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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7/23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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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는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리이다. 주님, 좋으신 당신 이름 찬송하리이다.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주님의 은총을 인자로이 더해 주시어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언제나 깨어 주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게 하소서.

 

2023년 7월 23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7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6주일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마태 13,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마태 13,30)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지혜서 12,13.16-19)
    하느님께서는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 제2독서
    (로마서 8,26-27)
    성령께서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3,24-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7월 23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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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마태오 복음
13장 24-30절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24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7월 23일 (일)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민우 알베르토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06

📌 강론시작 16:09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7월 23일 (일)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5:58

📌 강론시작 16:18

 

 

 

팔로티회 매일미사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7월 23일 (일)
팔로티회 분당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1:05:40

📌 강론시작 1:15:3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회개를 위한 시간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가라지의 비유에 관한 예수님의 해설은 비유가 전하는 의미를 거의 모두 담고 있습니다. 비유는 이따금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지만 오늘 복음은 다르게 풀이하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어색할 만큼 가라지의 비유를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비유에서 하늘 나라는 씨를 뿌리는 사람과 비교됩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이시고, 하늘 나라의 신비는 그분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우리는 지금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는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가 밀이고 누가 가라지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유 속에서 예수님의 인내와 사랑을 찾아냅니다. 수확할 때까지, 세상의 종말이 올 때까지 가라지를 내버려 두는 것은,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인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분명히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겠지만 지금이 그때는 아닙니다.

비유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늘 나라의 특성을 말하여 줍니다. 하늘 나라는 무엇보다 인내와 사랑과 자비의 나라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회개를 위한 시간이고, 회개와 자비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회개는 하느님의 자비를 바탕으로 하고, 그분의 자비는 우리에게 회개의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이 시간은 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어집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과 이웃 안에서 자비를 실천하고 용서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는 어느 편에 붙어야 할까요?

 

요즘에는 체벌이 없어졌지만, 저 때만 해도 무서운 선생님께 체벌당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자율학습에 졸았다고 맞고, 반성적이 떨어졌다고 연대책임이라며 맞고, 수업 태도가 좋지 않다고 맞고, 때로는 예의 없다면서 맞는 일도 있었습니다. 체벌 도구도 다양해서 마대, 당구 큐 대, 아니면 두툼한 몽둥이 등이 쓰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하나 내겠습니다. 20명의 학생이 10대씩 맞는 상황입니다. 20명의 학생 중에서 가장 아프게 맞은 학생은 누구일까요? 
 
첫 번째 학생이 가장 아플 것 같습니다. 선생님 체력이 제일 좋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마지막에 맞은 아이가 제일 아프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자기 앞 19명의 맞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불안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나쁜 감정을 극대화하기에, 불안을 자기 안에서 치워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불안이 사라지는 순간은 나를 지켜 줄 커다란 힘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때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가 옆에 있으면 얼마나 자신 넘치는지 모릅니다. 평소보다 말도 잘하고,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합니다. 부모보다도 더 큰 힘을 가진 사람이 ‘나’를 지켜 준다면 어떨까요? 불안을 가질 이유가 없어질 것입니다. 

실제로 부모보다 더 큰 힘을 가지신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불안이 사라지고, 하고자 하는 용기와 의욕이 가득해질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센 주님을 잊어버립니다. 오히려 악이 더 힘센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를 오늘 복음의 가라지 비유에서 묵상하게 됩니다. 
 
우선 밀과 가라지는 모두 커서 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식별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구분이 되기 시작했을 때, 가라지가 보인 것입니다. 밭에 좋은 씨를 뿌렸기에 가라지가 있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주인은 원수가 했음을 알아챕니다. 종들은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라고 묻습니다. 주인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지요. 잡초의 생명력은 대단합니다. 즉, 밀보다 더 탄탄하게 더 넓게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밀이 뽑힐 수도 있습니다. 
 
