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 드러내셨네. 알렐루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언제나 저희 안에 파스카 성사를 이루시어 거룩한 세례로 새로 난 저희가 하느님의 도우심과 보호로 이 세상에서 믿음의 열매를 맺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얻게 하소서.
2023년 5월 7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5월 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5주일
베드로1서 성경 말씀 카드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1베드 2,4)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6,1-7)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았다. - 제2독서
(베드로1서 .2,4-9)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입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4,1-12)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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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복음
요한 14장 1-12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5월 7일 (일)
수원 용문성당
유주성 블라시오 신부 집전
📌 수원 용문성당 소개 00:25
📌 미사시작 01:53
📌 강론시작 17:45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5월 7일 (일)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3:01
📌 강론시작 15:40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7일 (일)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7
📌 강론시작 08:27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강수원 베드로 신부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길은 나보다 앞서 걸어간 이의 흔적입니다. 아무리 “이 길의 끝은 정말 좋은 곳이니 나만 믿고 따라오시오.” 하고 외쳐도, 그가 누구인지,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다면 무작정 따라나설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면서 목숨을 내놓고 따르겠다는 베드로, 주님의 목적지도 길도 모른다는 토마스,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 그저 아버지를 뵙게만 해 달라는 필립보, 이들은 주님과 이별하는 순간까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는 동안 당신과,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주님 자신)을 모두 알려 주셨습니다. 그날의 제자들처럼, 내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과 심박(深博)한 신앙 체험이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는 의지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오늘 독서들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 줍니다. 제1독서는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선포)을 첫자리에 두었기에 온 교회의 믿음이 충만하게 자라났다고 증언합니다.
또한 제2독서는 하느님께서 손수 놓으신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 제물을 바치는 거룩한 사제로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기도와 복음서와 성체성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 말로 ‘진리’(알레테이아)는 ‘망각’(레테)의 반대말입니다. 진리이신 주님께서는 기도와 성경과 미사 안에서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가 잊고 있던 아버지의 뜻을 깨우쳐 주십니다. 삶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찾아내며, 주님을 따라 기쁘게 아버지께 나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텔레비전을 보면 많은 예능 프로가 있습니다. 잘 보지는 않지만 어쩌다 한 번 보면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능 촬영지에서 직접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현장감까지 더해져서 큰 재미를 얻을 것으로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방송과 실제 촬영을 비교하면 방송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예전에 한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스님, 목사, 교무, 신부가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입니다. 출연 제의를 받고 이 방송을 다시 보기로 보니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 재미를 기대하며 방송 출연을 승낙했습니다. 그리고 촬영을 모두 마친 뒤에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방송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이지요. 1시간 방송 분량을 위해 자그마치 6시간 넘게 촬영하는 것입니다(그 뒤 촬영 제안이 오면 늘 촬영 시각을 묻게 됩니다). 막바지에는 지쳐서 가만히 있자, 담당 PD가 스케치북에 글을 적어서 번적 들었습니다. 그 글은 이러했습니다.
“신부님, 웃으세요. 그리고 말 좀 하세요.”
너무 힘들어서 표정이 굳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말할 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 몇 번의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하긴 방송은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당연히 재미있게 편집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너무 힘들더군요. 이 촬영 후 방송 출연하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입담뿐 아니라 체력이 좋아야 방송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과연 진실이라 할 수 있을까요? 보여주기 위한 것과 실제의 간격은 너무나 큽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단순히 보고 있는 것만을 보고 진실이라고 착각합니다. 그 너머에 있는 숨겨진 진실은 전혀 보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너머에 있는 영적인 진실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또 함께하면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점을 분명히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보려 합니다. 기쁨의 시간을 보낼 수 없습니다.
필립보 사도가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지금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느님을 청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하시는 주님임을 굳게 믿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는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1베드 2,9)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것을 넘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더 큰 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인생은 피아노와 같다. 당신이 어떻게 연주하는 것에 따라 얻는 것이 달라진다.
