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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8/04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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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복된 요한 마리아 사제에게 놀라운 열정으로 양 떼를 보살피게 하셨으니 그의 모범과 전구로 저희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많은 형제들을 얻어 그들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2023년 8월 4일 (금)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8월 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마태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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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레위기 23,1.4-11.15-16.27.34ㄴ-37)
    너희는 주님의 축일들에 거룩한 모임을 소집해야 한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3,54-58)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8월 4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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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시다. 바로 이 말씀이 너희에게 전해진 복음이다.

 

 

마태오 복음
13장 54-58절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4일 (금)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상호 요한마리아비안네 신부 집전

 

📌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소개 00:05

📌 교황님 8월 기도지향 01:26

📌 미사시작 01:41

📌 강론시작 09:10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4일 (금)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전두병 요아킴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14

📌 강론시작 16:57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4일 (금)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4:42

📌 강론시작 13:42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4일 (금)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 성체조배 0:02:34

📌 미사시작 1:03:44

📌 강론시작 1:15:1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믿음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때때로 하느님의 좋은 제안에도 저항하는 이상한 충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오늘 복음에서도 발견합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위대한 예언자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목수의 아들이라고 규정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들을 일으켜 주실 때조차 우리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저항하기도 합니다. 또한 특별하거나 먼 곳에서 놀라운 일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까운 것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놀랄 만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매우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집 창문 너머나 집 안에도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계신 주님께 어떤 마음을 지녔습니까? 우리가 크거나 놀랍고 기이한 일에만 시선을 둔다면 어디에서 주님을 뵙겠습니까? 

고요히 그분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에서, 부족한 우리이지만 늘 접할 수 있는 성사들 안에서, 가난한 현실 속에서 그리고 죄인들 가운데에서 우리는 인자하신 주님을 뵐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주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나자렛 사람들과 달리, 오늘 하루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고 사는 방식을 생각하여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새로 마련한 상점이나 공장 또는 사무실을 축복하는 예식 가운데 들려주는 말씀(마르 6,1-3)과 병행 구절이기도 합니다. 언뜻 듣기에 오늘 복음 말씀은 축복 예식에 잘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말씀을 축복을 청하는 좋은 날 우리에게 전하여 주는지 곰곰이 생각하여 볼 일입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놀라운 기적이 아니라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이고, 그 믿음의 눈으로 우리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려는 삶의 태도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떻게든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믿음의 삶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한겨울에 길고양이가 불쌍하다며 물과 먹이를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길고양이가 너무 많다면서 학대하고 죽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부모는 거리의 환경미화원을 가리키며 아이한테 저분 덕분에 깨끗이 산다고 말하고, 어떤 부모는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말합니다. 돈이 많아도 티 내지 않고 겸손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부자도 아니면서 돈 자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러한 차이를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또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자기의 마음이 끌리는 모습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름을 각자 가지고 있기에 더 나은 가치를 찾으면서 살 수 있는 것도 될 것입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 부정하기만 하면 함께 사는 방법이 사라지고 맙니다. 
 
나와 다름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은 혼자서 여행을 가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하고도 말하지 말고 딱 일주일만 지내보십시오. 얼마나 입이 근질근질 해지는지 모릅니다. 평소 과묵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혼자만의 삶이 그렇게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결국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스스로 외로움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특히 주님과도 함께해야 합니다. 주님 없이 우리는 외로움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주님과 함께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합니다.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믿음이 생기지 않아서, 아직은 더 세상의 것에 집중할 시간이라며….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도 함께할 수 없는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목수라는 천한 직업을 가진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어렸을 때 성경 공부에 전념하지도 않았고, 율법학자도 아니었기에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라면서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으니 당연히 함께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함께하지 못하는 곳에서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십니다. 
 
함께하길 바라는 주님의 뜻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혼자 살 수 없는 우리를 위해 함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도 함께할 수 없는 이유를 찾겠습니까? 주님과도 함께해야 하며, 나의 이웃과도 함께해야 합니다. 나의 뜻과 맞지 않다고 해서 거부하는 삶이 아닌, 어떻게든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어느 항구로 향하는지 모르는 선장에게는 어떤 바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세네카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기도를 믿지 않으면 그리스도도 믿지 않는 것

 

오늘 복음에서 나자렛 사람들은 확 달라져 오신 예수님을 보고 놀랍니다. 그들은 서로 이렇게 묻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어디서 얻으셨는지 잘 압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는 어디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코로나도 그 성장을 꺾지 못한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국민 가게라 불리는 ‘다이소’입니다. 보통 다이소는 일본 것이라고 여기고 팔리지 않는 싸구려 제품을 파는 곳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1,000원짜리로 질 좋은 제품을 팔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이소가 전국 모든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을 합친 숫자보다 훨씬 많습니다. 1,500여 매장에서 연 매출 3조 원에 달하는 성과를 냅니다. 1,000~5,000원짜리를 팔아서 그정도 매출이 나올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1997년 천호동에 1호점을 열 때, 한국에서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생각이 팽배했고 ‘1,000원짜리 팔아서 뭐가 남겠어!’라는 생각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50대 이상보다 2330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라이프스타일숍이 되었습니다. 저도 ‘1,000원짜리가 뭐 품질이 좋겠어?’라고 생각했다가 실제로 방문해보고는 깜짝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 없는 게 없고 가격에 비해 품질이 너무 좋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이소 신화를 이룩한 박정부 회장의 그러한 지혜와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지혜와 힘은 자신 안에서 샘솟지 못합니다. 공부하지 않고 저절로 똑똑해지는 사람 없고 음식을 먹지 않고 에너지가 솟는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런 지혜와 힘은 외부로부터 온 것입니다. 

