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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5/09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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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이든 높은 이든 하느님을 경외하는 모든 이들아, 우리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그리스도의 권세와 권능과 구원이 나타났다. 알렐루야.

하느님, 그리스도의 부활로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찾아 주시니 저희가 한결같은 믿음과 희망으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이나 다 이루어 주심을 의심 없이 믿게 하소서.

 

2023년 5월 9일 (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5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로마서 성경 말씀 카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 믿나이다. (로마 6,8)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 믿나이다. (로마 6,8) 로마서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14,19-28)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 오늘 복음
    (요한 14,27-31ㄱ)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5월 9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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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당신 영광 속으로 들어가셨네.

 

 

복음
요한 14장 27-31ㄱ절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5월 9일 (화)
장한별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23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5월 9일 (화)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35

📌 강론시작 16:56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9일 (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0:46

📌 미사시작 1:00:53

📌 강론시작 1:07:4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강수원 베드로 신부

 

평화를 잃지 않기 위한 방법

 

예수님 시대에 로마 제국이 자부한 ‘Pax Romana’(로마의 평화)는 전쟁이 없는 안정과 번영의 시대를 뜻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바쁜 나날이지만 경제적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날 때 평화롭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벗어남으로써 얻는 소극적인 평화는 쉽게 깨집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참혹한 수난을 눈앞에 두신 분께서 주신다는 그 평화는 대체 무엇입니까? 요한 복음서에서 “평화”라는 단어(그리스 말 ‘에이레네’)는 여섯 번 나옵니다. 세 번은 주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제자들의 고난을 예고하실 때(14,27; 16,33 참조), 또 세 번은 부활하신 뒤 문을 잠그고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인사를 건네실 때 나옵니다(20,19.21.26 참조). 이처럼 주님의 ‘평화’는 언제나 그분의 ‘현존’과 함께 그분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걱정과 두려움은 시시각각 우리 영혼을 파고듭니다. 그러나 ‘세상의 우두머리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일상의 그 어떤 억압과 불안도, 내 속을 집요하게 헤집어 하느님에게서 떼어 놓으려는 어둠도, ‘주님과 함께 있는 나’를 절대로 어찌하지 못한다는 그 믿음과 당당함을 되찾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돌을 맞아 초주검이 되었다가 겨우 살아나고도, 두려움에 무릎 꿇지 않고 용기와 확신으로 주님의 일을 계속한 바오로 사도처럼 말입니다(제1독서 참조).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확신으로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는 나의 모습은, 그 자체로 주님을 닮아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일입니다.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도, 내가 획득하는 무엇도 아닙니다. 평화는 누구도 나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부활하신 주님의 선물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있음’ 그 자체로 사랑해야한다.

 

자기 고집이 너무 큰 남편을 변화시키기 위해 30년 이상을 헌신적으로 남편을 섬겼다고 말씀하시는 자매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변화되었냐고 여쭤보니, 지금은 정년퇴직했는데 전보다 더 안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이제 포기해야 할까? 그래서 헤어질 것을 고민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주위를 잘 보면, 타인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타인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사람을 찾기란 정말로 어렵습니다. ‘나’ 하나도 바꾸기 어려운데, ‘나’ 아닌 ‘타인’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심리학책을 보니, 자기에게 타인을 바꿀 능력이 있다는 착각은 비뚤어진 자기애에서 나올 때가 많다고 하더군요. 
 
건강한 자기애로 충만한 사람은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의구심이 없기에 세상에 굳이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반대로 건강한 자기애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기 능력으로 세상에 자기 뜻을 펼치는 데 실패했을 때입니다. 그때 타인을 통해 자기 뜻을 실현하기 위해 타인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마음이 평화롭지 않습니다. 
 
‘있음’ 자체로 소중합니다. 그렇기에 굳이 세상에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의 부족함을 볼 것이 아니라, 자기 전 존재를 ‘있음’ 그 자체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굳이 남을 바꾸려는 힘 빠지는 노력에서 벗어나서, 나 역시 타인을 ‘있음’ 그 자체를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 삶에 크게 관여하지 않으시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남의 삶에 끼어들려고 할까요? 귀하게 만드신 주님 사랑에 감사하며, ‘나’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생기면서 진정한 평화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요한 14,27)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평화는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게 합니다. ‘있음’ 그 자체를 받아주시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평화입니다. 주님께서는 평화의 인사를 나누실 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하셨지요. 이렇게 주님의 평화는 언제나 그분의 현존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 대한 믿음 없이는 평화 역시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분 안에 머무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고통과 시련 안에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 어려움은 마친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처럼 기도하는데서 옵니다.