가라지의 비유에서 지상에서 자라는 하느님 나라 공동체 안에는 인내로써 견뎌야 할 악의 씨앗이 뿌려져 있음을 상기시키고, 하느님 나라의 자녀들은 악마 졸개의 기세에 눌려 고생하지만 역시 하느님의 심판은 선인들의 편임을 확신케 합니다. 최후의 승자는 악마가 아닌 선인에게 돌아간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편에 붙어야 할까요? 가라지로 표현되는 악을 제거하지 않는다고 악의 힘이 하느님보다 센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계속 우리에게 당신을 믿고 따를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악의 유혹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철저히 하느님 편이 되어 ‘밀’의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나는 내가 결국 해낼 것임을 알았다.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 머라이어 캐리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밀과 가라지는 이것의 있고 없고 차이

 

오늘 복음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밀은 하느님의 사람이고 구원받을 사람이며 가라지는 사탄의 씨를 받은 가짜이고 불 속으로 갈 운명입니다. 이는 마치 하늘나라의 비유 중 심판에 관한 물고기를 종류대로 골라 어떤 것은 담고 어떤 것은 바다에 다시 던지는 내용이나, 혹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내용과 같습니다. 이 모든 비유는 인간의 행위가 아닌 ‘새로 태어남’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방법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씨뿌리는 농부의 비유처럼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사 때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가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제 단순한 인간이 아닌 신이 된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임은 ‘십자가’를 받아들임과 같습니다. 이태리 몬테팔코라는 작은 동네에 가면 십자가의 글라라 성녀가 있습니다. 어느 날 성녀가 기도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왜 슬퍼하시느냐고 성녀가 묻자 “요즘엔 내 십자가를 꽂을 굳은 땅이 없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녀는 너무 가슴이 아파 “당신 십자가를 제 심장에 꽂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리스도는 당신 십자가를 성녀의 심장에 꽂았고 성녀의 심장에는 그 십자가가 새겨져 지금도 썩지 않고 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받아들였다고 다 가라지가 아니라 밀일까요? 생명나무를 먹기 위해서는 선악과를 바쳐야만 했습니다. 모든 땅의 소출의 10분의 1은 하느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 때문에 감사를 잊어버렸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뜻을 따라주는 때는 감사할 때뿐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저항합니다. 밀과 가라지의 구분은 성체를 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감사를 준비했느냐는 것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감사하지 못해서 성체를 영하고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감사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오프라 윈프리는 흑인으로서 미국 첫 앵커가 되었고 엄청난 성공과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된 데는 ‘감사 일기’의 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억지로라도 감사를 찾으려고 했더니 정말 감사한 것들이 눈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바뀌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감사를 받으면 더 감사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자존감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칼릴 라파티라는 사람은 노숙자에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자신에게 도움을 받고 싶으면 먼저 길거리 떨어진 휴지부터 주워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친절하고 같은 노숙자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순종하였더니 주위 사람들이 감사한다고 했고 그의 자존감은 높아졌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행복이었습니다. 이것에 저절로 감사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의 삶도 그 이후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냐, 가지지 않느냐는 나의 ‘선택’입니다. 김지은 씨는 북한에서 9년간 한의사로 일하면서 절망을 느꼈습니다. 이에 맨몸으로 두만강을 건너 갖은 고생을 하다가 구사일생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다단계 판매사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정착금으로 받은 것을 몽땅 잃었습니다. 

먹고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북한에서 하던 한의사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보건복지부를 찾아갔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무심하게 “북한에 가서 대학 졸업증명서를 가져오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유서를 써놓고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1분 후면 목숨이 끊어질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고요함이 밀려왔습니다. 시야가 매우 투명해지고 지나간 일들이 영화처럼 스쳐 갔습니다. 

‘지금보다 더 힘들 때가 많았구나! 그런데 왜 세끼 밥을 다 먹을 수 있는 지금 죽으려 하는 것인가? 그렇다. 욕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조금씩 잘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직장 동료들은 그녀의 한의대 진학을 도와주었습니다. 몇 년 후 마침내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녀는 남북한의 한의사 자격증을 모두 가진 최초의 한의사가 되었고 개인 병원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당신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는 의인입니까?