- 톰 리어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버티는 삶과 준비하는 삶의 차이
존 존스(Jon Jones)는 목사의 아들로 어렸을 때는 TV나 인터넷도 하지 않고 자라서 천부적인 재능으로 스물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종합격투기 챔피언이 됩니다. 그런데 챔피언이 되고서부터 천천히 자신 안에서 악마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경기 하기 일주일 전에 필름이 끊어질 정도로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고 퇴폐 생활을 합니다. 그래야 만약 경기에 졌을 때도 자기 실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핑계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한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임신부의 팔을 부러뜨리고 도주한다던가, 아니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사고와 범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스스로 자기를 망가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찍 성공한 이들이 이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권투선수 타이슨도 그랬고, 영화배우 샤이아 라보프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의 주인공 샤이아 라보프는 조금 달랐습니다. 처음엔 부모의 이혼으로 부모를 믿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자신만을 믿게 되었고 일찍 영화배우로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폭행과 시비로 경찰서를 들락거렸고 결국엔 삶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을 바꿔준 계기가 있는데 알코올중독 치료사로부터 받은 테이프였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새옹지마’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새옹지마는 지금의 고통도 지나가면 행복이 될 수 있고 지금의 행복도 지나면 고통이 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지금의 시간을 버틸 필요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자신의 폭력으로 여자가 짐을 싸고 있을 때 이전과는 다르게 친절하게 보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앙을 받아들여 가톨릭 신자가 되고 비오 성인의 영화 주인공도 맡게 됩니다.
우울증을 소재로 한 단편영화 ‘커브’(Curve)는 위로 올라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밑으로 떨어질 수도 없는 절벽과 같은 상태에 놓인 한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버텨보려 안간힘을 쓰는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사람은 나아질 때, 목표가 있을 때 삶의 희망이 생기고 지금의 고통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버틴다’라는 말은 그야말로 절망이요, 지옥입니다. 삶의 의미가 버티는 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버틸 수 없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수용소에서 버티려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의미를 찾는 사람은 살았습니다. 그 의미란 수용소 밖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넬슨 만델라가 27년간의 수감생활을 하고 나올 때가 72세였습니다.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젊은 사람 못지않은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팔순이 다 되어 남아공의 첫 유색인종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의 저자 토니 로빈스가 넬슨 만델라에게 “어떻게 감옥에서 그 긴 세월을 견딜 수 있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만델라는 “난 견뎌냈던 적이 없다오. 준비하고 있었던 거지”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언젠가는 출소하여 더 큰 일을 하리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할 틈이 없었던 것입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우승을 이끈 메시는 우승 직전 “할머니, 오늘이 될 수도 있어요”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메시는 할머니 덕분으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몇 번의 은퇴를 결심했었지만, 결국 하늘에 계신 할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정진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 마음이 산란하지 않도록 당신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아버지께 가서 우리 자리를 마련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당신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시기에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만나러 가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견디며 힘차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구약의 야곱은 20년간 장인 라반 밑에서 노예처럼 일하다 도망하기까지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에사우를 만나기 위한 준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사우의 축복을 대신 가로채고 그에 합당하게 살지 못한다면 나중에 에사우를 볼 면목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20년간 살며 노력해서 얻은 모든 것을 에사우에게 바치고 자신도 바칩니다. 그리고 에사우에게 인정받습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당신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요한 4,12 참조).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잘려나간 밑동에서 새 순이 돋아납니다. 아픔과 상처를 딛고 일어나는 생명입니다. 하나하나의 생명은 그야말로 엄청난 신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생명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생명을 불어 넣어주시는 사랑이 참된 생명입니다. 생명이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간절한 뜻입니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생명 길을 내시는 분은 언제나 생명이신 주님 자신입니다. 주님께서는 생명의 품격을 당신의 삶으로 높여주십니다. 생명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공존(共存)의 기쁨입니다. 생명의 공동체에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비우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경배는 다름 아닌 생명에 대한 사랑입니다. 공존의 철칙이 생명이며 생명의 철칙이 상생입니다. 생명의 주님께 제 몸과 마음을 맡겨드립니다. 생명의 행복이 생명의 복지입니다. 생명의 뒤를 받쳐 주시는 생명의 주님이 계십니다. 주고받아야 할 사랑이며 부드러운 감사입니다.
서로에 대한 공격을 멈추는 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 마시는 우리의 참된 자세입니다. 언제나 생명의 중앙(中央)에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생명을 업고 키우셨던 부모님을 우리가 이제 업어 드려야 할 생명의 시간입니다. 생명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배우고 실천하는 생명의 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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