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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2/04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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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하느님, 저희를 구하소서. 민족들에게서 저희를 모아들이소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고, 당신을 찬양하여 영광으로 삼으오리다.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저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공경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2023년 2월 4일 (토)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2월 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히브리서 13,15-17.20-21)
    위대한 목자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 오늘 복음
    (마르코 6,30-34)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2월 4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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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복음
마르코 6,30-34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그때에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2월 4일 (토)
한덕훈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38

📌 강론시작 07:42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2월 4일 (토)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9:44

📌 강론시작 16:29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2월 4일 (토)
매일 오후 3시 시작합니다.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외딴 곳

 

오늘 복음에는 “외딴곳으로”라는 표현이 두 번 거듭 나옵니다(31절과 32절). 이는 마르코 복음사가가 그 뜻을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며 일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쉬라고 하셨고, 그들과 함께 따로 외딴곳으로 가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잠시 군중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장면이 때때로 나오는데, 그 다음에는 언제나 중요한 계시가 이어집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낫게 해 주실 때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7,33 참조). 당신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모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가십니다(9,2 참조).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들이 마귀들을 쫓아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시는 곳도 군중과 따로 떨어진 한적한 집입니다(9,28 참조). 

교회 공동체에서 여러 가지 활동과 애덕을 실천하는 데는 신자들의 많은 노력과 헌신이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저마다의 열정과 열의로 열심히 일을 하는 동안 우리는 자칫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잃을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주님과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일한다고 하면서도 어느 순간 인간적인 기준을 따르고,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활동이 개인의 선호와 관심에 따라 흘러가기도 합니다. 

제자는 언제나 스승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다시 돌아와 그분과 일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 계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러면 우리는 예수님과 따로 한적한 곳에 머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믿는 이의 삶은 넓게 보면 주님께 바치는 한 편의 기도이고, 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며, 이 모든 것 안에 주님과 함께 머무는 침묵의 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주님과 함께 머물지 못하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집착과 열망에 따른 것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성당을 찾는 모든 신자가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과 기쁨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주님 안에 머물면서 삶의 방향을 찾고 그분의 양식으로 힘을 얻는 ‘외딴곳’을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들어주는 사람

 

책을 읽다가 친구와 전화하는 이런 대화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보세요?”, “응, 너구나. 요즘 어떻게 지내니?” 
 
“좋아, 넌 어때?”, “사실 엉망진창이야.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글쎄 암이라는 거야.” 
 
“그래? 뭐 새로운 소식은 없고?” 
 
설마 이렇게 대화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현대인에게 이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즉,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으면서 자기 말만 하는 사람입니다. 예전에 어린 학생들과 노래방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 제게 이렇게 말하면서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신부님이 먼저 한 곡 불러주세요.” 
 
노래를 선곡해서 부르는 데, 아무도 제 노래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모두 자기 노래를 선곡하느라 바빴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왜 부르고 있는가 싶어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마이크를 넘겨주었습니다. 그 뒤 노래를 부르기보다 열심히 학생들의 노래를 들어주었고 열심히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남이 노래를 들어주지 않으면 굳이 부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이 듣든 말든 상관없이 자기만 노래 부르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도 그랬던 것일까요? 들어주지 않는 말의 홍수 속에서 외로워하는 사람이 늘어날 뿐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내가 한 말만 기억나고, 남이 했던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나 역시도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의 시작은 내가 말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남의 말을 들어주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와의 관계를 더 좋게 하시려고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대신 우리의 말을, 어떤 말이든 상관없이 모두 들어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곁에는 늘 많은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요구사항의 말을 가지고 있었지요. 육체적인 아픔을 해결해달라는 말, 마귀를 쫓아 달라는 말, 영적 부족을 채워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 그 밖의 많은 청원의 말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가엾은 마음, 바로 사랑하는 마음에 그들의 모든 말들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이 모범을 따라, 우리 역시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말만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말을 잘 경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우리의 사랑 관계처럼, 나의 이웃과도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미래가 있다는 말은 영원하다는 의미로, 황금기가 올 거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바로 오늘을 ‘사랑’하겠다는 허락, 자유, 인내를 뜻합니다.

- 테리 허쉬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우리가 피곤한 이유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일용할 마음의 양식 영혼의 양식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제가 어렸을 때 대부분 집안에 우환이 있는 것과 같은 고통은 아니더라도 서러움 같은 것이 있었는데 가난의 서러움과 배우지 못한 서러움이었지요. 아주 부잣집이 아닌 한 두 가지 서러움이 대부분 같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집은 가난하니 공부하지 말고 일하라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어떤 집은 아무리 가난하고 그래서 굶주려도 어떻게 해서든지 공부를 시키는 부모가 있었지요. 

특히 농번기가 되면 자식을 공부시키려는 부모는 아무리 바빠도 학교 가게 하지만, 일을 시키려는 부모는 이렇게 바쁜데 무슨 공부냐고 학교를 가지 못하게 했지요. 

그래서 공부를 정말 하고 싶어 한 자식들은 이런 부모 때문에 서러움이 더 컸고, 부모가 공부시키지 않으면 내가 벌어서라도 공부하겠다며 무작정 상경하곤 했지요.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면 어떤 것이 더 서러움이고 어떤 것이 더 가여움입니까? 가난한 것이 더 가엾고 서럽습니까? 못 배운 것이 더 가엾고 서럽습니까?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군중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빠져 있지만 이어지는 마르코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내용이 이어서 나오지요.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둘 다 가엾게 보셨지만, 굶주린 군중보다 목자들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가르침을 받지 못한 군중이 더 가여웠고, 그래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군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았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군중은 가방끈이 짧았고 지도자들 가운데는 참스승이 없었으며, 그래서 주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다는 뜻입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많이 가르쳐주셨다고 했는데 지식을 많이 가르쳐주셨을까요? 

목자가 없다는 것은, 지식을 많이 넣어주는 스승이 없다는 것과 다른 뜻입니다. 목자가 없다는 것은, 지식보다는 지혜를 넣어줄 스승이 없다는 뜻일 것이고, 지혜도 세상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지혜일 것입니다. 

사실 스승도 이끄는 존재지만.목자는 양 떼를 생명의 땅 곧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는 존재지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것의 의미는, 군중을 배불리 먹여 육신 생명을 잘 살게 하는 것보다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를 알려주시고 그곳으로 인도하시고자 함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청할 때도 육신의 양식만이 아니라 마음의 양식도 청하고, 마음의 양식을 청하는 것도 좋지만, 영혼의 양식을 주십사고 청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외딴곳으로 떠나보내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떠나지 않고서는 외딴곳의 휴식을 만날 수 없습니다. 만남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외딴곳의 기도와 휴식입니다. 외딴곳도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끝난 것이 아니라 쉬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더더욱 행복해야 합니다. 

조용히 분주했던 일상을 내려놓고 휴식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아쉬움과 부족함까지 주님께 내어드리는 휴식입니다. 주님과 마주 앉을 나눔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깊어지는 사랑입니다. 사랑도 휴식을 통해 내어줄 수 있을 때 더더욱 행복합니다. 외딴곳에서 주님을 향한 사랑을 더 뜨겁게 만납니다. 

떠남이 만남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기쁜 만남은 이와 같이 쉬어가는 이들의 것입니다. 외딴곳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생활을 떠받치는 휴식입니다. 쓰러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휴식을 통해 찬미 받으소서! 더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도록 생명을 힘차게 불어넣어 주시는 외딴곳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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