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하느님, 바르고 진실한 마음 안에 머무르시겠다고 하셨으니 저희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리시어 하느님의 마땅한 거처가 되게 하소서.
2023년 2월 12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2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6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집회서 15,15-20)
주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불경하게 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다. - 제2독서
(코린토 1서 2,6-10)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지혜를 미리 정하셨습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5,17-37)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과 달리,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복음
마태오 5장 17-37절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과 달리,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2월 12일 (일)
이동익 레미지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12:33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2월 12일 (일)
김주신 멜키올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5:33
📌 강론시작 16:40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2월 12일 (일)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3:56
📌 강론시작 14:18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우리의 속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한다.
나라를 잃고 성전도 없던 수많은 세월 동안 이스라엘은 회당에 모여 하느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회당 전례의 중심은 언제나 토라(율법)였습니다.
바룩 예언서에는 이스라엘이 복된 백성이며 그것은 자신들이 토라, 곧 “하느님의 명령과 길이 남을 율법을 기록한 책”(4,1)을 통하여 “지혜의 길”(3,27)을 가르쳐 주신 하느님을 알고 섬기는 백성이기 때문이라는 그들의 특별한 자부심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말씀을 참으로 존경하며, 그 말씀에 온전히 매료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어릴 적부터 회당에서 안식일마다 예배를 드리며 율법을 들어 익히셨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어조로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해석과 적용은 당시의 율법 학자들이나 라삐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율법의 근본 정신을 잊고 인간의 구원과 사람의 선익을 구하지 않는 이른바 ‘문자에 얽매인 해석’에 골몰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계명을 통하여 그 법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의 뜻에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율법이 온전하게 유효함을 인정하시면도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가르침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완전성에 이르기를 바라셨습니다(마태 5,48 참조).
예를 들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만드신 사람을 다른 사람이 해칠 수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살인하지 마라.’는 율법의 중요한 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 자기 형제에게 해가 되는 어떤 말이나 행동도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서 살 수 없게 만든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형제에게 봉사하고 그를 섬기며 사랑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고 참생명의 길 밖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말씀이 지켜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당대 알렉산드리아의 유명한 어느 라삐는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철저히 지키려고 죽을 때까지 결코 여인을 쳐다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인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교회의 규정과 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것들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걸어가신 생명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지침이 되게 하려면 우리의 속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마음에 닿을 수 있기를, 그분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청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지 못하는 이유와 할 수 있는 이유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줄리아 카메론은 35세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영화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는 다른 학생들보다 자그마치 15살이나 많았지요. 주위에서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이야기했지만, 자신에게는 창조적 열망과 인생 경험이 많고 배움에 대한 욕구가 다른 학생보다 훨씬 강하다고 믿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책에 이런 내용을 적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지금부터 피아노를 배워서 잘 칠 때쯤이면 몇 살이나 되는지 아세요?”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알아요. 하지만 그것을 배우지 않아도 그 나이를 먹는 건 마찬가지예요.”
하지 못하는 이유만을 찾는데 너무나 익숙한 ‘우리’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사람은 그만큼 가능성이 훨씬 많은 삶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지레짐작으로 할 수 없다며 좌절과 절망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할 수 있는 이유를 바라보며 희망과 의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계명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의 계명입니다. 따라서 사랑의 실천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일 역시 할 수 없는 이유만을 찾고 있습니다.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지금 하는 것이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 이런 이유로 과연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할 수 있는 우리와 함께하면서 더 큰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사랑 실천은 자기 기준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히 주님 기준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당시에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보다도 더 엄격한 주님의 기준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은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하시고, 간음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하십니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은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기 뜻보다는 주님의 뜻을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판단으로 ‘이 정도는 괜찮다.’라는 안일한 생각이 주님과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들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성장은 흔히 크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장이란 조각들을 모으고 그것들이 그리는 그림을 읽음으로써 완전해지는 과정일 때가 많다.
- 리베카 솔닛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하려 하면 더 할 수 없게 되는 것, 사랑
사랑은 모든 분야에 있어 영원불멸하는 주제입니다. 그만큼 파도 파도 새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을 알면 다 아는 것이기에 우리는 영원히 사랑을 배우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면 어떨까요? 내가 스스로 신이 되려는 것과 같이 됩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2022)은 형사 박해일이 한 사건을 맡으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이 산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인데 실상은 중국인 아내 탕웨이가 그런 일을 벌인 것입니다. 박해일은 사랑하는 아내가 있음에도 탕웨이에게 끌리게 됩니다. 결국 탕웨이가 자신을 구타하던 남편을 살해했다는 증거를 잡아냅니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눈을 감아주기로 합니다. 그는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휴대전화를 바다 깊숙한 곳에 던져버리라고 합니다. 탕웨이는 이것으로 박해일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또 다른 살인까지 저지릅니다. 이것을 모른 박해일은 그러려고 계속 자신을 이용하는 것이냐고 따집니다. 이에 탕웨이는 자신만 사라지면 박해일이 행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자신이 바다로 사라져버립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탕웨이가 자신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었음을 안 박해일은 탕웨이를 찾아 계속 바닷가를 뛰어다닙니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결국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것이 각자의 배우자를 배신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말은 비극입니다. 영화 대사처럼 완전히 ‘붕괴’하는 삶입니다.
