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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3/03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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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를 고난에서 빼내 주소서. 비참한 저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저의 죄악 낱낱이 없애 주소서.

주님, 신자들이 파스카 축제를 정성껏 준비하며 엄숙히 시작한 육신의 재계로 영혼의 참된 쇄신을 이루게 하소서.

 

2023년 3월 3일 (금)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3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에제키엘서 18,21-28)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 오늘 복음
    (마태오 5,20ㄴ-26)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3월 3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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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복음
마태오 5장 20ㄴ-26절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3월 3일 (금)
박성호 다미아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08:43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3월 3일 (금)
전두병 요아킴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47

📌 강론시작 16:28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3일 (금)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8:01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3월 3일 (금)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미사시작 1:07:52

📌 강론시작 1:16:5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하느님의 속뜻 깨닫기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는 신약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물들로 유다교 안에서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율법 학자는 율법을 공부하고 그것을 해석하며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바리사이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의롭게 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율법은 성전에서 바치는 제사와 함께 종교 생활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에 대하여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보다 더 폭넓습니다. 

실제로 생명을 빼앗는 행위만이 아니라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그들에게 ‘바보, 멍청이’라고 하는 것도 처벌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도 중요하지만, 원망을 품은 사람이 있다면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화해해야 합니다.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들은 계명과 율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외적으로 계명을 지키는 데 머물지 않고 계명이 가리키는 것들도 따르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외적인 행동만이 아니라 내적으로 가진 원망이나 미움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포함됩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은 하느님 말씀의 속뜻도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이 외적인 것에 치중하였다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의로움은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까지 따르는 자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찾기.

 

2010년 심리학자 줄리안 홀트 룬스태드가 동료 학자들과 다음과 같은 조사 연구를 했습니다. 암, 심혈관 질환, 신부전 같은 만성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의 비율과 이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종합 분석한 것입니다. 그 결과 힘이 되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있으면 사망 위험성이 50%까지 감소한다는 결과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담배를 끊어서 얻는 효과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체질량지수(BMI)를 건강하게 유지할 때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효과였습니다. 
 
이렇게 이웃은 나를 지켜주는 지원 체계였습니다. 건강과 행복, 삶의 만족도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좋은 이웃으로 이루어진 양질의 사회적 관계인 것입니다. 따라서 함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이 세상 안에서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질적 도움 등의 유용한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을 때, 뇌의 신경화학 물질이 면역계의 효율적인 기능을 촉진하기 때문에 건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건강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바쁜 일상 가운데에서도 운동하고, 또 몸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를 복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의 영양제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더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당신께서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셨던 사랑이 단순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함만은 아닙니다. 이 세상 안에서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금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열심함은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감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열심한 생활로 그 모습을 통해서도 다른 이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사실 그들은 보여주기 위한 열심, 자기만족을 위한 열심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대의 사랑을 실천할 것을 명령하시지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지 않고, 욕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든 화해할 수 있는 관계,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야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하늘 나라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인 나의 이웃이 이 세상 안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늘 나라에도 들어갈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열심히 사랑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겸손해져라.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장 불쾌감을 주지 않는 종류의 자신감이다.

- 쥘 르나르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화를 참는 연습을 하면 화 나는 횟수가 줄어들까?

 

한 번 화를 내서 주위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열 번 잘 해 줘도 한 번 화를 낸 것을 기억합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모든 인간의 존재방식입니다. 그러니 한 번도 화를 내지 않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와의 사소한 말다툼으로 자녀와 연을 끊고 지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들은 물론이요 손주들도 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화를 한 번도 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많은 세상의 가르침은 숫자를 세어라, 화가 나는 이유를 종이에 적어라 하는 식으로 연습을 하면 화가 누그러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치유책이 아닙니다. 화는 사실 밖으로 내지 않고 참더라도 화를 낸것처럼 몸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화 자체가 생겨나지 않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가 어디에서 생기는지 알아야 합니다. 화는 ‘마음’에서 올라옵니다. 그러니 마음을 고치면 됩니다. 마음을 고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화가 안 나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마음은 누구에게 받는 것일까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받습니다. 아이들은 당연이 부모입니다. 특별히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을 자녀에게 주는 존재입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 윌 헌팅(맷 데이먼)은 어렵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윌은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던 중, 어머니가 자신의 남자친구와 함께 가출해버렸습니다. 그 후 윌은 사실상 무가족 상태에서 자랐으며, 어릴 적 상처로 인해 가족이나 친구를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엄청난 분노로 자리잡았습니다. 자기 또래의 다른 이들이 사랑 받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과는 너무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좋아서 수학을 잘 하지만 그는 그 능력으로 모든 이들을 조롱합니다. 

