고,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하느님,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니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게 하소서.
2023년 9월 18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9월 1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루카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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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7장 7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티모테오1서 2,1-8)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 오늘 복음
(루카 7,1-10)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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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루카복음
7장 1-10절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2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3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
4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간곡히 청하였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8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9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9월 18일 (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민웅 요셉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00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9월 18일 (월)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8:39
📌 강론시작 16:27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18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4:57
📌 강론시작 13:08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18일 (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1:50
📌 미사시작 1:02:20
📌 강론시작 1:09:01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우리는 그분을 어떻게 모시고 있나요?
루카 복음서에서 백인대장의 종을 고치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이방인을 대상으로 처음 일으키신 기적입니다. 카파르나움에 주둔하던 백인대장이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죽을병에 걸린 자기 노예를 살려주십사 간청합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몸소 찾아가지 않고, 유다인 원로들을 보내어 대신 청하도록 합니다.
우리 정서에는 예수님을 몸소 찾아가는 것이 더 진정성과 예의를 갖춘 청원일 터인데, 이방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유다인들의 정서를 헤아려 보면, 오히려 그러한 간접적인 청원이 훨씬 예를 갖춘 방식이라고 생각하였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유다인 원로들은 그 백인대장을 극찬합니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유다인들이, 그것도 그 지역을 대표하는 원로들이 이방인을 칭찬하는, 매우 드문 경우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집으로 향하고 계실 때, 그가 다시 친구들을 보내어 이렇게 전합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부정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유다인의 정서로 볼 때, 백인대장은 정말로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감히 제집에 그분을 모실 자격도 없고 이방인으로서 그분을 만나 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며 스스로 한껏 낮추는 자세는, 그의 청을 들어주실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긴 유다 원로들의 높은 평가와 대비되며 백인대장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만으로 제 종이 나으리라는 믿음은 주님께서 지니신 권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드러냅니다.
주님께서는 차별 없이 당신을 믿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기에, 이방인 신분인 우리도 그분을 주님으로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성체로 주님을 실제로 우리 안에 모시고 살아갑니다.
주님께서도 감탄하신 백인대장의 세심한 배려와 겸손한 마음과 굳건한 믿음을 바라보며, 과연 우리는 그분을 어떻게 모시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영성체 전에, 백인대장이 지녔던 마음으로 주님께 간절히 청합시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의 품위는 어떤가요?
어떤 아이가 방학 때 하루 종일 게임만 했던 적이 있다고 말해주더군요. 부모님께서 마침 친척 집에 가신 날, 이날은 후회 없이 게임만 하겠다고 다짐했고 실제로 화장실 갈 때와 주문 배달한 피자 먹을 때 말고는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원 없이 게임했으니 이제 게임하기 싫겠다.”라고 말했더니, “아직도 부족해요.”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게임만 하는 것이 몸에 좋을 리가 없겠지요. 이 사실을 아이도 잘 알고 있었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게임을 끊기는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동물보다 품위 있는 이유는 욕구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품위를 버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납니다. 욕구를 계속 표출해서 자기에게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아픔과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아마 대표적인 예가 ‘묻지마 범죄’가 아닐까 싶습니다.
욕구 조절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가 품위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어렵더라도 반드시 욕구를 참아낼 수 있다는 자기에 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욕구를 조절하면서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할 때, 주님의 멋진 자녀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욕구를 참아내서 자기 품위를 높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백인대장의 품위를 오늘 복음에서 봅니다. 로마의 백인대장인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예수님께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편하고 쉬운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백인대장은 쉬워 보이는 방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주님의 입장도 헤아립니다. 유다인이 이방인의 집 안으로 들오면 불결해진다는 율법을 알고서, 당신 말씀만으로도 자기 노예의 병이 고쳐질 것이라는 믿음을 보입니다. 이 믿음이 너무나 대단하기에 우리는 영성체 때에 그의 말을 인용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굳은 믿음이 없다면 그러한 행동을 전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백인대장의 품위였고 그 품위가 사랑하는 노예의 병을 고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품위는 어떤가요? 그냥 품위는 치워 버리고 자기 멋대로 살려고 하는 편하고 쉬운 길만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 상태에서는 주님께서 절대로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표징도 볼 수 없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사랑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동물처럼 본능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그 본능을 조절하면서 품위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품위를 지키면서 멋진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마라. ‘최선’이라는 말은 내 자신의 노력이 나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
- 조정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세상에 법칙이 있음을 믿기 시작할 때 신의 존재도 믿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엄청난 칭찬을 받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도대체 백인대장이 어떤 사람이길래 로마인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큰 믿음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먼저 카파르나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지배하는 동네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을 위해 회당도 지어준 인물입니다. 그리고 자기 가족의 병을 위해 치유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종을 위해 그것을 요구하니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수준은 어쨌거나 사랑의 수준과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방 종교에서 자란 그는 어떻게 이런 믿음과 사랑, 그리고 희망의 수준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세상의 법칙을 찾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의 법칙을 찾았고 그러다 보니 사랑하면 다 잘 된다는 법칙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랑의 법칙을 깨닫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법칙만 깨달으면 그 법칙의 주인을 알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 – 절벽부부’를 보았습니다. 남편 이송웅 씨는 평택에서 작은 횟집을 운영하고 아내 이소정 씨는 연기자로 활동하다가 결혼하면서는 남편의 일을 돕습니다. 아이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남편은 아내와 사는 것이 군대에 있을 때보다 더 숨 막힌다고 말합니다.
