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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7/24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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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는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리이다. 주님, 좋으신 당신 이름 찬송하리이다.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주님의 은총을 인자로이 더해 주시어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언제나 깨어 주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게 하소서.

 

2023년 7월 24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7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탈출기 성경 말씀 카드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탈출 14,14)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탈출 14,14) 탈출기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탈출기 14,5-18)
    내가 파라오를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면,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2,38-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7월 24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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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마태오 복음
12장 38-42절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38 
그때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40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41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7월 24일 (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병웅 베드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8:32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7월 24일 (월)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38

📌 강론시작 17:30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7월 24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믿음은 우리를 구원한다.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청하는 사람들은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입니다. 그들은 복음서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대표적인 반대자들입니다.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예수님께 표징을 청합니다. 그들의 말은 그저 놀라운 일을, 기적을 보고 싶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오늘 복음은 기적이나 표징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곰곰이 헤아려 보게 합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처럼 표징이 믿음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기적이나 표징은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그것을 체험한 이들은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실 표징 또한 요나와 비교됩니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마지막이자 가장 큰 표징은 죽음과 부활입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그 어떤 표징과 견줄 수 없을 만큼 중요합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은 구원을 위한 하느님 업적의 절정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예수님 사건의 구경꾼에 머물지 않고 그 사건에 동참하도록 초대합니다. 신앙인의 참된 모습은 그저 경탄하며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우리에게 가장 큰 희망입니다. 비록 그것이 일상생활에서 감각적으로 쉽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믿음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부활에 참여하고 구원을 받는 것보다 더 큰 표징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스스로에게 감탄할 수 있어야 한다.

 

소시오패스라고 들어봤을 것입니다. 소시오패스는 타인의 모든 것을 다 빨아먹고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부류의 인간이라고 하더군요. 이 소시오패스의 숫자는 적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글쎄 자그마치 전체 인류의 4%나 된다고 된다고 하니, 참 많은 사람이 소시오패스를 만나 고통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소시오패스를 치료하기가 특히 어려워서, 이들을 직접 치료하기보다는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데 신경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소시오패스에게 피해를 볼까요? 
 
피해 보는 사람은 대부분 능력이 좋고, 성실하며, 착하기까지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소시오패스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었습니다. 스스로에게 감탄할 것이 없는 사람이 주로 소시오패스에게 이용당한다고 합니다. 소시오패스는 성실한 사람들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기가 막히게 이용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정신과 의사는 스스로에게 감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래야 남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자기가 자기에게 감탄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나’를 감탄하며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커질수록 그 감탄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힘차게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도 어쩌면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자기는 맞고 남은 틀렸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향해서도 자기들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표징에 대한 평가를 자기들이 하려고 합니다. 그토록 많은 표징을 보여주었음에도 자기들만을 위한 표징을 드러내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의 이런 억지 요청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물리치셨습니까?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씀하시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런 위선자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주님을 드러내는 수밖에 없기에 미리 당신의 신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사랑의 길로 다시 돌아오길 눈물 흘리며 기다리시는 주님이셨습니다. 
 
이런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만이 스스로에게 감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악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으면서 지금을 잘 살 수 있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나는 신발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 데일 카네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지혜로운 사람들이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것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라고 야단치십니다. ‘지혜’를 배우지 않으려고 하며 표징부터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란 마치 미사에서 말씀의 전례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표징은 성찬의 전례입니다. 성체를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은 도외시하며 성체 안에서 예수님만 만나게 해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먼저 왜 하느님께서 성체가 되셔야 했는지를 이해해야 표징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배우려고 하지도 않으며 표징만 요구하는 세대는 그래서 절개 없고 악한 세대입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들은 행복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압니다. 

누구든 자신 안에 가진 것으로 다른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없으면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지혜는 표징을 인식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표징이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주는 선물인데, 그 선물을 인식하려면 그 사람 자체가 자신을 죽이고 부활하는 삶이 참 행복이라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만이 표징을 알아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들일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성체 안에서 표징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일상은 죽음과 부활의 연속입니다. 그것이 행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1조 이상의 자수성가한 초대형 부자 21명의 공통된 습관 다섯 가지가 『억만장자 시크릿』에 나와 있습니다. 왜 하늘은 이들에게 그러한 축복을 주었을까요? 

