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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8/05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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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한마음으로 모인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2023년 8월 5일 (토)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8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마태 14,2)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마태 14,2)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레위기 25,1.8-17)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4,1-12)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8월 5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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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오 복음
14장 1-12절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5일 (토)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상용 베드로 신부

 

📌 교황님 8월 기도지향 00:23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08:15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5일 (토)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이철규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10:27

📌 강론시작 19:56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5일 (토)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13

📌 강론시작 07:18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5일 (토)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2:09

📌 미사시작 1:01:58

📌 강론시작 1:11:1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광야는 침묵 가운데 기도하는 곳이다.

 

오늘 복음은 불의한 권력자와 그 힘에 대하여, 수난 가운데서도 의연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위대한 사람과 그의 굽히지 않는 힘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이 같은 인생은 어디서 어떻게 올까요? 

우리는 세례자 요한에 대한 복음서의 증언에서 확실한 이유를 한 가지 유추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로 연결된 하느님과의 견고한 끈입니다. 요한이 기도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말에서도 드러납니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특별히 요한이 체험한 하느님은 광야와 연결됩니다. 복음서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루카 1,80)라고 합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의 고향으로 알려진 ‘에인 카렘’(Ein Karem, 포도밭의 봄)은 이름처럼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입니다. 그런 그가 황량한 광야로 나간 까닭은 이스라엘의 광야 체험을 배우려고 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광야는 유혹과 시련의 장소지만, 물질의 궁핍 속에서 하느님의 보호와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는 삶을 배우는 곳입니다. 무엇보다도 광야는 침묵 가운데 기도하는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를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세상의 수많은 소음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말이 넘쳐나고, 많은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두려워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침묵 가운데 우리를 찾아오시고 고요 속에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을 세상에 증언하는 삶입니다. 삶 안에서 복음의 진리를 증언하는 용기는 어디서 얻겠습니까?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시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내게 하시며 당신을 증언할 용기와 힘을 주실 것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마태 3,3)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연결 고리를 생각하여 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잘못은 헛된 맹세에서 시작된다.

 

손가락 지혜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라고 말하면서 가리켜 보십시오. 손가락 하나는 그를 분명하게 향하고 있지만, 손가락 세 개는 자기를 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상대방이 나쁘다고 말하는 순간, 자기는 세 배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에 관한 판단과 단죄를 멈추지 못합니다. 늘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을 하기에 앞서, 최소한 3번은 자기를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손가락 하나만 상대방을 향하고, 세 개의 손가락은 계속해서 나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신독(삼길 신愼, 홀로 독獨)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혼자 있을 때 삼가고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스스로 절제하며 옳은 길을 걷는 사람은 함께 있을 때도 좋은 모범을 보입니다. 그러나 혼자 있는 모습에서 겸손하지 않고 함부로 막 한다면 남들 앞에서의 모습이 진짜가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삶만을 따르면서 그저 남들만큼만 할 생각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남들처럼만 살라고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유한 ‘나’의 삶을 살라고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비교, 판단, 단죄의 삶이 아닌, 인정, 지지, 칭찬이라는 나의 멋진 삶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손가락 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헤로데 영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헤로디아의 농간에 농락되어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잘랐지요. 우선 그의 잘못은 헛된 맹세에서 시작했습니다. 자기 생일잔치에 헤로데의 고관들과 갈릴래아의 유명한 인사들이 초대된 자리에서 기분이 너무 좋아 헛된 맹세를 한 것입니다. 어떤 청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맹세였습니다. 이때의 청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것이었지요. 
 
군주가 손님들을 초청해서 화려한 잔치를 벌이는 것은 그들에게 자기 권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예수님의 소문에 죽은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하면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나바테아 왕녀를 소박한 것이 빌미가 되어 나바테아 왕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게 되었고, 전쟁 패배로 인해 로마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을 가서 죽게 됩니다. 
 