아내도 남편과 살게 되면서부터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을 겪으며 그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술로 때우고 있었습니다. 둘 다 알코올 의존증이 의심됩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전혀 느낄 수 없고 상대 때문에 자신이 힘들다고 비난의 말투가 일상입니다.
사랑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받지 못해서입니다.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처럼 자라왔습니다. 어머니가 부모 몰래 미국에서 결혼해서 낳은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엄마는 미국을 떠나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왔고 당연히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를 반겨주지 않았습니다.
엄마도 아빠를 닮은 소정 씨를 냉대하였습니다. 두 삼촌은 어른이면서도 소정 씨를 심하게 구타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중에 소정 씨도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송웅 씨와 결혼했고 엄마는 소정 씨에게 지금까지 키워준 돈을 내놓으라고 소송까지 건 상태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받지 못하다가 우연히 만난 송웅 씨가 평택에서 서울로 소정 씨가 좋아하는 닭발을 싸 들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단 두 번 만나고 결혼합니다. 처음 받아본 사랑에 취해 있었고 빨리 집을 벗어나고 싶어서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공허함은 채울 수 없었고 눈을 감으려면 술과 수면제가 꼭 필요했으며 다음 날 눈이 떠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상태입니다. 송웅 씨도 하루 종일 술만 마시는 아내가 한심하고 자신 때문에 그런다고 말하는 것에 화가 납니다.
사실 송웅 씨와 결혼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송웅 씨와 결혼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기에 더 그러는 것입니다. 송웅 씨도 무뚝뚝한 부모에게 자라서 위로해 주는 법을 알지 못했고 그렇게 두 부분은 절벽에 서서 알코올 중독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요? 없었습니다. 다만 소정 씨에게 알코올 치료 센터에 입원하여 치료받고 남편도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부의 사랑을 논해야 하는 자리에서 알코올 중독 치료가 제일 시급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사랑의 문제가 알코올 치료를 하면 해결될까요? 알코올 중독은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사랑의 문제를 어떻게 술 때문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요? 사랑 없이도 우리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법칙은 사랑받아야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존감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받지 못한 문제를 술로 해결하려 하는 사람에게 술만 끊는다고 부부관계가 좋아지는 게 아닙니다. 법칙을 믿어야 하느님도 믿게 됩니다.
백인대장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깨달은 법칙에 예수님을 적용했습니다. 부자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을 따라 해 보십시오. 법칙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나는 예외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러한 법을 세상에 놓어주신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널린 다양한 수치 자료에서 첫 자리에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수는 무엇일까요. 얼핏 생각해보면 수치 자료에는 1부터 9가 11.1%씩 동등하게 분포하므로 첫 자릿수도 1부터 9가 같은 비율로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1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고, 2에서 9로 갈수록 그 빈도는 현저히 낮아집니다.
미국의 천문학자 사이먼 뉴컴(1835~1909)은 1881년에 로그표가 담긴 책을 보면서 앞쪽 페이지가 뒤쪽 페이지보다 더 닳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로그표에서 1로 시작하는 값들을 더 자주 찾아봤음을 의미한 것입니다.
