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인들은 천상 진리를 영광스럽게 선포하여 하느님의 벗이 되었네.
하느님, 복된 치릴로와 메토디오 형제를 통하여 슬라브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으니 저희 마음을 비추시어 하느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깨닫고 참되고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 안에서 한 백성을 이루게 하소서.
2025년 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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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창세 3,1-8)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 - 오늘 복음
(마르 7,31-37)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 오늘 말씀 카드
(사도 16,14)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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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 3,1-8
오늘 제1독서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
1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8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마르 7,31-37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2월 14일
류지인 야고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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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은총으로 활짝 열리는 우리의 영혼
“귀먹고 말 더듬는 이”(마르 7,32)를 낫게 하시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마치 성사를 집행하는 사제 같으십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실 것을, 곧 안수를 청하였을 뿐인데 예수님께서는 손가락, 혀, 숨 등을 통한 정교하고 신중한 동작으로 그의 귀와 혀를 열어 주십니다.
말씀 한마디로, 때로는 병자를 직접 만나시지 않고 원격으로 고쳐 주시기까지 하시던 분께서 여기서는 당신 지체로 병자의 몸을 접촉하시면서 일종의 전례 예식 같은 치유 행위를 보여 주십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육신을 취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구체적인 모습을 목격합니다. 하느님이신 분께서 만질 수 있는 지체로 육화하시어 당신을 만지는 사람들이 당신 신성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귀먹고 말 더듬던 사람은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순간 그분의 신성을 체험하게 됩니다.
육화하신 하느님께서는 말씀만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구체적인 모든 수단으로 우리를 낫게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령 기도나 초자연적 방식으로만이 아니라 당신께서 마련하신 자연적인 수단들이나 의사들을 통해서도 고쳐 주십니다. 그러니 그들 안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인간 조건에 맞추어 눈에 보이는 표시와 말씀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는 도구가 바로 ‘성사’입니다. 우리는 성사를 받을 때마다 눈에 보이는 표지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보고 합당하게 모셔야겠습니다. 그때 우리의 영혼은 은총으로 활짝 열릴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욕망과 갈망의 차이
독서와 복음에서 모두 열림이 일어납니다.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는 눈이 열려 자기의 알몸 곧 죄의 부끄러움을 보게 됩니다.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복음에서는 눈이 열려 주님의 위대한 업적을 보고 입은 찬미를 드립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이것을 볼 때 누구는 자기를 보고, 누구는 하느님을 보고, 누구는 자기 죄를 보고, 누구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며, 누구는 장점을 더 보고, 누구는 단점을 더 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볼까요? 제 생각에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봅니다. 자기 안에 미움이 있으면 모든 것을 밉게 보고, 자기 안에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곱게 보곤 하지요. 어둠이 있으면 어둡게 보고, 빛이 있으면 밝게 봅니다.
자기 안에 욕구 또는 욕망과 욕심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욕구만 있어도 자기가 욕구하는 그것만 보게 되고, 욕망과 욕심이 있으면 더더욱 그것만 보게 됩니다.
오늘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가 그러합니다. 욕구하는 것을 보자 탐심이 발동되면서 그것이 좋게 보이며 소유하고 싶어집니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순간 하느님을 놓칩니다. 그것에 시선을 뺏겨 하느님을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소유한 다음에는 숨기에 놓치기도 합니다.
욕심내던 것을 보던 눈이 이때부터는 죄지은 자기를 보며 자기 죄를 감추고 자기를 숨기려다 하느님을 놓치는 겁니다. 하느님은 놓치고 죄지은 자기와 욕망의 허망함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욕망 대신 갈망이 있으면 달라집니다.
욕망이나 갈망이 모두 결핍감에서 비롯된 면에선 같지만 욕망이 아담과 하와처럼 많이 소유하고 누리고 있음에도 더 소유하고 싶은 탐욕적인 결핍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갈망은 오늘 복음의 가난한 사람들처럼 너무 가난하기에 생존이 위협받는 사람들의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욕망이 풍족한데도 불만을 채우려는 것이라면 갈망은 살려는 것이며 욕망이 스스로 채우려는 것이라면 갈망은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이고,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기를 바라기에 채워줄 구원자를 바라게 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비교하면 욕망이 이것저것 진탕 먹고 마시면서도 더 맛있는 것이 먹고 싶은 것이라면 갈망은 가뭄으로 바짝 타들어 가는 벼처럼 비 한 방울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타는 목마름이고 그래서 비를 내려주십사고 하느님께 빌게 하는 목마름입니다.
