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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5/15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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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니, 이제는 죽음이 그분을 누르지 못하리라.

자비로우신 하느님,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저희가 언제나 그 풍요로운 신비를 체험하며 살게 하소서.

 

2023년 5월 15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5월 1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사도행전 성경 말씀 카드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사도 16,14)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사도 16,14) 사도행전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 16,11-15)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 오늘 복음
    (요한 15,26─16,4ㄱ)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5월 15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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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시고 너희도 나를 증언하리라.

 

 

요한복음
15장 26 - 16장 4ㄱ절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5월 15일 (월)
김영주 니코메디아의 베드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6:18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5월 15일 (월)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27

📌 강론시작 16:10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15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4:43

📌 강론시작 12:26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15일 (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0:43

📌 미사시작 1:01:29

📌 강론시작 1:08:2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강수원 베드로 신부

 

떨어져 나가지 않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러 주신 갈등과 분열은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선교 여정에 관한 의견 차이로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 갈라졌습니다(15,39 참조). 이러한 갈등에도 바오로 일행이 선교 여행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호자 성령께서 섭리하셨기 때문입니다(16,7.14 참조). 

또한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융성한 로마 식민시(로마시의 특권과 자치권을 보장받은 도시)였던 필리피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세속적인 관습과 맞서는 복음을 적대시할 때도(16,21 참조), 성령께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이”(유다교 개종자를 뜻함: 13,43 참조) 리디아가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이끄셨습니다. 세례를 받고 큰 기쁨 속에 바오로를 집으로 모셔 들이는 리디아의 모습은 하느님을 자신의 천막에 맞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라던 성조 아브라함의 정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창세 18,3).

보호자 성령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머무르셨고, 그들이 하느님의 진리를 깨닫고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보호는 그 어떤 갈등도 분열도 고난도 겪지 않게 막아 주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시련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포기하지 않으며 평생토록 그것을 증언할 수 있도록 지켜 주는 것입니다.

까닭 없는 시련과 박해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과 뜻을 떠올리는 기회입니다. 억울하고 답답할 때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열어 주시고 하느님의 진리 안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가도록 보호하여 주시기를 청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만나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

 

신학생 때, 저는 울렁증이 너무 심해서 남 앞에 서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신부로 살고 있는 지금, 이런 울렁증을 제게서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미사, 강의, 그 밖에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있어도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이런 제게 어떻게 울렁증을 극복했냐는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그때 우스갯소리로 “사제 서품 후에 특별한 은총을 받았어요. 바로 뻔뻔함의 은총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제일 큰 이유는 제 마음의 변화였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서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은 없어.’라고 스스로 대뇌입니다. 즉, 지금 자리에서 “나는 최고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이런 생각만으로 울렁증이 없어졌을까요? 이를 위해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걱정만 하는 불안의 시간을 철저히 준비하는 노력의 시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제 말을 들으러 온 사람은 저를 평가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실수를 지적하고 꼬투리 잡으러 이 자리에 귀한 시간을 내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서니 어느 순간 두려움이 사라지고, 지금은 오히려 이 안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벌써 23년째 강사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자기 마음만 바꿔도 절반 이상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주님께서 해결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100% 전부를 주님께서 해결해주셔야 하는 것으로 청했던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우리의 보호자 그리고 진리의 영인 성령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곧바로 박해를 연결하시지요. 박해받을 때 어떻겠습니까? 많은 고통과 함께 결국 순교의 죽음까지도 떠올리며 두렵지 않겠습니까? 도저히 연약하고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보호자인 진리의 영인 성령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용기를 갖고 힘차게 주님의 뜻을 세상에 선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으면 주님께서 성령과 함께 알아서 해주실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는 데 있어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최고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준비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그냥 저를 도구로 써주세요.’라고 말만 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나는 모든 사람 역시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에게 해를 끼친다고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떠올리면서 사랑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 후에 나머지를 성령께서 채워주셔서 100%의 하느님의 일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인생에는 해결책이 없다. 나아가는 데 힘이 있다.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해결책은 따라오게 된다.

- 생텍쥐페리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지옥 탈출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한 나의 결심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의지를 가진 이에게 주시는 성령님 덕분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말하는 이는 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이 거짓임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로운 진실을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하느님을 믿어도 진리를 증언하는 이를 박해할 때가 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이를 박해하며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이미 이런 말씀을 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박해받아도 움츠려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 속하는 방법은 그리스도, 곧 진리를 증언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옥에 살게 되는 것은 감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기가 증언하는 세상에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가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란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그의 일생일대의 회개를 상징합니다. 그는 천재적 재능으로 많은 교회의 성화들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생활을 하여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고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탈옥에 성공하여 몰타섬으로 도주하여 거기서 숨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하도 커서 칼을 차고 신발을 신고 잠을 잘 정도였다고 합니다. 

공포 속에서 사는 것이 너무나 지긋지긋한 나머지 그는 유일한 사면권이 가진 교황을 설득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어린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들고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들어 올리는 그림을 완성해냅니다. 그림 속의 다윗은 어렸을 때의 순수했던 자기 모습이고 목이 잘린 흉측한 골리앗의 머리는 지금까지 거짓으로 살았던 자신을 상징했습니다. 사실 그의 진심을 담아 그린 그림은 이 그림이 처음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에 진정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또 교회와 하느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 앞에서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분이 아버지를 증언하니 아버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은 천국입니다. 그러니 천국에 사십니다. 천국은 행복입니다. 

