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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7/05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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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인은 하느님의 법을 위해 죽기까지 싸웠으며, 악인들의 말도 두려워하지 않았네. 그는 튼튼한 반석 위에 집을 지었네.

하느님, 올바른 신앙을 전파하다가 순교한 복된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뜨거운 사랑으로 복음을 실천하여 교회 발전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2023년 7월 5일 (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7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태 16,24)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2역대 24,18-22)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

  • 제2독서
    (로마 5,1-5)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 오늘 복음
    (마태 10,17-22)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7월 5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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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10장 17-22절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7월 5일 (수)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대환 비오 신부 집전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소개 00:05

📌 교황님 7월 기도지향 02:08

📌 미사시작 02:22

📌 강론시작 11:22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7월 5일 (수)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6:36

📌 강론시작 15:51

 

 

 

팔로티회 매일미사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7월 5일 (수)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걱정하지 마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치 예언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가신 다음에 제자들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았는데, 특별히 유다교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잡혀가 신문을 받았습니다(사도 5,27; 6,12 참조). 사도행전은 이러한 제자들의 역경을 잘 보여 줍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제자들의 증언은 오히려 복음을 선포하는 계기가 되고, 복음은 온 지역으로 퍼져 나갑니다. 박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제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업적을 이어 가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와 함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걱정하지 마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이는 한편으로 제자들이 박해를 받을 때에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말씀이면서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업적이, 복음의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여기에 쓰인 “너희 아버지의 영”은 신약 성경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쓰입니다. 영에 대한 표현 가운데 하느님 아버지와 이루는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서에는 자주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나 ‘너희 아버지’로 표현합니다. 유다교에서 하느님과 그분 백성의 관계는 이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발전하고, 이는 그리스도인들을 나타내는 특징이 됩니다. 좋은 때든 나쁜 때든, 행복할 때든 불행할 때든,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자녀들과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인에게는 가장 큰 힘이자 위로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가장 나약하고 부족함을 느낄 때

 

한때 저의 나약함과 재능 부족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힘없는 저의 모습에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왜 저를 이렇게 힘없고 보잘것없이 만드셨냐면서 하느님께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한때’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약함과 재능 부족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가장 강력한 힘을 드러내셨을까요? 빵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테고, 병자의 병을 고쳐 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실 때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아닙니다. 가장 강력한 힘을 드러내셨을 때는 바로 십자가에서였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 이 세상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십자가에 못 박하신 그 장면은 가장 무능해 보이는 순간이며, 가장 나약해 보이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가장 큰 힘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가장 나약하고 부족함을 느낄 때가 바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쓰실 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불평불만을 하며 그분의 손길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나약함과 부족함 자체를 볼 것이 아니라, 그분의 능력을 믿고 더 의지해야 할 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성장해 갑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나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지우고, 대신 세상 것에 관한 관심과 믿음으로 하느님과 아무런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인께서는 아주 짧은 사제 생활을 하셨습니다. 1845년 8월 17일에 사제 서품을 받고, 1846년 6월에 체포되어 그해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문초를 받으면서 보여준 신부님의 모습에 조정에서는 회유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께는 세상의 기준보다 하느님의 기준이 더 중요했습니다. 특히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느님 나라 안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잘 아셨기에 어떻게든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하느님께 철저하게 의지하셨습니다. 
 
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성인성녀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기에 지금을 사는 우리가 편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순교의 영광이 가장 큰 힘을 드러내는 증거임을 지금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후손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도 성인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장 큰 힘을 세상에 남길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 스티브 잡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김대건 신부님의 마지막 편지, 마지막 마음.

 

오늘은 한국의 첫 사제이신 김대건 신부님의 신심을 기리는 날입니다. 무엇보다 김대건 신부님의 신자들에 대한 사랑을 느껴보려면 그분이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신 이후 여러 언어를 배우신 신부님은 총 21통의 편지를 남기셨는데 19통을 라틴어, 1통을 한문, 마지막으로 1통을 한글로 쓰셨습니다. 이 중 마지막으로 감옥에서 신자들에게 쓰신 한글 편지에 김대건 신부님의 신자들에 대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1. “세상에 한 번 태어나 우리를 만들어내신 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세상 태어난 보람이 없다.”

예수님께서 가리옷 유다에게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고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신부님은 먼저 자신을 창조한 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세상 태어난 보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헛되고 헛된 세상 것들이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을 볼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하십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강한 열망이 나타나 있습니다. 

2. “자기를 만들어내신 하느님을 알아 입교 영세했다 할지라도 주님의 제자답게 살지 못하면 이 또한 세상에 난 보람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배은망덕하게 되어 오히려 세례받지 못한 사람보다 못한 처지에 떨어진다.”

신부님은 세례를 받았다 해도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주님과 원수가 되어 영원한 벌을 마땅히 받게 된다”라고 하십니다. 농부가 고생하여 농사를 짓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면 농부는 밭을 갈아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이 맺어야 하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3. “부디 지금의 박해에 굴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다져 밤낮으로 하느님께 빌어 세속과 육신가 마귀를 대적하고 이 고난을 참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너희의 영혼을 구해라!”

