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주님,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2025년 2월 15일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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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1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창세 3,9-24)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흙을 일구게 하셨다. - 오늘 복음
(마르 8,1-10)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 오늘 말씀 카드
(마르 8,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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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창세 3,9-24
오늘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흙을 일구게 하셨다.
9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16
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19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22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23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24
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르 8,1-10
오늘 복음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2월 15일
최민석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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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너 어디 있느냐?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모르시지 않는 분의 이 물음은 그가 당신 앞에 스스로 나서도록 기회를 주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를 하느님 앞에 나서지 못하게 한 것은 바로 죄입니다. 원조들의 이야기는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연결해 있는 죄의 실제를 잘 보여 줍니다.
불순종이라는 태초의 죄에 연루된 세 공범은 서로에게 탓을 돌리기 바쁩니다. 사람은 여자를, 여자는 뱀을 탓하면서요. 더구나 사람은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3,12)라는 말로 하느님까지 탓합니다.
그들은 저마다 남이 자신에게 한 잘못만 말하지 자신이 한 잘못된 행동은 인식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사람과 여자의 근원적인 ‘탓’은 들어야 할 말씀을 듣지 않고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 대신 아내의 말을 듣고 여자는 남편의 말 대신 뱀의 말을 듣습니다. 무엇보다 그 열매가 먹음직스럽다고 보는 자신의 감각을 따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면서도 부끄러움을 알아 버린 인간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시고 에덴동산 밖에서 살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래서 원조들의 이야기는 원죄로 끝나지 않고 하느님 자비로 끝납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죄는 인간의 삼중 관계를 깨뜨립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다른 인간과의 관계,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입니다. 우리 삶 안에서도 발견되는 이러한 죄와 악의 고리를 선의 고리로 끊어 버리고 더 튼튼한 사랑의 고리로 인류를 연결하면서 이 삼중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노력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께서 주신 벌, 하느님께서 주신 고통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오늘 창세기는 고통의 기원과 이유에 관해서 얘기해주는데 죄의 벌로서 고통이 주어짐을, 하느님께서 고통을 주셨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불교와 다른 점입니다. 불교에서 고통은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 고통이란 자기 업보(業報)라는 말입니다. 선업을 쌓았으면 고통이 없을 텐데 악업을 쌓았기에 고통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틀린 말이 아니고 창세기를 믿는 그리스도교 또한 죄지었기에 고통을 받는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 고통을 주셨다고도 분명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교의 고통이 업보라면 그리스도교의 고통은 벌인데 여러분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습니까? 제 생각에 내 죗값이라고만 받아들인다면 불교의 업보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 상관없이 내 죗값이라고만 받아들인다면 불교의 업보와 별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죄의 벌을 받았는지 그 모범을 본받아 벌을 받더라도 잘 받아야 할 것입니다.
생애 말년에 다윗은 인구조사와 병력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일생 군마가 아니라 주님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승리했으면서도 자기 백성과 군마의 조사를 통해 자기가 이룬 태평성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겁니다.
어쨌거나 그는 하느님께 죄를 지었음을 깨닫고 벌을 받기로 마음먹었을 때 주님께서 세 가지 벌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하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괴롭기 그지없구려. 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
그래서 흑사병이 창궐하는 벌이 내려졌을 때는 또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가 바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러니 제발 당신 손으로 저와 제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도 다윗을 본받아 하느님께서 벌하시게 해야지 자기가 자기 죄를 벌하거나, 인간이 자기 죄를 벌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신자인 우리의 죄는 하느님 뜻과 계명을 어긴 죄이고, 고통도 하느님께서 벌로서 주신 고통이라고 믿기에 우리는 죄에서도 하느님을 만나고 고통에서도 하느님을 만나며 그렇기에 죄도 벌도 고통도 성사적인 죄와 벌과 고통이 됩니다.
이것이 죄를 짓고 벌을 피하여 숨음으로써 하느님과 단절된 아담과 하와와 다른 점이고, 다윗처럼 죄를 지어도 하느님을 만나고, 벌을 받아도 하느님 사랑을 만나며, 고통 중에서 더더욱 하느님을 찾는 신앙인다운 것임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저 군중이 가엽구나.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저 군중이 가엽구나.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마르 8,2-3)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청하지도 않는데도 이미 먹이셨고, 미처 바라지도 않는 데도 이미 용서하셨고, 가엾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에게는 빵이 몇 개 있느냐?’ 그러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마르 7,5)
그렇습니다. 빵은 이미 ‘우리’에게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일깨워주시고 확인시켜 주십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빵이 이미 “일곱 개”나 있었습니다. ‘일곱’은 완전함의 숫자입니다. 곧 이미 차고 넘치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빵”이 없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을 모르고 있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니, 나누기를 원하지 않은 까닭이었습니다.
