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3/07/26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7. 26.
반응형

 

마리아를 낳은 요아킴과 안나를 칭송하여라. 주님은 만민에게 내리신 복을 그들 위에 베푸셨다.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이신 주님, 복된 요아킴과 안나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푸시어 성자의 어머니를 그들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으니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희도 주님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2023년 7월 26일 (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7월 2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탈출기 성경 말씀 카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 (탈출 16,4)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 (탈출 16,4) 탈출기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7월 26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

 

 

마태오 복음
13장 1-9절

 

열매는 백 배가 되었다.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7월 26일 (수)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동현 플로렌시오 신부 집전

 

📌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소개 00:05

📌 미사시작 01:05

📌 강론시작 09:23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7월 26일 (수)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전두병 요아킴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00

📌 강론시작 16:00

 

 

 

팔로티회 매일미사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7월 26일 (수)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1:12

📌 미사시작 1:01:54

📌 강론시작 1:12:5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예수님의 비유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닿을 수 있는 것을 소재로 삼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주된 활동 무대였던 갈릴래아 호수와 그 주변 지역을 생각하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비유는 이렇게 하늘 나라의 신비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연결시킵니다. 똑같지는 않지만 경험으로 하늘 나라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비유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갑니다. 이와 같은 모습으로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로 가십니다. 군중의 눈에는 집에서 나와 그들에게 가시는 예수님과, 씨를 뿌리러 나서는 사람이 똑같게 보였을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말씀은 씨처럼 모든 사람에게 뿌려집니다. 이미 선택된 누군가에게만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뿌려집니다. 그러나 같은 말씀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효과는 크게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하는 세 부류의 사람과, 상상을 넘어서는 많은 열매를 맺는 한 부류를 예로 드십니다. 마치 모든 이에게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태오 복음서 저자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귀가 있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그것을 삶으로 옮기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삶으로 옮길 때 하늘 나라는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얼음과 물의 본질은 같다.

 

더운 여름날,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료는 일명 ‘아아’라고 불리는 것으로, 우리 성당 카페에서도 제일 많이 나갑니다. ‘아아’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줄여서 부르는 것이지요. 사실 이 아이스아메리카노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컵 가득히 얼음을 넣고 물 150ml를 붓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에스프레소 2잔을 넣으면 그만입니다. 저 역시 간단하고 맛있어서 즐겨 마시는 음료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는 지인과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문했던 음료는 둘 다 ‘아이스아메리카노’였습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아이스아메리카노 안에 들어있던 얼음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얼음이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얼음이 모두 녹아 물이 된 것입니다. 이 물을 가리키면서 1시간 전에는 얼음이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얼음이었다는 사실보다, 지금 물이라는 사실만 남게 됩니다. 
 
‘왕년에~’라는 말을 쓰며 과거의 영광을 이야기하는 분을 종종 봅니다. 그 영광이 과연 본질 자체가 변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본질은 같고 잠깐의 변화만 있었던 것입니다. 얼음과 물이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 앞에 자랑스러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잠깐의 변화를 가지고 본질 자체가 바뀐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겸손을 통해서만 하느님의 일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들을 뛰어넘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런데도 마치 자기 능력과 재주를 통해서 그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교만을 통해서는 하느님과 함께할 수 없기에, 하느님의 영광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하거나, 낸다 해도 별 볼 일 없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씨를 뿌렸는데 길가, 돌밭, 가시밭에 떨어집니다.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밭에서는 씨가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 상태가 길가, 돌밭, 가시밭, 좋은 땅으로 비유됩니다. 
 
어떤 마음을 갖춰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커다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요? 좋은 땅으로 표현되는 하느님 뜻에 맞춰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삶이 아닌 낮추고 낮춰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자기 힘만으로는 결코 맺을 수 없는 결실이 세상에 영광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굳게 닫힌 마음을 활짝 열린 마음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올바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은 열리지 않는다.

- 법정 스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농부는 씨를 아끼지 않는다.

 

오늘 복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저는 오늘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해보려 합니다. 분명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 땅은 세속, 육신, 마귀를 이겨내고 주님 뜻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땅입니다. 

우리는 가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더 많기에 상처받고 실망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물론 그런 사람이 많을지라도 밭 하나에서 내가 고생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확신을 줍니다. 

만약 한 본당이 계속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서 씨를 뿌리지 않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씨뿌리는 농부는 자신의 씨가 새에게 먹히고 햇볕에 그을리고 가시덤불에 숨 막혀 죽어도 결국엔 몇십, 몇백 배로 돌아올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마약 중독자를 거쳐 늦은 나이에서야 0원에서 조 단위의 부자가 된 그랜트 카돈은 라스베가스 노숙자들에게 다가가 부에 관한 질문을 합니다. 

“안녕하세요. 부모님이 돈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셨는지를 알아보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부모님은 돈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셨죠?”

“저축하라고 하셨죠. 그런데 저는 한 번도 저축한 적이 없죠.”

“그거 말고 다른 조언은 없었나요?”

“아무것도 가르쳐 준 게 없어요.”

“부모님 말고 다른 사람은요?”

“없어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요. 제가 하는 말의 문장을 끝맺어주세요.”

“티끌(10원)을 모아?”

“태산(부자) 된다.”

“돈은 절대로?"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

카돈은 말합니다. 

“이것 봐!, 온 세상이 돈을 이렇게 배웠어! 부자들은 모두?”

“나쁜 사람이다…. 대부분은요!”