물리학자 프랭크 벤포드(1883~1948)는 뉴컴의 이런 발견을 1938년에 공식화했습니다. 벤포드는 강 335개의 넓이, 물리학 상수 104가지, 분자 중량 1800가지 등 20개 분야 자료들의 첫 자리 수 분포를 분석해 ‘벤포드의 법칙’을 내놓게 됩니다.
벤포드의 법칙은 회계 부정을 적발하기 위해 1972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수학자 마크 니그리니(Mark Nigrini)는 벤포드의 법칙을 이용해 에너지 기업 엔론의 회계 부정을 밝혀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밖에도 벤포드의 법칙은 2009년 이란 선거에서 부정 선거의 증거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 정부가 유로존에 가입하기 위해 EU에 보고한 거시경제 데이터가 벤포드의 법칙을 통해 조작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벤포드의 법칙을 증명할 수 있는 수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법칙이 많은 분야에서 적용되는 것입니다.
법칙이 있다면 분명 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이 세상에서 이러한 법칙과 특별히 행복, 사랑의 법칙을 깨닫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모든 율법이 이 사랑의 법칙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세상에서 법칙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믿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그 법칙을 만드신 분을 만나도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도 평온하고 세상도 평온하도록
우리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미래와 관련하여 기도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자들과 특히 대통령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우선 무관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하는 짓을 보면 눈 감아 버리고 입을 다물고 싶습니다. 꼴 보기 싫고 입 더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이지요.
두 번째로 기도하는 것은 걱정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사도 걱정하지 말고 기도해야겠지만 국가 대사는 더더욱 걱정에 머물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기도하는 것은 분노와 비난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인 특히 내가 반대하는 정당의 정치인을 볼 때 분노하게 되고 비판과 비난으로 일관하기 쉬운데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이런 부정 에너지를 사랑 에너지로 바꿀 필요가 있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살만한 공동체로 바꿀 것입니다.
이 얘기를 길게 한 것은 얼마 전 꽤 연세 있으신 한 분이 요즘 정치와 나라 상황 때문에 괴롭다고, 이 나이에 정치 돌아가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마음 평화 잃지 말아야 하는데 평화가 없고 괴롭다고 토로하신 데다 오늘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 권고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우리가 아주 신심 깊고 품위 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지금 우리나라는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앞을 향해 달리지 않고 뒤를 향해 그렇게 달립니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 싸움꾼인 것 같고, 그래서 싸움만 하지 발전적이고 생산적이지 않으며, 사람들은 먹고사는 것도 힘들어 허덕이는데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뽑은 것 아니잖아요? 이러라고 우리가 뽑은 것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두 가지로 잘 대처해야 합니다. 다음 선거에선 현명하게 투표하고 지금 당장은 기도하는 것으로.
우리는 정당인이 되지 말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당인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정당에 속하고 그 정당을 따르지 하느님 나라에 속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신앙적인 자존심을 잃지 말고 그깟 정당에 몸을 담그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세상을 심판하고 복음화해야 할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며 그러나 흙탕물 속의 연꽃처럼 세상에 복음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향기를 풍기고 다른 한편 복음으로 세상을 심판하는데 그 심판이 선거에서 복음적인 투표로 나타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미 우리가 뽑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걱정이나 하고, 욕하거나 분노하지 말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평온하도록 그래서 우리가 아주 신심 깊고 품위 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지요. 서로를 살리는 것이 가장 소중한 믿음입니다. 소중한 믿음은 언제나 소중한 사람을 향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향하는 믿음은 모든 관계의 살아있는 깨끗한 생명입니다. 믿음 속에 살고있는 소중한 인격을 다시 만납니다. 삶을 가꾸고 믿음을 키우는 소중한 인격입니다. 소중한 인격 소중한 믿음은 주님 앞에서 정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직한 존중이 믿음입니다.
백인 대장의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을 만납니다. 그것은 믿음의 체온을 나누는 마음의 관계입니다. 간절한 믿음은 하느님과 우리의 기도가 하나 되는 체험이며 대체할 수 없는 인격을 다시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은총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에겐 주님과 마주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먼저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 우리의 치유이며 회복입니다. 지켜야 할 긍정의 믿음을 칭찬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자격과 신분마저 벗어놓고 은총에 맡기는 믿음을 만납니다. 믿음의 일부인 우리들입니다. 가장 좋은 은총의 시작은 간절한 믿음입니다. 커다란 인격의 힘은 다름 아닌 주님을 찾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의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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