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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7/21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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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당신 영광 드러날 때 흡족하리이다.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3년 7월 21일 (금)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7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시편 성경 말씀 카드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시편 116,13)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시편 116,13) 시편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탈출기 11,10─12,14)
    저녁 어스름에 새끼 양을 잡아라.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2,1-8)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7월 21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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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마태오 복음
12장 1-8절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7월 21일 (금)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이정훈 사도 요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8:15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7월 21일 (금)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진슬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6:14

📌 강론시작 15:06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7월 21일 (금)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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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7월 21일 (금)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하면 안 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유다교의 안식일에 관한 규정은 그 수가 많기도 하거니와 매우 철저하였습니다. 그만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유다인들의 종교 생활에서 하느님의 창조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복음서는 주로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의 갈등을 안식일 규정을 통하여 보여 줍니다.

예수님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먹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와 관련된 규정은 신명기 23장 26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경우, 손으로 이삭을 자를 수는 있지만 이웃의 곡식에 낫을 대서는 안 된다.” 

여기에 안식일에 대한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후대의 율법을 해설한 문헌에서는 안식일에 이렇게 하는 것을 금합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다윗과 그 일행에 관한 이야기는 사무엘기 상권 21장 1-7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안식일에 바치는 제물에 관한 것은 민수기 28장 9-10절에 나옵니다. 안식일이지만 사제들은 제사를 바칩니다.

예수님께서 예로 드신 것은 모두 ‘하면 안 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대조처럼 보입니다. 종교적인 규정들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을 정하여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규정들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본뜻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라는 말씀도 맥을 같이 합니다. 

안식일은 하느님의 창조를 기억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주간의 축제입니다. 규정을 따르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본뜻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개소리에 대하여

 

예전에 방송 프로를 통해 알게 된 책이 있습니다. 책 제목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개소리에 대하여’(해리 G.프랭크퍼트) 
 
이 책에서 개소리를 영양가 없이 무작정 내뱉은 어른들의 말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개소리가 어떤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말입니다. 
 
“이게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자녀는 아직 어려서 잘 몰라.”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당신들 탓이라는 거 인정하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기 욕망을 솔직하면서도 품위 있게 말해야 한다고 하지요. 그러나 그 반대가 될 때가 참 많습니다. 자기 욕망을 꼭꼭 숨기려고만 합니다. 그럴싸한 말을 하고 있지만, 자기를 드러내려는 말뿐입니다. 결국 위와 같은 개소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개소리를 통해 자신이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끊어지고 맙니다. 서로가 상처가 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겸손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맨 앞자리가 아닌 맨 끝자리를,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닌 섬기는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개소리’보다 진정한 사랑이 담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말로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던 중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먹는 것을 가지고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안식일에 걷는 행위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물론 가벼운 산책 정도는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km 이상을 걸으면 율법을 어긴 것이 됩니다. 그래서 밀밭 사이를 걸었다는 것을 고발하는 줄 알았지만,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고 항의합니다. 율법을 확대하여 해석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밀 두 이삭 이상을 따면 추수가 되고, 손으로 이삭을 비볐다고 타작하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자기들은 옳고 예수님은 틀렸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율법을 확대해석했던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바리사이들의 이 말들은 분명히 ‘개소리’가 됩니다. 자기를 드러내려는 ‘개소리’입니다. 율법은 하느님의 법으로 사람을 잘 살게 하려는 것이지, 율법으로 사람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지금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함께하시는데 어떻게 이런 ‘개소리’를 남발할 수 있습니까? 
 
우리도 ‘개소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처와 아픔을 주는 말이 아닌, 희망과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대립하지 않고, 함께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길을 걸어가려면 자기가 어디로 걸어가는지 알아야 한다.

- 톨스토이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원한 안식을 누릴 이들은 이 세상부터 안식을 누린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밀 이삭을 뜯어 먹다가 바리사이들에게 들켜 비난당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태 12,7)라고 하시며,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8)라고도 하십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이 명확하게 안식일을 어기고 도둑질까지 하였는데 죄가 없다고 하실까요? 또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요? 