 

오늘 복음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주님께서 밀과 가라지로 하느님 나라를 비유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찌 악이 있는지, 하느님께서는 선이시고 사랑이신데 어찌 악이 있고 악인이 있는지, 이런 악인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고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지의 문제를 밀과 가라지의 비유로 답하시는 겁니다. 

우선 가라지 곧 악한 사람이 어떻게 있게 된 것인지에 대해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잠자는 사이에 원수가 와서 밀 사이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라고 비유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원수를 악신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악신이 따로 있다는 이원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는 굳이 악신이 아니라 악령이나 악의 세력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얼마든지 원수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이 나를 악령으로 만들지 않으셨고, 우리 부모가 나를 악인으로 낳지 않으셨지만 우리의 부모가 잘못 양육하여 악하게 되고 내가 잘못하여 악하게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우리말에 ‘못난 놈’이니 ‘못된 놈’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악인으로 잘 못 태어난 놈이 아니라 태어난 후 성장 과정에서 잘못된 놈이라고 함이 맞을 겁니다. 

그러므로 너도, 나도, 그리고 그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가라지 곧 악한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고 악한 사람이 된 것인데 오늘 주님께서 비유로 정작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있는 악한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그 사람을 즉시, 즉시 제거할 것인가? 그대로 놔둘 것인가? 그 점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주님께서는 우리가 제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럴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밀과 가라지를 구별할 능력도 솎아낼 능력도 부족합니다. 

언젠가 수도원 초자에게 잔디밭의 잡초를 뽑으라고 했더니 잡초는 놔두고 잔디를 다 뽑은 적이 있는데 그런 것이지요. 우리는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밀까지 뽑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라지를 솎아내지 말아야 하는 더 큰 이유는 그럴 자격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가라지이고, 앞서 봤듯이 우리가 원수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고 악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검찰 공화국이고, 더 나쁜 놈들인 검찰이 자기 입맛대로 기소하고 그래서 공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 정권에서도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솎아내려고 했고, 인간은 이토록 그럴 자격이 없는 곧 자기도 죄인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사람을 어떻게 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하느님 소관이고, 하느님께서는 종말까지 그 문제 해결을 유보하신다는 것이 비유의 가르침입니다. 이에 대해 오늘 독서 지혜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심으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당신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의인은 인자해야 함을 당신 백성에게 가르치시고 지은 죄에 대해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당신 자녀들에게 안겨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너그럽게 심판하실 뿐 아니라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에 당신이 정하신 때까지 최대한 심판을 늦추십니다. 

우리는 의인입니까?그렇다면 마지막 순간에라도 회개하기를 바라시며 기다려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는 감사해야 함은 물론 우습게 여기지 말아야 함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내가 악인들을 심판하겠다고 나대지도 말아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하느님의 농사법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농사법입니다. 우리가 놓여 있는 현실을 보게됩니다. 밀밭에는 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쪽을 향하든 가라지가 있습니다. 뽑아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훤히 우리 마음을 꿰뚫어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밀밭입니다. 삶이라는 밀밭에는 욕심이라는 가라지도 있고 밀이라는 평화도 있는 우리들 삶입니다. 

하느님의 땅에서 잠시 머물다 떠나는 우리들 삶입니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이듦이라는 황혼도 있습니다. 지혜는 마음을 먹고 자랍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할 우리의 삶입니다. 늙어갈수록 외롭고 아픈 우리들 모습입니다. 위로와 사랑이 서로의 품위를 지켜줍니다. 인격의 소명은 사랑이라는 참된 소명입니다. 

가라지로 더한층 뚜렷해지는 밀이라는 사랑의 소명입니다. 이기심이 아닌 가라지만이 아닌 진실한 밀로 진실한 사랑을 나눕시다. 우리의 삶이 참된 사랑으로 더 아름답게 더 건강하게 황혼을 맞이하는 우리의 밀밭 우리의 여정이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사랑의 소명에 끝까지 충실한 우리들 삶이 풍요로운 밀밭의 삶입니다. 가라지가 아닌 밀이라는 사랑을 따르는 사랑의 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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