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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4월 4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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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사순 제5주간 월요일 -

 

 

2022년 4월 4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다니엘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딸인 수산나에게 음욕을 품은 바빌론의 원로 두 명이 거짓 증언을 한 것을 밝혀내어 수산나를 구해 줍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은 세상의 빛이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은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4월 4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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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다니 13장 1-9절, 15-17절, 19-30절, 33-62절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바빌론에 요야킴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수산나라고 하는 힐키야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수산나는 매우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다. 


수산나의 부모는 의로운 이들로서 그 딸을 모세의 율법에 따라 교육시켰다. 


한편 요야킴은 아주 부유한 사람으로서 넓은 정원이 그의 집에 맞붙어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큰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늘 그를 찾아오곤 하였다. 


그런데 그해에 어떤 두 원로가 백성 가운데에서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바로 그들을 두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바빌론에서, 백성의 지도자로 여겨지는 재판관인 원로들에게서 죄악이 나왔다.” 


그들이 줄곧 요야킴의 집에 있었으므로, 소송거리가 있는 이들은 모두 그리로 그들을 찾아갔다. 


한낮에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수산나는 남편의 정원에 들어가 거닐곤 하였다. 


그렇게 그곳에 들어가 거니는 수산나를 매일 눈여겨본 그 두 원로는 수산나에게 음욕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양심을 억누르고 하늘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린 채, 의로운 판결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15 
그들이 알맞은 날을 엿보고 있을 때, 수산나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녀 둘만 데리고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날이 무더웠으므로 그곳에서 목욕을 하려고 하였다. 

16 
거기에는 숨어서 수산나를 엿보는 그 두 원로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17 
수산나는 하녀들에게, “내가 목욕을 하게 올리브 기름과 물분을 가져오고 정원 문들을 닫아걸어라.” 하고 말하였다. 

19 
하녀들이 나가자마자 두 원로는 일어나서 수산나에게 달려가 

20 
말하였다. “자, 정원 문들은 잠겼고 우리를 보는 이는 아무도 없소. 우리는 당신을 간절히 원하오. 그러니 우리 뜻을 받아들여 우리와 함께 잡시다. 

21 
그러지 않으면, 어떤 젊은이가 당신과 함께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당신이 하녀들을 내보냈다고 증언하겠소.” 

22 
수산나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나는 꼼짝 못할 곤경에 빠졌소. 그렇게 하면 그것은 나에게 죽음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여도 당신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이오. 

23 
주님 앞에 죄를 짓느니, 차라리 그렇게 하지 않고 당신들의 손아귀에 걸려드는 편이 더 낫소.” 

24 
그러고 나서 수산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두 원로도 수산나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더니, 

25 
그 가운데 하나가 달려가서 정원 문들을 열어젖혔다. 

26 
집에 있던 사람들이 정원에서 나는 고함 소리를 듣고, 옆문으로 뛰어들어 가 수산나에게 일어난 일을 보았다. 

27 
원로들이 저희 쪽의 이야기를 하자 하인들은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였다. 수산나를 두고 누가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28 
다음 날, 수산나의 남편 요야킴의 집으로 백성이 모여들 때, 그 두 원로는 수산나를 죽이겠다는 악한 생각을 가득 품고서 그리로 갔다. 

29 
그들이 백성 앞에서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어 요야킴의 아내, 힐키야의 딸 수산나를 데려오게 하시오.” 그러자 백성이 사람을 보냈다. 

30 
수산나는 부모와 자녀들과 모든 친척과 함께 나왔다. 

33 
그러자 수산나 곁에 있던 이들과 그를 보는 이들이 모두 울었다. 

34 
그 두 원로는 일어나 백성 한가운데에서 수산나의 머리에 자기들의 손을 얹었다. 

35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6 
그 두 원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단둘이서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이 여자가 여종 둘을 데리고 정원으로 들어가더니, 정원 문들을 닫아걸고서는 여종들을 내보냈소. 

37 
그때에 숨어 있던 젊은이 하나가 이 여자에게 가더니 함께 누웠소. 

38 
정원 구석에 있던 우리는 그 죄악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서 그들에게 달려갔소. 

39 
그리고 둘이서 정을 통하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그자가 우리보다 힘이 세어 붙잡을 수는 없었소. 그래서 그자는 문을 열고 달아나 버렸소. 

40 
그 대신 이 여자를 붙들고 그 젊은이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41 
이 여자는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려고 하지 않았소. 이것이 우리의 증언이오.” 그들이 백성의 원로이며 재판관이었기 때문에, 회중은 그들을 믿고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6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47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51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53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60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62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요한 8장 12-20절

 

나는 세상의 빛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12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13 
바리사이들이 “당신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으니, 당신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소.” 하고 말하자, 

1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15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16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17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관하여 증언하신다.” 

19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20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곁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을 잡지 않았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이 성체로 힘을 얻고 죄를 용서받았으니 언제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황중호 베드로 신부 집전

 

 

2022년 4월 4일 (월)
황중호 베드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4월 4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입니까?

