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그를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회중 가운데에서 그의 입을 열어 주시고, 영광의 옷을 입혀 주셨네.
주님, 복된 도미니코 사제는 주님의 진리를 전하는 훌륭한 설교자였으니 저희가 그의 성덕과 가르침으로 도움을 받고 그의 전구로 보호를 받게 하소서.
2023년 8월 8일 (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8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마태오 복음 성경 말씀 카드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마태 14,30)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민수기 12,1-13)
모세는 다른 예언자와 다르다.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그를 비방하느냐? - 오늘 복음
(마태오 14,22-36)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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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스승님,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마태오 복음
14장 22-36절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물에빠져들기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소리를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35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 주변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병든 이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36 그리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8일 (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홍승국 이사야 신부
📌 성 도미니코 소개 00:05
📌 미사시작 01:09
📌 강론시작 09:43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8일 (화)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 미사시작 08:23
📌 강론시작 17:33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8일 (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장화기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1:17
📌 강론시작 11:56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8일 (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1:38
📌 미사시작 1:32:48
📌 강론시작 1:42:37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물속으로 뛰어드는 참신앙에 대한 이야기
오늘 복음의 시간적 배경은 밤입니다. 하느님의 침묵이 이어지는 시간을 밤이라고 보면, 믿음이 강한 사람도 밤에는 의심하고 두려워합니다. 더욱이 밤에는 거센 바람, 맞바람이 찾아오기도 합니다(24절 참조). 그리고 오늘 복음의 공간적 배경은 물입니다.
물은 구약 성경에서 죽음을 상징하며, 죽음으로 향하게 하는 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기에 물을 갈라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느님을(탈출 14,21 참조) 찬미하며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어둔 밤과 혼돈의 물 그리고 맞바람, 이에 더하여 제자들은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라는 말의 본뜻은 ‘시험에 노출되다, 시련 속에 놓이다’입니다.
이 낱말의 명사 형태는 ‘시금석’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파도 때문에 제자들은 괴로워 죽을 지경이지만, 믿음이 성숙해지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알아듣게 됩니다.
밤이 끝나갈 무렵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시고,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가게 하여 달라고 청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넘어 부활하시어 참생명의 나라로 건너가신 예수님의 길을 자신도 걷게 하여 달라는 청원으로 들립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죽음의 바다를 건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첫발을 떼는 것입니다.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아기가 뒤뚱거리다 넘어질 때 부모는 아기를 환한 미소로 안아서 일으켜 세우고 다시 걸어 보라고 격려합니다.
물 위를 걸어 당신께 가겠다는 베드로를, 곧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우리가 발을 잘못 디디어 넘어질 때마다 우리를 일으켜 주시러 오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삶에 기꺼이 도전하고, 미지의 물속으로 뛰어드는 참신앙에 대한 이야기로, 결국 그가 물 위를 걸어 예수님의 품에 안기는 위대한 성공 이야기입니다. 험난한 여정이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굳건히 주님께 나아가는 신앙인이 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휴대폰 공짜, 거저 드립니다.
예전에 휴대전화 가게 앞을 지나가다 보면 이런 글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휴대폰 공짜, 거저 드립니다.”
솔직히 공짜 휴대전화가 있을까요? 약정, 부가서비스 등에 가입하다 보면 결국 제값 내고 휴대전화를 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길거리에 ‘공짜’를 외치면서, 안 사면 손해이고 바보라고 말하면서 지금 밑지고 파는 것이라는 장사꾼을 종종 봅니다. 정말로 손해 보면서 물건을 파는 것일까요? 아파트값이 곧 올라서 커다란 이득을 볼 수 있다더라, 어느 주식을 지금 사면 거저 돈 버는 것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이런 불로소득이 세상에 진짜로 가득한 것일까요?
