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7월 16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7. 16.
반응형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7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

 

 

2022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미카 예언자는 불의를 꾀하고 잠자리에서 악을 꾸미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리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는,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7월 16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12장 14-21절

 

예수님께서는 예언을 이루시려고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그때에 

14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 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16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8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21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오병웅 베드로 신부 강론

 

 

2022년 7월 16일 (토)
오병웅 베드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2022년 7월 16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갈대와 심지를 포기하지 않고 돌보는 일

 

안식일 법을 어긴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없애 버릴 모의를 하자,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물러가십니다. 얼핏 보면 도망이나 회피처럼 비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를 피하여 달아나신 것이 아니라 상한 갈대와 연기 나는 심지와 같은 이들에게 다가가신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물러가셨다.”라는 표현을 통하여 이것이 예수님의 의도적인 행동이셨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폭력을 폭력으로 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많은 이를 고쳐 주시는, 곧 ‘하느님의 일’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이 모습 안에서 이사야가 예언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종의 모습이 실현되었음을 확신합니다. 

바리사이들과의 관계에서는 다투지도 소리치지도 않으시는 모습을 보았고, 군중을 고쳐 주시는 모습에서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다 보면 때때로 우리를 향한 폭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마주한 그 폭력이 ‘하느님의 일’을 위한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또한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상한 갈대는 꺾고, 연기만 내는 심지는 꺼 버리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갈대와 심지를 포기하지 않고 돌보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일’임을 보여 주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꺾인 기를 살리는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위의 말씀은 이사야서의 말씀으로 주님께서 바로 이런 분이라고 오늘 마태오 복음은 얘기합니다. 

그런데 올바름을 선포하되 다투거나 소리치지 않아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할 거라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리고 그런데도 민족들이 그에게 희망을 건다는데 이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정의를 선포하지만 다투지도 소리치지도 않는다니 제 생각에 그것은 자기 정의를 가지고 싸우느라 언성을 높이지 않고, 같은 맥락에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역시 제 생각에 내가 의롭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 정의에 역행하기 쉽고, 상대의 정의를 인정하지 않고 나만 정의롭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자주 얘기하는 거지만 우리는 모든 진리의 일리만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는 모든 진리의 한 부분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네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말하는 우리는 나도 일리만 가지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겠지요. 

이것이 겸손한 정의라면 사랑의 정의도 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정의 말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정의는 이기주의적인 공정과 다릅니다. 제 생각에 요즘처럼 공정이 이기주의에 오염되면 그 정의는  자기의 이익과 권리, 자기의 생명과 삶을 지키려는 정의로 왜곡됩니다. 

이에 비해 사랑의 정의는 다른 사람 특히 약자의 이익과 권리, 생명과 삶을 지키는 정의, 오늘 복음이 얘기하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는 정의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정의야말로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진정한 강자의 정의입니다. 왜냐면 약자는 주님처럼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기는커녕  자기의 이익과 권리, 생명과 삶을 지키기도 벅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젊은이들의 공정을 이기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이들이야말로 지극히 경쟁적이고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시대의 약자요  희생자이기에 이들에 대한 진정한 연민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저희가 하고 있는 여기 국밥은 3,000 원짜리 식당이고, 동사무소와 협력하여 지역 내 어려운 분에게는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자에 젊은이들이 종종 무료 식권을 가지고 옵니다. 

며칠 전에도 한 젊은이가 식권을 가지고 와서 식사를 하며 고시원에서 밥은 주니 비빔밥 재료를 2,000원에 줄 수 없냐고, 그것도 한 주일치를 한꺼번에 줄 수 없냐고 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양을 많이 그리고 옥수수도 주면서 힘내라고 했더니 자기가 냉담자인데 성당 나가야겠다고 웃으며 얘기합니다. 

웃으며 얘기하는 그의 등을 두둘겨주며 그의 엄마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우리나라가 부자이고 경쟁력을 가진 나라지만 꺾인 갈대처럼 기가 꺾이고 꺼져가는 심지처럼 의지가 꺼져가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식당이 해야 할 일은 밥을 싸게 많이 주는 것 이상으로 꺾인 기를 살리고 꺼져가는 의지를 살리는 일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사하라 사막에서 12년 동안 살았던 ‘사막에서의 편지’라는 책으로 유명한 카를로 케레토(1910~1988) 은수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교수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교수직을 접고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기도하고, 그 지역 유목민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며 홀로 지냈습니다. 그가 먹는 음식은 직접 짠 염소젖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은수자로 최선을 다해 살았던 그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고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은수자로 사는 자신보다 어머니가 훨씬 더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가족을 돌보느라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낼 수가 없었고,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약된 환경 안에서도 사랑의 실천을 적극적으로 하셨습니다. 즉, 그보다 더 거룩하셨습니다. 
 
거룩함은 모든 것을 떠나 오롯이 하느님과 함께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룩함의 핵심이 사랑이기에,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이는 하느님의 거룩함을 나눠 받게 됩니다. 
 
가정, 직장, 신앙 공동체 모두가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줄 장소였던 것입니다. 장소 탓만 해서는 안 됩니다. 즉, 누구 때문에 자기가 거룩해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하게 이르십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종은 소리 없이 고요히 하느님의 뜻을 이행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자 치유를 한 뒤에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고, 적대자들에게 빌미를 잡히지 않기 위해 다투지도 않고 큰 소리도 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풍악을 불며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세상에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그 나라의 주인이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뿐이었습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은 일상 삶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만남을 통해 그리고 특별한 일을 통해서만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우리의 일상 삶 안에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거룩함을 받아서, 이웃들과 함께 함께 하느님 나라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우리도 주님의 이름에만 희망을 걸고, 주님의 뜻에 맞게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비를 피할 때에도 작은 우산 하나면 충분한 것이니 하늘이 드넓다 하더라도 따로 큰 것을 구할 수고가 필요 없다.

- 원효대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마태 12, 16)

 

치유는 구원으로 더 깊어져야 한다. 어떤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앵무새같이 같은 말만 반복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다. 세간의 무책임한 모습과 무기력한 침묵이 아니라 주님께 더 가까이 가는 적극적인 침묵이다. 

참된 치유와 참된 깨달음은 언제나 요란스럽지 않다. 시끄러움이 아니라 치유되는 기쁨이다. 어떤 사실을 알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를 예수님을 통해 깨닫는 것이다. 삶의 모습으로 전달되는 기쁜소식이다. 

신앙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이다. 일부분만을 만나는 기쁨은 오래갈 수 없다. 예수님의 전체적인 모습은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며 만나게 된다. 제약된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삶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은총이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자신의 성장을 가리키시는 주님이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