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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4/20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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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당신 백성에 앞장서 나아가실 제, 그들 가운데 사시며 길을 열어주실 제, 땅은 흔들리고 하늘은 물이 되어 쏟아졌나이다. 알렐루야.

하느님,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파스카 제사를 세우셨으니 간절히 기도하는 이 백성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대사제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저희와 화해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으로 저희를 용서해 주소서.

 

2023년 4월 20일 (목)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4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오늘 성경 말씀 카드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마태 28,20)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마태 28,20)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5,27-33)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오늘 복음
    (요한 3,31-36)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4월 20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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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토마스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복음
요한 3장 31-36절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4월 20일 (목)
박민재 미카엘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06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4월 20일 (목)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9:17

📌 강론시작 17:31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20일 (목)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20일 (목)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싶습니까?

 

오늘 복음은 ‘니코데모와의 대화’를 마무리하는 부분입니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요한 복음 3장의 끝에서 예수님의 신원을 둘러싼 논쟁을 정리하여 설명합니다. 하늘과 땅, 증언의 수용과 거부,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자(순종하지 않는 자)의 대조는 예수님의 우위성과 신적 기원을 두는 예수님 증언의 절대성을 강조하려고 사용됩니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신원과 사명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오시는 분”이시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로서 십자가에 들어 올려져야 하는 하느님의 계시자이십니다(3,13-14 참조). 

예수님께서는 유일하게 하느님을 직접 만나셨기 때문에 당신께서 직접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관계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표현으로 강조되는데, 앞서 요한 복음 3장 16-17절은 예수님을 하느님에게서 파견된 이로 소개합니다. 

외아드님의 파견은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에게서 성령을 받으시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증언하시는 것이 참된 이유는 ‘하느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다른 반응으로 끝납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만,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는 구원과 심판,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한 가지씩 선택하도록 요청받습니다.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기도, 묵상을 통해 우리는 더 큰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원시인들은 눈앞의 사나운 짐승이 나타나면 일차적으로 두려움이 생겼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 근육을 움직였습니다. 즉,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했습니다. 두려움이 생길 때 활성화되는 부분이 뇌의 편도체입니다. 이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전전두피질의 기능은 심각하게 저하된다고 하지요. 원시 사회에서 인간은 모든 동물 중에 최약체였습니다. 힘도 없고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하늘을 날거나 물속을 헤엄칠 수도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지능을 사용할 때 활성화되는 전전두피질의 기능의 발달이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험 볼 때,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긴장하지 마. 다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만 지능을 사용하는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두려움 속에서는 지능의 활성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긴장되는 순간에서도 편도체를 안정화하고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할 수 있어야 올바른 판단으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편도체를 안정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많은 심리학자는 명상을 이야기합니다. 눈을 감고 마음의 평화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기도, 묵상과 다를까요? 
 
기도, 묵상을 통해 우리는 더 큰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왜 기도와 묵상을 소홀히 할까요? 
 
편도체의 활성화가 계속되는 원시인이 아닌,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는 현대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걱정이 많아져서 우리 뇌의 편도체가 계속 활성화되는 원시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서 또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현대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이 아드님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굳게 믿는 이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길이 아니라 영원한 벌이 머무는 길을 선택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굳은 믿음보다 세상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 보면, 성령과 하나 된 사도들이 힘차게 예수님을 증언하면서 말합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 5,29) 
 
이 말을 듣고 오히려 격분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어서 나온 모습입니다. 당연히 영원한 생명보다 영원한 벌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나요? 더 열심히 기도와 묵상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물을 빤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스스로 헛된 바람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 존 포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태양에 반응하지 않으면 생명체가 아니다.

 

영화 ‘더 레슬러’는 1980년대에 활동했던 프로 레슬링 스타인 랜디 로빈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랜디는 예전에는 레슬링계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지만, 그의 몸은 나이와 건강 문제로 인해 점점 약해져 가고 경기도 이전보다는 덜 하게 됩니다.

평생 레슬링에 몸을 바친 랜디는 아내도 없고 딸도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으며 세상에서 혼자가 되었습니다. 돈도 없어서 컨테이너에서 사는데 그마저 월세도 밀린 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랜디는 소규모 관객을 대상으로 레슬링 경기를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 되돌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의사는 심장에 무리가 와서 더는 레슬링을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는 레슬링 아닌 곳에서 안식처를 찾지만 찾지 못합니다. 아이 하나 딸린 술집 여자만이 그에게 관심을 가져줍니다. 그리고 그녀의 응원으로 딸과의 관계도 회복시켜보려 합니다. 그러나 관계란 것이 틀어질 때도 있기 마련인데 랜디는 딸과 연인과의 관계 모두를 다시 엉망으로 만듭니다. 