 

요한 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입니다. 그래서 이 넷째 복음서는 1장에서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라고 장엄하게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소개한 다음, 성부 하느님의 창조 행위가 성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그분께서 바로 메시아, 곧 세상의 구원자이시며 세상의 빛이시라고 복음서 전체에서 전합니다. 이로써 요한 복음서의 저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증언은 유효하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라고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입니까? 그분께서 세상의 구원자이시며 세상의 빛이시라고 고백하며 증언합니까? 인간적 두려움, 근심과 걱정 앞에, 또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벼랑 끝에 서서, 과연 우리 신앙인들은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차츰차츰 빛에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태양처럼 세상을 비추는 빛이라는 뜻이고, 그렇기에 당신이 세상을 비추면 세상은 대명천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어찌 세상에 아직 어둠이 있을까요? 빛이 비추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주님 빛에도 사각지대(死角地帶)가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주님 빛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다시 태양빛으로 돌아가면 태양빛이 비추지 않는 곳은 없지만 태양빛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태양빛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양산을 쓰듯이 태양빛을 싫어하거나 더 나아가 미워하여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듯 하느님은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태양빛을 비추시지만 선한 사람은 그 태양빛을 좋아하고 사랑하여 그 빛을 쬐는 데 비해 악한 사람은 그 태양빛을 싫어하고 비워하여 그 빛을 피하거나 차단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악하기에 하느님이 태양빛을 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태양빛을 싫어하고 미워하여 거부하는 자가 악한 사람인 겁니다. 

그렇다면 다시 누가 태양빛을 싫어하고 왜 싫어합니까? 범죄자들이 숨듯이 죄를 지은 사람이 빛을 싫어합니다. 자기 죄를 감추려 하고 숨으려는데 들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처음 한 짓과 같습니다. 죄지은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이 알몸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옷을 해입었으며 하느님으로부터 숨지요. 

그런 아담과 하와에게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있냐고 물으시고,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고 답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의 죄를 숨기려고 한 짓을 오늘 독서에서 수산나를 겁탈하려던 노인들이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도망치거나 숨는 방식이 아니라 수산나에게 오히려 죄를 뒤집어씌우고 죽이는 방식으로 죄를 감추려 합니다. 

그런데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이런 방식은 힘있는 자들이나 할 수 있고,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죽이려는 사람들도 당시 힘있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을 자기들의 죄를 들추어낸다고 당시 힘있는 자들이 살해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자 스스로 세상의 빛이라고 하는 것은 증거 능력이 없으니 주님이 세상의 빛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더 나아가 살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빛이신 주님을 살해하지는 않지요. 그러나 빛이신 주님으로부터 간혹 도망치거나 숨기는 합니다. 그런 우리 자신을 오늘 주님 말씀에 비추어 반성하고 차츰 은총의 빛에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말씀 여행은 신부님 휴가로 4월 4일 월요일부터 4월 8일 금요일까지 쉽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알아보기 위한 노력

 

매일 미사에 참석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기도 생활에 전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항상 읽는 책은 성경책이었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성경에 대한 지식이 박식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람을 신심 깊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의 입에서 자주 이웃과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 쏟아져 나왔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과 멸시의 말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복음 말씀을 잘 알면서도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에게 악착같이 복수하려고 합니다. 이 사람 역시 스스로 신앙인이라고 말하지만, 참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주님의 사랑이 흘러넘쳐야 합니다. 즉, 기도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받으면, 자기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잘 아는 사람은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사랑을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셨던, 미움과 복수의 삶을 버리려고 노력할 것이고, 세상에 재물을 쌓기보다는 하늘에 재물을 쌓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잘 알지 못하기에, 세상의 기준에 맞춰만 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이스라엘 빛은 매우 중요한 의미였습니다. 우선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만물에 앞서 제일 먼저 ‘빛’을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지혜서는 이 불기둥을 ‘불멸의 빛’이라고 전해줍니다. 그 빛이 바로 당신이라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 중요한 빛을 ‘율법’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를 부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으니, 당신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소.”라고 바리사이들이 말합니다. 이도 율법에 근거한 말이었습니다. 율법에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 증언할 수 없다고 분명 나옵니다. 

문제는 이 율법은 외부 행위를 단죄할 때 법정에서 적용되는 원칙일 뿐, 예수님의 경우처럼 내적 진리에 적용되는 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옳지 못한 판단으로 예수님에 대한 의심만 키우고 있습니다. 이 잘못된 판단이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 역시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알아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서는 주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오로지 세상의 빛이신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뜻인 사랑을 실천할 때만 비로소 주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단지 행복해지려고만 한다면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기를 바란다. 남들보다 행복해지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실제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 몽테스키외 (Montesquieu)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 8,12)

 

너무 가까이에 있는 어둠과 빛이다. 어둠은 닫히고 빛은 열린다. 어둠은 두려운 심판을 동반하지만 빛은 용서와 늘 함께한다. 세상의 빛은 빛의 역사를 다시 써내려 간다. 빛은 하느님을 알게한다. 생명의 빛은 생명의 길이 된다. 

숨결과 숨결 사이에서 길이 된다. 빛은 우리를 결코 심판하지 않는다. 회개의 빛으로 이끌 뿐이다. 빛은 빛으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 밝혀준다. 하느님께로 오신 빛이 하느님이심을 보여주신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온통 빛이 된다. 빛은 우리를 향해 사랑을 실천하신다. 빛의 뜻은 사랑이며 구원이다. 구원은 하느님의 뜻이다. 가야할 삶을 빛으로 보여주신다. 어둠이 아니라 빛을 믿는다. 빛을 사랑하는 사람은 빛안에서 빛의 길을 걸어간다. 

생명의 봄빛이 눈부시다. 빛으로 빚어만드신 하느님의 세상이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은총의 오늘, 이 오늘이 바로 가장 빛나는 빛의 새날이다. 빛의 풍광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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