그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매일 하는 것은 일찍 일어나기, 운동(건강 유지), 독서, 명상, 규율 만들기입니다. 다른 책들도 다 이와 대동소이합니다. 더 들어가는 것이 있다면 이웃에 대한 배려, 혹은 선행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매일 자신을 죽이고 새로 태어나는 일을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어리석은 이들은 죽으려 하지 않습니다. 발전을 거부합니다. 변하지 않으며 행복은 하려 합니다. 뱀의 소굴에서 천국을 느끼겠다는 심산입니다. 운동하는 노력이 없다면 건강할 수 없습니다. 운동은 자신을 죽이는 일입니다.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시대에 상관없이 30%는 꾸준히 운동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면 지혜로운 자들은 규칙적인 운동을 합니다. 혹은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고통스럽고 시간 낭비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부활임을 압니다. 이런 사람들만이 같은 계열의 정점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절개 없고 악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가진 것으로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죽음과 부활을 살고 있지 않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매일 기도를 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선행을 해보십시오. 십자가가 완전한 표징으로 보이고 믿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것에 어느 정도 중독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것을 찾게 됩니다. 

폴란드의 억만장자 ‘미하일 솔로포프’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먼저 억지로 싫어하는 일부터 한다고 합니다. 자신은 원래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가 때문에 억지로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체계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날마다 제 안에 있는 게으름뱅이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 게으름뱅이는 계속 이렇게 투덜댑니다. ‘오늘은 너무 늦게 일어난 것 같아. 바빠서 시간이 없어. 몸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저는 그런 자신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안 돼. 너 자신을 속이지 마. 넌 그냥 게으름을 피우려는 것뿐이야.’ 그리고 운동을 하러 갑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결단력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러한 지혜를 지닌 사람들은 벌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을 준비가 된 이들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더라도 이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자신처럼 행복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님의 계명을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이 100달러로 석 달 안에 100만 달러를 버는 내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버리고 10만 원으로 시작하여 석 달 안에 어떤 사람은 10억, 어떤 사람은 100억 가까지 불리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무수한 어려움을 겪고 왜 이런 챌린지를 하는지 눈물까지 흘립니다. 그러나 이것을 보는 이들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세상 탓을 하며 불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건 그 사람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온갖 핑계를 댑니다. 그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고생을 하는데도 우리는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성체를 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에서 지혜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면 성체를 영해도 그 안에서 예수님을 볼 눈을 가지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표징은 ‘요나’의 표징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속에서 사흘을 지내다가 나와 니네베 사람들에게 설교했더니 그들은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땅속에서 사흘을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는데도 대부분 사람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표징은 보여줄 수 없습니다. 

표징은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를 거부하면 표징은 알아볼 수 없습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방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찾았듯, 우리도 이 세상에서 지혜를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은 지혜를 갖게 하고 지혜는 진리를 차지하게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억수로 내리는 하늘의 비를 보며

 

오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주님께서 표징을 일으켜 보여주시기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 우리 시대를 성찰해봤습니다. 지금 밖은 비가 억수로 내리고 있습니다. 하늘의 비,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이지요. 이 비를 보면서 우리는 비 걱정 곧 수해 걱정이나 하고 있습니다. 

이 비를 내리는 하늘을 보지 않습니다. 이 비를 내리는 하늘의 뜻을 보지 않고 회개하라는 비라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처럼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비가 뚝 그치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똑같은 말씀, 곧 하늘에서 내리는 이 비 외에 다른 표징은 없다고 하실 겁니다. 

우리의 요구를 하늘이 들어주기를 바라지 말고, 하늘의 이치와 하늘의 뜻을 우리가 오히려 알아야 한다고, 이 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뜻은 보지 못하면서 다른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들어주실 수 없다고 말씀하실 겁니다. 그리고 하늘의 표징을 요구하지 말고, 너희가 회개하라고 또 말씀하실 겁니다. 

폭우와 기상 이변을 멈추게 해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폭우와 기상 이변을 자초하는 우리의 죄악들, 모든 것을 쓰레기로 만드는 과소비,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편의주의,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수없는 욕망을 회개하라고 말입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회개를 만드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회개는먼저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말씀만 있고 회개가 없는 우리들 삶입니다. 절실한 고백의 시작은 언제나 절실한 우리의 회개입니다. 말씀을 더욱 살아있게 하는 우리의 회개입니다. 회개는 여전히 계셨던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우리 삶으로 되찾아 기쁘게 만나는 것입니다. 

회개의 실격은 원칙과 신념이 사라진 지조의 실격입니다. 역겨운 삶의 어리석음을 포기하듯 우리가 하느님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 앞에서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회개입니다. 뉘우침이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진정한 사람의 행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변함없으신 마음을 지조없는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회개입니다. 나쁜 마음을 버리고 똑바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만들고 행복을 만드시는 요나보다 솔로몬보다 더 크신 예수님의 절실한 말씀을 듣습니다. 몸과 말과 생각과 마음을 빛이신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악한 짓들이 선행의 실천으로 악행을 극복하는 회개의 맑은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회개는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길입니다. 회개가 있기에 사람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나의 입장이 아닌 주님의 입장에서 만나게되는 지극한 사랑 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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