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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7/19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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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당신 영광 드러날 때 흡족하리이다.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3년 7월 19일 (수)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7월 1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탈출기 성경 말씀 카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탈출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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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탈출기 3,1-6.9-12)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1,25-27)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7월 19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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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마태오 복음
11장 25-27절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7월 19일 (수)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우경민 헨리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44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7월 19일 (수)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4:13

📌 강론시작 11:46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7월 19일 (수)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7월 19일 (수)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예수님의 감사 기도는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요한 복음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그보다는 적지만 예순네 번가량 이 호칭을 씁니다. 아버지로서 하느님은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친밀함을 나타내는 표현이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은 성경에서 드물게 사용되지만 창조된 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을 분명히 드러냅니다(사도 17,24 참조). 그분의 신비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이사야서 29장 14절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지혜와 슬기는 하느님의 선물로 여겨지지만 스스로 지혜롭거나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신비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당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 지도자들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신비는 어린이와 같은 철부지들에게 드러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는 군중일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하느님께서는 선별적으로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선하신 뜻은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이에게 드러납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아버지께 의탁하는 자세로,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서 있습니다. .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다가서는 사람

 

손끝에 생긴 작은 티눈을 오랫동안 방치했다가 이것이 피부암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암은 원래 정상이었던 세포가 암세포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발생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 암세포가 발생하는 부위가 손끝에 생긴 작은 티눈처럼 하찮은 몸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몸의 지체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손끝의 티눈까지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데, 우리가 소홀히 여기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소중하지 않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소중한 것은 소홀히 여기는 ‘어리석음’ 안에 살고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판단이 아마 타인에 관한 판단이 아닐까요? 그들 역시 하느님의 창조물로 소중한 존재인데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너무 쉽게 판단하고 때로는 단죄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그러면 우리도 판단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소중한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우표 수집에 푹 빠져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정말 가지고 싶었던 우표가 있었고, 적금을 부어 그 우표 한 장을 살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우표를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었을까요? 애지중지하며 혹시나 손상될까 늘 걱정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러실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하느님께서는 혹시라도 우리가 손상될까 잘못될까 걱정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까지도 이 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느님의 창조물인 사람에 대해 같은 모습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심에 대한 감사기도입니다. 세상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만 인정하려고 합니다. 그에 반해 철부지들은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면서 그들의 자리를 없애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사람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드러내십니다. 그들 역시 하느님 사랑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보잘것없는 제자들을 통해 창조 때부터 하느님의 골칫거리였던 악의 세력이 꺾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알리면서 악에 대한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보잘것없다면서 무시하고 판단하는 삶이 아닌, 그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찾는 삶이 중요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다가서는 사람만이 하느님 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의 운명이 결정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선물 없이는 상대를 알 방법이 없다 : 성부와 성자 사이에 성령이 필요한 이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가 진리의 주인이 되는지 알려주십니다. 바로 철부지 어린이들입니다. 그 어린이의 대표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아드님께 진리를 드러내 보이시는 방법이 특이합니다. 말씀으로 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드러내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드러내시는 당신 자신의 모습은 ‘사랑’이고 사랑은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받지 않으면 그분이 사랑인 줄 모릅니다.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성령께서 ‘선물’이 되시는 이유입니다. 선물을 받아야만 사랑이 무엇인지, 아버지의 본모습을 알게 됩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삼위일체 신비가 매우 크게 녹아있는 내용입니다. 삼위일체는 아버지와 아드님이 성령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으로 하나가 될까요? 아버지가 아드님께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시작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세례입니다. 성령은 ‘선물’입니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선물을 받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래서 선물을 받아봐야 그 주는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자격이 있는 자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선물을 주는 사람도 그 받는 사람에게 선물을 줌으로써 자신과의 관계가 합당한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성령을 받으시고 그 안에 들어있는 뜻을 십자가에서 완수하시며 아버지의 완전한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다시 아드님께 성령으로 모든 것을 주시는데 이것이 부활입니다. 이렇게 관계가 지속되고 그 관계가 ‘사랑’이 됩니다. 또 그 사랑을 통해 자녀가 탄생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탄생입니다. 

영화 ‘궁극적 선물’(The Ultimate Gift: 2006)은 제이슨의 극도로 부유한 할아버지인 하워드 레드 스티븐스의 죽음으로 시작됩니다. 레드는 자신의 자손들이 다 돈만 바라지 자신과의 관계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돈을 조금씩 줍니다. 

손자 제이슨은 그렇게 돈 많은 할아버지가 자신들을 가난하게 살게 만든 것에 매우 실망해 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제이슨에게 12개의 작업만 완수하면 많은 재산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 작업이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일의 선물 : 
제이슨은 목장에서 일하며 열심히 일하는 것의 가치를 배웁니다.

돈의 선물 : 
제이슨은 한정된 금액의 돈을 받고 자신의 방법으로 더 많이 벌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친구의 선물 : 
제이슨은 진정한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배움의 선물 : 
이전에 몰랐던 것을 배우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문제라는 선물 : 
제이슨은 문제가 변장한 기회라는 것을 배웁니다.

가족의 선물 : 
제이슨은 가족에게 감사하는 법을 배웁니다.

웃음의 선물 : 
그는 인생에서 기쁨과 유머를 찾아야 합니다.