어쨌거나 욕망은 욕심에 눈이 멀어 죄짓게 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숨게 하는 데 비해 갈망은 타는 목마름으로 구원자를 찾게 하고 뵙게 하는 것임을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에파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방인 지역인 티로와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지역을 지나 다시 갈릴래아로 오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습니다.”(마르 7,31)
사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는 혼자 깨달음에 이르는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그 ‘말씀’에 따라 사는 종교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귀’와 ‘입’은 신앙을 형성하는 조건에 해당합니다.
‘귀먹은 이’란 단지 듣지 못하는 이가 아니라, 곧 귀가 있어도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입니다. 또한 ‘말 더듬는 이’란 입이 있어도 혀가 굳어져 말씀을 삼키지 않는 이입니다.
그러니, ‘귀먹고 말 더듬는다’는 것은 소통과 통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곧 친교를 나누지 않음이요, 단절과 분리요,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친교를 나누지 않고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그것은 닫혀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귀와 입이 닫혀있어 말씀이 드나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막혀 있어서 흘러들고 흘러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름 아닌 완고하여 고집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사실, 우리도 귀 막고 입 막고 사는 귀머거리요, 벙어리임에 틀림없습니다.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바로 귀머거리요, 타인을 칭찬하지 않을 때가 바로 벙어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는 귀머거리요,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때 우리는 벙어리입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을 때 우리는 귀머거리요, 하고 싶은 말만하고 하고 싶지 않는 말은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벙어리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을 따로 광야로 불러내듯, 여인을 광야로 불러내어 사랑을 속삭여주듯(호세 2,16-25 참조),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시어, 당신 손가락을 우리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우리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마르 7,33).
그리고 빵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셨을 때처럼,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의 뜻에 의탁하여 ‘숨을 내쉬어’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에파타!(열려라)”(마르 7,34)
바로 그 순간, 저희는 그분 손가락을 통하여 만질 수 없는 신성을 만집니다. 곧바로 묶였던 ‘혀’가 풀리고 닫혔던 ‘귀’의 문이 열립니다. 마치, 아담이 말을 배우지 않고도 곧바로 말을 하게 해 주셨던 것처럼(창세 1,27-28;2,20), 힘들게 배워야 하는 말을 배우지도 않고도 말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당신 말씀을 듣도록 ‘듣는 귀’를 열어 당신 말씀을 심으십니다. 당신 손가락으로 혀를 도유하여 영을 불어넣으십니다. 그리고 이로써, “귀머거리는 귀가 얼리리라.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이사 35,5-6)는 이사야의 예언을 저희에게서 이루시고, 메시아 시대가 왔음을 알리십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도유하십니다. 저희 귀를 열어주시어 당신 말씀을 담아주시고, 혀로 그 아름다운 향기를 맛보게 하십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당신 말씀의 향기를 뿜게 하소서! 당신 영으로 도유된 진리의 말씀을 살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7,34
에파타! 열려라.
주님!
저는 귀 막고
입 막고 사는 귀머거리요,
벙어리입니다.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바로 귀머거리요,
타인을 칭찬하지 않을 때가
바로 벙어리입니다.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귀머거리요,
당신께 감사드리지 않을 때
벙어리입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을 때 귀머거리요,
하고 싶은 말만하고,
하고 싶지 않는 말은
하지 않을 때 벙어리입니다.
주님, 저의 영혼을 도유하소서.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시어
저의 귀와 입을 열어주소서.
저희 귀에 당신 말씀을 담아주시고,
저의 혀로 그 아름다운 향기를
맛보게 하소서.
제가 당신 말씀의 향기를 뿜게 하시고,
당신 영으로 도유된
진리의 말씀을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가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질 때
찬미 예수님.
오늘은 복음은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치유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정말 많은 것을 묵상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그를 데려온 사람들에 대해 묵상해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에게 단지 “나을 것이다.”라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시고, 침을 찍어 그의 혀에 대시며, “에파타!” 곧 “열려라!”라고 분명히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그 대상에게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더욱 신경써 주고 계심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 보스코의 말처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도 몸소 실천하신 사랑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에파타라고 말씀하시면서, 행동과 언어를 결합하여 상대가 체험할 수 있는 사랑을 선사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를 데려온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저 “손을 얹어 주십사” 청하였을 뿐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사랑을 느끼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 우리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때는 더는 내가 저 사람에게 필요 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헤어질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그럼 헤어져야 할까요?
영화 ‘아이 엠 샘(I Am Sam)’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버지 샘이 어린 딸 루시를 키우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샘은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단순한 삶을 영위하는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입니다. 루시가 태어난 직후에 여자는 떠나버립니다. 샘은 자신의 인지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루시를 흔들리지 않는 사랑으로 키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아이에게 제공합니다.
