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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7/22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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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느님, 외아드님께서 가장 먼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부활의 기쁨을 전하라 하셨으니 그의 전구로 저희도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하느님의 영광 속에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를 뵈옵게 하소서.

 

2023년 7월 22일 (토)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7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요한복음 성경 말씀 카드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요한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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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7월 22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말하여라, 마리아, 길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무덤, 부활하신 그분 영광 나는 보았네.

 

 

요한 복음
20장 1-2.11-18절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7월 22일 (토)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우경민 헨리코 신부 집전

 

📌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소개 00:05

📌 미사시작 01:13

📌 강론시작 09:05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7월 22일 (토)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이철규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6:46

📌 강론시작 16:10

 

 

 

팔로티회 매일미사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7월 22일 (토)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6:45

📌 미사시작 1:06:00

📌 강론시작 1:14:5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며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

 

마리아 막달레나는 모든 복음서가 공통되게 말하는 부활의 첫 증인입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목격한 증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특히 당시의 사회 안에서 여인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으로 들여다본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복음은 제자들보다 먼저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무덤은 비어 있었음을, 곧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린 이도 그라고 기록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묻습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요한 복음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예수님께서 비슷하게 질문하시는 내용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첫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에서 당신을 따라오는 두 제자에게 물으십니다. “무엇을 찾느냐?”(1,38) 같은 형식의 질문이 다시 나오는 것은 올리브 동산에서 잡혀가실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경비병들에게 두 번이나 물으십니다. “누구를 찾느냐?” 그리고 마지막은 오늘 복음에서 보는 것처럼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하시는 질문입니다. 

“누구를 찾느냐?”

무엇을 찾는지, 다시 말하여 무엇을 바라는지 물으시는 예수님의 첫 질문은 복음서의 후반에 ‘누구’를 찾는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으로 바뀝니다. 짧은 형태의 질문이지만 이로써 요한 복음서는 독자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 

복음은 다양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이제 복음은 우리가 관찰자로 남지 않고 그 이야기 안에 함께하도록 초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는 과연 주님께 맞추고 있을까요?

 

5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해오신 노부부가 있습니다. 기자가 할머니께 여쭤보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사신 걸 보면 할아버지께서 좋은 분이셔서 그렇죠?” 
 
그러자 강하게 손사래를 치시며 절대로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이렇게 나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사고도 많이 치고, 얼마나 이기적인지 지금도 자기밖에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기자는 “그렇다면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할아버지를 선택하지 않으시겠네요.”라고 물었습니다. 잠시 고민하시던 할머니께서는 뜻밖에도 다시 태어나도 할아버지를 선택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사람한테 맞추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겨우 이렇게 한 명을 맞췄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또 맞출 수가 있겠어?” 
 
좋은 사람과만 같이 살 수 있을까요? 어쩌면 맞춰 사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참 좋은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좋다고 해서 계속 주님과만 함께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바쁘다고, 때로는 피곤하다고, 또 때로는 어쩔 수 없다면서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먼저라면서 주님께 맞추는 사람은 어떨까요? 아주 피치 못할 사정이 없고서는 늘 주님이 먼저가 됩니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가 주님의 좋은 점만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좋은 점 찾기가 아니라, 주님과 맞추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주님께 맞추는 데 집중할수록 지금을 훨씬 더 잘 살 수가 있습니다. 
 
주님과 맞추는 데 온 힘을 쏟은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이십니다. 사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성녀께서는 주님과 맞추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을 어두울 때 찾아갑니다.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가 다녀간 뒤에도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 맞추려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가장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주님을 향한 열정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주님께 맞추려는 그녀의 노력은 계속해서 주님 뜻을 실천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제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사명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께 맞추고 있을까요?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또 모범을 보여주시는데, 자기의 사랑을 보면 과연 주님과 맞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 맞추는 사랑의 삶이 필요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말이지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많은 사람이 기회가 온 것을 알지 못한다. 기회를 잡는 유일한 방법은 날마다 유심히 살피는 것이다.

- 앨버트 E. 더닝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포기하지 않는 그리고 행동하는

 

갈수록 위대해 보이고, 갈수록 사랑하게 되고, 사랑을 넘어 존경하게 되는 성인 중의 한 분이 막달레나 성녀입니다. 

복음의 여인 중에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막달레나 성녀는 두 분을 합친 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막달레나 성녀처럼 완벽하게 주님을 사랑한 분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다고 바오로 사도가 얘기한 바 있는데 막달레나 성녀가 바로 이런 사랑의 증인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위험입니까? 칼입니까?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하느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막달레나 성녀는 일곱 마귀에 들렸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출된 바 있습니다. 일곱 마귀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그를 갈라놓거나 떼어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았기에 그의 사랑 또한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포기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 무리에 들었으며, 그래서 죽음도 삶도 주님께 대한 그의 사랑을 막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리아처럼 주님 사랑에 머물러있지만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언니 마르타처럼 행동주의자였습니다. 

오늘 대체 독서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라고 바오로 사도가 얘기하는데 이 말씀대로 성녀는 다그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주님 발치에 가만 있을 수 없었고, 그래서 주님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요 증거자로 분주히 움직입니다. 

먼저 사도들에게 가 주님 부활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녀를 “사도들을 위한 사도”로 칭송합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주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만 확인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찾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한 것에 비해 성녀는 오늘 아가의 여인처럼 사랑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만났습니다. 이런 성녀를 오늘 감사송은 아름답게 노래하는데,성녀는 진정 이런 칭송을 받을 만한 분이십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주님을 뵈었으며, 무덤에 묻히신 주님을 찾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경배하였나이다.” 

칭송만 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칭송한다는 것은 닮겠다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닮아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여인아, 왜 우느냐?

 

처절하게 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불타는 울음이 있습니다. 뜨거운 울음은 또 다른 뜨거운 기억이 됩니다. 돌아가는 것과 머무는 것 사이에 우리의 만남이 있습니다. 만남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마리아 막달레나의 눈물을 더욱 영롱하게 만듭니다. 주님께로 가는 여정에는 간절한 눈물의 여정이 있습니다. 

간절히 믿으면 간절한 사랑은 부활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이름이 다시 사랑으로 불리어집니다. 비로소 사랑이 사랑으로 깨어납니다. 간절한 사랑이 간절한 마음의 문을 활짝 엽니다. 사랑은 설명이 아닌 마음과 마음의 마주잡은 기도입니다. 울음은 절실한 기도가 됩니다. 하느님 사랑이 필요한 우리들입니다. 무덤에서도 다시 시작되는 사랑입니다. 

마지막 사랑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사랑의 기쁨입니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하느님 사랑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당신 사랑으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의 사랑도 이와 같이 보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쁜 사랑이 기쁜 소식입니다. 꼭 죽으셔야만 했던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의 눈물에서 다시 부활하는 부활의 아침입니다. 참된 사랑은 순수합니다. 사랑이 사랑을 다시 일으킵니다. 사랑은 참된 부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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