꿈의 선물 : 
그는 꿈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는 선물 :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감사의 선물 : 
제이슨은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루의 선물 :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웁니다.

사랑의 선물 : 
제이슨은 무조건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사실 제이슨은 몸으로 하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관계에는 서툰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친구를 사귀어본 적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어린 에밀리라는 소녀를 공원에서 사귀에서 자신과 친구가 되었다고 증언해 달라고 합니다. 에밀리는 속는 셈 치고 제이슨과 친구가 되어줍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백혈병이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자신을 위해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받은 1,000만 달러를 아픈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합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수조 원에 달하는 할아버지의 재산이 다 자신의 것이 된 것입니다. 제이슨은 자신도 모르게 죽은 에밀리를 통해 위 열두 개의 모든 임무를 완수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만들려고 한 것이 할아버지의 궁극적인 선물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 영화는 성령께서 어떻게 선물이 되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일치시키는지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성령을 받으시고 그 성령에 가장 완전한 그릇이 되셨습니다. 성모님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그 살과 피가 곧 성령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령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면 그분의 뜻, 곧 당신이 우리를 위해 살과 피를 내어놓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위해 살과 피를 내어놓는 사람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러면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을 위해 당신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 지극한 이가 먼저 선물을 주지 않으면 관계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 선물은 받는 사람을 정화합니다. 그래서 그도 그 선물에 합당한 사람이 된다면 비로소 서로를 온전히 알게 됩니다. 안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관계에서 오는 행복은 이때 절정에 이릅니다. 삼구에 빠져 성령을 거부하지 말고 나를 죽여 성령에 합당한 그릇이 됩시다.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것이 참 행복입니다. 이웃에게 살과 피가 되어줍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민족주의를 초월하는 신앙인

 

어제와 오늘의 탈출기는 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민족주의자와 신앙인 사이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말입니다. 

어제의 모세는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자기 민족이 이집트 왕과 백성들에게 억압받고 괴롭힘당하는 것 때문에 분노하고 동족을 구해 내는 모세였습니다. 

오늘의 모세는 그런 단순한 민족주의자였던 그가 하느님을 체험하고, 동족을 이집트 억압으로부터 구출해 내라는 소명을 받는 모세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단순한 민족주의자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초월합니다. 

이렇게 모세는 초월하는 사람인데 요즘의 저는 어떤 사람인지, 아직 민족주의자인지 모세처럼 초월한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전에도 한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과는 적대시하고 일본과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후꾸시마 오염수를 처리수라고 하며 그냥 해양 방류하려 합니다. 그렇게 문제없는 처리수라면 일본 내에서 처리하지 왜 해양 방류를 하는지 저는 일본의 양심을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분노합니다.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고 더 분노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태도입니다. 우리 대통령과 정부가 우리 국민을 보호하고 대변하려는 사람들인지, 일본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사람들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화까지 납니다. 

그런데 화까지 나는 저를 보며 이것이 민족주의자로서의 분노인지 그것을 초월한 사람으로서의 의로운 분노인지 자신이 없는 겁니다. 

저를 솔직히 반성하면 저의 분노 안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저의 분노는 아직 민족주의자의 분노이고, 그러나 모세처럼 그것을 초월하려고 애쓰는 차원입니다. 

중요한 것은 민족만을 보는 것을 넘어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하시고 어떤 명령을 나에게 내리실까 성찰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후꾸시마 오염수뿐 아니라 모든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시고, 북한의 핵무기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모든 핵무기까지 반대하시고, 탈핵, 탈원전, 탈화석연료 사용을 명령하실 겁니다. 

하느님이라면 그리고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을 대변하는 모세라면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여 모든 불의를 반대하고 그 불의에서 돌아서라 할 것입니다. 

역사 안에 늘 있었던 강대국에 의해 왜곡되는 정의와 그들의 횡포, 예를 들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와 개발은 괜찮고, 힘없는 나라들의 핵무기와 개발은 막으려는 강대국의 횡포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분노하시고 막으실 것입니다. 

물론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도 핵 무장해야 한다고 하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하실 겁니다. 

아무튼, 저는 그리고 여러분은 민족주의자인지, 모세처럼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이고, 하느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인지 돌아보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곁에 있는 철부지 하나하나가 모여 하느님의 진실한 뜻을 드러냅니다. 마땅하고 당연하게 여겨야 할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철부지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랑의 힘이며 그 사랑 앞에 감사를 배웁니다. 

세상이 바뀌어도 하느님이 먼저입니다. 사랑에서 사랑이 자라납니다. 가본 적 없는 길을 사랑으로 걸어가시는 주님이십니다. 철부지들의 길을 열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삶의 중심축을 이루시는 분을 다시 만나는 시간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사랑의 생명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와 슬기롭다의 어리석은 착각에서 벗어나니 모두가 사랑이며 모두가 생명입니다. 모든 사랑을 가로막는 구별과 차별을 봉헌합니다. 그 어떠한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랑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사랑의 흐름 영원한 기쁨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막는 사람만 어렵고 힘들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시는 철부지들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받아주시기에 소중한 것이며 열어주시기에 영원한 것입니다. 이미 여기에서 하느님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모두가 가야 할 생명과 진리 사랑과 믿음 감사와 기쁨의 길이 먼저 철부지들 삶 안에 드러났습니다. 무엇 하나 사랑과 생명을 노래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을 감사를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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