그런데 루시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아버지를 지적으로 능가하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7세가 되자 그녀는 아버지가 다른 성인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읽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앞에서만은 일부러 글을 읽지 못하는 척합니다.
샘은 딸과 함께 간 식당에서 어린이처럼 없는 메뉴를 주문하며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보는 딸의 입장은 매우 난처합니다. 이런 일이 이어지자 사회 복지 서비스는 샘이 루시를 키울 수 있느냐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재판이 열리고 샘은 결국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에게 더는 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같이 살고 싶어 하지만, 샘은 루시를 위해 그녀를 좋은 집안으로 입양 보냅니다.
딸은 새로운 집에서 잘 적응해갑니다. 샘은 딸을 만나러 갔다가 자신 없이도 잘 지내는 것을 보고는 그냥 돌아옵니다. 그러나 루시는 아빠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그러한 집에서 자라게 해 준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아빠와 딸을 키우는 집의 엄마는 마치 공동 육아처럼 서로 협력하여 루시를 키우기 시작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이 영화에서 샘이 딸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딸을 잘 키워줄 누군가에게 딸을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녀를 하느님께 봉헌하며 가장 잘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그들에게 감사받는 일입니다.
한국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 역시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기 어려웠던 엄마는 동물원에서 아이의 손을 일부러 놓아 아이를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기억은 아이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자기 힘만으로 키우려 합니다. 그래서 힘이 듭니다. 아이가 마라톤을 하려고 하자,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없는 아이가 말아톤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엄마와 아이가 화해하는 때는 엄마가 아이에게 말아톤 코치를 소개해주면서부터입니다. 초원이는 달리는 법을 배우고 행복하게 달립니다. 그리고 자신을 코치에게 보내준 엄마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만이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그에게 자신을 데려온 그 사람이 치유를 받고 그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힘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려 하지 맙시다. 한계에 부딪힙니다. 주님께 데려가는 사람은 당장은 그 사람을 잃는 것처럼 느끼겠지만, 영원히 그 사람에게 감사받고 관계가 끊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에파타 (열려라)
어떤 사람이 아주 귀한 보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석 감정사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이라고 감정한 보속이었습니다. 이 보석을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보석 감정사도 인정한 최고의 보석이라는 말을 전했지요. 그러나 청렴한 이 사람은 보석 받기를 거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보석을 보배로 여기지만, 저는 탐내지 않는 마음을 보배로 여깁니다. 제가 이 보석을 받으면 우리 둘 다 보배를 잃어버리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보석을 가지고 돌아가십시오.”
보석의 귀중함을 알지만, 이 보석이 자기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게 하는 마음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런 태도를 갖추어야 생각대로 되면 기뻐하고,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통해서만이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주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즉, 지금의 상태를 넘어 그 너머로 향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많은 물건을 바라봅니다. 이 물건의 중요함을 알되, 그 물건 자체 때문에 ‘나’의 삶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됨을 자주 깨닫습니다. 그래야 나를 넘어 그 너머의 주님께로 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이런 우리가 되기를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그래야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세상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주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가장 귀한 보배임을 인정하고 그 말씀을 따르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머리에 손을 얹어 주시지 않고 다른 방법을 쓰십니다. 먼저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시지요. 이 예수님의 행위는 중요한 것을 상징합니다. 즉,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파타!”(열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은 뒤, 그는 귀가 열리고 입이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릅니다. 더 큰 가치인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지는 길입니다. 성령을 받음으로 인해 세상 것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귀가 열리고 입이 풀려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나무는 제 손으로 가지를 꺾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제 마음으로 가까운 이들을 베어버린다
- 톨스토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접촉으로 우리는 건강한 소통을 다시 배웁니다. 막혀있는 접촉을 예수님께서 열어주십니다. 소통하지 못한 우리의 아픔을 치유자이신 예수님께 내어드립니다.
인격은 존중입니다. 존중은 막힘 없이 잘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파타이며 이것이 열림입니다. 진정한 열림은 판단과 평가가 아닌 진정한 공감으로 한 사람을 치유합니다.
소통은 소통의 과정을 지나갑니다. 소통의 과정은 진정성과 소중함의 과정입니다. 소중함의 과정은 우리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가장 가치있는 나눔입니다. 예수님이 따로 있고 소통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 삶의 진정한 소통이 되십니다. 우리의 귀가 열리고 우리의 묶인 혀가 풀려서 우리들 또한 건강한 소통 건강한 인격으로 살아가는 열린 오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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