심선미 씨는 무당이었다가 하느님을 만나 회개한 사람입니다. 몸이 갑자기 아프고 자신 안에 신들이 들어 있음을 알았을 때 신내림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신들에게 맡기기로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져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들은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았고 학대하였으며 그녀는 결국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몰라 불안함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배를 탔을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반면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글렌 스턴스는 100달러(약 12만 원)와 고물 트럭 한 대만 가지고 90일 안에 100만 달러(약 12억 원)의 부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챌린지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동네에서 막일부터 시작하고 그것으로 축제 때 풍선을 팔고 그것으로 중고 자동차를 수리해서 팔고 그다음은 집을 사서 수리해서 팔아 그 이익 1억 원 정도로 언더독이라는 바비큐 브랜드를 런칭합니다. 그 마을에 커다란 바비큐 행사가 있다는 것을 기회로 잡아 1등을 하여 상표 가치를 높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가게 평가액은 75만 달러였습니다. 어쨌든 10만 원으로 석 달 만에 10억을 번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석 달 동안 월급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를 도와주는 이들은 최선을 다하면서도 왠지 모를 확신에 가득 차 있습니다. 자신을 고용한 글렌 스턴스라는 사람이 매우 친절하고 자신들을 존중해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확신에 찬 그의 행보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마음에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잡신들에게 끌려다니는 심선미 씨 마음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글렌 스턴스는 자신을 따르는 1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돈도 주지 못하고 고생만 시키지만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꼭 이 사업을 이뤄낼 수 있고 결국엔 그들을 행복하게 할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전이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안식 안에 머무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라는 배를 탔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어떻게 되나?’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을 따르는 이들은 그래서 이 세상에서부터 안식을 누립니다. 이것이 참 안식처를 찾는 방식입니다.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배에 절대 타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라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람을 살리는 일에 전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일만 한다면 우리는 그분 안에 머물기 때문에 구원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부터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하느님 창조사업에 뛰어든 이는 이미 자신을 그리스도께 봉헌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은 이미 그리스도의 안식 안에 있게 됩니다. 전쟁터에서 군인이 적군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 책임이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잘못된 나라를 선택한 것은 본인 책임이 될 수 있겠지만, 그 나라 안에서는 그런 사람은 영웅이 됩니다. 

우리도 하느님 창조사업에 뛰어든 이들은 이미 피 흘림, 곧 죽음을 향하고 있습니다(갈라 2,19-20 참조).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히브 4,9-10) 우리가 참 안식으로 가고 있음은 믿음으로 느끼는 평화의 감정으로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주님처럼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이 오늘 제게는 두 가지 차원에서 묵상하게 합니다. 

하나는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종이 아니라는 것이고, 안식일의 종이 아니라는 것은 안식일에 자유로운 것이라는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아들인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시니 사람의 아들인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차원입니다. 

먼저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기에 안식일에 자유롭다는 차원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자유롭다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안식일에 내 마음대로 한다는 뜻입니까? 

우리 인간이라면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면 당신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답게 또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안식일을 지내실 겁니다. 

무엇이 참 안식이고,,어떻게 해야 참으로 안식을 얻고 누릴 수 있는지 알고 지내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느님 안에 머무시는 것이 진정한 안식이라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안식을 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어제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다 당신에게 와서 안식을 얻으라는 말씀을 우리가 들었는데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을 오늘 이어서 듣는 이유가 주님처럼 사람의 아들인 우리도 이렇게 안식을 얻으라는 뜻일 겁니다. 

안식일에 쉬라는 것은 일을 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쉬라는 것이고,,일하지 않고 놀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쉼으로써 힘을 얻으라는 겁니다. 

두 번째로 주님처럼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차원을 보겠는데,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사람의 아들이 되어오시고, 계속하여 당신은 사람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십니다. 

그 뜻은 당신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으니 사람의 아들들인 우리는 당신처럼 되는 것, 곧 하느님의 아들이 되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안식일의 종이나 노예가 아닌 주인이라는 고귀한 정체성을 부여하시며, 고귀한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우리에게 촉구하심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으로 자기들은 유대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그렇게 중요한 안식일보다 우리가 더 소중하다고 높여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헛것으로 만들고 값없이 만들어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는 사람의 안식일입니다. 사람이 있어야 할 안식일의 자리에 오히려 사람이 없습니다. 안식일의 폭력이 사람을 향하는 무자비한 단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단죄는 일방적이고 단죄는 무책임하며 단죄는 지나친 착각이며 욕심입니다. 

어디까지가 안식일의 규정이고 어디서부터가 안식일의 규정이 아닌지를 묻게 됩니다. 하느님 앞에 안식일 규정집을 꺼내 내미는 어리석은 우리들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규정에 결코 끌려다니지 않으십니다. 단죄받지 않는 사람의 인식일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사랑을 빚어 만드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잘못된 삶 잘못된 심보를 고쳐나가시는 예수님의 안식일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안식일은 가짜입니다. 사람을 위한 안식일을 안고 안타까워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무성한 빈말과 무성한 단죄를 멈추고 자비를 실천하는 사랑의 날입니다. 안식일 앞에 우리의 오만을 내려놓습니다. 단죄만 있고 자비가 없습니다. 언제든 희생당해도 상관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악순환을 멈추는 안식일의 사랑입니다. 

손봐야 할 것은 안식일이 아니라 이용하고 버리는 몸쓸 우리들 마음입니다. 존재의 자유로움과 존재의 존중을 일깨워주는 안식일의 소중한 마음입니다. 자멸을 자초하는 오만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을 다시 만나는 오늘이라는 새로운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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