랜디는 다시 무대에 나섭니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죽기를 원합니다. 이미 그를 응원하는 함성소리가 크게 울려퍼집니다. 그를 걱정하여 온 애인이 무대에 오르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랜디는 여자의 말을 뿌리치고 무대로 오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환성소리를 지르며 천천히 죽어갑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미키루크는 80년대를 풍미했던 꽃미남 영화배우였습니다. 하지만 마약과 교통사고 후 망가진 얼굴로인해 삶이 추락해버렸고 이후 성형수술로 얼굴 복원 수술을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해서 지금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리영화속 주인공의 설정은 사실상 현실의 미키루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하늘 아니면 땅입니다. 땅은 우리가 본래 생겨난 곳입니다. 랜디에게는 링입니다. 거기서 벗어나려 해도 다른 곳에서의 안식처가 그 링의 유혹을 이길만큼 크지 못합니다. 그는 이전의 영예도 다시 느끼고 싶고 애인이나 딸과의 관계도 잘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욕심이었고 그러다 다 망쳐버렸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어쩌면 하늘과 땅은 영원히 만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음을 몰랐을 수 있습니다. 애인에게 가기 위해서는 링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극단적인 이원론일 수밖에 없습니다. 통합이니 뭐니 하는 소리에 휘둘리면 안 됩니다. 극단적 이원론 시각으로 볼 줄 알아야 올바른 선택이 가능하고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에 계십니다. 땅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어쩌면 “하느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하늘에만 계십니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라고 하십니다.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섞일 수 없는 분이란 뜻입니다. 주님의 기도에서도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합니다. 왜 땅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으실까요? 

사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는 곳이 땅입니다. 땅이란 하느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하느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공간이 있을까요? 인간의 자유의지로 하느님의 영향을 단절한 곳이 존재합니다. 그곳이 우리 마음일 수도 있고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지옥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예가 있습니다. 태양은 모든 나무에 빛을 줍니다. 하지만 죽은 나무 속으로는 빛이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합니다. 땅은 그러한 곳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은 하늘과 하늘이 된 존재에게만 함께 머무시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난 존재는 어떨까요? 빛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그 사람 안에 들어가 열매를 맺는다면 그 사람은 하늘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죽은 나무처럼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땅에 속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구원과 멸망이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꽃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태양에 반응하고 바람에 흔들립니다. 하느님 말씀에 반응하고 흔들린다면 아직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카리옷 유다처럼 흔들리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간다면 죽은 것입니다. 죽은 고목에 아무리 태양 빛을 쬐여도 그것은 살아나지 못합니다. 

하늘 아니면 땅입니다. 빛 아니면 어둠입니다. 생명 아니면 죽음입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입니다. 둘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하늘의 것이 되려면 생명을 갖는 수밖에 없습니다. 땅의 것을 포기하고 하늘로 오르는 나무처럼 되어야 합니다. 바람에 흔들리고 빛에 반응할 때 그 생명은 땅에서 낳지만 하늘의 것이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복되고 고귀한 순종.

 

오늘 독서와 복음은 모두 주님께 대한 순종에 대해 얘기합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께 대한 순종에 대해 묵상하다가 주님께 대한 순종을 아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왜냐면 하느님께 대한 순종이 개념조차 없는 사람이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순종? 그게 뭐야? 왜 하는 건데? 이러는 사람 말입니다.,그런데 제 생각에 이런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순종 이전에 순종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뭘 안다면 복종이나 굴종을 알지 순종과 같이 고급스러운 것은 모를 것이고,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같이 거룩한 것은 더더욱 모를 것입니다. 

그러니 순종이 뭔지 알고 더 나아가 오늘 사도들처럼 인간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까지 아는 우리는 참으로 복되고 고귀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는 것만으로도 복되고 고귀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순종을 실제로 산다면 얼마나 더 복되고 더 고귀하겠습니까? 

사실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위에서 내려오신 주님처럼 위로 하늘로 오르는 사람이기에 하느님께 순종하는 겁니다. 땅에서 기어 다니는 사람은 기껏해야 인간에게 순종하지요. 땅의 것밖에 못 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보고 하느님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 뜻에 따라 위에서 오신 주님이 모든 것 위에 계신 것처럼 주님을 따라 우리도 하느님께 순종하면 주님처럼 모든 것 위에 있고, 모든 것 위에 있기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것입니다. 

하늘을 높이 나는 독수리가 땅의 산과 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고, 자유롭게 강을 건너고 높은 산도 아래로 보고 넘어가듯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높은 사람도 아래로 보고 불순종하고, 낮은 사람에게도 하느님 뜻에 따라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신앙은 우리자신을 보게하고 우리자신을 하느님께 내어드리는 순종의 삶으로 우리를 살게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계시기에 참된 신앙 참된 순종이 있습니다. 

신앙은 자아 중심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합니다. 자아 중심에서 벗어날 때 신앙은 삶을 끌어안고 삶은 신앙으로 하느님을 드러냅니다. 변화의 실마리를 다름아닌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에게서 발견합니다. 

발견이란 삶의 중심을 만나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을 확립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말씀 안에 사는 삶입니다. 말씀이 사람을 키우고 말씀이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말씀의 순종이 올바른 변화임을 믿습니다. 

한 가닥 희망인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의 호흡이며 생명임을 믿기에 참되신 하느님께 의탁합니다. 말씀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오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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