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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2/05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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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주님,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2023년 2월 5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2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5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이사야서 58,7-10)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리라.

  • 제2독서
    (코린토 1서 2,1-5)
    나는 여러분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였습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5,13-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2월 5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복음
마태오 5,13-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2월 5일 (일)
지상술 힐라리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14:30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2월 5일 (일)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6:53

📌 강론시작 16:55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2월 5일 (일)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4:56

📌 강론시작 13:5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소금이 되라.

 

우리 믿음의 정도를 가늠하고 재어 볼 수 있는 척도는 무엇일까요?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 수를 통계 내어 가늠하면 되겠습니까? 교회의 여러 성사들에 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수로 판단하면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 따르면 우리 믿음의 정도는 우리가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 사는 것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 시작 부분으로 행복 선언(마태 5,3-12 참조) 바로 다음의 말씀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고 전합니다(5,1 참조).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도 산에서, 성당에서 예수님께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이 산을 내려가기가 두렵습니다. 비록 잠깐이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산에 있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산에서 내려간 바오로 사도는 아테네에 가서 예수님을 전하였는데 그의 말을 들은 그리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사도 17,32 참조).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맨 처음 코린토에 갔을 때 자신은 약하였으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무척 두렵고 떨렸다고 하였습니다(1코린 2,3 참조). 우리는 예수님께 들은 생명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산에서 내려와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신자가 아닌 듯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신자의 본분을 외면하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당부하십니다. 소금의 비유는 너무도 명확합니다. 소금은 음식에 맛을 냅니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세상 안에서 참되게 증언하며 세상을 맛나고 풍요롭게 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소금이 음식의 부패를 막아 주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고(야고 1,27 참조) 나아가 세상의 부조리와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우리의 인생이 신자의 맛과 본분을 잃지 않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께 간절히 청하며 용기를 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연구에 의하면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의 행복은 1년을 채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고로 다리를 잃은 사람은 어떨까요? 다리를 잃는 순간부터 큰 좌절감 속에서 힘든 시간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한 1년을 넘어가면 불행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개척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1년 뒤의 행복도가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보다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그래서 영원히 행복하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우리 몸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즉, 행복이든 불행이든 그 어느 쪽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도록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우리 몸 안의 유전자가 그 역할을 하는데, 행복감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게을러지고 나태해져서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의지가 약해질 것이고, 반대로 불행에 빠져 우울감이 너무 길어지면 삶을 포기하게 되어 유전자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행복이든 불행이든 어느 한 곳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수백만 년 동안 진화됐고 또 앞으로도 진화될 인간이기에 계속된 변화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삶 자체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할 때 불행의 순간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으며, 자기 삶에 더 충실할 수 있습니다. 
 
늘 행복하길 원하는 우리이지만, 이는 욕심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대신 어떤 삶이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출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세상 안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빛나는 사람, 세상 안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단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3.14) 
 
세상의 소금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춰주신 것도 아닙니다. 분명하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십니다.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로 태어났고,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만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또 불행 안에서 헤어나지 못해 좌절과 절망을 반복하는 삶도 우리의 삶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 꼭 필요하고 거룩한 삶입니다. 그래서 이 모습에 맞게 더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우리의 빛이 새벽빛처럼 세상에 터져 나올 것입니다(이사 58,8 참조).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리더란, 사람들에게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서도 그것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 해리 트루먼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면 무엇이 좋을까?

 

‘특파원 K’라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된 내용입니다. 

최근 한 프랑스 방송사에서 이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파리 한복판에서 한 여성이 여자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데려가려 할 때 시민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실험에서 단 두 사람만이 “저 사람 엄마 맞니?”라고 물으며 아이를 보호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한국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도와주려는 마음이 들었느냐 질문하니 보통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모르는 사람은 아이에게 “엄마 어딨니?”라고 묻는데 그 사람은 바로 아이를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하는 것 같아서 자기가 나서야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빛과 소금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은총과 진리를 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은총은 사랑이고 소금입니다. 소금은 자신이 녹아서 어떤 것에 맛을 더하고 부패하지 않게 합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빛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위 이야기에서 두 한국 청년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주었습니다.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소금입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본 모든 프랑스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이 빛입니다. 

그런데 빛과 소금이 되려면 먼저 자신이 짠맛과 빛을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가진 것만 줄 수 있습니다. 두 한국 청년들은 한국에서 그러한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그러한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당신의 가르침을 주었고 십자가의 희생으로 피를 쏟아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은총과 진리로 새로 태어났고 그러니 당연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세상으로부터는 별개의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년일때 한 본당 선배도 군대 첫 휴가를 나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이러한 상황에 마주쳤습니다. 친구들은 그 선배를 사창가로 데려갔고 자신들도 들어가려 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선배는 몸부림을 쳤고 그 과정에서 옷도 찢어지고 안경도 깨졌습니다. 그러다 결국 어쩔 수 없게되자 친구들도 술만 한잔 더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이 선배도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친구들에게 소외당할 두려움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빛과 소금이 된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한다는 두려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견뎌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부활로 그러다 죽어도 부활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된다고 무엇이 좋을까요? 바로 ‘창조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은총과 진리를 주는 이는 창조자입니다. 창조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창조자가 됨은 생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결혼도 실패하고 말기 암 환자로서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열심히 살다가 생을 마친 일명 ‘풀빵 엄마’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자녀들은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자녀들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끝내 돌아가셨습니다. 