세상의 눈치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주님의 뜻인지를 살피면서 그 뜻에 맞게 열심히 사는 고유한 ‘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눈치는 순간의 만족만을 주지만, 주님의 뜻을 따르면 영원한 생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청렴을 외치면서 더욱 더러워지는 것은 입으로만 떠들기 때문이다.

- 순자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힘들게 기억한 것은 잊어버리기도 힘들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베들레헴에서 목자들의 방문을 받습니다. 목자들은 천사가 한 말이 정말 그대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 놀라워합니다. 성모님은 마구간에서 분명 이들의 도움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하.사.시.』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날 당신을 보기 위해 방문했던 목자들의 이름을 다 아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어머니가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의 숫자는 열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씩만 자신의 이름을 어머니에게 소개해주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이름을 다 기억했다가 아드님께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모님께서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한 덕분입니다.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이름 외우는 일입니다. 기억력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성의가 없는 것입니다. 성의가 없다는 말은 나의 에너지를 다른 것을 기억하는 데 썼다는 뜻도 됩니다. 곰곰이 생각한다는 말은 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성모님은 그러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미사를 하는데 아는 얼굴 둘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불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인사하셨는데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유학 중 잠시 쉬러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참 고마운 분들이었지만, 얼굴과 이름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분들을 그 이후로는 다시 떠올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하나의 흘러 지나가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필요할 때는 기억하고 필요가 없어지니 기억하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의 열매인 것 같습니다. 

유튜브 채널에 ‘이슈 체크’에서 ‘1.5kg밖에 안 되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는 28년 후, 간호사를 깜짝 놀라게 하는데….’라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29년 전 빌마는 간호 수습 기간을 마치고 평간호사가 됩니다. 빌마의 첫 일은 신생아실이었습니다. 어느 날 임신 30주밖에 안 된 엄마가 1.5kg밖에 안 되는 아이를 낳습니다. 

그날 밤 빌마는 신생아실 밖에서 앉아있는 한 남성을 만났고 그가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빌마의 손을 잡고 아들의 이름이 ‘브랜든’이라고 하며 잘 부탁한다고 말했습니다. 빌마는 브랜든을 자기 아이처럼 돌보았고 아이는 건강하게 인큐베이터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브랜든이 초등학생이 되어 엄마와 함께 간호사를 찾았지만, 빌마는 다른 병원으로 이동했다는 소식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빌마는 일하는 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를 만납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브랜든이라고 소개합니다. 빌마는 깜짝 놀라 태어난 병원과 시간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간호했던 아이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빌마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며 브랜든을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나중에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미숙아였던 ‘브랜든’에게 어떤 특별함이 있었기에 28년이 지난 후에도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나요?”

빌마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브랜든은 제가 전담 간호를 맡은 첫 번째 아이였어요.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이에요. 하지만 그 이유가 제가 브랜든을 28년이 지나고도 기억한 이유는 아니예요. 심장이 유난히 약했던 ‘제이슨’, 사람만 보면 잘 웃던 ‘아만다’, 저는 제가 보살폈던 아이들 모두 가슴 한 켠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게 특별하지 않았던 아이는 없습니다. 제가 보살핀 수많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저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돈벌이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사용하고 버리는 물건처럼 도구화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수원교구 교구장님은 기억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십니다. 한 번 본 신자들도 아주 시간이 오래 지나도 기억하시고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이것에 많은 분이 감동하십니다. 저는 그분이 단순히 기억력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그분은 누군가를 만나고 들어오시면 그 사건과 이름을 써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렵게 외우는 것입니다. 쉽게 외우는 것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어렵게 외우면 잊히기도 어렵습니다. 이것이 성모님을 닮은 모습일 것입니다. 

