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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3월 21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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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사순 제3주간 월요일 -

 

 

2022년 3월 21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아람 장수 나아만은 나병 환자였습니다. 엘리사 예언자가 그의 병을 고쳐 주자, 나아만은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예언자도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고향 사람들이 예언자를 거부하기 때문에 복음은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전해집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3월 21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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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2열왕 5장 1-15ㄷ절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그 무렵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은 그의 주군이 아끼는 큰 인물이었다. 주님께서 나아만을 시켜 아람에 승리를 주셨던 것이다.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 환자였다. 


한번은 아람군이 약탈하러 나갔다가,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아 왔는데,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 곁에 있게 되었다. 


소녀가 자기 여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르신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주인님의 나병을 고쳐 주실 텐데요.” 


그래서 나아만은 자기 주군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가 이러이러한 말을 하였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아람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써 보낼 터이니, 가 보시오.” 이리하여 나아만은 은 열 탈렌트와 금 육천 세켈과 예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전하였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편지가 임금님에게 닿는 대로, 내가 나의 신하 나아만을 임금님에게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나병을 고쳐 주십시오.” 


이스라엘 임금은 이 편지를 읽고 옷을 찢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시는 하느님이란 말인가? 그가 사람을 보내어 나에게 나병을 고쳐 달라고 하다니! 나와 싸울 기회를 그가 찾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는 이스라엘 임금이 옷을 찢었다는 소리를 듣고, 임금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를 저에게 보내십시오. 그러면 그가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 와서 멈추었다. 

10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시켜 말을 전하였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11 
나아만은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리며 말하였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주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 

12 
다마스쿠스의 강 아바나와 파르파르는 이스라엘의 어떤 물보다 더 좋지 않으냐? 그렇다면 거기에서 씻어도 깨끗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 나아만은 성을 내며 발길을 옮겼다. 

13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그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아버님, 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오리다.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루카 4장 24ㄴ-30절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를 깨끗하게 하시고 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이창현 비오 신부 집전

 

 

2022년 3월 21일 (월)
이창현 비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3월 21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예수님에게서 파견된 우리들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공적 활동을 시작하시는 장소는 나자렛 회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61,1-2 참조)을 선포하시며 당신의 정체와 파견되신 까닭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에 대한 청중의 반응은 놀라움과 의심이었습니다(루카 4,22 참조).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선포에 이어지는 사건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 안에 있던 청중에게 당시 통용되던 격언(루카 4,24; 마르 6,4; 마태 13,57 참조)을 인용하시면서 당신을 예언자와 동일시하십니다. 

이어서 구약의 두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가 소개되는데(루카 4,25-27 참조), 이는 예수님의 예언자적 사명과 정체를 입증하기 위함입니다. 엘리야는 과부이자 이방인, 곧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파견되었습니다(1열왕 17,9 참조). 엘리사는 나병에 걸린 이방인, 곧 사회 종교적으로 배제된(레위 14장 참조) 시리아 사람에게 파견되었습니다(2열왕 5,9-10 참조). 

예수님께서는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기름부음받은이(그리스도)로 파견되시어 가장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십니다. 예언자로서 예수님의 신분은 두 예언자와 이루는 관계로 증명되며, 거부와 배척이라는 피할 수 없는 미래의 운명으로 확인됩니다.

예수님의 파견과 복음 선포에 대한 나자렛 군중의 반응은 부정적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적 활동을 시작하시는 시점에서 그들이 보여 준 적대적 반응은 그분의 마지막 때에 온 백성이 보여 줄 모습을 예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대자의 모함으로 죽음에 이르시지만, 놀라운 ‘탈출’(부활과 승천)로 복음 선포를 이어가실 것입니다(사도행전 참조). 우리는 모두 예수님에게서 파견되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모두를 구원해주시지만 모두를 치유해주시지는 않는

 

하느님은 모두를 구원하시만, 모두를 치유해주시지는 않습니다. 더 정확이 말하면 하느님은 모두를 구원하실 생각이시지만 모두를 치유해주실 생각은 없으십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실제로 복음의 주님께서도 수많은 사람의 병을 치유해주셨지만 모든 사람의 병을 치유해주신 것은 아니었지요. 