반백 년 넘게 살면서 나름 깨우친 것이 있다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의 공통점은 땀 흘려 얻은 것이 아닌 공짜만을 생각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신앙인도 주님께 공짜를 바랍니다. 땀 흘려 노력할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서 자기에게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자기 사랑만을 외치고, 자기가 원한 것만을 채워주시는 하느님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짜 심보가 과연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을까요?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공짜로 주십니다. 하지만 공짜가 진짜로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그냥 저절로 내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바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탄 배가 밤새 풍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 없이는 이렇게 시달릴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고생하는 제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으시는 사랑의 주님이시지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호수를 걸어서 다가가십니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걸으시는 모습에 “유령이다!”라고 소리를 질러댑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함을 꾸짖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베드로가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고 청합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을 바라는 우리의 모습을 베드로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청 역시 기꺼이 들어주십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에 빠져 물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절망에 빠졌을 때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시고, 어떻게 보면 세속적인 청도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했습니다. 바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두려움 속에 빠지지 않는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주님의 공짜 사랑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어떤가요? 작은 시련에도 쉽게 넘어지고 마는 부족한 믿음은 아닌가요? 믿음을 달라고 주님께 청해야 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좋은 사람은 대부분 사소하고 기억되지 않는 친절과 사랑의 행위로 채워진다.
- 윌리엄 워즈워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물 위를 걷는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는 신앙인의 모델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실 때 베드로가 자신도 걷겠다며 나서는 내용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청합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처럼 하려는 베드로를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그저 “오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온전한 인간으로 하느님처럼 물 위를 걸은 최초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불가능한 것에 도전한다면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대상을 만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만남이 없다면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엠빅뉴스’에 ‘24년 동안 100만 평에 나무 2만 그루 홀로 심은 할아버지 ‘미친X’이라 놀리던 마을주민이 이제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라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해가 뜨면 낫을 들고 산으로 사라지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마을주민들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나무를 베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자기 돈 주고 씨앗을 사와 온종일 나무를 심으러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려 24년을.
1960년 인도네시아 산불로 잿더미가 된 마을. 문제는 재앙 이후가 더 컸습니다. 건기에는 가뭄이 우기에는 홍수가 덮쳤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빈곤에 쪼들렸던 주민들은 하나둘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1997년, 45세의 사디만은 향신료 열매 농사를 그만두고 가지고 있던 염소까지 모두 팔아 비싼 반야나무와 피쿠스타무 씨앗을 사 숲속에 심기 시작합니다.
주민들은 “배를 너무 굶어 정신이 나갔다”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심지어 주민들은 반얀나무엔 영혼이 깃들어 있어 마을을 망칠 것이라 믿으며 묘목 근처에 가축을 풀어 사디만을 방해하였습니다. 열매가 없는 반얀나무론 팔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디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이 나무들이 물을 가져다줄 것이다.”
매년 수천 그루의 나무를 심은 사디만.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땅속에서 샘물이 솟았습니다. 반얀과 피쿠스는 땅속에 물을 저장해 수분을 나눠주는 나무였던 것입니다. 냇물이 흐르고 물을 쓸 수 있게 된 마을. 물이 부족해 1년에 한 번 농사를 짓던 마을은 이제 2~3번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마을은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무려 24년 동안 사디만은 100만 평의 땅에 2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혼자 심어 지옥의 땅을 축복의 땅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사디만의 생각대로 지난 10년간 마을엔 가뭄이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디만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저는 사디만입니다. 저는 예순아홉 살입니다. 저는 숲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반얀나무와 피쿠스나무로 좀 더 빽빽하게 숲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그게 분명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 불가능한 일에, 이해받지 못하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는 말은 그것을 가능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기는 마치 진화하지 못한 동물처럼 기어 다닙니다.
그 아이가 두 발로 걸으려고 도전한다면 이는 그것을 가능하다고 믿는 누군가를 만났음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어쩌면 우리가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만나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위 사디만 할아버지는 누구를 만나고 있을까요? 그분은 자신을 “숲을 만드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누가 그렇게 정의해주었을까요? 혼자서 그런 정체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분은 분명 자신을 그런 소명으로 태어나게 한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상이 누구이건 간에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그 일을 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분을 분명 당신을 만나며 산 자녀로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성체를 영하면서도 이웃의 행복을 위해 그러한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은 분명 사디만 할아버지보다 못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아기가 부모를 보고 걷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제로 부모라 믿지 않음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포크포크 채널 ‘나무 150억 그루 심은 아홉 살 꼬마’ 동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아홉 살 아이는 어느 날 북극곰이 온난화로 보금자리를 잃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북극곰을 사랑했던 펠릭스는 더 이상의 방관은 ‘범죄’라고 생각하고 “북극곰을 위해 나무 100만 그루를 심겠다”라고 선언합니다.