당시 신앙의 목적이 명확하였습니다. 바로 세속과 육신과 마귀를 이겨 가난과 정결과 순명의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기도와 말씀, 성사생활을 강조하셨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오며 온전한 의탁으로 예수님과 일치하여 이미 패배한 세속 마귀를 칠지어다. 이런 시련의 시기를 당하여 여러분은 마음을 다져 힘을 다하고 역량을 다하여 마치 병기(묵주, 성서 그리고 성사생활)를 다 갖춘 건장한 군사처럼 싸워 이길지어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이유는 소유욕과 육욕, 그리고 교만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기도록 주님께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열매를 맺지 않는 신앙인은 세례를 받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요즘 삼구(三仇: 세속, 육신, 마귀)에 대해 아는 신자가 얼마나 됩니까? 거의 없었습니다. 김 신부님이 순교하신 해가 1846년 병오박해이니 200년도 안 되어 김대건 신부님이 가장 강조하셨던 교리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 교리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악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지 모릅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젊은 야망의 증권 중개인 조던 벨포트가 만연한 부패와 사기에 가담한 기업 스트래튼 오크몬트의 창업자가 된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영화 내내 조던은 자신의 무모한 행동과 행동의 불법성에 대해 자주 경고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습니다. 그는 세속, 육신, 마귀에 있는 그대로 노출되었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그는 감옥에 가게 되고 그의 제국은 무너지고 부와 가족과 자유를 잃습니다. 

조던은 인류가 맞이하게 될 미래입니다. 저던에게는 적어도 세속, 육신, 마귀의 삶이 잘못된 것임을 말해주던 이들이 있기는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내와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 안에서조차 그것이 잘못임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세속, 육신, 마귀의 교리가 사라진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보낸 당신 유일한 편지에서 그분은 돌아가시기 직전 세속과 육신과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만을 바라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가르치시려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로만 김대건 신부님을 존중하지 말고 진심으로 그분을 존경한다면 그분의 가르침을 계승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고통의 순간에 사랑을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 축일의 독서로 방금 들은 이 말씀은 주님의 최후 만찬 복음의 다음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리고 이 두 말씀이 이렇게 연결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셨기에 그 사랑받는 제자들은 끝까지 견디었다. 그 사랑받은 김대건 신부님도 끝까지 견디었다’로. 

절망의 상황에서 모진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사랑입니다. 너의 사랑이든 나의 사랑이든 사랑이 견딜 수 있게 하고, 하느님의 사랑이면 더더욱 견딜 수 있게 합니다. 

물론 겸손도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왜 내게 이런 고통이?’라고 반발하지 않고 겸손히 수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겸손이 고통을 수용하게 하는 힘이라면 사랑은 고통을 그저 수용하는 것을 넘어 달게 받아들이게 하는 힘입니다. 

저는 몇 년 전서부터 감수 곧 달게 받아들이는 것에 생각이 많이 머물고 그러기에 당연히 많이 얘기하는 주제입니다. 사랑은 고통을 억지로 또는 가까스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정 달게 받아들이는 힘입니다. 

저는 요즘 더위와 소음 이중고에 시달립니다. 식당 옆 건물을 새로 짓는데 그 소음이 크고 여름 더위에 주방 열기 때문에 그 더위가 대단하지요. 

그런데 고통은 고통인데 고통의 그 순간, 이까짓 고통은 고통도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사랑을 조금만 떠올려도 불의 열기가 사랑의 열기로 바뀌고, 이마에서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은 고통을 사랑이 되게 하기에 자랑스럽습니다. 

중요한 것은 첫째로 사랑으로 시작해야 하고, 다음으로 고통의 그 순간에 사랑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통에 파묻혀 사랑을 떠올리지 못하면 말짱 헛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고통의 그 순간에 고통에 파묻히지 말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땀과 고통을 사랑으로 잘 바꾼 분들이 성인이고 오늘 우리의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입니다. 자형의 밀고로 아버지가 순교하시고, 어머니는 반쯤 실성 상태가 되는 등, 그야말로 집안이 풍비박산 났을 때 인간적으로는 마음이 얼마나 쓰라렸겠습니까? 

그런데 그때마다 김대건 신부님은 오늘 복음 말씀을 떠올리셨겠지요. 

“그때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고통의 그때 복음과 하느님의 사랑을 떠올리면 성인이고, 그렇지 못하고 고통만 있으면 그는 범인이요 비신앙임을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진실하고 가장 위대한 것이 진리를 찾아가는 우리의 용기와 실천임을 배웁니다. 관념적 깨달음이 아닌 영원한 진리를 만나는 은총의 역사가 우리 곁에 있습니다. 고정된 관념을 부수니 참된 행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새로움은 산고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신앙의 탄생은 그 자체가 가장 소중한 탄생이 됩니다. 일상적인 것이 사실은 가장 신앙적인 것이 됩니다. 삶의 터전 삶의 자리에서 새로워지는 신앙의 꽃입니다.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는 신앙은 새로운 생명력을 켤코 불어 넣을 수 없습니다. 실행을 통해 드러나는 주님의 참뜻입니다. 

절실성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는 우리들 삶입니다. 환희와 확신은 보편적인 진리를 강하게 체험한 사람들의 것입니다. 가장 순수한 사람의 모습에서 참된 하느님의 구원은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으로 다가옵니다. 

몇 마디의 언어가 아닌 믿는 만큼 살게 되는 마음의 구원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의 삶을 통해 사제직의 소명이 진정 무엇인지를 다시 되새겨봅니다. 긴 잠에서 깨어나 복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나눌 때입니다. 

마지막 호흡 마지막 고백이 하느님을 향한 절실한 감사이길 기도드립니다.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가르침은 끝까지 견디는 것이며 끝까지 구원의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것이 가장 절실한 구원의 정신임을 믿고 실행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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