이것을 보고 우리는 공평하지 않으시다고 할 수 있지만 주님의 공평은 구원의 공평이지 치유의 공평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독서와 복음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고 하느님의 사랑은 이스라엘 사람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똑같아서 모두를 구원하시고자 하시지만, 치유만은 모두에게 똑같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누구는 치유해주시고, 누구는 치유해주시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이며 우리의 공로나 정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순전히 은총입니다. 

구약의 나아만이 치유된 것은 나아만이 선한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나아만이 공로를 많이 세워서도 아닙니다. 

실제로 나아만 치유받으러 엘리사에게 가면서 많은 예물을 뇌물처럼 가지고 갔지만 엘리사는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나아만은 더 좋은 강물에서 더 정성껏 치성을 드려야만 치유될 거라 생각했지만 엘리사는 쫄쫄 흐르는 그 작은 요르단강물에 일곱 번 몸을 담그라고만 하였지요. 

엘리사는 심지어 나아만 앞에 나와보지도 않고 심부름꾼을 시켜 말만 전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치유는 하느님 뜻에 맡기고 그저 구원만 바라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보다 중요한 것, 보다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아람 임금의 장수 나아만은 참으로 특별한 인물입니다. 그가 보인 특별한 처신으로 인해 열왕기는 물론 복음서 안에도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세세대대로 남게 됩니다. 그는 장수로서의 지혜와 용맹함 뿐만 아니라 따뜻한 마음과 인성까지 겸비했던 사람이었기에, 임금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심한 나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나아만은 이방인이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눈여겨보셨습니다. 그의 넘치는 인간미, 그가 지니고 있었던 측은지심과 따뜻한 마음,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미덕을 보신 주님께서는 그의 고통에 적극 개입하셨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그는 가련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침공했다가 홀로 남겨져 있던 어린 소녀를 발견했는데, 나아만은 세상 불쌍한 아이를 외면하지 않고 거두었습니다.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아내에게 돌보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나아만은 주변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병으로 인해 쌩고생하고 있는 자신을 구해준 아저씨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던 소녀였습니다. 용기를 내서 엘리사 예언자에게 치유를 청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합니다. “주인 어르신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나아만이었다면, 아직 머리 꼭대기 피도 안 마른 것이, 쥐뿔도 모르는 것이, 지가 알면 뭘 안다고 나대냐며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의 태도를 보십시오. 즉각적으로 수용합니다. 나아만이 임금에게 소녀의 제안에 대해 말을 건네자 그는 이스라엘 왕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친서까지 써서 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나 스토리는 여기서 꽤나 꼬이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임금은 아람 임금의 편지를 읽고 나자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립니다. 괜한 시비를 거는 것으로 여기고 길길이 뛰며 대노한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 도착했는데, 또다시 반전이 거듭됩니다. 엘리사 예언자가 당장 뛰어나와 엄청난 치유 의식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문밖으로 얼굴도 내밀지 않았습니다. 심부름꾼을 시켜 이런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요르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2열왕5,10 5)

엘리사 예언자가 보여준 행동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아만은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투덜거리며 발길을 돌렸니다. 그때 지혜로운 부하들이 나아만을 달래며 제안합니다.

“아버님, 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상황에서 제가 나아만이었다면 한번 빈정이 크게 상했고,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었으니, 벼락같이 화를 내며, 죽었으면 죽었지, 그럴 수는 없다며 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나아만은 마음의 불길을 차분히 가라앉힙니다. 부하들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성질대로 확 저질러버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 보다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자신의 의지를 굽힙니다.