반면 거짓을 말하는 자는 자신이 드러내는 악마를 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다”라고 하시며 거짓말 안에 악마가 활동하고 있음을 폭로하셨습니다(2482 참조). 거짓말하는 자 안에 있는 악마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요한 8,44)입니다. 아무리 거룩한 성화를 그리더라도 삶이 거짓이고 거짓을 증언하면 그런 성화 안에서도 천국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거짓을 증언하는 사람은 거짓의 아버지를 보며 장차 자신이 가게 될 어둠의 세계의 공포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진리를 증언하는 이는 죽음 앞에서도 장차 만나게 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을 기대하며 기쁠 수 있습니다. 진정 이 세상에서부터 진리의 왕국의 향기를 맡으며 살려면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간직하려고 애를 써야”(사도 24,16)합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조지 포먼과의 일전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엄청난 펀치력을 가진 조지 퍼먼이 무하마드 알리를 이길 것이라 점쳤습니다. 시합 전날 무하마드 알리는 링 위에 올라 쇄도우 복싱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해도 조지 포먼을 이길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무대에 누워 넉다운 당한 자신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rope-a-dope”로 알려진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포먼이 펀치를 던지고 지칠 수 있도록 허용했고 로프에 기대어 팔과 몸으로 타격을 흡수했습니다. 약자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싸움이 계속됨에 따라 포먼의 체력이 약해졌고 드디어 알리는 공격 기회를 잡았습니다. 8라운드에서 알리는 포먼을 쓰러뜨리고 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진실을 받아들이면 평화 속에 살게 됩니다. 그래야 하는 일도 다 잘 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모든 어려움을 끌어들입니다. 솔직합시다. 그것이 진리를 드러내는 첫 걸음입니다. 그 첫 걸음은 우리를 지옥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여지.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다 미래형의 말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뒤를 예고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돌아가시고 나면 당신이 성령을 보내주실 것인데ㅈ성령께서는 한편으로는 진리의 영으로서 당신의 진실을 증언하실 겁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이 돌아가신 뒤 박해를 받게 될 제자들을 보호해주실 터인데 그것은 제자들이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제자들도 당신을 증언케 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박해가 제자들을 떨어져 나가게 할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충분히 예상하고 수긍할 수 있는 말씀인데 그런데 그런 제자들이 당신을 증언하게 될 거라는 말씀이 일단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일단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 일단이라는 말이 많은 경우 일단(一旦)의 뜻으로 쓰이지만 이 경우엔 일단(一段)이라는 뜻으로 제가 쓴 것이며 다음에 이단(二段)이 있다는 것을 내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당신의 말씀과 달리 제자들이 당신을 모른다고 하고 도망쳤으니 일단은 주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결과이고 그래서 그런 제자들이 당신을 증언할 거라는 말씀이 일단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일단은 인간의 단계(段階)입니다. 그리고 이단은 성령의 단계(段階)입니다.

일단은 연약한 인간이기에 도망치고 봤는데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자 새로운 단계 곧 이 단계인 성령의 단계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 단계에서 이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소위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 제자들에게 요구됩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처럼 하느님도 손쓸 수 없게 자기가 완전히 끝장을 내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데 열한 제자는 주님을 배반했지만 그리고 비록 두려움 때문에 다락방에 숨어있었을지라도 다행히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지요.

여기에 우리가 오늘 배울 것이 있습니다. 정말 끝이라고 생각될 때도 내가 끝장내지 않고 하느님께 여지를 드리는 것 말입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을 위한 여지는 없습니까? 하느님께 여지를 드릴 여유가 나에게 없습니까? 나로 가득하여 우리에게 하느님을 위한 여지는 없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께 여지랄까 말미를 드리면 그 여지에 하느님께서 성령과 작당하여 모의하실 것이고 그래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다락방을 박차고 나와 마침내 주님의 예언대로 주님을 증언하게 될 것이며, 오늘 리디아의 마음을 연 바오로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 주님을 믿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뭐든 우리가 끝장내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께 여지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진리의 영이 우리 곁에 계십니다. 진리에 눈을 떠야 합니다.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실천을 배웁니다.

예수님 안에 영원한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의 진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진리의 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모든 생명은 진리의 영으로 하느님을 알게됩니다. 하느님을 알게 해주신 예수님 안에서 진리를 만납니다.

진리의 원천이신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을 향한 올바른 시각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성령께서는 지배자의 입장이 아닌 보호자의 모습으로 도움을 주고받길 원하십니다.

참된 보호는 참된 질서이며 참된 진리입니다. 참된 진리는 참된 관계로 우리를 이끕니다. 사랑도 진리의 영과 함께하지 않으면 길을 잃습니다.

참된 관계 참된 사랑으로 하느님을 드러내는 진리의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진리의 영은 예수님을 향하고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십니다.

사랑의 보호자 성령께 신앙의 이 모든 여정을 의탁합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좋으신 보호자가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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