아이들은 죽음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점차 알아갈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신들의 빛과 소금이었다는 것을. 어머니가 끓여준 새해 첫날 떡국이 그들에겐 소금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보여준 가르침이 그들에겐 빛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들도 자녀를 낳으면 그렇게 부모가 될 것입니다. 받지 않으면 줄 수 없습니다. 

빛과 소금이 된다는 것, 진리와 은총을 준다는 것. 이것은 어머니가 되는 길입니다. 창조자가 되는 길입니다. 왜 하느님은 우리가 창조자가 되기를 원하실까요? 피조물은 소멸하지만, 창조자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창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창조자는 능력자이기도 하지만 그 능력은 에너지에서 나옵니다. 생명이 에너지입니다. 에너지의 소유자만이 영원히 자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자만이 영원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오늘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떤 어머니가 되는 것일까요? 자녀에게 인간이란 믿음을 주는 부모를 넘어서서 하느님이란 믿음을 주는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각자가 가진 믿음을 줍니다. 내가 먼저 하느님 자녀임을 믿어 하느님 자녀처럼 은총과 진리를 흘려주면 나에게서 또 다른 하느님 자녀들이 태어납니다. 그러면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 자녀의 어머니가 됩니다. 

인간을 낳은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피조물이기에 영원할 수 없지만, 하느님 자녀를 낳는 어머니는 창조자 하느님의 협조자가 되어 영원히 삽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처럼 하느님 자녀라는 믿음을 주는 이들이 영원히 삽니다. 그 믿음을 주는 방식이 은총과 진리를 흘려주는 것입니다. 은총은 하느님 생명이고 진리는 그리스도의 모범입니다. 하느님이란 믿음을 가진 자녀를 낳는 어머니들이 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초승달이든 보름달이든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오늘 독서와 복음은 아주 짧고 그만큼 주제도 명확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는 착한 행실>, 이것이 오늘 주제입니다. 

착한 행실, 이것은 정말 세상을 밝게 하는 빛입니다. 악한 행위가 세상을 어둡게 하고 우리 맘을 절망케 하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착한 행위가 무슨 세상의 빛이고, 세상을 밝게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나는 작은 빛일 뿐 어둠이 아니고 세상을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나의 착한 행위 곧 선행이 대단하다면 세상을 그만큼 더 넓게 그리고 더 밝게 비추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나의 착한 행위는 작게나마 세상을 비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의 착한 행위는 그리 대단치 않고 오히려 작습니다. 그럴지라도 나의 착한 행실을 무시하지도 말고 과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자주 양극단의 잘못을 범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 조금 하고 그것을 대단히 자랑하고 과시하는 한 극단과 이까짓 선행은 선행도 아니고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다른 한 극단이 있는데 과소평가할 경우, 오늘 주님 말씀처럼 선행을 함지로 덮어두거나 더 나아가 선행을 하려는 의지마저 꺾어버릴 수도 있으니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행은 크고 작음으로 인해, 하거나 말거나 하지 말고, 크거나 작거나, 해야 할 것이기에 하고, 사명이기에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선행은 겸손으로 할 것입니다. 사실 세상의 어둠은 참 빛이신 주님께서 없애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우리보고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당신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빛이라고 하시고, 세례자 요한과 우리는 그 빛의 증언자라고 하는데 이것이 맞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작은 착한 행위는 참 빛을 증언하는 빛이고, 그 빛에서 빛을 받아 비추는 빛이기에 겸손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선행은 초승달이든 보름달이든 달과 같습니다. 태양 빛을 받아 비추는 달 말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선행은 사랑으로 할 것입니다. 이 말은 자기만족으로 선행을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간혹 우리는 선행을 했다는 자기만족을 얻기 위해 선행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선행은 어쩌면 선행도 아니고 세상의 빛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우리 선행은 그리스도를 낳는 선행이 되어야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라고 하면서 “표양으로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하는 거룩한 행위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습니다.”라고 얘기하는데, 우리의 선행이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악행이 근근이 주님을 믿던 사람을 교회로부터 떠나게도 하고, 우리의 선행이 주님을 믿게도 하는데 그것은 그 선행이 비록 아무리 작아도 주님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작은 착한 행실로라도 그리스도를 낳는 어머니들이 되시길 빕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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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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