엘리사 예언자의 제안에 따라 요르단강으로 내려가 한 번, 두 번...일곱 번이나 몸을 담갔습니다. 결국 아랫사람들의 목소리라 할지라도 주의 깊게 경청하고 고민하는 나아만의 열린 마음이 그를 구원합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2열왕 5,15).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잘못된 것을 걷어내면 좋은 것을 얻게 된다.

 

한 형제님이 가보로 오랫동안 내려온 점토로 만들어진 조각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매우 귀하다는 말을 들었고, 자기 역시 이 조각상이 마음에 들어 매일 깨끗이 닦고 또 닦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 점토 조각상을 금으로 덮으면 더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돈이 생기는 대로 금을 사서 이 조각상에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진흙에 잘 붙지 않는 금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형제님은 모든 자원과 시간을 금 붙이는데 쏟아부었습니다. 
 
이 형제님의 할아버지께서 방문하셨습니다. 형제님은 할아버지에게 자신이 금을 붙여서 만든 황금 조각상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런데 황금 사이로 보이는 진흙에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이 조각상이 진흙 속에 빠진 적이 있었지. 그런데 그 진흙을 벗기지 않았구나. 아직도 진흙이 묻어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원래 이 조각상은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단다.” 
 
주님께서는 이 황금보다도 다 귀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위에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붙이고 있습니다. 욕심, 이기심, 미움, 질투, 거짓 등을 계속 붙이면서 가장 좋으신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모습에, 지금의 우리 모습 역시 반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 방문하셨지만, 환영받지 못하십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과 지혜로운 말씀을 보고 들었지만,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으려고 하지 않으니, 예수님의 모든 행적을 사기이고 사람들을 향한 기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반대 기운을 알아차리신 예수님께서는 악의에 찬 불신자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오히려 믿는 이방인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을 버려두고 엘리야가 이방인의 땅에서 고생하는 사렙타의 과부를 찾아가 기적으로 도와준 일과, 예언자 엘리사도 나병 환자 나아만을 고쳐 준 사실을 이야기하십니다. 
 
이 말에 고향 사람들은 화가 치밀었습니다. 자기들의 본색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자기들의 바람을 채워주지 않는다고 해서 제거하려는 못된 마음입니다. 자기들을 구원할 주님의 모습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의 잘못된 것들을 걷어내야 합니다. 욕심, 이기심, 미움, 잘못된 판단, 폭력, 불의…. 그 모든 것을 다 걷어냈을 때, 사랑이신 주님을 믿게 되고 가장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당신이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당신이 있지 않은 곳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

- 찰리 존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루카 4,30)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날 때가 허다하다. 그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갈 용기가 필요하다. 길을 찾고 떠나는 용기를 통해 복음의 길은 가장 좋은 삶의 길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부정적인 것에 결코 반응하지 않으신다. 오직 아버지 하느님만을 바라보신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실 그 기쁨을 믿고 따르신다. 떠나지 않고서는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없다. 결별을 통하여 복음을 보여주신다. 날마다 가야할 복음의 길이 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의 길을 막아설 수 없다. 저마다의 길을 가야함을 십자가를 통해 말씀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망설이지 않고 당신의 길을 가신다. 하느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 또 떠나가신다. 산다는 건 길을 찾고 길을 떠나는 여정이다. 이 사순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를 깨닫는 사순이길 기도드린다. 사람이 되어가는 모든 여정은 상황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돌려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모든 결단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여정이 하느님과 함께 나누는 축복이다. 거부와 멸시 추방과 고난도 예수님께서는 복음의 꽃으로 가득 피어나게 하신다. 상황이 아니라 떠나지 않는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 우리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자아라는 걸림돌을 봉헌하며 다시 일어나 떠나가는 새로운 길의 사순이다. 

새로움을 만나는 기쁨이 참된 복음이다. 오늘이 바로 새로워져야 할 복음의 오늘이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시는 예수님의 뒷모습에서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된다. 결별이 새로운 길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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