(사실, 이는 오늘 날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약 12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현재 인구가 약 85억이라면 그 양은 차고 넘치지만, 버리는 음씩 쓰레기가 쌓여가도 굶주린 이들에게는 주지를 않는 세상입니다.
<유엔세계식량기구>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2017년), 현재 인류의 생명을 가장 많이 앗아가는 것이 ‘기아’이고, 매일 1만 6천명의 어린아이가 기아로 죽고 있으며, 이는 모든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다 합친 숫자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또한 세계 인구의 일곱 명 중이 한 명은 오늘 저녁식사를 굶은 채 잠자리에 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이기심과 무관심을 정당화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있는 것’을 없다고 여기는 것은 무지요, ‘있는 것’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나아가, 나누기를 원하지 않은 것은 무관심과 무감각, 무책임과 이기심, 자기 안주와 사랑이 부족한 까닭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보지 못하고 또한 찾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무지요 어리석음이요, 사랑의 소명에 대한 무감각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그 “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의 빵”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은총’입니다. 우리가 이 빵의 가치를 진정으로 안다면, 벅찬 감격에 까무러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름 아닌 ‘우리에게 있는 바로 그 빵’으로 감사드리셨고, 제자들은 ‘그 빵’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 “빵”을 먹었고, 또한 곧 먹을 것입니다.
성찬의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말씀의 전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먹고도 먹은 줄을 모른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먹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말씀을 나누는 일, 곧 복음 선포가 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성경을 풀이해 주는 것은 빵을 떼어 주는 것과 같다.”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8,2
저 군중이 가엽구나.
주님!
속 깊은 곳을 환히 보시고
깊이 숨겨진 말도 다 들으시니
제 마음 안에
당신의 빛을 비추소서.
제 가슴 속에 가엾이 보는
눈과 마음을 주소서.
약한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미사가 끝나면 성당 뒤편으로 가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줍니다. 그런데 유아방에 있던 아이들이 다가올 때를 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들고 있는 사탕만 바라보며 다가옵니다. 그리고 사탕을 받은 뒤의 모습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큰 만족감을 보이는 것이지요.
만족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막대 사탕이라면, 이 막대 사탕 하나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서는 만족에 끝이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만족감을 계속 유지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족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우리인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성인 성녀는 만족의 삶을 살 수 있음을 자기의 삶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행복=소유/욕망’이라는 유명한 행복의 도식이 있습니다. 소유를 계속 늘리면 행복합니다. 문제는 자기가 원하는 욕망이 커지면 소유가 아무리 많아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인 성녀의 공통점은 자기가 원하는 욕망을 계속 줄여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유하는 것이 없어도 행복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음삼덕인 ‘청빈, 정결, 순명’을 철저하게 지켰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세 가지 덕행이라는 향주삼덕인 ‘믿음, 소망, 사랑’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던 것입니다.
암에 걸려 이를 극복한 사람과 암을 전혀 앓지 않은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 지수가 높을까요? 암에 걸렸지만 이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암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욕망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자기 욕망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소유를 무한대로 늘리는 행복보다 훨씬 쉬운 길입니다. 쉽게 만족하고, 쉽게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그 많은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에게 금은보화가 생겨서 따랐던 것일까요? 세상 것에 대한 욕망을 줄여나가면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사흘 동안 굶으면서도 말이지요. 이들을 가엾이 여겨서 빵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가량의 사람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가 산해진미로 바뀐 것도 아닙니다. 그냥 빵과 물고기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만족하고 있습니다. 소유와 상관없이 욕망이 줄어든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먹던 빵과 물고기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고 감사했습니다.
자기 행복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혹시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주님을 따르는 것이라면 절대로 행복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욕망을 줄여나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오늘의 명언
모두들 언젠간 그렇듯이 난 죽는 게 아니야. 우린 최선을 다해 달리는 거고 그러다 멈춰야 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어떻게 경기를 운영하느냐 뿐이야
- 휴 엘리엇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광야에서도 우리를 살게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삶입니다. 모든 자리가 식사의 자리입니다.
하느님께로 우리가 가게 되면 먹을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음식의 움직임이 곧 사랑의 움직임입니다.
식사를 자주 같이하는 관계가 가장 가까운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식사를 같이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성체성사는 우리를 보살피시고 배불리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성사입니다.
사랑의 성체성사로 우리 삶에 들어오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 먼저 정성된 사랑의 양식이 되시어 당신 자신을 우리들에게 바치십니다. 우리의 삶 또한 우리의 나눔으로 바치고 올려드리는 성체성사의 삶이 되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감출 수 없는 오늘의 사랑으로 서로를 배부르게 하는 은총의 날 되십시오. 자아가 죽어야 빵이 되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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