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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2/06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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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기뻐하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을 사랑하여 피를 흘렸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끝없이 기뻐 춤추네.

모든 성인에게 힘을 주시는 하느님, 복된 바오로 미키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에게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그들의 전구로 저희도 죽기까지 신앙을 증언하게 하소서.

 

2023년 2월 6일 (월)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2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창세기 1,1-1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자 그렇게 되었다.

  • 오늘 복음
    (마르코 6,53-56)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2월 6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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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복음
마르코 6,53-56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2월 6일 (월)
차바우나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07

📌 강론시작 09:25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2월 6일 (월)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35

📌 강론시작 17:59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2월 6일 (월)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4:41

📌 강론시작 15:3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그분 말씀의 빛으로 하루를 더 온유하고 평온하게 살아 봅시다.

 

오늘부터 교회는 한 주 동안 제1독서에서 창세기의 말씀들을 들려줄 것입니다. 창세기 첫 장은 글자 그대로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첫 장이 그리는 세상은 한마디로 조화롭고 균형 잡힌, 잘 정돈되어 있는 세상입니다. 

그렇게 느끼게 되는 첫째 이유는 창세기 첫 장에 단 한 번도 부정의 낱말(‘아니오’)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혼돈과 무질서에 맞서시는 하느님께서는 한 번도 부정의 말을 하시지 않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십니다. 

창조 이야기의 세상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 두 번째 이유는 이 이야기 속에 후렴구처럼 이어지는 반복 구문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날”과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가 대표적이고, 또 구약의 십계명이 열 가지 말씀인 것처럼 정확히 열 번 되풀이되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라는 반복 구절도 그러합니다. 

열 번(완전 수)의 창조 말씀으로 세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 이야기를 읽는 사람은 창조주 하느님의 평온함에 놀라고 우리가 그분의 유순함과 평온함을 본받도록 초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학자들 사이에 완전히 의견 일치를 이루지는 않았지만, 창세기 1장 1절부터 3절을 하나로 묶어, 하느님의 창조 행위를 알리는 위대한 시작으로 보기도 합니다. 첫 절을 시간절로(종속절), 2절은 당시의 정황을 설명하는 삽입구로, 그리고 3절을 주절로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 땅은 ‘토후’와 ‘보후’였다(땅은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다). -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빛이 있어라(생겨라).” 이렇게 되면 창세기의 첫 세 구절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세상이 시작되었고, 세상의 혼돈과 무질서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가 “빛이 있어라(생겨라).”라는 첫 말씀으로 이루어졌음을 더욱더 강조하는 구절로 읽힙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를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이 세상에 왔다.”(요한 1,9)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마음을 비추는 참빛이신 하느님의 말씀에 더 세심하게 귀를 기울입시다. 그분 말씀의 빛으로 하루를 더 온유하고 평온하게 살아 봅시다. 

“주님, 당신이 저의 등불 밝히시나이다. 하느님이 저의 어둠 밝혀 주시나이다”(시편 18[17],29).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에게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

 

20년 넘게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12월, 몸의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힘든 것입니다. 3~4시면 저절로 일어났는데, 그 시간에 눈은 떠지지만 ‘조금만 더’를 마음속으로 대뇌이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면 아침 6시입니다. 사실 새벽에 하는 것이 많기에, 이렇게 늦게 일어나면 바빠집니다. 그러면서 20년 넘게 유지하고 있었던 새벽 기상이 왜 이렇게 힘들어졌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12월에 외부 강의가 많아서 피곤하다는 이유로 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많은 거리를 걷고 또 헬스도 했는데, 이 모든 것을 피곤하다며 쉬다 보니 일어나는 힘도 줄어든 것입니다. 하긴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정신력은 체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의지력이라고 말하는 추상적 능력의 출처는 바로 체력에 있다는 것입니다. 
 