이때 마지막으로 윌을 도와주는 사람은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암스)라는 심리학 교수입니다. 그는 모든 이를 조롱하는 그를 진정으로 치유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책하지 말라고 그를 안아줍니다. 이 영화에서 윌의 아버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 윌이 숀을 아버지로 받아들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숀의 마음으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숀의 말대로 화가 나서 떠나보낸 여인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영화의 제목이 “좋은 의지 사냥”인 것은 매우 특별합니다. 주인공 이름이 윌인 것도 있겠지만, 삶을 위한 좋은 의지는 내가 찾는다는 뜻입니다. 윌은 그 마음을 숀에게서 찾았습니다. 숀을 사랑하게 되자 그의 마음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장착하니 화가 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화가 나는 이유는 태어날 때의 생존만 생각하는 그런 마음을 바꿔줄 대상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아버지로 인정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의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삼게 됩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기요사키는 가난한 생물학적 아버지보다는 친구의 아버지인 부자 아빠를 진정한 자신의 아버지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 그의 삶의 방식을 배웁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친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친구 아버지의 모습을 지닌 사업가가 됩니다. 누군가를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마음으로 산다는 말과 같습니다. 

외적으로 부모를 닮은 것은 너무 쉽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매를 맞아본 적이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희에게 매를 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결혼하여 자녀를 때를 수 있을까요? 이는 이율배반적 행동이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나 부모를 증명하며 부모를 계시하며 삽니다. 그렇지만 그런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떨까요? 화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녀와 등을 지고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여기고 사는데 형제에게 화를 낼 수 있을까요? 하느님은 우리에게 성을 내지 않으십니다. 화를 내야 하실 때도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죄를 없애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요한 12,47)

하느님은 심판하시는 마음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마음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분을 아버지로 삼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분의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그분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란치아노에서 성체가 사람의 심장 조직으로 변한 기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UN에서도 인정한 기적입니다. 

왜 심장일까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체를 영할 때 그분의 마음을 받는 것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마음이 아니라 행동만 따르려 했습니다. 그런 의로움으로는 하느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화 자체가 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양식 안에는 부모의 마음이 담깁니다. 그러니 성체를 영하는 우리는 화를 도무지 낼 수 없는 하느님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만이 예물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과 주님께서 제자인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얘기입니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하느님께서 정말로 기뻐하시는 것은 회개하고 사는 것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제에게 가서 화해하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은 회개하고 형제와는 화해하는 것, 이것이 자기가 살뿐 아니라 공생하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주님의 비유는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러 가는 사람 얘깁니다. 그런데 형제가 자기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제 생각에 이 생각이 난 것만 해도 이 사람은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원망스러운 사람은 생각나도 원망하는 사람은 생각지 못하니 말입니다. 

아무튼, 이 사람은 형제가 자기를 원망할 짓을 한 사람이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면서 형제가 생각이 난 사람이며, 이런 상태에서 하느님께 나아가 제물을 바친다면 하느님께서 결코 그 예물을 기꺼워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은 형제에게 몹쓸 짓을 하고 바치는 예물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것은 동생 것을 뺏어서 부모에게 바치는 것과 같은 것이고, 자기만 잘 보이고 자기만 살겠다고 바치는 뇌물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랑만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예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공생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십자가 속에 살다가 십자가로 끝나는 십자가의 역사입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약한 부분과 아픈 부분을 절실히 깨닫게 합니다. 감추어 둘 것이 아니라 드러내어 깨닫는 관계가 진정한 관계입니다. 불편한 관계는 바람직한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인격성숙은 십자가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은 건강한 신앙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상처와 아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관계는 불편한 관계를 포함한 모든 삶의 상처를 포함합니다. 

상처는 어긋나 있는 우리의 관계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치유의 원동력이 됩니다. 치유를 받은 사람은 갚아야 할 사랑이 무엇인지를 정녕 아는 사람입니다. 최선의 길은 회개이며 회개는 십자가와 함께 걸어가는 화해와 용서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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