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저의 도움, 저의 구원은 주님이시니, 주님, 더디 오지 마소서.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니 주님을 창조주요 인도자로 모시는 이들과 함께하시어 주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 모든 것을 지켜 주소서.
2023년 8월 7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8월 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마태 14,20)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민수기 11,4ㄴ-15)
저 혼자서는 이 백성을 안고 갈 수 없습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4,13-21)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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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태오 복음
14장 13-21절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7일 (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기훈 그레고리오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8:05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7일 (월)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진슬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미사시작 08:33
📌 강론시작 16:57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7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4:46
📌 강론시작 13:46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7일 (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0:01
📌 미사시작 0:59:01
📌 강론시작 1:07:50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주님께서는 “굶주린 이들에게 빵을”(시편 146[145],7) 주십니다. 성모님께서도 이와 비슷하게 하느님을 찬미하셨습니다.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루카 1,53).
그런데 현실은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시는 하느님에 대한 그분들의 찬미가 공허할 만큼 가혹합니다.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며 날마다 수많은 이가 죽어 갑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두고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천 명을 먹이신 분께서 어찌하여 오늘날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버려두시는가?”
세상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식이 기적뿐이라면 복음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많지 않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처럼 기적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이 세상의 배고픈 이들에게 빵이 부족하지 않도록 그분의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일에 관한 가르침이라면 우리는 좀 더 유익한 내용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인간이 협력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경계하여야 할 첫 번째 유혹은, 군중을 돌려보내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우리는 이 같은 각자도생의 논리에 매우 익숙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이는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필리 2,5)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구체적 사랑을 실천합니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가진 것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이가 ‘나’와 ‘우리 가족’에게 모자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욕심으로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는다면 세상의 배고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가 오늘 이야기를 ‘빵을 많게 하신(multiplication) 기적’이 아니라 ‘빵을 나누게 하신(distribution)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형제들과 우리가 가진 빵을 나누려는 사람들입니까? .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승진에서 빠진 이유
어느 회사에 스펙도 좋고 실적도 좋은 남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스펙도 낮고 실적도 변변치 않은 동료 직원이 먼저 승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스펙 좋고 실적 좋은 남자가 인정하기가 쉬웠을까요? 억울해하는 그에게 상사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자네가 능력 있는 인재라는 것을 인정하네. 하지만 자네는 혼자 일하는 유형이지.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누군가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았을 때도 자네와 관련 없다고 생각하면 단칼에 거절했어. 회사는 팀이 중요하네. 완벽한 개인은 없어. 완벽한 팀이 있을 뿐이야.”
승진에서 빠진 이유에 공감 가지 않습니까? 사실 함께하는 삶은 이 세상 안에서 분명히 중요합니다. 특히 공동체 안에서는 ‘팀’의 존재는 더 중요할 수밖에 없지요. 우리 교회 공동체에서는 어떨까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함께 있겠다고 하셨지요. 개인보다 팀과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나’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나만 잘되면 그만이고,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팀을 외면합니다.
현대의 기업에서 팀의 능력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교회는 그 시작에서부터 ‘팀’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에 주님께서는 어떻게 바라보실까요? 혹시 당신 뜻과 반대되는 이 모습에 서운하시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팀에서 활동하든, 혼자 활동하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팀 안에서 활동하며 최선을 다할 때, 주님과 함께하며 주님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함께하는 모습을 당신께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혼자서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을 제자들과 함께하셨고, 오늘 복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먹을 것을 당신의 전지전능한 힘으로 마련해줄 수 있음에도 제자들에게 먼저 해결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제자들의 부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함께하십니다. 팀을 이루어야 함을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할 이웃에 대해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나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에게 상처를 줬다는 이유로,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함께하지 못할 이유를 찾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할 이유를 찾으셨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웃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과도 함께할 수 없게 됩니다. 함께하려는 예수님의 뜻과 정반대의 모습이니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팀’의 중요성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함께할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우리는 모두 오늘을 처음 산다. 무수한 세계가 생겨나고 자라는, 그 속에서 아주 많은 것이 가능한 오늘을....
- 하현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주고 싶은 마음이 기적을 만든다.
오늘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6)라고 하십니다. 주고 싶은 마음,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기적을 만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런 사랑이 아직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진 것에 먼저 감사하며 모든 이의 배를 불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기적은 시작됩니다.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패치 아담스’(1998)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의사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패치 아담스는 본래 ‘헌터 아담스’였습니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나 아버지까지 잃은 헌터는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자살 기도를 합니다. 삶의 목적도 없고, 살아갈 자신감도 없습니다.
자살이 미수에 그치자 그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 치료받습니다. 거기서 정신적 스승 아서를 만납니다. 모두 아서를 미친 사람이라 하지만 아서는 그들더러 미쳤다고 합니다. 아서는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라고 말합니다. 본질을 보라는 뜻입니다.
아서에게 깨달음을 얻은 헌터는 함께 지내는 루디를 다람쥐 공포에서 해방해줍니다. 루디는 환각으로 다람쥐를 보고 무서워서 화장실도 못 갑니다. 헌터는 자신도 다람쥐가 보이는 것처럼 작대기로 총을 만들어 루디가 보는 앞에서 다람쥐들을 소탕합니다. 루디는 헌터의 총에서 뿜어져 나오는 총탄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다람쥐들이 죽은 것을 보고는 매우 흡족해합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헌터 아담스는 이제 패치 아담스라는 별명을 가집니다. 패치(Patch)는 ‘상처를 치유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늦은 나이에 의대에 입학합니다. 아담스는 공부를 거의 하지 않는데도 수석을 놓치지 않습니다.