그의 말에 동조하는 어른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펠릭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앞장을 섰습니다. 그렇게 3년 뒤 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을 때 어른들은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급기야 펠릭스는 UN에서 연설합니다. 어른들의 관심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1조 그루 나무를 심기 캠페인”을 선포합니다. 그의 연설이 어른들을 일어나게 했고 이 운동은 전 세례로 확산했습니다. 이 캠페인에 한국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시작했던 펠릭스의 꿈은 현재 전 세계에 150억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 잊지 마세요. 모기 한 마리는 코뿔소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천 마리의 모기는 코뿔소의 길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을 인간이 살 수 있게 만드는 게 꿈입니다. 그리고 진짜 그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건 그는 분명 물 위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하느님은 분명 인류를 구하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불가능이 없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펠릭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꿈을 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는 신앙인의 모습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물 위를 걷는 베드로의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 앞에서 나도 보고 너도 보는 겸손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이 말씀은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것 때문에 모세의 친형제들인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며 한 말이고, 이 때문에 아론과 미리암은 꾸지람을 듣고 미리암은 큰 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말 자체는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세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분이고,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며 스쳐 가는 바람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지요. 그래서 이 말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의 문제일 것입니다.
동족을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 비방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구약의 하느님은 종종 동족 결혼을 원하시는 것으로 구약이 얘기하지만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이방 여인들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구원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 중에 이방 여인들이 있지요.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뽑으시고,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선민의식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 선민의식이라는 것이 배타적인 성격을 띠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오늘 아론과 미리암은 배타적인 성격을 띠고 있고 그것 때문에 모세는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비방하기에 벌을 받은 것일 겁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어지는 말씀이 모세의 겸손을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
모세는 겸손했고 이들은 교만했기에 벌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의 잘못을 구실로 자기들이 모세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모세에게 반기를 든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교만 때문에 모세에게 반기를 들 채비가 되어있는데 모세의 결혼을 구실이나 빌미 삼은 것일 겁니다.
이것을 잘 드러내는 번역이 영어 번역입니다.
“Miriam and Aaron spoke against Moses on the pretext of the marriage he had contracted with a Cushite woman.”
우리도 교만하면 다른 사람 특히 지도자를 제칠 이유를 상대에게서 찾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의 흠집을 찾아내어 지도자에서 끌어내리고 자기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뽑은 지도자를 교만 때문에 비방하고 지도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세에게 반기를 든 정도가 아니라 모세를 뽑으신 하느님께 반기를 든 것입니다.
모세가 겸손했다는 것은 모세가 늘 하느님 앞에 있었다는 얘기이고, 그들이 교만했다는 것은 그들은 늘 모세 앞에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겸손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지요.
“사람은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여겨져도 하느님 앞에 있는 것 이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보기에 종종 교만합니다. 그리고 교만하기에 어떻게든지 남의 잘못을 찾아내고, 잘못이 없으면 흠집을 내서라도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나도 보고 이웃도 보는 나인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삶의 모든 것이 걸려 있는 믿음입니다. 바람에 따라 파도가 치듯 믿음에 따라 상처도 은총이 됩니다. 거센 파도의 열매가 우리의 믿음입니다. 거센 파도가 그려내는 믿음의 자화상입니다. 일렁이고 출렁이는 우리들 현실입니다.
믿음을 잃어버린 우리의 현실입니다. 은총이 파도처럼 쏟아지는 믿음의 힘으로 우리는 앞으로 노를 저어 갑니다. 파도만큼 믿음도 뜨겁습니다. 깨지기 쉬운 우리들 마음에 필요한 것은 주님을 향한 믿음뿐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을 평화이신 주님께 맡깁니다.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약함을 주님의 힘으로 헤쳐 나갑시다. 거센 파도가 사라지면 뜨거운 믿음도 사라집니다. 자연의 이치처럼 파도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시 태어나고 다시 시작하는 믿음이라는 선물입니다. 우리 삶에서 풍랑과 믿음은 함께합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치열한 삶의 방식은 믿음이라는 은총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당신의 믿음을 우리에게 내어주시며 호수 위를 걷게 하십니다. 불안하고 불완전하여도 주님과 하나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을 기쁘게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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