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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8/02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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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한마음으로 모인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2023년 8월 2일 (수)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8월 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마태 13,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마태 13,44) 마태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탈출기 34,29-35)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보고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3,44-46)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8월 2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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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으니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다.

 

 

마태오 복음
13장 44-46절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2일 (수)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상용 베드로 신부 집전

 

📌 교황님 8월 기도지향 00:22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07:36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2일 (수)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6:20

📌 강론시작 14:53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2일 (수)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1:22

📌 강론시작 08:22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2일 (수)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 성체조배 0:01:04

📌 미사시작 1:01:06

📌 강론시작 1:10:0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밭에 묻힌 보물을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방법

 

오늘 복음에서 들은 보물의 비유와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보물이시요 진주이심을 환기시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분을 얻고자 다른 많은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함을 가르칩니다. 밭에 보물을 감추어 두는 것은 전쟁과 환난을 자주 겪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물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물을 밭에 묻고 떠난 주인이 뜻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여 보물이 묻힌 곳을 알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밭에 묻힌 보물을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 밭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처럼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 돌아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고 한 것입니다.

오늘 비유의 핵심은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단호한 결정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이러한 결정을 한 장본인들입니다.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은 모든 것(그물, 배, 아버지)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4,18-22 참조). 

세리였던 마태오는 세관의 돈과 자기 탁자를 버리고, 곧 이전의 삶의 양식을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따릅니다(9,9 참조).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울(바오로)은 자신의 과거와 모든 신념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는 자신에게 이롭던 모든 것을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필리 3,7-8 참조).

그렇게 우리의 신앙 선조들도 예수님을 따르고자 모든 것(집, 고향, 친지, 재산, 지위 등)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큰 기쁨을 얻었고 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른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하여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이득이요 기쁨이라 믿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은총이자 선물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기쁨을 앗아 가는 모든 것을 경계하며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마음의 변화가 필요한 때

 

“너 변했어.” 
 
상대방이 인상 쓰며 변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을 듣는 대상인 본인은 어떻습니까? 자기는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지 않습니까? 시간이 지났으니 생물학적 변화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내 마음이, 내 성격이 변했다고 말하는데, 도저히 인정하기가 힘듭니다. 사실 사랑 호르몬이라고도 부르는 도파민의 분비는 남성의 경우에 3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합니다. 따라서 여자가 남자를 향해 “변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호르몬 분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정확하게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 역시 계속해서 호르몬이 변합니다. 
 
외적 변화뿐 아니라 내적 변화도 계속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잘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변화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족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을 주님께 맞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주님의 평화에, 주님께 대한 믿음과 해방에 맞춥니다. 이런 분명한 기준에서 잘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짧지만 강력한 내용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와 같다고 하시지요. 소비를 촉구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명품과 같은 귀하고 비싼 물건에 욕심을 내어도 괜찮다고 하시는 말씀도 아닙니다. 사실 비윤리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종이 주인의 밭에서 일하다가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물을 주인에게 갖다줘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던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주인에게도 또 경찰에게도 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절대 윤리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와 같으므로, 이 가치를 아는 사람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전혀 관심이 없었어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데 어떻게 외면하겠습니까? 그 가치를 나의 것으로 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며, 반드시 가야 할 곳입니다. 남의 이목을 신경 쓰고, 체면을 따질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변화입니다. 하늘 나라를 최고로 여기는 마음의 변화가 가장 필요할 때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어온 이들이 보통 사람과 달랐던 점은 지성이나 힘 또는 높은 경지의 사상도 아니며 오직 보다 원대한 야망, 그 하나뿐이었다.

- 오리아나 팔라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생명을 버려도 괜찮을 행복이 딱 하나 있다.

 

오늘 복음은 밭에 묻힌 보물, 값진 진주의 보물 비유 말씀입니다. 결론은 하느님 나라를 발견한 이들은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판다는 내용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고서는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하늘 나라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자칫 이러한 신앙이 ‘허무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 세상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으니 신앙으로 하늘 나라만 차지하자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이 세상에서 어떤 목표를 위해 고생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 흐르는 대로 바람 따라 살다가 천국에만 가면 되지 이 세상 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낙관적 허무주의입니다. 

낙관적 허무주의의 대표적인 영화가 ‘에브리씽 에비리웨어 올 앳 원스’입니다.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 여인이 다중 우주에 존재하는 자신과 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며 ‘왜 사나?’를 묵상하는 우리 모두의 처지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다중 우주에는 자신의 선택이 달랐으면 살게 될 인생들이 있습니다. 훨씬 유명하고 부자이고 꿈을 이룬 인생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두가 다 문제를 안고 있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인생은 어떻게 살던 허무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허무주의에 눈알 하나를 이마에 달아줍니다. 여기서 나와 함께 하는 남편, 자녀, 부모와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신앙도 이런 일상의 허무에 눈알 하나 달아주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허무한 인생, 곧 사라져버릴 인생에서 결국 우리는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는 눈알 하나를 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저 즐기며 사랑하며 행복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그런 삶의 태도를 동조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재능으로 교회를 위해 많은 성화를 그렸던 카라바지오를 생각해봅시다. 그는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에너지는 이 세상을 즐기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어차피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기에 이 세상 것들은 즐기고 버리면 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그의 삶은 타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술과 돈과 여자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의 가치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하늘 나라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의 가치를 안다면 나의 에너지를 이 세상 것을 위해 쓸 수 없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신앙인이 된 것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 다니다가 용서를 위해 교황님께 다윗과 골리앗 그림을 그려서 돌아올 때였습니다. 이때는 정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것 하나만 생각했습니다. 그때 자기 에너지를 용서받는 것 외에 다른 것에 쏟을 수 없었습니다. 