그는 노숙자들에게 계속 이런 질문을 하는데 편집을 그렇게 해서 그러는지 몰라도 이들 대부분의 생각은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강론에 무슨 돈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하냐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강의를 할 때 십일조를 내라고 하면 대부분 신자들이 안 좋은 감정을 가집니다. 우리가 개신교냐?, 혹은 돈은 악의 근원인데 어떻게 제단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듯이 말입니다. 

세상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돈이나 말씀이나 복음이나 다 같은 법칙에 적용받습니다. 모으면 똥이 되지만 뿌리면 거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딸에게 돈은 그저 은행에서 찍어내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도 돈의 가치에 집중했을 때 망하고 고난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는 연말이 되면 모든 헌금을 부동산 등에 투자합니다. 돈은 인플레이션이 오면 정말 휴지가 될 수 있지만, 부동산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돈을 계속 뿌려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잃는 경우도 많이 발생합니다. 이것 때문에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카돈은 어린 딸에게 영업을 가르치고 강연도 시킵니다. 재벌의 어린 딸이라면 미래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서 교만할 만도 할 텐데 딸은 실패를 묵묵히 참아냅니다. 어눌한 강연에 청중들이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씨뿌림을 멈추어서는 안 됨을 알려줍니다. 

카돈은 딸에게 자기 강연의 티켓을 팔도록 전화합니다. 아마도 이전에 왔던 사람 중의 이번에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딸은 처음엔 어눌한 말투로 왜 이번엔 티켓을 사지 않았느냐고 전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귀찮게 한다고 끊어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전화기를 꺼버립니다. 어린 딸은 그래도 재미있다는 듯이 계속 전화를 합니다. 18번의 전화를 했는데 그 중 한 사람만이 티켓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일일이 전화를 걸게 시켜 4,000달러 좌석을 팔게 합니다. 직원으로 치고 10%, 곧 400 달러의 보너스를 받게 됩니다. 이 한 통화의 성공을 위해 그녀는 열일곱 번을 실패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카돈은 400달러를 열일곱으로 나누면 전화 한 통화에 22달러씩 버는 것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절대로 거절당하는 것 때문에 씨를 뿌리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씨앗을 아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이 스며들지 않는 땅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명만 받아들여도 그 사람이 성모 마리아일 수도 있고, 많은 성인을 낳은 소화 데레사의 부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수십만 명에게 복음을 전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은 또한 다시 서른 명, 예순 명, 백 명에게 씨를 뿌리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좋은 땅이셨기 때문에 온 세상에 사랑의 씨를 뿌리셨습니다. 우리가 몇 명을 위해 믿음의 씨를 뿌리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 땅이 몇 배의 열매를 맺느냐가 결정됩니다. 어쩌면 우리도 복음의 씨앗을 돈처럼 아끼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 빈손으로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불평에 대한 성찰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합니다. 배가 고프기 때문이고, 이집트에선 노예로 살아도 배는 불렀는데 광야에선 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서 남의 일처럼, 나는 그렇지 않은 양 이들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사는 동안 얼마나 불평이 많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불평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오늘 해야겠습니다. 

먼저 볼 것은 불평은 불행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행복한 사람의 입에서는 결코 불평이 나오지 않습니다. 불행하거나 적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불평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왜 행복하지 않고 더 나아가 불행합니까? 그것은 불만 때문이고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또 왜 불만이고 왜 만족할 줄 모릅니까? 그것은 욕구는 한계가 없고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능력에 한계가 있는데도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행복하려면 만족의 비법을 알아야 하는데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곧 하나는 인간적인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의 방법입니다. 

먼저 인간적인 방법을 보면 능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욕구를 없애거나, 욕구를 없앨 수 없다면 욕구가 욕망이나 욕심으로 발전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고파도 화내거나 불평하지 않고.능력이 없고 가난한 자신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겁니다. 

다음으로 우리 신앙인은 신앙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은 하느님으로 만족하거나 하느님의 도움으로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곧 배고프면 인간에게 불평하지 않고 하느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반대의 짓을 합니다. 기도해야 할 입으로 불평을 하는 겁니다. 하느님께 향하지 않고 인간에게 향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또 반성해야 할 것은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점입니다. 배고프다고 배불렀던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것 말입니다. 

복지 곧 행복의 땅인 가나안을 그리워하지 않고, 배고픔 때문에 노예의 땅인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철학자보다 배부른 돼지가 낫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단식하시고 돌로 빵이 되라는 유혹을 광야에서 받으실 때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처럼 하느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빵 문제에만 관심이 있어서 하느님 말씀의 좋은 밭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불평 성찰을 한 우리는, 지상에 살면서도 천상의 행복을 그리워하고 배고파도 하느님과 하느님 말씀으로 만족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열매는 열매로 치유를 받습니다. 열매의 뒤를 받쳐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열매에 깃든 하느님의 넘치는 축복입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축복의 열매는 우리의 자녀들입니다. 세상의 많은 만남 중에서도 부모님과의 만남이 가장 소중한 만남입니다.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부모님의 노고 덕분입니다. 중심을 잡아줘야 할 부모님의 역할입니다. 견디는 

법이 성장하는 것임을 가르쳐주십니다. 아픈 손가락 같은 열매도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열매를 더 빛나고 더 풍성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함께 한 시간이 사랑이며 축복입니다. 우리는 어떤 부모로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성찰합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좋은 사랑임을 일깨워주시는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입니다. 감사의 마음이 가장 좋은 사랑이며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가장 좋은 기도로 열매를 맺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열매는 사랑으로 이루어지고 사랑으로 열매 맺습니다. 열매를 맺는 사랑이길 기도드립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