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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2/14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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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인들은 천상 진리를 영광스럽게 선포하여 하느님의 벗이 되었네.

하느님, 복된 치릴로와 메토디오 형제를 통하여 슬라브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으니 저희 마음을 비추시어 하느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깨닫고 참되고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 안에서 한 백성을 이루게 하소서.

 

2023년 2월 14일 (화)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2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창세기 6,5-8; 7,1-5.10)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 오늘 복음
    (마르코 8,14-21)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2월 14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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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

 

 

복음
마르코 8장 14-21절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그때에 

14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16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 

17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2월 14일 (화)
마호성 아브라함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13

📌 강론시작 08:10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2월 14일 (화)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29

📌 강론시작 15:24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2월 14일 (화)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18

📌 강론시작 06:4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노아와 같은 사람으로 살아갈 꿈

 

창세기 저자가 아담의 후손들(5장 참조) 가운데에서 특별히 주목한 사람은 두 명, 곧 ‘에녹’과 ‘노아’입니다. 에녹은 이 족보의 인물들 가운데에서 가장 완전한 사람으로 평가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설명할 때 창세기 저자가 쓴 “-가 살았다.”라는 표현 대신에 에녹을 위해서는 “하느님과 함께 걸었다.”(창세 5,24 직역)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입니다. 

또 에녹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 쓰였던 “(살다가) 죽었다.”라는 표현 대신 하느님께서 “데려가셨다”(5,24)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에녹과 노아의 연관성입니다. 학자들은 ‘에녹’이라는 이름에서 ‘노아’라는 이름이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노아(nôaḥ)의 이름에서 자음을 거꾸로 배치하면 에녹(hanôkh)에 가까와집니다. 

창세기 저자는 노아를 의롭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에녹의 경우처럼 노아도 하느님과 함께 걸었다(6,9 참조)고 묘사합니다. 노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홍수를 피하고 죽음을 건너갔습니다. 이처럼 창세기 저자는 에녹과 노아를 소개하며 하느님의 길 위에서 걸어간 사람들은 죽음을 알지 못한다고 강조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노아를 눈여겨보신 하느님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그들 마음의 생각을 따라 살며 세상을 파괴하고 황폐하게 만들고 있을 때 노아만은 하느님과 함께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의 건설과, 그 다음에 할 일을 지시하시는 두 번의 말씀은 무척 깁니다(6,12-21; 7,1-13 참조). 이것은 마치 홍수가 하느님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폭력과 악으로 세상이 다시 ‘혼돈’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정반대로 방주는 아주 잘 지어진 또 다른 세상입니다. 

방주는 하느님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의인과 함께 세상을 새롭게 시작하시겠다는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또한 의로운 목자의 지도 아래 세상을 새롭게 하고 이어지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이 실현되는 장소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노아와 같은 사람으로 살아갈 꿈을 접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 에녹과 노아처럼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 하느님 나라를 위한 그분의 계획을 실현하는 우리의 작은 ‘방주’를 지으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자신감 실험

 

재미있는 실험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래서 늘 자신감이 넘치는 남자 10명을 세워두고 그 앞에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밝은 미소와 함께 윙크하고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10명의 남자에게 앞의 여성이 누구에게 미소를 짓고 윙크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모두 자신을 보고 미소 짓고 윙크했다고 대답합니다. 
 
이번에는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 남의 눈치 보는 것에 더 익숙한 남자 10명을 세웠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하면서 밝은 미소와 함께 윙크하고는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 미소를 짓고 윙크했느냐는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보고 미소 짓고 윙크했다고 말합니다. 
 
이 실험을 보면서, 주님의 시선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분명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고 우리와 함께하시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이 많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지요. 주님께서 나를 외면하신다고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서 불평불만을 합니다. 정말로 그렇게 차별하시는 주님이실까요? 아닙니다. 지금 내 마음이 주님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아서, 또 주님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어서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신다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또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기에 어떤 것도 다 할 수 있다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세상의 말과 행동에 흔들린다면, 나를 바라보시고 또 함께하시는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조심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마르 8,15)라고 분부하십니다. 누룩은 나중에 어마어마한 효과를 내는 작고 감추어진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누룩이라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옳게 보이지만 실상은 많은 악이 감추어져 있어서 사람들을 나쁜 쪽으로 이끌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이들의 위선을 조심하려는 것이 아닌, 빵이 없다고 수군거릴 뿐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물질적인 빵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통렬히 꾸짖습니다. 그래서 전에 행했던 빵의 기적을 다시 기억하게 하면서,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에만 집중하기를 바라십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어떤 것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용기입니다. 그래야 세상의 것에 흔들리지 않고, 힘차게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용감한 사람은 더 강한 자를 향해 분노하며, 비겁한 자는 더 약한 자를 향해 분노한다.

