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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2/12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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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주님,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2025년 2월 12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2월 12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2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창세 2,4ㄴ-9.15-17)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돌보게 하셨다.

  • 오늘 복음
    (마르 7,14-23)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 오늘 말씀 카드
    (마르 7,20)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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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창세 2,4ㄴ-9.15-17
오늘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돌보게 하셨다.


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5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

 

 

마르 7,14-23
오늘 복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6) 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2월 12일
정준민 다니엘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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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마음의 순결을 돌보는 지혜를 청합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웰빙’(well-being)을 숭배하는 사회라고 할 만합니다. 이 낱말을 문자 그대로 푼다면 ‘잘 살기’, ‘잘 존재하기’ 정도로 이해되는데, 이는 곧 인간 존재가 모든 차원에서 건강하고 평안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감을 뜻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용되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육체적 건강과 미용의 차원에 집중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오염되지 않은 물과 공기와 식품을 얻는 데 수고와 지출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육신의 건강을 돌보는 만큼 영적 건강도 돌보는지요? 음식을 비롯한 외적 물질은 건강을 해칠 수는 있을지라도 내적 인간을 더럽히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몸을 지나 몸 밖으로 빠져나감으로써 마음에 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배”와 “마음”(마르 7,19)을 분명히 구분하시고, 배가 아니라 마음에 머무르면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인간을 더럽힌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바로 나쁜 행동을 일으키는 “나쁜 생각”(7,20), 곧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동의 동기들입니다. 

사실 안에 있는 것은 언제든 어떻게든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안에 있는 것을 잘 돌보아야 합니다. 보이는 음식과 보이지 않는 마음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에 더 신경을 쓰는지요?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마음의 순결을 돌보는 지혜를 청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만들어 버리고, 버려버리는 나

이스라엘뿐 아니라 중동에서는 부정한 음식 규정이 오늘날도 엄격하여 이슬람에서는 할랄 식품이 있고 이스라엘에서는 코셔 식품이 있습니다. 이 규정은 예수님 당시도 엄격했는데 오늘 복음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예수님의 입장은 매우 자유롭습니다. 왜냐면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은 모두 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음식을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으로 가를 이유가 없습니다. 어제와 그제 창세기를 읽을 때 봤듯이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으로 창조하셨으며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 말씀하셨듯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가운데 더러운 것은 하나도 없고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오히려 더럽지요.

그러고 보면 ‘나, Ego’가 항상 문제이고 Egoism이 문제입니다. 이 ‘나’가 하느님이 만드시고 보시니 좋다고 하신 선들을 다 악으로 만듭니다. 이 ‘나’를 통과하고 나면 깨끗했던 것들이 더러운 것이 되어 나옵니다.

저는 뱀을 싫어하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선으로 만드신 뱀이 제게는 악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을 싫어하고 그래서 그 사람이 제게는 악이 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악이 아니고 악이 된 것이며 내가 악으로 만들어 내게 악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싫고 좋음이 있는 ‘나’가 문제이고,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자기중심, Egoism이 문제입니다.

이 ‘나’가 하느님의 선들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소유한 다음에는 싫증 내어 악으로 만들고, 악으로 만든 다음에는 쓰레기 버리듯 버려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버려야 할 것은 쓰레기들이 아니라 선을 악과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우리말의 ‘만들어 버린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만들어 버린다’는 만든 다음 버린다는 뜻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선을 악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돼지가 진주를 밟아버리듯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우리는 쓰레기로 만든 다음 미워하다가 마침내 버리는 겁니다. 만들어 버리고, 버려버리는 나를 오늘 버려버립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서 시작된 ‘정결예법’에 대한 결론 장면입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사람의 전통’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폐기하고 있음을 꾸짖으셨습니다.

이제 오늘 <복음>에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마르 7,14-15)

예수님께서는 부정한 것이 마치 밖에 있는 양, 막상 속은 은폐하면서 겉의 정결예법에만 치중하는 위선적인 정결예법을 부정하십니다. 이는 베드로가 요빠에서 이방인 코르넬리오를 방문했을 때의 환시체험에서도 말해줍니다. 하느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사도 10,15)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더러운 것은 없습니다. 다만 무엇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더럽습니다.”(로마 14,14-16)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레위기 11-15장>이 명하는 ‘부정’과 ‘정결’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곧 영적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더럽히는 것들은 밖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부정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존자 베다는 말합니다.