- 예수의 데레사 성녀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심란하지말 것 기뻐할 것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이 말씀은 제가 장례 미사를 주례할 때 자주 하는 말입니다. 고인은 유족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간 것이고, 그렇기에 유족은 고인을 위해서 슬퍼할 것 없다는 얘기지요. 

지난주에는 저의 제자가 죽은 지 50일 되는 미사를 봉헌했는데 그때도 같은 취지로 미사에 참석한 남편에게 얘기했지요. 

제가 그렇게 말했지만, 입관 예절할 때 정작 저는 그의 얼굴을 보고 터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어서 하염없이 울며 미사를 봉헌했는데 그것은 그의 일생을 생각하니 너무 서러웠기 때문이었지요. 

그렇습니다. 그의 이 세상 삶은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서러운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 세상 삶을 끝내는 것은 고통을 끝내는 것이고, 장례 미사 때 자주 듣게 되는 것처럼 이제 다시는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게 되는 것이니 오히려 잘된 것이었지요. 

그래서 생전 잘못해준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그의 남편에게도 너무 죄책감 느끼지 말라고, 이제 고통이 끝났으니 잘된 거라고 얘기했지요. 

그러나 고통이 끝난 것보다 더 잘된 것은 하느님께로 간 것이지요. 저의 제자도 아직 아이들이 다 크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더 살고 싶어 했지만, 더 버틸 수 없게 되자 마지막에는 죽음을 잘 받아들이고 마무리도 잘하고 떠났는데 분명 하느님께로 간다는 믿음을 가지고 평안하게 세상을 떠났을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태어난 것이 단백질의 합성 작용으로 태어났거나 육신의 아비와 어미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태어났다고 분명히 믿는 우리라면 우리도 주님처럼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라는 믿음도 확고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분들, 그중에서도 신앙인들은 분명 그럴 겁니다. 문제는 남아있는 사람들, 곧 우리인데 슬픔, 후회감, 죄책감, 허무감이 들고, 심지어 절망감까지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하고 그런 것이 없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없거나 없기를 바란다면 나쁜 놈이고 사랑치 않는다는 표시이니 그를 사랑한다면 그런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고통은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고 오늘 주님께서 당신이 아버지께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고 하신 말씀에는 이런 뜻도 있을 것입니다. 

감내하는 고통과 몸부림치는 고통이 다르고, 평화로운 고통과 심란한 고통이 다릅니다. 감내하는 고통은 고통이 마음 한편에 있어도 마음 산란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옷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지 않고 옷장에 잘 개켜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대로 날뛰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그런 감정에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사랑이 고통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 평화를 주고 가신다는 것은 이런 뜻만이 아닙니다. 다시 오신다고 하셨으니 버려두고 가시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신은 가고 평화만 남겨두시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신의 평화, 곧 당신도 함께 계시는 평화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당신이 떠나도 우리와 함께 계셔 주시는 분이 바로 주님의 성령입니다. 그것은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남긴 그 영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를 주시겠다고 하기 전에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그 뜻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하고, 그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하시는 평화입니다. 주님 자체가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분열이 아닌 참된 일치입니다. 증오와 갈등이 믿음과 사랑으로 바뀝니다. 옳고 그름의 심판이 아닌 열림과 자유의 뜨거운 만남이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힘의 논리로 포장된 세상의 평화가 아니라 양심을 일깨우는 평화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평화로 주님의 십자가로 소중한 것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사랑을 알게되었습니다. 평화는 삶의 길을 가르쳐줍니다. 삶의 절대적 가치가 바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사랑과 용서로 거듭나는 평화입니다. 올바른 사람의 길이며 올바른 신앙의 길입니다. 

올바른 관계의 실천이 주님께서 실천하신 평화입니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새로운 지혜의 실천인 십자가로 우리의 마음을 소중한 존재 바꾸어 놓으십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평화입니다. 

주님의 평화에서 주님의 부활을 만납니다. 붙잡을 것도 놓을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과의 일치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이 순간이 가장 좋은 평화의 날입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만날 수 없는 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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