- 루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복음을 전하는 이가 빵 걱정을 할 필요 없는 이유

 

만약 달리기 경주에서 출발선이 앞서있다면 그만한 이점이 있습니다. 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 거부는 유산상속을 통해 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흑수저, 금수저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지원을 잘 받은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그만큼 어려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을 볼까요? 세계 대부호들은 대부분 상속이 아닌 자수성가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참 특이합니다. 그들은 모두 어릴 적 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들은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특별히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전 세계 최고 부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둘 다 우주 산업에 큰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릴 적 경험이 나를 우주로 이끌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SF소설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어려서부터 좋아했고 ‘장차 인류의 미래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인류의 화성 이주계획을 생각했습니다. 

제프 베조스 역시 어려서부터 우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우주에 만드는 것을 꿈꿨다고 합니다. 이들은 가진 것이 하나 없었어도 어릴 적부터 말도 안 되는 꿈을 위해 달려온 이들입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지구촌 10억 인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세상을 연결하겠다”라는 꿈을 품었다고 합니다. 그는 페이스북 지분의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아로 자라면서 따돌림당하고, 대학교를 중퇴했으며, 괴팍한 성격으로 인해 애플사에서 퇴사를 당하고 췌장암 진단을 받는 등 전혀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도 황당한 꿈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꿈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어떻습니까? 그녀는 모든 여자 연예인 중 가장 재산이 많습니다. 재산 27억 달러(3조5천억원)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무일푼에서 시작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꿈이 있었습니다. 25년간 쇼를 진행한 ‘오프라 윈프리’ 그가 살아가는 삶의 십계명 중 마지막 계명은 “포기하지 마라”입니다. 

그녀의 꿈은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연예인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입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변화를 이끌려 꿈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습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정말 기분 나쁘네!’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우리도 저런 사람들처럼 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법칙만 알면 말입니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하나의 법칙을 발견합니다. 꿈을 가지되 세상에 유익이 되는 엄청난 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불가능한 환경에서도 희망과 가능성을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가능성이 있고 기대를 받는 사람들이라면 그 꿈에 대한 믿음이 작아도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엄청난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증거는 그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뤄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빵이 없다고 걱정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마르 8,17-21)

왜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빵의 기적을 이야기하셨을까요? 또 왜 더 적은 양의 빵으로 더 많은 군중을 먹였을 때 더 많은 양으로 더 적은 군중을 먹였을 때보다 많이 남았을까요? 

우리는 과연 이런 진리를 깨닫고 있나요? 아니면 무엇이 부족할까 봐 제자들처럼 걱정인가요? 예수님은 오늘 어떻게 재물이 풍족하여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 그 진리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더 가진 것이 없을 때 더 하느님께 감사하고 더 나누어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꿈을 꾸면 가지고 있는 것의 수백 배가 넘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아주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꿈을 품는 이들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가졌다고 믿는 것을 없애버리시기도 하십니다. 구약의 기드온 같은 경우입니다. 주님은 싸움에 나가기 직전 기드온의 군사를 아주 적게만 남겨서 기드온의 믿음을 극대화합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우리 힘이 아닌 당신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시기 좋아하십니다. 당신이 인간의 도움이 필요 없으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믿는 이들에게 보상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랑이시기에 사랑으로 믿는 이들, 곧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세상에 이로운 업적을 이루겠다는 이들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들은 엄청난 재물까지 손에 넣게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는 이들은 먹고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일곱 번의 실패를 딛고 도시락을 팔아 엄청난 부를 얻은 김승호 회장도 같은 말을 합니다. 돈은 마치 흘러가는 물과 같아서 잡아놓으려 하면 터지거나 썩습니다. 흘려보내야 하는데 그 흘려보내기 위해 잠시 머무는 자리가 우리가 소유한 돈의 액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상한 말 같기도 하겠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돈 걱정하며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려면 세상에 유익이 되기 위해, 세상을 행복하게 하도록 그것들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몇 배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어떻게 해야 그 많은 빵이 남게 되는지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빵이 넘쳐나도 빵은 늘 부족합니다. 빵을 먹으며 살아도 빵을 모릅니다. 빵의 정제성이 신앙인의 정체성입니다. 빵은 우리에게 그냥 오지 않습니다. 사랑과 정성 희생으로 우리에게 옵니다. 

빵이 되는 빵의 여정이 사랑의 여정입니다. 빵이신 예수님을 새까맣게 잊고사는 우리들입니다. 빵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너무도 빨리 믿음이 식습니다. 우리의 믿음이자 빵이신 예수님을 우리는 모르고 살아갑니다. 믿음에게서 멀수록 허기짐은 더욱 가깝습니다. 

빵 같은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쓸데없이 커져버린 우리의 자아입니다. 별일없는 일상이 사실은 빵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놀라운 일상임을 깨닫게 됩니다. 빵을 통하여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너도나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너도나도 서로에게 빵같은 사랑을 하라며 빵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리스도의 몸! 아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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