피곤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운동하지 않아 체력이 떨어지면서 의지력을 비롯한 정신의 힘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피곤하다고 또 시간이 없다고 줄였던 운동이었는데, 사실은 나의 피곤을 없애고 또 시간도 벌어주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요?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피곤해서 쉰다고 그리고 바빠서 쉰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쉰다고 해서 피곤과 바쁨이 실제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과 함께하면서 세상일에 대한 피곤을 줄이고, 더 맑고 건강한 정신으로 시간을 벌어 더 많은 일을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코 신앙생활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주님과 만남의 끈을 놓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대게 해주십사고 사람들은 청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과 함께해야 한다고, 어떻게든 예수님과 만남의 끈을 연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받았습니다. 
 
피곤하다고, 바쁘다고, 너무 고통스럽다고 그 밖의 이유를 들어 주님에게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의 삶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빠도 운동을 해야 더 많은 일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주님 안에서 더 많은 일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스트레스는 ‘여기’에 있으면 ‘거기’ 있길 바라거나, 또는 현재에 있으면서 매리에 있길 바라기 때문에 생깁니다. 이 괴리감 때문에 당신의 마음이 갈라지게 됩니다.

- 에크하르트 톨레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기도의 힘을 믿기 위한 조건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창조와 구원의 하느님

 

오늘 독서는 창세기의 시작으로 하느님의 창조를 얘기합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는 얘기인데 그 결과는 단지 치유에 그치지 않고 구원까지 발생합니다.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그러니 오늘 독서와 복음을 합치면 <창조와 구원의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주제를 묵상하니 자연 <연중시기 공통 감사송 3>이 떠오릅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인류를 창조하셨듯이 또한 인자로이 인류를 구원하셨나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은 창조와 구원 사이에 인간이 비 구원 상태에 있었음을 전제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창조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구원할 필요가 없겠지요. 예를 들어 아이를 낳았는데 정상적인 아이를 낳았다면 치유가 필요 없듯이. 

그런데 낳기는 정상적으로 낳았는데 아이가 크게 다치거나 불치병이 들면 치유가 필요하듯 하느님의 창조는 정상적이었는데 인류가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 영적으로 병이 들었다면 치유가 필요하고, 그중에서도 영적으로 병들었다면, 곧 죄를 지었다면 구원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오늘 창세기는 하느님의 창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원하시는 대로 잘 되었고 그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잘 창조된 인류와 피조물이 인간의 죄로 비 구원 상태에 놓이고, 비 구원 상태에 있는 인류와 세상 구원을 위해 파견된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노래하며 감사하는 것이 <연중시기 공통 감사송 3>입니다. 

저는 이 감사 기도를 바칠 때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사랑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 사랑을 느낍니다. 우리 인간의 포기하는 사랑과 비교하면서 말입니다. 

우리 인간 가운데는 애를 낳고는 내버리는 사람도 있잖습니까? 며칠 전 아이를 팽개치고 놀던 엄마 때문에 아이가 굶어 죽은 사건이 있었고, 그런 뉴스가 요즘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데 하느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또 죄지은 사람을 몇 번 사랑으로 충고하고는 말을 듣지 않으면 사랑을 포기하여 구원을 포기하는 데 비해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그렇지 않고 끝까지 구원하시지요. 

그러므로 오늘 창세기에서는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되었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복음에서는 환자들을 예수께 데려오려고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이웃의 사랑을 마음에 같이 간직하는 오늘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사람이 있습니다. 녹아내리며 받아들이시는 사람의 아들 예수님이 계십니다. 절박한 기도가 절박한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지나온 시간은 주님을 만남으로 은총이 됩니다. 다시 뜨거워지는 마음입니다. 

마음의 문(門)을 활짝 여는 것에서 간절한 구원 온전한 사랑은 시작됩니다. 우리보다 더 간절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무너지고 부서지고 깨어지는 사랑이 얼어붙은 우리 마음을 녹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도망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 손을 대어 봅니다.

예수님의 모든 삶이 전해져 옵니다. 나의 삶을 다시 바꾸어 놓으시는 주님이십니다. 가슴이 무너지는 사랑이 정녕 구원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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