“마귀라 할지라도 우리의 나쁜 생각들에 힘을 보태어 부추길 수는 있지만, 그 생각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이처럼, ‘정결’이란 가시적인 겉을 깨끗이 닦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과 인격 전체에 걸려 있기에, 우리의 ‘내면의 변혁’, 곧 전 인격적인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악이 차 있으면 악취가 되어 터져 나오고, 선이 차 있으면 선의 향기가 되어 뿜어져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하시니, 박해하는 이에게도, 상처 입히는 이에게도, 오로지 선을 베푸십니다.

곧 예수님의 마음 안에는 온전한 사랑이 가득 찼기에 항상 사랑이 흘러나오고, 우리들 마음에는 미움이나 화가 있기에, 그것들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그러니, 타인을 탓하거나 처지나 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안의 어둠과 악을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저희 마음이 빛과 선으로 빛나는 ‘예수님 마음’으로 차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7,18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
저를 부수소서. 
고정관념의 틀을 깨소서.

겉만 아니라 속도 부수고 
당신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제 생각을 바로 세우시고 
당신을 모욕하지 않게 하소서.

위선 부리지 않게 하시고 
선으로 제 안을 가득 채우소서.

당신 모상을 새롭게 하시고 
사랑의 향기 뿜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람과 나라를 건강하게 지키는 힘: 자비로운 독재자의 유무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약진하는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요? 많은 곳에서 이 나라가 지금 망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래의 먹거리인 A.I., 로봇, 전기 자동차, 드론 등에서 가장 약진하는 나라는 뭐니 뭐니 해도 중국입니다.

중국의 약진은 무서운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반도체나 핸드폰, 자동차, 가전제품, 선박 등으로 중국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이 거의 추격했고 한국이 아직 선두를 잡지 못한 중요한 부분에서는 이미 중국이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현재 누가 봐도 주춤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어디 있을까요? 역사를 보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대부분 정치 때문입니다. 외세의 침략이나 자연재해 등을 말하지만, 정치가 안정되어 있다면 그런 어려움들은 다 극복될 수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반 독재국가라 할 정도로 심지어 종교의 자유까지도 제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은 선교가 금지되어 있고 아직도 감옥에 갇혀있는 지하교회 주교와 신부들이 많습니다. 또한 미국이 워낙 견제를 많이 해서 무엇이든 발전해서는 안 되는 상황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지휘체계는 하나입니다. 인도도 비슷한 인구를 지니고 있지만, 중국만큼 약진하지는 못합니다. 통일된 지휘체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조선시대 때 여기에 맞고 저기에 맞게 된 이유는 바로 당파싸움 때문입니다. 특별히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세력 때문에 많은 인재들이 죽거나 숙청당하였습니다. 여기에 천주교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한 번 뒤처지면 추월하는 것은 배로 어렵습니다. 그렇게 신식 무기로 장착한 일본과 청나라 등을 상대하기는 언제나 역부족이 되어 결국엔 나라까지 반토막이 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항상 이렇게 된 것의 핑계를 외부에 둡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자신을 더럽히는 모든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내부에 적이 있으면 그 사람 내부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내부가 분열된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나라든 무너뜨리기 너무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깨끗함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자비로운 독재자’를 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전했던 왕이라고 하면 세종대왕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참으로 자비로웠습니다. 백성들이 읽고 쓸 수 있도록 한글까지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독재자였습니다. 세금을 많이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웠기에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 덕분으로 독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나라가 깨끗하고 건강하고 발전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자비로운 독재자가 필요합니다. 지금 뒤로 밀렸다가는 예전의 약했던 나라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비로운 독재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현재 서울 연세에이스내과의 이장욱 원장은 제가 첫 보좌를 할 때 성당에서 특별히 아주 열심한 청년이었습니다. 당시 인터넷이 막 대중화될 때부터 ‘평화의 오아시스’란 홈페이지를 만들어 복음화에도 힘썼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그렇게 열심한 신앙인은 아니었습니다. 의대에 다니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매일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서 자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의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 성령 기도에 심취해 있던 어떤 교수님의 인도로 짧은 성령 피정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강의도 재미없고 방언도 되지 않았습니다.

