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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2/11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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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주님,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2023년 2월 11일 (토)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2월 1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창세기 3,9-24)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흙을 일구게 하셨다.

  • 오늘 복음
    (마르코 8,1-10)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2월 11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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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산들이 솟기 전에, 땅이며 누리가 생기기 전에,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은 하느님이시옵니다.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당신이 그들을 쓸어 내시니, 그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사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리나이다.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복음
마르코 8장 1-10절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2월 11일 (토)
구본석 사도 요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8:50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2월 11일 (토)
김주신 멜키올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5:47

📌 강론시작 15:18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2월 11일 (토)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14

📌 강론시작 09:1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하느님께 벌 받는 이야기

 

오늘 제1독서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하느님께 벌 받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느님의 벌이 무서워 남자는 여자에게 탓을 돌립니다. 여자도 뱀에게 탓을 돌립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다릅니다. 

여자는 뱀에게 속은 사실을 말합니다. 뱀의 기만과 교활함을 인식하였다는 뜻입니다. 뱀으로 형상화된 욕망과 싸우는 것은 힘겨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여인의 후손)이 하느님의 말씀에 힘입어 욕망을 이겨 내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이야기의 배경에는 고대 근동의 독사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미움이 깔려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과 악의 만남이 마치 사막에서 유목민과 독사의 만남처럼 필연적으로 둘 중 하나가 살고 죽는 싸움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싸움의 최종 승리자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여인의 후손이신 그분께서 악마의 유혹을 이기시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지배하지 못하고 죄를 짓게 된다고 말합니다(야고 1,14-15 참조). 제1독서의 말씀에 따르면, 욕망(뱀-욕망의 총체)은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저주의 대상입니다. 

사람들이 동물들과 싸우며 땅의 풀을 뜯어먹고 이마에 땀을 흘려 먹을 것을 얻게 된다는 창세기의 예고는 오늘의 현실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모두가 경쟁자가 되고 땅은 미래를 약속받지 못한 채 점점 더 황폐해져 갑니다. 

죄의 결과인 벌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시는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부적인 것으로서 인간이 자기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탓에 겪어야 하는 결과를 하느님께서 알려 주시고 선언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인간의 범죄 이후 우리는 친구로서 다가오셨지만 심판관이 되어 버리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적어도 불의한 심판관이 아니십니다. 그분께서는 거짓과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자 애쓰시는 의로우신 심판관이십니다. 

그보다 더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주님이시고 인자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죄가 많아진 곳에 은총도 충만히 내렸다고 증언합니다(로마 5,20 참조). 

언제나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마태 9,13 참조).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진짜로 설득을 잘하는 사람

 

여러분의 주변을 보면, 남을 잘 설득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남을 잘 설득할 수 있을까요? 말을 잘하기 때문일까요? 대부분 자신의 언어 능력이 부족해서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로 상대를 설득하는 사람은 진짜가 아닙니다. 아마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진짜로 설득을 잘하는 사람은 ‘내가 먼저 도움을 줄 수 있는 이가 누구일까?’ 를 늘 먼저 묻는 사람이었습니다. 
 
대체로 ‘상대방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될까?’ 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먼저 도움 줄 것을 생각한다면, 이런 사람을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싫어할까요?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편인 사람을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라보기에, 그 사람 말에 설득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도움과 지지를 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기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내가 나만을 생각하면서 도움받기만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도움을 줄 수 있는 이가 누구일까?’를 자주 물으며 주변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습 역시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에 많은 이가 모여듭니다. 그 숫자가 자그마치 사천 명가량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 요구사항이 있었지요. 병을 고쳐달라, 마귀를 쫓아내 달라, 삶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 하느님에 관한 말씀으로 희망을 갖게 해달라 등등…. 사실 빵의 기적을 베풀어달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흘 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굶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를 곧바로 알아채십니다. 사람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 사랑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마음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 곁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설득되어서 그들은 예수님 곁을 절대로 떠나지 않으리라는 결심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마음은 생각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사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사랑의 마음은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받을 사랑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또 입으로만 외치는 사랑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고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 안에서 주님께서는 함께하시고, 우리 안에서 커다란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자기 자신만이 안다. 그러니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면 된다. 설령 눈앞에 있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닌 것 같아도 열심히 노력하며 현재를 살면, 누릴 것을 반드시 누리게 된다.

- 위웨이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는 지금 어디에?

 

“너 어디에 있느냐?” 

하느님께서는 오늘 죄짓고 숨은 아담에게 어디 있는지 물으십니다. 

여기서 그의 물리적인 위치는 동산의 나무 사이입니다. 그러나 그의 심리적이고 영적인 위치는 하느님 앞을 피해서입니다. 

어제 창세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그리고 오늘 아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렇습니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러니 아담의 심리적 위치는 두려움 가운데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은 두 가집니다. 알몸이 드러나는 두려움과 벌을 받는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 죄로 인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말에 알몸이 드러난다는 것은 죄가 드러나는 것이니 아담의 알몸이란 죄이고 우리도 알몸은 죄입니다. 

사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인간은 옷을 입는데 옷이란 것이 치부는 은폐하고 멋지게 포장까지 하는 것이니 옷이라는 위선의 포장이 벗겨져 죄의 알몸이 드러나는 것은 끔찍한 것이지요. 인간은 자기의 죄가 드러나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두려움이 엄청나게 큽니다. 

그런데 아담에게는 심리적 두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두려움도 있지요. 영적인 두려움이란 하느님 앞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요. 

아무튼, 아담은 지금 두려움 가운데 있고, 하느님 밖에 있으며 두려움 가운데 있기에 하느님 앞에 있지 않는 것 이것이 지금 그의 위치입니다. 

우리도 종종 심리적 두려움이 영적인 두려움으로 커져 주님의 계명을 어긴, 어쩌면 작은 죄인, 1차 죄가 주님을 피하는 더 큰 2차 죄가 되게 하곤 합니다. 

어린애가 돈을 훔치고 그것이 드러날까 두려워 집을 나가버린다면 부모에게는 돈을 훔친 죄보다 부모를 떠난 죄가 더 큰데 우리 인간은 종종 이런 미성숙의 죄를 부모에게도 하느님께도 범합니다. 

사랑을 믿기보다 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하느님께서는 벌주심도 사랑임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우리에게 따뜻한 빵이 있습니다. 빵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생명은 나눔으로 더욱 깊어지는 사랑의 길이 열립니다.

생명의 빵을 앞에 두고도 생명의 빵을 우리는 찾습니다. 사랑의 성사(聖事)안에 있어야 할 사랑이 없습니다. 우리의 것을 나눌 때 비로소 생명은 열립니다.

빼앗길 수 없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 그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품어 안는 생명을 만납니다. 모든 것을 감싸고 받아들이십니다. 지나오고 보니 우리 힘이 아니라 생명의 빵이신 주님의 힘으로 우리가 살아왔습니다.

삶의 조각들을 모으니 감사로 가득찹니다. 감사는 감사로 돌아오고 축복은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빵이 되는 삶은 주저하지 않는 빵의 삶입니다.

빵과 빵 사이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시기로 한 빵이 주님 자신임을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생명의 아침은 이렇게 다시 시작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생명의 빵이라 부릅니다. 마침내 빵이 되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여기에 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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