3학년이 되기 전엔 환자를 만나서는 안 되는 규칙이 있는데도 환자들을 만나 이야기해주고 들어주며 웃겨줍니다. 아기들에게는 우스운 복장으로 쇼를 하고, 스파게티 목욕을 하고 싶다는 할머니에게는 스파게티로 목욕도 시켜줍니다. 급기야는 시골 농장을 개조해 무료로 환자들을 돌보아줍니다.
의사가 되기 전까지 진료행위를 해서는 안 되니까 비밀리에 하는데 발각되어 퇴학 조처가 내려집니다. 패치 아담스는 주립의학협회에 퇴학을 철회해 달라고 제소합니다. 연설을 통해 의사는 성적과 권위가 아닌 사람을 대하는 친밀함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협회는 교칙을 어기기는 했지만 좋은 열정과 성적을 인정하여 퇴학을 철회합니다. 그 후 그는 12년간 패치는 의료행위를 계속했고 15,000명 이상의 환자에게 무료 치료를 했고 어떤 의료사고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오늘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더 주려고 하는 사람을 통해 하느님은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꾸 우리더러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내어주는 마음이 바로 기적의 재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 내어줄 것이 없다고 합니다. 혹은 능력 밖의 일이라고 합니다. 이성적인 판단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케이티라는 여인은 쌍둥이를 임신한 행복한 엄마였습니다. 2010년 3월 마침내 쌍둥이 남매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중 한 아이는 태어난 지 20분 만에 사망했습니다. 아이의 심장이 멎었습니다. 27주 만에 태어나 몸무게가 1kg도 안 나가던 아이는 엄마 곁을 떠났습니다.
엄마는 환자복을 벗고 축 처진 아기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엄마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을 때 아기의 멎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망 진단이 내려진 2시간 뒤 아기는 눈을 뜨고 작은 손을 뻗어 엄마의 손가락을 잡았습니다.
사랑하면 반드시 줄 것이 있습니다. 체온이라도 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주려는 사람에게 능력도 주십니다. 패치 아담스는 주려는 마음만 있었지, 능력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면 기적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려고 할 때 제자들에게 원하셨던 것도 상황에 관한 이성적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를 넘어선 당신께 대한 믿음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판단을 넘어서 능력까지 끌어들입니다. 모든 변화는 주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믿고 더 먼 곳을 바라봐야 합니다. 모든 것을 모든 이들에게 주고 싶은 사람이 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지혜롭고 조화로운 삶
오늘 주님의 동선이랄까 행위를 보면 이렇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죽은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혼자 외딴곳으로 가십니다. 이것을 안 사람들은 극성스럽다 싶은 정도로 육로로 주님 계신 곳으로 갑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가엾이 보시어 병을 고쳐주시고 이어서 굶주린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주님은 요한의 죽음 다음에 당신의 시간이 필요하셨나 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주님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주님의 상태를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성가시다고 생각하시거나 화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가엾이 보시고 치유해주십니다.
오늘 저는 이런 주님의 사랑을 보면서 성찰케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열정에 감동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저도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렇게 할 수는 있는지 성찰케 되었습니다.
우선 저는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참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즈음부터 과부하가 걸리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일을 하였고, 일도 힘에 부치니 금세 지치고 그래서 일을 하며 자주 짜증을 내고 화까지 내었으며 제가 잘못하고서는 옆 사람에게 그 탓을 돌리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해 처음으로 휴가다운 휴가를 가지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성찰하였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피정이나 쉼을 통한 재충전의 시간을
제가 가졌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도 반성하였지만, 오늘 다시 오늘 주님처럼 나의 시간 그러니까 재충전의 시간 없이 .모든 시간을 이웃을 위해 내주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일까, 주님처럼 할 수 없다면 주님의 사랑에 그저 감동과 감탄이나 하며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성찰케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주님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일상을 소개하는 마르코 복음 1장을 보면 주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주시는 고된 일정을 소화해내시고 다음 날 새벽 외딴곳으로 가 기도하셨으며, 제자들에게도 외딴곳으로 가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외딴곳으로 가신 것은 오늘뿐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외딴곳에 가신 것이거나 요한의 죽음에 당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특별히 가신 것이 아닙니다.
실로 요즘 사람들은 혼족이라고 할 정도로 혼자 밥 먹고 술 먹으며 병적으로 혼자 지내지만 정작 외딴곳에 홀로 가는 것은 하지 못하거나 않습니다.
혼자 있으면서 스마트폰과 종일 지내고 사람들과 대면하고 하느님과 대면하는 시간은 피하고 가상 공간과 폐쇄 공간에서 이상한 내용이나 뒤지면서 하루를 흘려버립니다.
주님처럼 열심히 일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그런 다음 기도와 쉼의 시간, 곧 사랑 재충전의 시간을 외딴곳에서 갖는, 그런 지혜롭고 조화로운 삶이 실로 요구되는 요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빵의 방향은 배부름의 방향입니다. 배고픈 우리의 오늘을 살피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모두를 살게하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통하여 우리가 다르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다름아닌 나눔이며 감사입니다. 굶주림에 대처할 수 방법 또한 나눔입니다. 나눔이 감사입니다. 필요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복음이며 빵이 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을 찾고 있는 그 자리에 빵이 있듯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을 완성하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빵으로 사랑으로 우리 안에 들어와 사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사랑의 관계는 생명의 관계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빵이 되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 되는 것이 공동체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빵이 되어 오시는 하느님을 기억하며 우리 또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을 다 뒤덮는 빵의 기쁨이 축제가 됩니다.
사랑은 서로를 배 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빵은 목숨이며 목숨은 감사입니다. 오늘 우리의 생명은 어디를 향하고 계신지요. 사랑과 감사 나눔과 기쁨의 배부른 오늘이길 기도드립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는 빵의 성사가 참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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