실망과 실망의 연속 끝에 마지막 미사를 할 때였습니다. 이때 안수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손이 뜨거워지고 등에서도 이상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이게 뭐지?’ 싶을 때 환시로 누군가의 손바닥이 자신의 얼굴 앞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손엔 구멍이 뚫려있었는데, 뚫려있었다기보다는 손바닥에서 손목까지 찢어져 있었습니다. 조금 뒤에는 가시관을 쓴 그 손 주인공의 얼굴도 어렴풋이나마 보였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했고, 마치 두부를 칼로 자르듯 이런 생각이 가슴을 채웠습니다. ‘아, 저렇게 고통받고 한 사람이 바로 나구나!’ 그때는 물론이요, 그 이후도 성당에 갈 때마다 눈물바다였습니다. 그냥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인물들의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렇게 변한 것으로도 저는 그 체험이 주님께서 주신 체험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제 그 손바닥의 주인공은 안젤로에게 독재자가 됩니다.

한 번은 성지순례 중에 젊은이들 기도 모임을 만들어 묵주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명을 받습니다. 그렇게 어디를 가나 기도 모임을 만듭니다. 지금도 병원에서 오후 3시에 묵주기도 모임을 매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제 마음이 갈라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독재자가 자비롭게 그 사람 안에서 나쁜 것이 자신을 오염시키지 않게 막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바로 ‘뜻’인데 내 안에 있었던 무자비한 독재자를 자비로운 독재자가 발로 밟은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당시 성균관 유생들에 의해서 ‘독재자’로 판단 받았음을 알고 있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세종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백성이 반대하더라도 밀고 나갔습니다. 그 힘은 백성 대부분은 그래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비의 힘입니다.

우리나라를 생각할 때 이러한 자비로운 독재자가 빨리 나타나서 많이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를 하나의 뜻 안에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지만, 또한 비전이 명확하여 나라 전체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인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자신 안에 있고 오직 자신 안에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과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폴 마이어(Paul Meyer) 박사는 물고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어항 한가운데 유리 칸막이를 치고, 한쪽 칸에는 붕어를, 다른 칸에는 붕어를 잡아먹는 메기를 두었습니다. 메기는 붕어를 보고 달려오다가 유리에 부딪히고 또 부딪쳤습니다. 이렇게 수없이 실패를 경험합니다.
 
이제 어항의 유리 칸막이를 뺍니다. 메기는 붕어를 보고 달려오다가 유리 칸막이가 있는 위치에 오면 싹 돌아서고 맙니다. 유리 칸막이가 없어서 마음껏 붕어를 잡아먹을 기회를 얻었지만 돌아서는 것입니다. 반복적인 실패 경험 때문에, ‘나는 안 돼. 붕어를 잡을 수 없어.’라는 부정적인 사고가 자리 잡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경험으로 인해 뛰어넘지 못하는 것, 자기 한계라면서 단정 지어 버리는 것, 얕은 지식에 갇혀서 새롭게 도전하지 못하는 것 등등, 임의로 선을 긋고 선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한 고정관념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을 믿지 못합니다. 자기 경험의 틀, 즉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틀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주님과 진정으로 가까워질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외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 자체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늘 외적인 것이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이고, 지금의 환경이 문제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 모든 여건을 만드는 주님께도 큰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나를 먼저 바라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특히 주님과 함께하는 나를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쉽게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나약하고 연약한 인간이기에 예수님 말씀처럼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과 더욱 함께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손길을 통해서 힘차고 기쁘게 지금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 피터 드러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먼저 우리자신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마음에서 이웃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나오게 됩니다. 마음을 바로 보는 힘이 기도입니다.

우리 마음에 대한 응시와 주시가 진정한 성찰로 이어집니다. 깨끗한 마음에서 깨끗한 실천이 나옵니다. 우리의 좋은 마음과 같이 하는 길이 복음의 길입니다.

마음의 성장이 신앙과 인격의 성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밝혀주십니다. 우리 마음을 보고 살피는 것이 우리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하는 실천입니다.

마음과 일상은 둘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것들이 우리 일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공부가 필요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살아내지 못한 지난 일상을 반성합니다.

소중하고 귀한 삶의 진실은 우리의 좋은 마음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사는 것만큼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좋은 마음은 좋은 일상을 빚어내고 좋은 일상은 복음을 빚어냅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하는 행복한 날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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