저도 사제로서 본당에 있지만, ‘어차피 떠날 건데!’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꼭 필요한 만큼만 이름을 외우는 데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런 만남도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섭리의 일환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섭리로 우리를 만나게 해 주셨는지를 묵상하다 보면 자꾸 이름과 얼굴을 떠올려야 하고 그러면 저절로 잘 외워질 것입니다. 비록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기는 하지만, 저도 하루에 5분 만이라도 오늘 만난 사람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하느님 섭리를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희년의 정신

 

어제의 탈출기는 매년 지내야 할 축제들에 관해 얘기하고, 오늘의 탈출기는 오십 년마다 지내는 희년에 관해 얘기합니다.  그런데 어제 독서를 읽으면서 살포시 웃음이 났습니다. 제물을 바칠 때 흔들어 바치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사를 지내는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일 수도 있지만 특별히 생색을 내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거나 전할 때 굳이 이벤트를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엄마의 사랑은 굳이 생색을 내지 않습니다. 엄마의 사랑은 특별하지 않고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밥을 해주는데 특별히 한번 밥 해주는 것처럼 밥상을 흔들지 않습니다. 매일 빨래해주는데 특별히 한번 해주는 것처럼 빨래를 흔들어대지 않습니다. 

그런데 연인의 사랑은 특별히 하는 사랑이기에 흔들어대야겠지요. 멀리서도 눈에 띄어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깃발을 흔드는 것처럼.  그러니까 흔들어 바치는 제사는 어머니의 사랑처럼 매일 바치는 제물이 아니라 며칠 안 되는 축일만이라도 연인의 이벤트처럼 특별히 바치는 사랑의 몸짓입니다. 

다음으로 오늘의 탈출기는 희년을 지내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데 오십 년마다 지내는 것이니 연중 축일들보다 훨씬 더 특별한 축제입니다. 왜냐면 이 희년에 모든 것이 해방되어 원상 회복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제와 수탈에서 해방되듯이 모든 것 그러니까 인간뿐 아니라 피조물과 땅까지 해방되어 본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것은 안식일을 넘어 안식년의 의미입니다. 생애에 한번은 안식년을 갖거나 갖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안식년의 목적은 앞서 봤듯이 모든 것의 원상회복입니다. 원상회복이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던 그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이뤄져야 하고요. 

흔히 JPIC(Justice and Peace, Integration of Creation)라고 하는 것의 실현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말로 하면 ‘정의와 평화와 창조 질서 보존’이라고 하고, 줄여서 ‘정평창보’라고도 하지요. 

북한산 안식년이라면 북한산이 원상회복되도록 인간이 발길을 끊는 것이고, 인간의 안식년이라면 인간이 원상회복되도록 한해를 오롯이 쉬는 것이지만, 달리 말하면 인간과 자연의 파괴를 초래했던 그동안의 불의를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희년의 정신인데, 그런데 쉬라는 하느님의 명령, 쉬게 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우리는 얼마나 잘 따릅니까?  나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안식년도 제대로 가지지 못하고, 너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 안식년을 제대로 주지 않으며, 자연 상태의 회복을 위해 안식년을 주지 않는 우리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처절하게 통곡하시고 뻔뻔함에 고통스러워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어둡고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생명의 안부를 묻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폭력과 살인 앞에서 점점 왜소해지는 우리들 모습입니다. 찌르고 죽이고 짓밟는 미쳐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평화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느님의 뜻과는 달리 거꾸로 가는 세상, 살인마가 미쳐 날뛰는 세상을 향해 세례자 요한은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인격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내것이 아닌 하느님의 소중한 생명들입니다. 하느님의 세상은 패륜(悖倫)의 현장이 아닌 사랑과 평화의 현장입니다. 과분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우리들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이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또 생길지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뭉클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무너진 인간성을 세우는 역사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더 깨끗해지길 간절히 바라며 쓰러져 간 많은 생명들의 아픔을 기억합시다.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기도의 아침입니다. 

하느님의 생명을 감히 찌르고 베어서는 안됩니다. 죽여놓고 거짓으로 참회하는 어처구니 없는 분노의 대상이 아닌 다시 사람의 기초로 돌아가는 인륜(人倫)의 세상이길 기도드립니다. 목을 베는 것이 아닌 목을 축일 수 있는 음료를 건네는 마음에서 우리의 두 눈은 더욱 깨끗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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