유튜브 ‘우와한 비디오’에 ‘주인을 다시 만나기 위한 9일간의 긴 여정, 돌아온 진돗개 별이’란 사연이 있습니다. 일상 고양시에서 파주시까지 21km가 되는 길을 냄새만 맡으며 집을 찾아온 진돗개 별이 사연입니다. 이 과정에서 굶어서 영양실조가 걸렸고 얼굴에 큰 상처도 났습니다. 그런데도 집까지 돌아온 별이를 보며 주인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이것이 밭에 묻힌 보물을 찾아낸 사람의 마음입니다. 허무주의는 없습니다. 보물을 찾으면 마치 엄마 찾아 삼만리를 가는 사람처럼 그것을 위해 에너지를 쏟지 않는 모든 것은 용납할 수 없게 됩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에너지를 그 하나의 성공을 위해 쏟은 사람들입니다. 

만약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모습을 몰래 찍어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아이들은 어차피 부모님이 우리를 먹여주실 것이니 고생할 필요 없이 즐기며 살면 된다고 여기게 될까요?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것에 대해 부모님 뜻을 따라주기 위해 자신도 피 흘리고 싶은 열정이 생길 것입니다. 바로 부모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는 것, 이것이 아이들이 찾아야 할 밭에 묻힌 보물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늘 나라를 위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선교를 위해 피를 흘리지 않으면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없다는 뜻이지, 다 마련되어 있으니 어차피 지나갈 세상 그냥 집착 없이 편안하게 즐기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재능이나 재물, 모든 에너지가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모든 에너지를 하늘 나라만을 위해 쏟아부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이유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자녀의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진정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고 합니까? 그러면 하늘 나라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사랑과 당신 뜻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40)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프란치스칸 운동회 날

 

어제로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마치며 미사와 나눔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하루의 나눔뿐 아니라 행진 전체를 아우르는 나눔을 했는데 나눔 중에 한 분이 당신의 봉사 중독에 관해 얘기했고 저는 저의 포르치운쿨라 행진 중독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제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포르치운쿨라 행진은 포르치운쿨라 축일을 앞둔 행진뿐 아니라 월 피정을 걷는 피정으로 하는 것이나 일상에서 가능하면 걷는 것까지 저의 모든 삶에 배어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포르치운쿨라 행진의 진정한 의미는 걷는 것 그 자체가 아니지요. 그것은 원천을 찾아가는 것이요 본래의 우리 삶을 찾아가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원천을 찾아가는 것은 프란치스코에게 돌아가는 것이요, 프란치스코가 처음 받은 그 은사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가 원천에서 벗어나 있거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프란치스코의 원천에서 벗어나 있다면 잃었던 아들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이 회심하고 아버지께 돌아가듯, 우리의 사부인 프란치스코에게 돌아가야 하고, 그래서 포르치운쿨라 축일과 행진의 의미는 회심과 회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천에서 벗어나지 않고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도 행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방의 차원입니다. 이빨을 뽑기 위해 의사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뽑지 않기 위해 의사에게 가듯 프란치스코가 처음 받은 은사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그 은사를 지금 우리 안에서 되살리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올림픽 성화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불붙이듯 프란치스칸 은사의 불을 포르치운쿨라 성당에서 다시 불붙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 차원이기도 하지만 공동체 차원이고 그래서 운동이어야 합니다.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프란치스코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이번 포르치운쿨라 행진에 저의 수련자들도 참여했습니다. 그중 한 형제가 걷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고 그래서 자연히 뒤처지게 되었는데 제가 그 형제를 앞세우고 갔습니다. 

그때 다른 행진자들이 추월하여 가고 그래서 그 형제가 다시 뒤처지게 되었을 때 우리 행진의 의미를 제가 다시 상기시켰습니다. 

우리에게는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 혼자 빨리 가는 것보다 느려도 같이 가는 것을 선택한 우리이고, 그것은 이 길이 같이 가야만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뭐 이런 내용이었지요. 

사실 가깝고 쉬운 길은 혼자 가는 것이 편하고 빨리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멀고 힘든 길은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내고 엄두를 내 출발했더라도 중도에 그만둘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고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고, 웬만큼 독종이 아니면 혼자 갈 수 없는 길이고 자주 길도 잃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가야 하고 그래서 프란치스칸 운동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이 축일이 프란치스칸 운동회 날이 되기를 비는 저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우리의 보물은 어떠하십니까? 정성(精誠)이 곧 보물(寶物)입니다. 정성을 쏟는 그것이 우리들의 보물입니다. 정성이 가장 복된 보물의 길입니다. 정성은 십자가처럼 보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정성이라는 스승이 있습니다. 언제나 최고의 정성으로 최고의 기쁨 최상의 사랑을 만나게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가장 좋으신 하느님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가장 값진 보물의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소중하고 귀하디귀한 우리의 보물 우리의 사랑 우리의 마음입니다. 함부로 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랑입니다. 마음 밖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구하는 사랑의 참된 가치입니다. 가치있는 삶이 보물의 삶이며 진심어린 마음의 삶입니다. 우리자신이 바로 하느님을 닮은 보물이라는 것을 잊고 삽니다. 보물의 길로 안내하는 복음입니다. 

복음을 통하여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새로운 시작의 마음이 모든 것을 다 팔아 밭을 사는 마음입니다. 회개와 십자가는 가장 좋은 보물입니다. 새로운 용기와 희망으로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는 하느님의 빛 보물의 여정입니다. 보물의 발걸음으로 한 걸음 힘차게 내딛는 복음의 빛나는 오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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