결혼해도 결국은 배우자 자신이 ‘이게 사랑인가?’를 묻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자신들이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이 사랑이라는 십계명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러려면 손을 잘라야 하고 눈을 빼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결국 사랑이란 계명을 지키려면 다만 이것만 하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자신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에만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엔 예 하고 자기의 뜻엔 아니오 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사랑이라면 우리는 사랑을 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백종원 대표가 골목식당 이후에 재점검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이건 내가 가르쳐 준 게 아니예요”입니다. 사람은 너무나 쉽게 변합니다. 너무나 친절하고 음식도 잘해서 인기가 좋았던 서산 돼지찌개집 사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워낙 부족한 게 없어서 백 대표는 그저 잔반만 잘 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손님들이 남기는 것을 보며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람이 몰려들자 사장님은 초심을 잃었습니다. 대량으로 팔기 위해 수를 쓴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맛이 변했고 결론은 안 좋게 끝났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곱창에서 샴푸 향이 날 정도를 팔고 있었던 곱창집 사장님이 있습니다. 사장님은 백 대표가 가르쳐 준 대로 그대로 맛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맛있다는 손님들에게 사장님은 만납니다.
“그분이 해주신 거는 그대로만 변치 않고 하면 진짜 오래가요. 하라는 대로만 그대로 하면 돼요.”
이렇게 손님들에게 말하는 모습을 본 백 대표는 광대가 승천합니다. 너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 집은 계속 대박이 나고 마지막도 훈훈하게 끝납니다. 만약 백 대표가 가르쳐 준 대로 하지 않았다면 이는 백 대표를 요식업계에서 최고 수준인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내 생각이 끼어들수록 내가 더 높아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더 안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완전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사랑할 수 있으면 하느님을 사랑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완전하신데 거기에 내 의지가 들어가면 그 완전함은 불완전함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려면 무조건 완전 자체이신 분께만 예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명령에 무조건적인 순종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완성하는 사랑
오늘 주님께서는 율법의 완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그런데 율법의 완성을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율법의 완성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완성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 완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율법의 정신과 목적도 사랑이라는 전제 아래서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이 사랑의 법이 아닌 다른 법일 리 없을 것이고, 주님께서도 그런 뜻에서 율법을 폐기할 것이 아니라고, 오히려 완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일 겁니다
그런데 율법도 사랑의 법이고 정신도 사랑이긴 한데 적극적인 사랑이 아니고 최대한의 사랑이 아닙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소극적인 사랑이고 최소한의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한다면 남에게 나쁜 짓이나 해를 끼치는 짓을 하지 말아라.,사랑한다면 적어도 이것은 해야 한다. 뭐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율법의 소극적 사랑의 예를 드십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 맹세하지 말라.
율법에서는 이 정도만 하지 않아도 훌륭하다고 합니다. 사실 이것을 안 하는 것도 쉽지 않고, 이런 사람 드믑니다. 그러니 이런 나쁜 짓 안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할 수 있고, 이 세상 사랑으로는 이 정도로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사랑을 말씀하시고 있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에 이런 소극적인 사랑을 능가하는 사랑을 하라고 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제자가 되려면 그리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고작 불의한 짓을 하지 않는 이 세상 사랑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이 세상 사랑을 능가하는 하늘나라의 사랑을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살인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성도 내지 말아야 하고, 간음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음욕도 품지 말아야 하며, 거짓 맹세는 물론이고 아예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보게 되겠지만 하지 말아야 할 사랑뿐 아니라 해야 할 사랑에 있어서도 이 세상 사랑을 능가하는 사랑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그 유명한 사랑 그래서 우리도 너무나도 잘 아는 두 배 사랑과 원수 사랑인데 이것은 다음 주에 보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하늘나라 사랑은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하늘나라에서 살인이나 미움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하늘나라에서는 살인은 물론 성내는 일도 없어야 하고,,미움은 물론 남을 깔보는 말이나 업신여기는 말도 없어야 하며,,거짓 맹세나 사기는 물론 모두 정직하고 의로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관건은 이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제자인가?
나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가?
주님의 제자라면 그리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이 세상 사랑을 능가하는 하늘나라 사랑을 추구해야 함을 가르침 받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나약한 우리들 삶입니다. 흔들리는 우리들 시대입니다. 바르게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악을 멈추고 선(善)을 실천해야 할 우리들 삶입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지혜와 중심이 필요한 우리들 삶입니다.
공동체의 질서는 계명처럼 사랑과 공경이 중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지혜를 말합니다. 계명은 신앙인의 정체성을 회복시켜 줍니다. 하느님과의 약속이 그만큼 중요한 우리들 질서입니다. 삶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계명의 밝은 지혜입니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절제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음 한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삶의 기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주셨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키워나가야 할 우리들입니다. 더욱 중요하고 더욱 소중한 것은 사랑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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