박정부 회장은 45세에 회사를 사퇴하고 먹고살 일이 막연하여 무역업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일본 100엔숍을 접하게 됩니다. 미국엔 1달러숍이 있고 유럽에도 그러한 회사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일본 다이소에 납품하며 배운 것과 유럽을 다니며 공부한 것들을 바탕으로 10년을 준비하여 천호동 1호점을 엽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가게가 될 리가 없다고, 특별히 서울 잘 사는 동네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라고 말렸지만, 반응은 의외로 폭발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용기는 오히려 잘사는 나라에서 더 건전한 소비를 한다는 지혜를 획득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입니다. 

이런 지혜와 힘은 분명 이미 그러한 사업으로 성공하고 있는 선진국의 상황을 보고 믿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적은 믿음의 힘으로 이뤄집니다. 믿음도 저절로 생겨나지 않고 누군가의 믿음으로부터 옵니다. 박 회장의 지혜와 기적 같은 힘은 바로 외국의 성공을 믿고 잘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그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노력한 결과가 지금의 다이소를 만들었습니다. 

박정부 회장이 한국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역업을 하며 외국의 상황을 공부하고 배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만 하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고향에만 갇혀 있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도 배우고 공부하셨습니다. 그런 시간을 무엇이라 할까요?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지혜와 힘을 얻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바로 이 기도의 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쇄국정책으로 잘 살 수 있을까요? 기도는 하느님의 지혜와 힘을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기도의 힘을 믿지 못하면 그리스도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기도의 힘을 믿을 수 있어야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마더 데레사에게 한 수녀님이 먹을 것이 떨어졌다고 할 때 “그럼 가서 성체 앞에서 기도하세요”라고 하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러자 정말 학교 파업으로 남게 된 부식을 수녀원에 가져온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과 기도를 믿는 것은 하나입니다. 기도를 통해 모든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을 수 있음을 믿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기도하면 다 깨달을 수 있고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음을 믿읍시다. 기도를 믿음과 주님을 믿음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한 악령을 쫓아내시고 의아해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합니다. 고향에서는 예언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향에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하느님의 사람이 아니라 그저 고향 사람의 딸이나 아들이요 친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초등학교 동창이 수녀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저의 첫마디는 ‘걔가 수녀가 되었어?’였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안이 신자도 아니었고, 아주 평범했던 친구가 수녀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저희 수도회의 관구장이 되고 수녀님은 그 수녀원의 원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둘의 관계를 알고 있는 저의 형제들과 그곳 수녀님들을 의식하여 될 수 있는 대로 관계를 피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수녀님을 하느님께서 수녀로 부르시고 하느님께서 원장 수녀로 임명하셨는데 나는 여전히 인간적 관계인 동창으로만 보고 있구나. 

그것을 깨달은 순간 이런 인간적인 관점 때문에 얼마나 관계가 부자연스럽고 해가 많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즉시 하느님 안에서 그분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수녀님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여러 가지 은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그 수녀님을 통해서 하시는 하느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지 않고 믿음으로 볼 때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제가 자주 얘기하듯 내 뜻대로 안 될 때 인간적으로 보면 그것이 내 탓이거나 네 탓이라고 인간적으로 이유를 찾지만, 믿음으로 보면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거나 거기에 하느님의 뜻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적으로 보면 아내가 내가 선택한 짝이거나 장인의 딸일 뿐이지만, 믿음으로 보면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짝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혜와 힘을 넘어서는 지혜와 힘을 볼 때 인간적으로 보면 오늘 주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지만, 믿음으로 보면 즉시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믿지만,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겁니다. 

해 뜨는 것을 자연 현상으로만 보고 하느님의 현존을 보지 못하고, 꽃을 꽃으로만 보고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로 보지 못하며, 세속화된 사제에게서 죄만 보고 하느님의 사제임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모든 것을 볼 때 그 안에서 하느님을 봅니다. 바위를 볼 때 바위이신 하느님을 보고, 사제를 볼 때 하느님의 사제를 봅니다. 

프란치스코는 말합니다. 

"내가 솔로몬이 가졌던 그 정도의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고, 이 세상의 가엾은 사제들을 만난다 해도, 그들을 마치 나의 주인인 듯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존경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 나는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보고, 또 그들이 나의 주인이므로 그들 안에서 죄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보는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지 않으며,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보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삶을 직시하는 기본적인 시각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보고 만나는 데에서는 가리움 없는 시각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에서 치러야만 하는 십자가의 고통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현실은 무한한 실천의 장(場)이 됩니다 하루의 실천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변화와 발전을 위한 실행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마운 신앙은 나 중심으로 살아온 습관을 바꾸어 놓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 중심의 실행이 따릅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인생 전환의 계기가 됩니다.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위하여 마음을 쏟아붓는 마음이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못마땅하게 여겨 하느님의 뜻까지도 함부로 못박는 우리들의 교만입니다. 십자가를 따로 떼어놓고 보려는 우리의 인식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입니다. 먼 길을 찾아오는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간절함으로 바라보았던 비안네 사제의 삶이었습니다. 진실함과 간절함은 자그만한 것의 실행으로 시작됩니다. 

떠들썩한 구호가 아닌 차분한 실천으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참된 기적입니다. 그래서 실천이 기적이며 실천이 희망이며 실천이 참된 서로의 존중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진리의 실천으로 아름답고 더욱 향기롭습니다. 앎보다 실행이 지식보다 양심이 더 중요합니다. 가장 좋은 사랑을 나누는 오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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